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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 (눅 1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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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눅 13:31-35)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로젠베르그라는 유대인 가족이 독일의 강제 수용소로 붙잡혀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아들이 함께 수용소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중 작은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약간의 신체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다 처리할 수 없는 아이였습니다. 독일군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만 살려 두었습니다. 일할 수 없도록 약해지거나 병이 들면 곧 독가스 실로 끌고 가 죽였습니다.

매일 새벽이 되면 로젠베르그 가족은 각각 다른 작업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두 아이들도 각각 다른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부모는 어린 아들에 대한 염려로 하루하루 고통 가운데 지냈습니다. 혹시 일을 제대로 못하는 작은 아들이 독가스 실로 끌려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저녁에 막사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작은 아들이 있는지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지친 몸을 이끌고 막사로 돌아와 보니 큰아들이 한쪽 구석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큰아들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동생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어 독일군이 독가스 실로 끌고 갔다고 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간신히 숨을 고르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어떻게 되었니? 아직 안 왔니?' 그러나 큰아들은 떠듬떠듬 말했습니다. 독일군이 동생을 잡으러 왔을 때 동생은 너무 무서워서 엄마를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동생을 꼭 껴안으며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 함께 가자! 엄마는 끝까지 너와 함께 있겠다.' 그리고 엄마는 작은 아들과 함께 독가스 실로 끌려갔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위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변함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변함 없는 사랑으로 십자가까지 지시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오늘은 본문 누가복음 13장 31-35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변함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를 경청하시어 큰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피할 수 있는데도 하루는 어떤 바리새인이 예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는 헤롯왕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니 그곳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향한 강한 의지를 보이시며 '내 갈 길을 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생각하면서 크게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습니다. 헤롯왕의 계획을 알려 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저하지 않고 십자가를 향해 가셨습니다. 3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32-33절의 말씀입니다.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3일에는 완전하여 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은 것은 변함 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모르셔서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때도 십자가는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도 피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아시면서도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헬라인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예수님에 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뵙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헬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12:23-24) 아멘.

왜 이런 대답을 하셨을까요? 본문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헬라인들은 예수님께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라고 요청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헬라지역으로 초청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의 비유를 들어 십자가를 향한 강한 의지를 천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할 수 있었으나 피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향한 변함 없는 사랑 때문에 그는 십자가를 향해 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까지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라고 권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2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3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완전하여 지리라'는 말은 '완전히 이루리라'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것을 부활의 예고라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완성을 예고하신 것으로 봅니다. 이것이 문맥에 잘 어울립니다. 십자가를 향해 의연히 가시겠다는 주님의 뜻을 잘 부합합니다. 예수님은 오늘과 내일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3일에는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완성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쳐주는 일도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마귀가 유혹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정치적인 메시야가 되면 쉽게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를 택하셨습니다. 경제적인 메시야가 되는 것도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신비적인 메시야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택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을 구하는 일입니다. 치유목회는 육신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의 완성이 아닙니다. 치유목회가 인기는 끌겠지만 예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까지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자신의 공로로는 도무지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까지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변함 없는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기까지 온전히 헌신하셨습니다.

계속되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인간들의 계속적인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하여 인간을 찾으십니다. 에덴 동산에서 나무 뒤에 숨었던 아담을 찾으시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24절이 말씀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를 죽이고 네게 파송 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것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않았도다.' 아멘.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은 계속 찾으십니다. 인간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사랑으로 찾아오십니다. 이보다 더 큰사랑은 없습니다. 히틀러 시대에 독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고문을 견뎠습니다. 드디어 그는 지조를 지키고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자살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석방되어 곧 자살한 것이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밀고자가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자살했던 것입니다. 그는 고문의 고통도 이겼지만 가족의 배신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의 배신을 잘도 견디십니다. 하나님은 배반하는 이스라엘을 수없이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입니다. 이사야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희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49:15). 아멘. 어머니의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사랑을 노래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계속 배반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되었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를 죽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되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친히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보다 더 큰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친구를 버리면 이보다 다 큰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요한15:13). 그런데 하나님은 배반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얼마나 위대한 사랑입니까? 이 놀라운 세상에 박수로 영광을 돌리십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레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레루야'
변함 없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변함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인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아가페적인 하나님의 사랑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한계는 인내의 한계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렇지만 인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인내의 한계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도 읽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만을 보면 진지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인내의 한계를 읽고 하나님의 심판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접하는 자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러나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3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보라 너희 집이 황무 하여 버린 바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임할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또 주님은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지금은 누구나 주님을 만날 수 있지만 잠시 후에는 만날 수 없습니다. 이제 주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주님을 뵐 수 없습니다. 오직 다시 만날 때는 주님을 찬송하는 사람들만 주님을 뵐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한1서4:10). 아멘.

왈터 L. 윌슨 목사님은 어느 날 예배 후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 여인은 영적 도움을 받고자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여인에게 성경구절을 아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교회학교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을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그것을 외워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잊혀진 아들을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라고 외웠습니다.

여인은 '독생자' 라는 말을 '잊혀진 아들'로 읽었습니다. 'begotten Son'을 “forgotten Son'으로 읽은 것입니다 .목사님은 '독생자' 대신 '잊혀진 아들' 이라고 한 것을 알고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왜 자기 아들을 잊어버렸는지 아십니까?' 그러자 그 여인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윌슨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잊어버렸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기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할렐루야! 여인은 이 말에 크게 감동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모두 변함 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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