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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암 0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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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국에서는 가뭄이 들어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온 국민이 나서서 성금을 거두어서 양수기를 보내고, 급수차를 보냈습니다. 이웃들이 어려움을 만났을 때 서로 돕는 일에 있어서 우리 한국 사람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해마다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방송국 앞에 줄을 서는 것이 우리 민족입니다.
지금 저에게도 '한국 어린이 보호재단'이라는 곳에서 홍콩지역 후원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있습니다. 여기서는 소년소녀 가장이나 결식 아동, 또는 심장병어린이 수술을 돕는 단체인데 홍콩에 사는 교민들이 이 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지금 고민 중에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 민족은 남을 돕는 일이라면 전 세계적으로 열심을 내는 민족입니다.
사실 사람이 사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먹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의식주' 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입는 옷이나 사는 집보다는 먹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로부터 사용하는 말을 보면 '먹는다.'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인사도 '진지 잡수셨습니까?' 이렇게 하고, 나이도 먹는다고 하고, 애를 먹는다고 하고, 돈을 떼어먹는다고 하고, 기억이 안 나면 잊어먹었다고 합니다. 전부 다 먹는다고 합니다. 또한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합니다. '식구가 몇 명이냐?' 묻는 것은 '밥 먹는 입이 몇 개냐?' 하고 묻는 것입니다. 먹고사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먹는 것을 기준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정 반대 현상이 나타납니다. 요즘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안 먹으려고 합니다. 최근에 어떤 연예인이 살을 뺐는데 운동으로 뺐다, 수술로 뺐다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만든 다이어트 비디오가 30만장이 팔렸다고 합니다. 그만큼 다이어트에 관심있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에는 살 빼는 약도 나왔는데 이 약을 먹으면 식욕이 감퇴되고, 먹은 음식의 반은 그냥 내려간답니다. 먹기는 먹되 영양분의 섭취를 최대한 억제하는 것입니다. 한 세대 전에는 못 먹어서 난리이고, 지금 세대는 너무 많이 먹어서 난리입니다. 먹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4장에는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 놓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몹시 베가 고프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시험을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대답하셨습니다.
먹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먹고 육신이 건강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 건강한 것입니다. 생각을 바로하고 판단을 바로 하는 건전한 정신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이 강건해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말씀했습니다. 영과 혼과 몸이라고 했습니다. 영이 건강해야 혼, 다시 말해서 정신이 건강하고, 그 다음에 몸, 즉 육체가 건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삼서 1장 2절에도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했습니다. 먼저는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범사에, 다시 말해서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강건, 즉 육신이 건강해 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지도를 펴놓고 어떤 나라들이 가난하게 사는가를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잘못된 종교가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으로 병이 들었기 때문에 정치도 무너지고 사회도 무너지고 경제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몇 해전에 아프리카에 심한 기근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전 세계가 발벗고 나서서 돈을 모아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모여진 돈들이 어디에 사용되었는가 하면 주로 우물을 파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우물을 파서 그 물로 농사도 짓고 이제는 웬만큼 살게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땅을 파면 물이 나오는데 도무지 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가 안 오면 땅을 파서 물을 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이 사람들은 땅을 팔 생각은 하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다가 굶어죽어 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것은 하늘이 주신 재앙이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재앙을 받아야 한다. 이 재앙을 피하려고 하면 더 큰일난다.' 이런 생각 때문입니다.
잘못된 종교가 문제입니다. 영적으로 병이 들었기 때문에 정신이 병이 듭니다.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육체까지 병들고 죽는 것입니다. 범사에 잘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도 문제가 아니고, 비가 안 오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북한 배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두려워 할 것은 우리 영혼이 병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내 영혼이 병들고 메말라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본문 11절은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말씀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마실 물이 없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기록되었는가를 살펴봅니다. 아모스선지자가 활동하던 주전 8세기는 이스라엘이 상당한 번영을 누리던 시기입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앗수르라는 나라가 아람이라는 나라하고 전쟁을 하느라고 점점 힘이 약해져 갔습니다. 이때를 틈타서 이스라엘은 주위에 있는 나라들을 공격하여 점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옛날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이제는 잘 살게되었다는 생각에 흥청거리기 시작했고 점점 사치해지고 타락해 갔습니다. 관리들은 부패하고 빈부의 격차는 점점 더 심해져 갔습니다. 신 한 켤레 값으로 사람을 사고 팔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지만 그 속은 점점 더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아모스선지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언뜻 생각하기에는 그렇게 두려운 것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왕 심판을 하시려면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다 잡아가리라.' 하시던가 아니면 '경제가 결딴나서 다 노숙자가 되리라.' 하시던가, '광우병으로 인해 다 죽으리라.' 그래야 두려운 마음이 들텐데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의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들려지지 않는다는 것, 이것만큼 두려운 일이 없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열 두 제자들과 식사하시던 장면을 묘사한 '최후의 만찬'을 그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빈치는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의 얼굴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모델을 구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나름대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모델을 구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야겠는데 예수님 닮은 사람을 어디에 가서 찾겠습니까? 당연히 교회에 가서 찾았습니다. 어느 교회 성가대에서 찬송을 부르는 젊은이를 만났는데 그 얼굴이 너무도 인자하고 평화스러워서 그 청년을 모델로 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열 두 제자들을 하나씩 완성시켜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롯유다의 얼굴을 그려야겠는데 적당한 모델이 없었습니다. 이러 저리 다니는데 한번은 어느 빈민굴에 들어갔다가 그 동네에서 가장 악하기로 소문이 난 알코올 중독자 한 사람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모델로 가롯유다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그리고 있는데 모델이 묻습니다. '선생님, 전에도 저를 한번 그리신 적이 있지요?', '아니 무슨 말입니까? 나는 당신을 보기를 처음 보는데 무슨 말입니까?',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전에도 저를 한번 그리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저를 모델로 해서 예수님 모습을 그리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얼굴을 가졌던 청년이 몇 년 후에는 가롯유다처럼 사악한 모습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말씀을 가까이 할 때에는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었습니다. 그 얼굴이 빛나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게 되자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우리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 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런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교회에 잘 나오다가 어느 날 무슨 일이 있어서 한 두 주일 빠지게 됩니다. 친구가 왔다거나 어디를 간다거나 해서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한번 빠지면 두 번 빠지게 되고, 두 번 빠지면 세 번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점점 세상 가운데로 나가게 됩니다.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이것이 사단의 계략이라는 것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교회 나가지 말자.' 이러는 것이 아니라 '한번만, 두 번만' 그러다가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계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교회를 멀리하면 하나님의 말씀도 멀어집니다. '나는 교회에는 안나가도 성경은 열심히 읽어' 이런 말은 없습니다. 학생이 '나는 학교에는 안가도 공부는 열심히 해' 그런 것과 같습니다. 교회를 떠나면 하나님의 말씀도 떠납니다. 점점 마음이 황폐해집니다. 마음속에 염려와 근심이 쌓이게 되고,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영혼이 썩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 이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말씀의 기근' 이란 말은 이런 뜻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듣는데 그 말씀이 믿어지지 않는 것, 이것도 역시 기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말씀을 외면하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교회에 나오기는 하는데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제 친구 목사님 중에 피지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분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만났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당신은 천국에 가도 별 볼일 없겠구먼. 우리 같이 복잡한 홍콩에 사는 사람이야 천국에 가도 실감이 나겠지만, 당신이야 지상의 천국이라는 피지에 사니 천국에 가도 그냥 여기가 천국인가 집인가 헷갈릴 것 아닌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피지에 생선 값이 비싸다는 것입니다. 섬나라인데도 생선 값이 비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보니 고개가 끄떡여졌습니다. 피지는 작고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을만한 큰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낚시로 고기를 잡기 때문에 생선이 귀하고 비싸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홍수 속에서 목말라 죽는 꼴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말씀의 홍수 속에 삽니다.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습니다. 그것으로 모자라서 설교 테이프도 듣고 설교집도 사다 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얼마나 믿어지십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 말씀을 얼마나 믿으십니까? 믿는다면 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세상에 나가 돈 버는 것이 먼저입니까?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이 말씀을 얼마나 믿으십니까? 믿는다면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찾는 대신에 사람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사람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염려하고 걱정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을 의지하고 세상을 의지하고 사는 것, 이것이 기근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 역시 기근입니다.
이렇게 살면 점점 말씀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 따로, 사는 것 따로 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듣는 하나님의 말씀은 좋은 말씀, 그러나 내가 세상에 나가 사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말씀' 이렇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믿지 못하고 살면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아예 말씀을 거두어 가십니다. 로마서 1장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들을 하게 하셨으니' 말씀합니다. 더 이상 잔소리를 안 하십니다. '네 마음대로 해라.' 완전히 버리시는 것입니다.
본문 12-1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거두어 가신 다음에는 아무리 찾아도 더 이상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박경서박사님을 모시고 북한에 대한 강연회를 가졌습니다. 북한에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개인이 성경책을 소지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린 후에는 성경책을 반납하고 가야합니다. 절대로 교회 밖으로 갖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기근입니다.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고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몇 해전에만 해도 중국에는 성경책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서 성경 몇 구절을 베껴서는 일주일 동안 그 말씀을 외우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말씀을 얻고 싶어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주신 말씀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청년들이 만주로 건너가 선교사들을 만나 세례를 받음으로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만주에서 성경을 번역하는 일도 했습니다. 당시에 중국은 우리 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장로교를 비롯하여 성공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등이 중국에 선교본부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중국에 기독교가 널리 퍼져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말씀을 버렸습니다. 끊임없는 권력 다툼과 세상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기근을 보내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들려질 때에 그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말씀이 들려질 때에 그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까? 사는 것이 힘들고 피곤하십니까?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고 어려움이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말씀의 기근 때문인 것을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 속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일어나라.' 말씀하실 때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말씀 속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예수님 앞에 나왔던 두 소경은 '내가 너희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믿느냐?' 하실 때에 '주여 그러하오이다. 믿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네 믿음대로 되라.' 고침을 받았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을 믿고 일어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리라.' 이 말씀을 믿고 일어선다면 여러분은 어떤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이 말씀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은 소원하는 것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여러분 귀에 들려지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함으로 말씀으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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