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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일을 행하십시오 (사 4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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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 문호 토스또예프스키는 1849년,
28세에 사회주의 혁명 단체에 가입했다는 죄로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영하 50도가 넘는 추운 겨울날 그는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를 포함한 세 사람이 기둥에 묶였는데, 그는 가운데 묶여 있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최후의 5분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5분을 어떻게 쓸까 고민했습니다. 2분은 형장에 같이 끌려온 사람들에게 한 마디씩 하는데 쓰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정리하는 데 2분,
그리고 1분은 하늘과 땅, 산과 들판을 둘러보는데 쓰자고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두 사람과 인사를 하고 가족을 생각했는데 2분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3분이 남았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지난 28년이란 긴 세월을 아껴 쓰지 못한 것이 그렇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정말 인생을 가치 있게 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총에 탄환을 장전하는 금속성이 났습니다. 너무 절망적이어서 3분을 예정대로 쓰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 병사가 멀리서 손수건을 흔들며 황제의 특사령을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간신히 사형을 면하고 난 뒤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사형 순간에 느낀 시간의 소중함을 결코 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생을 스스로 물으며 살았습니다. '이 5분을 어떻게 쓸까?'
우리도 항상 그와 같은 질문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시간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합니까? 어제 구정이 지났는데 금년 새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몇 가지 권면을 합니다. 3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마십시오.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문맥을 보면 여기에서 말하는 이전 일과 옛적 일은
과거의 좋지 않았던 일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18절 말씀을 두 가지로 해석해야 합니다.
1) 과거의 좋지 못했던 일은 최대한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2) 과거의 좋았던 일은 최대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과거의 좋지 못했던 일은 최대한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 줄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저주를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를 저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보면 내가 나를 저주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과거의 좋지 못했던 기억을 끊지 못하는 것이 최대의 저주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기억을 끊어줍니까? 내가 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내가 끊는 것입니다. 내가 끊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아무도 저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좋지 못한 일을 기억하지 않는 것은 내가 새로운 인생, 넉넉한 인생을 살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반대로 과거의 좋은 일은 최대한 기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명절에 친척들 만나면 섭섭함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섭섭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입니다. 오히려 섭섭함을 자주 느끼는 분이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 원리를 옛날에는 잘 몰랐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게 살았기 때문에 친척들에게 섭섭한 감정도 있었습니다. 그 섭섭한 감정은 대개 돈 문제와 비교의식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는 그런 섭섭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목회자니까 돈 문제, 재산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부모, 형제, 친척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으니까 도저히 섭섭한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8남매 중의 마지막이고 저의 아내도 3남매 중의 마지막이어서 우리는 항상 다른 형제가 우리보다 앞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항상 우리들은 조금 소외되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형제들이 더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가족문제로 섭섭한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위로 두 분의 형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외시키더라도 두분 형님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합니다. 정말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제가 두 형님 사이에서 소외되어도 일절 섭섭함이 없습니다. 그처럼 생각을 크게 하고 새 일을 생각하며 산다면 섭섭함은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교회 내의 다른 두 그룹이 야릇한 경쟁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를 자기편으로 삼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가끔 목회자가 평범한 행동을 해도 그 행동이 한 그룹에 친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면 다른 그룹이 소외감을 느끼면서 그런 일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한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섭섭함을 느끼기 때문에 행동을 사려 깊게 하려고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 벌어질 때가 많습니다. 사실 사람은 대개 부족한 존재이지만 악마적인 존재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하다 보면 대개 좋은 기억들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는 그 기억들을 간직하면서
무엇인가 섭섭하다고 느껴지는 일들을 지워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생각을 조금 달리 하면 섭섭한 일보다 고마운 일들이 훨씬 많습니다. 제가 지난 십 수년간 다른 형제들과 섭섭한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섭섭한 일도 생길 수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섭섭하지 않기로 생각하고 사물을 그런 측면에서 보니까 섭섭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섭섭하지 않게 보기로 작정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짜 문제는 섭섭한 일은 오래 기억하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고마웠던 일은 금방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섭섭한 일은 절대 해서는 안되고, 고마운 일은 당연히 해야 한다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자기 중심적으로 살다 보면 상처투성이의 인간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생각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많아지고 우리를 통해 창조적인 일이 일어날 기회를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항상 피해자라는 피해의식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가 이제까지는 피해자인줄로만 생각했지만 내가 가해자였을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시야를 넓혀서 생각을 하는 순간 나 자신의 존재가 회복되고,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고, 그 다음에야 마음에 속에 놀라운 평안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평안을 우리들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일은 기억하고, 나쁜 일은 잊기를 원하십니다.

2. 하나님이 행하실 새로운 일을 기대하며 사십시오.
19-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니라.'
인생은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생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십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약속을 믿으며 사십시오.
18절을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지만
19-20절을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이전에 있었던 일의 경험과 그 그림자를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자녀에게 주어진 약속을 믿으십시오. 때로 하나님을 앞세우고 나가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까지도 멋지게 활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움 속에서 반드시 길을 열어 주시고, 우리의 심령에 풍성한 축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과거의 안 좋은 경험은 참고만 하십시오. 과거의 안 좋은 경험을 믿으면 의심 많은 인생이 됩니다. 경험을 의심으로 발전시키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과거의 좋은 경험은 내일의 믿음으로 발전시키십시오. 그런데 과거의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희망찬 새 일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신뢰하며 내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믿는 만큼 행복할 수 있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늘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시험에 빠질 수 있고, 몸을 불사르도록 충성하고 헌신 봉사하는 사람도 시험에 빠질 수 있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절대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내일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행하고자 하십니다. 그 새로운 일의 결과는 형통함과 풍성한 축복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새 일이 나를 통해 행해지도록 준비하는 심령이 되십시오.

3.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목적을 이루어 가며 사십시오.
본문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의 입술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제일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그 목적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라면 절대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답을 바라서도 안됩니다.
절대 충성하고 난 후에,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만나도 우리는 무조건 찬송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게 하실지라도 찬송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나를 잡아 잡수신다고 해도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는 추호도 하나님 앞에 보상을 바라거나 어떤 권리 주장을 해서는 안됩니다. 찬송하라고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입술을 주셨다고 하는데, 그 입술로 원망하고 불평이나 한다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원망은 안해도 입에서 항상 달라고 하는 말만 나와서 되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상황을 닥쳐도 찬송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큰 일은 못해도 우리는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의 목적을 100% 달성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하며 봉사할 때 복을 지나치게 생각한다거나, 보상을 지나치게 생각한다거나 봉사와 헌신 뒤에 숨겨진 어떤 의도와 목적이 전혀 없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것이 있다면 그것은 충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충성이 결코 아닙니다. 아무리 고상한 충성을 한다고 해도 그 충성의 최종 목적이 나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충성에 목적과 의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을 위해서 흘린 땀과 피눈물은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반드시 보상해주신다는 사실만은 잊지 마십시오.
보상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한 창조의 목적에 어긋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삼으면 인간들을 어쩔 수 없이 불평하고 원망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보상을 목적으로 삼지 마십시오. 다만 하나님의 적절한 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심은대로 거두는 법칙의 원리 하에서 하나님이 틀림없이 보상하신다는 사실만을 알고 묵묵히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는 모습만을 보이십시오. 결론적으로 금년 한 해 이렇게 살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최선을 다하며 사시고,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사시고, 이웃을 나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삼지 말고 어떻게 하면 저를 이해하고 저를 섬길까 하는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웃은 우리와 같은 처지의 나그네이고, 우리 인생의 동반자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돕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들은 서로 소중히 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항상 믿고 새로운 일을 기대하며 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사십시오. 그렇게 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어 가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한규 목사(분당 사랑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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