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한 알의 밀알의 승리 (요 12:24-26)

첨부 1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은 십자가 이후의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보석 같은 말씀입니다. 오늘 이 고난주간의 아침에 이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24절부터 26절까지를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우리는 지금까지 갈보리 언덕에서 예수님이 지셨던 험한 십자가가 하나님의 승리요 능력임을 보았습니다. 죄에 대한 승리, 세상에 대한 승리, 사단에 대한 승리였습니다. 예수님은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영적으로 보면 죄가, 마귀가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질병, 절망이 죽은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고,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똑같은 능력이 우리에게도 나타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에게, 이 말씀을 선포한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어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 집회를 마치고 돌아갔는데 시애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랫동안 어깨와 허리가 아프셨던 성도님이 미국에서 이 집회를 방송으로 보며 제 설교 도중에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같이 선포했더니 어깨 통증과 허리가 다 나았다고 전화로 전해 오셨습니다. 설교 듣는 그 순간에 자기가 설교 안에 들어가 믿음으로 말씀을 선포했더니 그런 기적이 자기에게 일어났다며 기뻐하셨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 우리 교회에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일으켜 주셨습니다. 제 30년 설교 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설교 도중에 암이 사라지고 아토피 피부염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일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그런 기적이 사모하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의 영적 사실은 이렇게 믿는 자들에게는 즉각적으로 응답되며 승리를 경험하게 합니다. 사실 구원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익숙하지 않고 황당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너무도 익숙합니다. 세상적 사고와 방법이 익숙하기 때문에 영적 사고와 방법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영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고 선포하고 나아가 보십시오. 그때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고난이후 밝아 올 부활의 영광
여러분 이 십자가의 사건, 예수님이 십자가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다는 2천 년 전의 사건이 2천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능력이 있습니다. 죄는 사라졌습니다.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더 이상 죄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죄를 짓는 것은 여러분이 마귀의 속임수에 여러분이 속아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죄는 사라졌습니다. 죄를 지을 때 마다 그것을 생각하십시오. 습관적인 죄가 나를 이길 때 마다, 죄를 이기거나 짓지 않으려고 하지 마시고 선포하십시오. ‘죄는 죽었다. 죄의 능력은 사라졌다. 죄의 능력을 사라졌다.’고 선포하십시오. 마귀가 여러분을 짓누르고 괴롭히고 죽음으로 몰고 갈 때 여러분 스스로 마귀를 쫓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마귀를 쫓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귀와 싸울 때는 백전백패 하지만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믿고 ‘너는 죽었다. 너는 사라졌다. 너는 능력이 없다.’ 라고 계속 선포하면 마귀가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섭던 세상의 유혹이 어느 순간 나에게 유혹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왜 저 문제 때문에 고민했나 싶습니다. 몇 십 년 여러분을 괴롭히던 무서운 그 병이 어느 날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격과 삶이 변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이 십자가의 능력은 부활로 움직입니다. 이 십자가의 고난은 부활의 영광으로, 부활의 아침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고난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터널에는 끝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난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터널 밖으로 나오면 찬란한 아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푸르른 산천초목과 높은 하늘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는 부활의 영광으로 옮겨갑니다. 기억하십시오. 새벽이 오면 밤은 물러갑니다. 밝아오는 새벽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새벽이 오면 칠흑 같은 어둠이 사라집니다. 여러분의 어두움은 끝났습니다. 여러분을 좌절케 했던 인생의 어둠은 끝났습니다. 할렐루야.

고난의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고난을 겪을 때 부활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능력으로 건강하고 행복하며 축복된 여러분을 상상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축복받는 모습을 상상하십시오. 그것은 마귀의 허상이 아니라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실상입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떤 고난의 언덕도 넘을 수 있습니다.

부활의 영광은 오순절 성령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성령세례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세례가 일어나고 성령 충만이 임하길 원합니다. 부활 없이 성령 충만 없고 십자가 없이 부활 없습니다. 부활과 성령, 십자가는 이렇듯 언제나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성령운동은 부활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에 근거하지 않고 인간적 종교적 경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잘못되었습니다. 멋있고 화려한 기적처럼 보이지만 들어가 보면 허무해 집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성령으로 기도할 때 십자가로 기도하길 바라고 부활의 능력을 받고 기도하길 축원합니다.

결국은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행전 2:1-4)”

고압선에 접속하는 것과 같은 영적 사건이 일어나 여러분이 스스로도 모르게 성령의 말을 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의 생각이 성령의 생각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막을 수 없이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가 어떻게 몇 십 년 동안 설교하겠습니까?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설교를 하겠습니까? 나는 여러분에게도 성령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의 지혜를 얻고 용기, 아이디어를 얻고 어떤 고난에도 좌절하지 않고 영적 재생산력을 얻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생명이 내 안에 있으니
이런 영적 재생산력을 일으키는 말씀이 오늘 설교 본문입니다. 성경은 예수 믿고 구원받고 나서의 삶을 ‘한 알의 밀알의 삶’ 이라고 일컫습니다. 밀알은 생명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밀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침마다 드시는 계란을 그저 영양을 제공하는 계란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먹으면 계란이고 암탉의 품안에 들어가면 병아리로 태어납니다. 밀알 역시 빻아서 빵으로 만들면 우리 육신을 위한 음식이 되지만 그 밀알이 땅 속에 들어가 썩으면 놀랍게도 생명이 태어납니다. 이 원리가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저 세상의 사람들과 다릅니다. 여러분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밀알이라고 다 같은 밀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 부활,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안에 영적 생명이 잉태했습니다. 여러분 안에는 재생하고 생명을 낳을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인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왔습니다. 우리의 현주소는 다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죽어도 다시 삽니다. 믿습니까? 일시적으로 병들고 부유하지 않은 것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새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 생명이 부활합니다. 예수님이 나는 생명이요 부활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밀알 스스로도 깜짝 놀랄 일,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새싹이 나오고 다시 엄청난 밀을 재생산 합니다. 이것이 영적 법칙입니다.
그럼 밀알이 재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밀이 재생산하기 위해선 다시 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계란이 병아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미닭의 품속으로, 암흑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16:24-25)”과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밀은 썩어야 하고 계란은 암흑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이요 제자의 삶입니다. 제자도란 밀이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밀알의 길
25절을 읽겠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여기서 생명은 육체의 생명을 말합니다. 당신이 육체의 생명을 사랑하면 다 잃을 것이라고 합니다. 육체의 생명을 거부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관심 있는 것은 사실은 육체적인 것입니다. 배고프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병들면 얼마나 아픕니까? 우리는 사실 행복하다는 말을 영적으로 쓰지 않습니다. 힘들다고 말 할 때는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갈급함이 있다면 차라리 행복한 것입니다. 영적 불행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생명에 집착하면 다 잃을 것이나 육신의 생명을 포기하면 다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는 순간을 상상해 보십시오. 둘이 가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혼자 가야 합니다. 외롭습니다. 제자의 삶은 화려하지 않고 외롭습니다. 고독합니다. 그리고 밀알이 떨어질 때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뭔가 보이면 힘이 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괴로운 것은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날 버리셨나, 내 사정을 왜 몰라주시나, 왜 내 기도를 안 들어 주시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너 예수 잘 믿는다면서?”라는 말을 듣는 것이 가장 힘듭니다. 예수 믿는다면서 너 왜 이 모양이냐는 것입니다. 그 말 들을 때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런 과정이 밀이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화려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밀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땅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으면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밀이 떨어져 죽으면 새싹이 난다는 믿음 하나로 땅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만지고 느껴져야 안심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불안해 집니다. 여기에 오늘 메시지가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말은 당신이 안 보이고 안 들리고 안 느껴지는 상황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다시 싹이 난다는, 부활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것이 축복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이것이 선교사적 삶입니다. 여러분, 선교사님들이 직업, 직장, 미래의 계획을 접고 가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못 보고 못 들었으면 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가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좋은 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밀알의 삶을 살려고 땅 속으로 꺼져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포기해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12절 말씀에 지금 말씀 드린 것과 부합된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이것이 험한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들의 삶입니다. 거꾸로 말해 이런 삶이 없다면 십자가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

십자가로 맺히는 부활의 열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자존심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사상이 죽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간단합니다. 사라진 것처럼 사십시오. 내가 오늘 지구에서 사라졌다 치고 사십시오. 나는 여러분이 세인의 눈에 사라지길 바랍니다. 이것이 밀알입니다.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은 삶입니다. 친구들의 눈에서 사라지고 같은 집에 살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삶입니다. 이것이 밀알입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내 생각, 주장,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밀알이 되어 땅에 들어갔다는 말은 고통을 겪는다는 말입니다. 희생한다는 뜻입니다. 밀알이 있는 곳에는 빛이 없습니다. 이웃이 없습니다. 고독합니다.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감정이 없어도 믿으셔야 합니다. 약속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손에 열매가 없어도 가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만 지고 묵묵히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상상할 수 없는 부활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 말씀처럼 살려면 고독하고 외롭게, 보이는 것 느끼는 것 없이 살아야 합니다. 26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느끼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찬송하십시오. 믿음으로 이 길을 계속 가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더 안보이고 더 안 들리지만 그 약속을 믿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요 섬기는 길입니다.

우리 온누리교회에 축복이 임하길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이 축복이 임하길 축원합니다. “성령님 내 삶을 인도해 주십시오. 십자가의 길을 제가 가겠습니다. 밀알의 삶을 살겠습니다.” 라는 고백이 여러분 안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을 상상할 수 없는 축복으로 인도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