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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 (막 01: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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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24시간입니다만, 그 24시간 중에 어떤 시간이 여러분들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까? 저는 오늘 아침시간에 대한 예찬을 좀 하려고 합니다.
아침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하루를 사랑하는 것이며 자기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에 직장인 624명에게 직장에서 업무 효율이 가장 높은 시간대가 언제인가를 물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전 10시부터 11시가 56%, 오전 9시에서 10시까지가 22%, 오전 11시에서 12시까지가 7%, 도합 85%가 아침 시간이 효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최근에 일본의 다키이 노부오라고 하는 사람과 사이쇼 히로시라고 하는 사람이 책을 낸 것이 있는데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하라!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이 되라!” 이런 책에 아침에 대한 예찬이 나옵니다.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무기력한 아침은 무기력한 하루를 만든다. 아침은 가장 집중력이 높고 가장 생산성이 뛰어난 시간이다. 위대한 CEO, 성공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침형 인간이다. 아침형 인간은 성공형 인간이다. 아침형 인간으로 변하는 것은 자기 변화를 이루고 싶은 강한 열정과 굳은 의지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 효과는 엄청나다. 아침형 인간은 단지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중요성을 깨닫고 아침에 승부를 거는 사람이다.' 또 이런 얘기도 나옵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이른 아침에 깨어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아침에 뇌가 빨리 움직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침에는 우뇌가 활발하게 작용한다. 우뇌는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번뜩이는 착상을 많이 해야하는 경영자에게 아침은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아침형 인간의 건강은 보장되어 있으며 아침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성공도 건강도 없다.'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이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은 하루를 지배할 수 있고 그 하루를 지배하는 사람은 인생을 지배할 수 있다. 인생을 지배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얻고자 했던 가치를 얻게 될 것이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인류가 야행성 생활에 젖어들고 있습니다. 특별히 밤의 문화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밤의 문화는 유흥문화, 놀고먹는 문화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화에 빠져들수록 늦잠을 자게 됩니다. 철강왕이었던 카네기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아침에 잠자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지출이다.” 그러면서 아침형 인간에 대한 이 예찬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침형 인간이십니까? 아니면 야행성, 그런 사람들입니까?

이 아침의 소중함. 더더구나 이 새벽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새벽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아침과 새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마치 아침을 잃으면 인생 전체를 상실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사람의 모범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이 아주 이른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집을 떠나서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문맥의 앞부분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놀랐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의 귀신을 내쫓음으로 ‘아, 저분이 능력이 많으신 분이구나!’ 병든 자를 친히 만지시면서 그들을 치유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당신이 참으로 귀한 분이요, 당신이 메시아요, 그래서 예수님의 인기가 높이높이 올라가는 그 순간에 이 모든 인간적인 인기와 인간적인 명예에 대해서 당신께서 차단하시는 예수님의 삶의 태도와 삶의 용기가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새벽에 기도한다는 것, 뭘 뜻할까요? 하나님 앞에 홀로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전적인 신뢰를 두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 이른 아침에 기도함으로 어제의 모든 사건으로부터 탈출하게 됩니다. 어제의 사건이 고뇌이든, 어제의 사건이 상처이든, 어제의 사건이 명예이든, 어제의 사건이 기쁨이든…… 어제 가졌던 모든 자리에서부터 단절하고 새로운 사람을 시작하는 것이 아침을 사는 사람들의 비밀이고 그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예수님에게서 그래서 새벽기도란, 인간의 모든 칭찬에서부터, 인기에서부터 벗어나는 길입니다. 인간들이 예수님을 행한 편견과 비난으로부터도 자율케 되는 길입니다. 오직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당신의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하는 마음의 결심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제의 영광에 더 머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은 어제의 영광, 어제의 인기, 어제의 사람들의 칭찬으로부터 과감하게 단절하십니다. 그리고 다시금 하루를 하나님의 뜻의 의해서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면서 당신의 인생을 다시금 시작하는 것을 볼 수 가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떠할까요? 어제 우리가 경험한 괴로움과 슬픔이 우리들이 아무리 커도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어제의 부끄러움이 아무리 커서 어쩔 줄 몰라 했어도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들은 그 어제의 그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하고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처음부터, Start Line부터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새벽을 사는 사람들, 새벽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처음 사랑처럼 다시 인생을 시작하겠습니다. 어제가 내가 갖고 있었던 것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좋은 것, 마무리 명예가 있어도 다시 처음 마음으로 시작하는 용기와 담대함과 삶의 올바른 자세를 갖는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어제 내가 가졌던 열등감, 어제 내가 가졌던 무기력감. 이 모든 것에서부터 벗어나는 인생의 비밀이 새벽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새벽에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최고의 특권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삶의 모범을 배웁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하는 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새로운 희망이며 소망입니다. 어제를 넘어서 오늘을 새로 시작하게 되며 내일을 기대하며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곽재구라고 하는 사람의 ‘새벽편지’라는 이런 시가 있습니다.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은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 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에 정녕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에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
다시 고통 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올 아침에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라일락꽃 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나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 만 같다.

하나님이 없어도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들 새벽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사랑의 샘, 희망의 샘이 출렁일 것만 같다고 하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출렁일 것만 같다.’가 아니라 사랑의 샘, 희망의 샘이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가운데에 이미 우리는 소유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가르치시고 우리에게 소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른 새벽이란 인간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에게서도 아주 중요한 시간입니다. 성경은 새벽에 하나님이 결정적으로 일하는 때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저녁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는 기도라 한다면 새벽에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나의 삶 속에서 보여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기대하며 소원하는 기도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시편 5편 3절에 보면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는 시간이 아침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아침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하나가 되어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그 시간이 아침이라! 그렇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편 88편 13절에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의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 새벽을 사는 사람입니다. 아침에 엎드린 사람입니다. 아침에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들입니다. 시편 119편 147절에도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받았사오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응답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루를 새롭게 살고 싶으십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의 하나님의 역사와 행동하심을 보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새벽을 사셔야 합니다. 새벽에 기도하셔야 합니다. 새벽에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살아가야 우리의 인생 속에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세상 사람도 새벽을 살면 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더 말로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에 아침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행위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하루에 모든 창조를 행하신 다음에 성경은 삽입부처럼 이렇게 써놓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되더라.” 하나님이 일을 끝내시면 저녁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침이 되면 다시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은 시작하시는 시간이 되었다고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아침이란 하나님의 창조행위의 시간.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시간. 하나님이 듣는 시간.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는 시간이라고 말씀해 줍니다. 그래서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우리의 인생을 활기 있게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기대하며 준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새벽형, 아침의 사람들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했을 때,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의 안장을 지우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 앞에 서서 대결하라고 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7장에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네가 행하는 것을 네가 볼 것이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모세가 신의 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네게 보이라 그 아침에 네가 너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 십계명을 주겠다.”고 약속 해주십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점령할 때,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리라! 그렇게 기록해 줍니다. 여러분, 새벽에 일어나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 여기 믿음의 사람들의 신비한 비밀이 들어가져 있습니다. 시편 57편 8절에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을 사는 사람들만이 이 시대가 갖고 있는 어두움을 보면서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어둠이 있습니까? 우리 안에 시기가 있고, 우리 안에 미움이 있고, 우리 안에 탐욕이 있고, 우리 안에 정욕에 문제가 우리를 끈임 없이 억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새벽을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야행성 어둠의 그 시간을 단축하고, 단축하고 다시 아침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때는 내 안에 있는 어둠을 깨워버리는 하나님의 새벽에 사는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 이 시대에 어둠을 깨뜨리는 새벽을 깨우는 믿음에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로 목사님이신 곽선희 목사님께서 가지셨던 목회의 원칙 중에 하나가 새벽기도회의 일상화였습니다. 저는 이곳에 부임하면서 오랫동안 생각해보았습니다. 26년 동안 소망교회를 이렇게 성장시킨 비밀이 뭘까? 분명히 곽목사님의 말씀의 능력과 더불어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는데 새벽을 사는 분들,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는 분들,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께 맡기는 분들, 새벽에 나와서 이 어둠을 깨우겠다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분들이 소망교회에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사실을 저는 마음속에 다시금 확인해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어제의 인생에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까? 어제의 나의 누추함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습니까? 어제의 나의 별 볼일 없는 명예로부터 나를 뛰어 넘고 싶습니까? 어제의 죄악과 탐욕에서부터 벗어나서 탈출해서 새로운 미래의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이 되고 싶습니까? 아마 소망교회와 제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저일 것입니다. 한 150m되는 곳에서 소망교회를 행해서 오다보면 낮에 보면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데 새벽에 오다 보면 저 첨탑에 ‘예수 소망’이라고 하는 글자가 보입니다. 하나님, 예수님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그 글자를 보는 것만으로 제 마음에 감격스럽게 뛰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시대가 어둡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이 흐트려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시겠습니까?

오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곧 새해를 맞게 되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어떻게 내년을 살겠다고 포부를 새워 놓으셨습니까? 어떤 포부를 세워 놓으셨어도 어떤 계획을 가지셨어도 새벽을 살지 못하면 그 포부는 금방 무너질 것입니다. 새벽에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지 않으면 그 포부는 금방 쓰러져 갈 것입니다. 다른 어떤 교육보다 새벽을 사는 계획, 새벽에 주님 앞에 나오는 계획, 이것이야말로 이 소망교회에 다시금 부흥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우리 한국교회에 이 민족에 어둠을 깨우는 역사가 일어나는 비결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연말연시에 야행성에 문화 속에 빠져들지 마시고 다시금 새벽을 우리에게 주신 새벽을 사는 이 기쁨을 우리 마음속에 누리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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