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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님과 동역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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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동역(마25:14-30)

우리는 잠에서 깰때 세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기지게를 켜야 육체가 깨어납니다.
이것을 많이 하면 키가 커집니다. 당대에 안커지면 후대에 커집니다.

우리의 정신을 미소를 보고 깨어납니다.
옆사람을 보고 미소를 던져 버리십시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깨어납니다.
내 영혼아 깰찌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를통해서 우리의 삶의준비물을 허락해 주신것입니다.
준비물을 챙겨주셨습니다. 준비물을 챙겨주신것을 파악하는 것을 지성이라는것입니다.
감성은 준비물을 통해서 만족을 누리며 즐겁게 사는 것을 감성이라고 합니다.
영성은 그 준비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려면 성령님의 인격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지정의를 가진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고 끊임없는 성령과의 가까운 친교와 동역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을 하나의 신학적인 용어로 생각하고 무생물로 생각하고 이용만 하려고 하면 성령과의 동행은 되지 않습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제3위 되시는 성령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고 끊임없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성령과 동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과 동역하여 부흥의 역사를 가져오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로마서 4: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그려보는 능력을 비전이라고 합니다. 이런 영적 상상력을 비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비젼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여러분이 맥도날드에 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햄버거가 보입니까? 안보입니까? 햄버거 옆에 감자튀김도 보이죠?
비전도 눈을 감고 상상해보세요.

옛경기장에서 철거하기전에 고별경기를했습니다.
마이클조단이
우리는 더 이상 이 경기장에서 마이클 조단이 뛰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언틸 우이 클로우스 어 아이 (우리가 눈을 감기 전까지는)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순간 어떤 축복이 오게될찌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 없지만 채워주실 하나님을 믿으면 그 순간 행복해집니다.

1. 열매맺고 남기는 역사는 성령과 동역을 통해서 이루워집니다.
1) 사람에게는 주어진 임무가 있습니다.

(1)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각 각 주어진 것처럼 각 사람에게 하나님은 임무를맡기십니다.
주인의 파트너로 인정하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파트너로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것을 맡기심입니다.

(2)예수님은 재능대로 주어졌음을 말하고 계십니다. .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맡을 만하고, 두 달란트를 맡을 만 하고 한 달란트를 맡을 만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사람의 일생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주어진 것으로 남기는 가를 중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3)우리에게도 재능대로 맡겨진 것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교사로, 찬양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성가대로, 봉사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봉사 사역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주신 재능은 다양할 뿐 차등은 없습니다.또한 모든 사람에게 은사가 주어져 있는 것이요, 임무가 있는 것입니다.

(4)주신 임무에는 은사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감당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
눅 9장 1절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눅 9장 2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를 담당하게 하시기 위해서 감당할 능력을 주십니다.
약 1장 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2) 충성된 자의 모습
 
예수님께서도 남긴 이익을 보십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똑같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이 칭찬을 받았을까요?

(1)[바로 가서 시작했습니다. 부지런한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것 중에 하나는 [땀]입니다. 성실함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잠 10장 4절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 12장 24절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잠 13장 4절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2)청지기 정신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자기 것이 아니라, 주인이 자신에게 맡긴 것으로 알고 나가서 [장사]했습니다. 금 한 달란트는 통상 34㎏입니다.
그러면 엄청나게 많은 재산이 됩니다. 그냥 있는 것에 마음을 두고 주인이 언제 올지 알지 못함으로 인생을 즐기며 허비하며 살수도 있지만,그것으로 장사를 하였습니다. 바로 일하는 모습입니다.

애경그룹의 회장은 여성입니다. 그녀는 지금도 자기 회사에서 운영하는 백화점을 순회 점검할 때에 화장실부터 청결 상태를 확인하고 구서 구석 살핀다고 합니다.

성주 어페럴의 김성주 사장은 세계적으로 유망한 의류 판매회사를 운영하지만 지금도 자신이 직접 매장에서 물건을 팔고, 짐을 나르는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입니다.

(3)긴 세월을 변함없이 충성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잘할 수 있습니다. 잠깐동안은 남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변함없이 잘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신라의 금관을 우리가 박물관에 가서 보면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화려하고 찬란 함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리고 1,000년의 세월을 변함없이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음에 놀라게 됩니다. 금이 귀중함은 바로 이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모습, 긴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성질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주인은 긴 세월이 흘러서야 돌아와서 종들과 회계하였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3) 충성된 자의 유익
(1)열매맺는 자가 된다.
열심히 충성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았던 종들은 또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주신 임무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잘 하였다] 칭찬 받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와 두 달란트 받았던 자에게
마 25장 21절 ...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주의 나라에서도 귀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계 2장 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3)주인의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마 25장 23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2. 교회성장과 영적 번식은 성령과 동역을 통해서 이루워 집니다.

교회들이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행9:31).


세상은 예수님을 못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는 사건은 성령세례를 받는 일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영적인 눈이 열립니다. 육신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영적인 안목이 생깁니다. 하나의 사건, 사건에도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세례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하나되는 사건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 세례를 받으므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몸으로 존재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시면 요15장의 사건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성령 안에 거하는 것은 포도나무되신 주님께 붙어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그렇습니다. 깨달음과 변화가 성령의 도움으로 되는 것이기에 성령님의 도움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3년 동안 예수님의 뒤를 따라다닐 때는 예수님 따로, 제자 따로 있었습니다. 몸은 예수님 곁에 있었지만 생각은 따로따로였습니다. 동상이몽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젼과 제자들의 비젼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연합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고 난 후 그들의 육체 속에 성령이 임재하신 것뿐만 아니라 비젼과 관심이 일치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생활의 중요한 것은 비젼의 일치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내 행동이 따로 돌면 신앙생활이 힘들어집니다. 신앙따로 생활 따로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따로 국밥의 신앙을 갖지 마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주님과 우리가 하나되는 놀라운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7절의 말씀에 보면 세상은 성령을 받지 못합니다.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육신적인 눈으로 영적인 역사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성령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라고 했습니다.성령님이 우리 속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고전3:16에서'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속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인정하십시오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의 음성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16절의 말씀에 보면 함께라는 말이 나오는데 중요한 단어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영원토록,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순간 순간마다 성령은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십니다.(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3. 치유의 역사도 성령과 동역을 통해서 이루워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받기를 사모하십시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고후3:18에 보면'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43대 미국 대통령 부시의 아버지인 죠지 H 부시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의 일입니다. 그가 한번은 한적한 어느 시골 초등학교를 방문하였는데,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큰 곤역을 치뤘다고 합니다. 앤소니 핸드슨이라는 초등학교 1학년 되는 한 꼬마가 부시 대통령에게 말하기를 '할아버지, 할아버지 대통령 맞아요? 맞다면 증명해 보이세요?'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이 무척이나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 증명서라는 것은 없기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껏한다는 것이 운전면허증을 내보여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 사람들은 운전면허증이 가장 큰 증명서이기 때문이었지요. 그랬더니 그 꼬마가 한다는 말이 '여기에 대통령이라고 써있지 않잖아요?'하더라는 것입니다. 크레디트 카드를 보여줘도 거기에 대통령이라는 글이 써있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대통령이 맞느냐고 묻는 어린아이의 말에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쩔쩔매다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운동장에 나갔더니 거기에 까만 썬그라스를 낀 아주 우람하게 생긴 대통령 경호원들이 쫙∼ 모여들었고, TV에서 보았던 대통령 차인 국기가 달린 커다란 리무진 자동차가 거기에 있어서 거기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그 꼬마가 하는 말이 '와∼ 진짜네'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맞습니까? 그리스도인 맞습니까? 무늬만 크리스챤이 되지 마십시오
맞다면 세상에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임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는 증명서를 발급해 주신 것도 아닙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선민의표시가 할례였는데 오늘날 우리에게는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어떤 표시가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세상사람들에게 무엇으로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사람들에게 예수믿는 사람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열매를 맺지않으면 가짜이거나 죽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출세하고 성공했어도 그 속에 예수의 영이 없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아하∼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구나'라고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험한 세상,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 두시지 않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요3:6) 영의 사람이 되십시오

11절,12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

11절에서 치유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병든 것을 치유하십니다. 복음이 있는 곳에 기적이 있습니다.

(살전1:5)'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얼마나 많은 능력이 일어나는지 심지어는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가는 겁니다. 손수건이나 앞치마는 평범한 생활도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평범함을 기적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80세 노인의 몸을 지탱했던 꾸불꾸불한 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일에 사용되었을 때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삼갈은 농부였습니다. 하나님이 농부였던 삼갈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시고 그 백성을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에게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는 농부로서 소모는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소모는 막대기를 들고 전쟁에 나갔을 때 하나님은 이 막대기를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막대기로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아주 평범함이 주님의 손에 붙들려지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에게 특별한 것이 없다고요 . 너무 흔한 것 투성입니까? 그것가지고 충만합니다.

요사이 복음 통해 많은 기적들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곳이 남미지역입니다.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이런 곳은 사술과 마법, 악령숭배가 가장 센 곳입니다.
나라마다 기적의 유형이 다르다고 연구가 되고 있어서 흥미를 얻게 되는데, 브라질에서 제일 많은 기적의 역사가 '이 치료'입니다. 이제 이가 짐승과 싸워서 이가 빠지면 성인들은 이가 빠지고 나면 안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배 드리고 안수 받고 나면 이가 막 나오는 겁니다. 한 개, 두 개, 세 개가 막 나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르헨티나에서는 똑 같은 색갈의 이가 나오는데, 브라질에서는 이상하게 금니가 나온답니다. 여기는 원래 우리 이인데, 새로 나온 이는 금니랍니다.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브라질에서 이런 기적이 일어납니다. 피터 와그너 박사는 그런 통계를 내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금니 사건이 하도 많이 벌어지니까, 브라질의 안드레스 아휘 아르 목사라는 분은 '금니:하나님의 표적'이라는 책도 냈습니다. 기적의 역사는 언제나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이 떠나고 병이 낫는 것을 본 사람 중에 자신은 예수를 믿지 않으면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려다가 봉변을 당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부흥이 일어날 때 이 부흥을 그대로 이용해서 돈벌이하려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귀신을 떠나고 병이 치유되는 것을 보고 마술사 시몬은 돈을 주고 성령을 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에베소에서도 마술하던 어떤 이들이 시험적으로 예수의 이름을 불러 귀신을 쫓아내 보았는데 대표적인 인물들이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아들입니다.
그들은 호기심으로 예수 이름을 빙자하여 악귀 들린 자들에게 귀신이 떠날 것을 명하였습니다. 그래서 도망간나요?
14절말씀을 보십시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바울처럼 그대로 모방해서 귀신이 쫓아내는데 귀신이 도망가기는 커녕 봉변을 당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예수의 이름으로 &51922;아내었는데도 귀신이 나가지 않았습니까? 분명 예수의 이름에는 권세가 있고 치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신앙은 주문이나 어떤 형식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이 아시고 보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또 흥미로운 단어가 나옵니다. 빙자라고 하는 말입니다. '예수 이름을 빙자하여'
빙자 (憑藉)라고 하는 말은 ' 어떤 부정적인 일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일을 하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나 핑계로 내세우거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사용하는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은 개인의 영달이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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