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작은 여우를 잡으라 (아 02:15)

첨부 1


모든 동물들 가운데 가장 간사한 동물은 여우입니다. 그래서 여우는 이솝의 우화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본문에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우는 포도원을 허는 해로운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포도원은 사랑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또 포도원은 가정을 나타내기도 하고 교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의 관계를 허는 것이 여우입니다. 가정에서 행복을 헐고 부부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여우입니다. 교회의 부흥을 방해하며 교회의 아름다운 관계를 허는 것이 여우입니다. 여우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첫째, 여우는 의심이 많습니다.
「무어왕」이란 작품에 무어왕과 그의 왕비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우같은 부하 아이고가 왕에게 거짓 보고를 꾸밉니다. 아이고는 왕비가 부관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간계를 꾸며 무어 왕으로 하여금 왕비를 의심케 만듭니다. 이때부터 무어왕은 왕비를 의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행동도 이상하게 보이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게 보입니다. 아이고는 무어왕이 권력도 가지고 있고, 자기가 못 이룬 사랑의 대상인 왕비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시기가 나서 무어 왕을 의심나게 만든 것입니다. 부하의 간계에 속은 무어왕은 아이고의 간계에 속아 선하고 아름다운 왕비를 목 졸라 살해합니다. 왕비가 죽고 난 뒤 이 모든 것이 아이고의 간계인 것을 알게 되지만 왕비가 죽고 난 후였기에 소용이 없었습니다. 무어 왕은 결국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자결하고 사랑하는 왕비 곁에서 죽습니다. 의심 때문에 한 가정이 파괴되고 한 인생이 비극으로 끝난 것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아내를 의심하다가 해체되는 가정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잘 아는 한 가정은 젊어서 부부가 열심히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자녀들도 모두 대학에 진학하여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부부 사이에 의심이 생겨 서로 이혼 청구를 내놓고 있는 가정을 보았습니다. 또 좋은 직장과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행복하게 자녀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의심 때문에 부부관계가 깨어지고 가정이 해체되는 광경을 많이 보았습니다. 의심은 나를 파괴하는 것이며, 의심은 동시에 나와 관계하고 있는 사람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또 의심은 가정과 한 공동체를 파괴해 버리는 것입니다. 의심은 편집증의 한 증상입니다. 모든 것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하게 보게 되며 그 생각에 사로잡히면 확고부동한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 의심증입니다. 임상 실험에 의하면 의심하는 사람은 어릴 때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또 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할만한 관계를 갖지 못하고 학대를 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저도 어릴 때 가끔 용돈이 필요하면 참고서적을 살 때에 4,500원짜리에 500원을 덧 붙여 5,000원을 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번도 저를 의심하지 않고 그냥 신뢰하고 믿어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가 알면서도 무조건 믿어 준 것 같습니다. 제가 성장하면서 제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되었고 알면서도 믿어 주시는 부모님이 감사해서 스스로 고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엄마들은 너무 똑똑한 것이 탈입니다. 참고서가 5,000원이라고 덧붙이기만 하면 인터넷에서 책값을 다 알아보고 혼내고 야단부터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아이들을 신뢰해 주고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 아이들이 자라고 성장해서 신뢰하는 사람이 됩니다.
섹스피어는 “의심은 우리자신의 배반자이다”고 말했습니다. 의심은 결국 내가 나 자신을 못 믿는 것입니다. 크롬마허는 '의심에 시달리고 있는 영혼은 캄캄한 동굴 속에 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임상실험 연구소 소장인 찰스 메이어라는 사람은 '과로로 죽은 사람보다 의심으로 죽은 사람을 더 많이 보았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결국 의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첫째는 주인에 대해 의심했습니다. 주인이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주인으로 알았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에 대해 의심한 사람입니다. 자기는 남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사하면 손해만 낼 것이라고 자신에 대해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는 일에 대한 의심입니다. 장사라는 것은 남을 수도 있고 손해날 수도 있는데 손해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에 땅속에 파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가지고 왔기에 주인으로부터 책망 받았습니다. 차라리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겨 주었다면 본전과 변리라도 받지 않겠느냐고 책망했습니다. 의심은 여러 가지의 복합적인 작용'(마25:29)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0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했는데 그 뜻은 믿음에 굳게 서서 의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둘째, 여우는 뒤를 잘 돌아봅니다.
성경에 뒤를 돌아보다가 화를 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창19:26)이 되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종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길이 나쁘거나 물이 없거나 양식이 떨어지면 애굽에 있을 때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를 먹던 애굽을 돌아보았습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 때문에 출애굽은 했으나 탈애굽은 하지 못한 것입니다.
롯의 실패는 애굽을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분가할 때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이 멸망시키시기 전이었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다(창13:10)고 했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집착했습니다. 과거에 매여 뒤를 돌아본 것입니다. 그 결과 비옥한 땅을 차지한 롯이 성공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함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재산은 불탔고, 두 사위는 죽었고, 딸 두 명만 겨우 구원을 받았는데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동침해서 모압과 벤암미를 낳아서 결국 그 가문이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의 눈으로 앞만 보고 나간 아브라함은 오히려 그의 범사에 복(창24:1)을 받았습니다. 어리석은 여우같은 사람은 과거와, 과거의 전통, 과거의 습관에 매인 사람입니다.
전도서 7장 10절에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과거 박정희시대, 전두환시대가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이 더 좋습니다. 그때는 각하라고 부르지 않으면 끌려가던 시대입니다. 함부로 말도 못하던 시절인데 무엇이 좋습니까? 지금이 훨씬 더 좋습니다. 다만 추억은 아름답기 때문에 사람들은 좋았다고 착각할 분입니다. 우리교회도 동광교회 시대가 좋았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얼마 전에 가보니까 주차장도 없고 얼마나 좁은지 모릅니다. 과거가 좋은 것이 아니라 지금이 좋습니다. 뒤를 돌아보고 과거에 매인 사람은 여우같은 사람입니다. 수가성의 우물가의 여인은 과거에 매여 살던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나 과거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인간관계에 과거에 집착하거나 매이면 변화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 합니다. 누가복음 9장 62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셋째, 여우는 변신의 명수입니다.
즉 변화가 많고 변하기를 잘 한다는 것입니다. 여우는 변신의 명수입니다. 제가 어려서 들은 우스갯 이야기 중에 꼬리 셋 달린 여우가 무덤 위에서 빙빙 세 바퀴만 돌면 여인으로 변신하여 사람을 호린 뒤 간을 빼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릴 때 무덤 옆을 지나가다가 동네 아줌마를 만나면 '혹시 변신한 여우가 아닌가?'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교회 가는 길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여자들을 만나면 괜히 그런 생각이 들어서 무서웠던 적이 있습니다.
관계를 헤치는 여우같은 사람은 변신을 잘합니다. 마음을 자주 바꾸어 종잡을 수 없습니다. 말이나 일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결정한 것도 잘 바꾸고, 인간관계도 잘 바꾸어 버립니다. 한마디로 신실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워진 존재입니다. 성도는 내면과 지식에 까지 새로워진 존재(골3;10)입니다. 나 자신에 대한 시각도 새로워져야 하며, 다른 사람도 새로운 관점에서 보아야 새로운 관계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내나 다른 사람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넷째, 여우는 썩은 것을 좋아합니다.
창세기 9장에서 노아 홍수 때 비둘기는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으나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우는 까마귀 같은 존재로 썩은 것을 찾습니다. 향기로운 예수의 향기를 내지 않고 썩은 고기에서 나는 악취를 풍기(고후 4:9-11)는 것이 여우입니다. 향기에는 꽃과 나비와 벌들이 모이듯 예수 향기를 풍기는 사람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이지만 악취에는 똥파리들만 날아 올 뿐입니다. 여우는 자신과 주위 사람과 공동체를 썩게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여우를 잡아 없애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를 무너뜨리고 가정을 파괴하며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여우를 잡아 건강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