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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하나님 섭리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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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한다. 뺨에 와 닿는 바람이 차갑다. 성체 조배실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순례자들의 손을 잡아주며 인사를 나눌 때였다. 아기를 업은 자매 한 분이 말을 건넨다. '신부님, 면담 좀 하고 싶은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돌아가고 난 다음 그 자매와 아기 그리고 아기 아버지랑 면담을 하기 위해 앉았다.

'신부님, 여기 참 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오기가 힘들었어요. 그리고 너무너무 힘들고 어려운 99년 한 해였어요.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성지 찾아와 성모님 뵙고 기도하고 그 모든 것 다 감사 드립니다. 99년 한 해 저희들 참 힘들었습니다. 이 사람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 했습니다. 함께 타고 있던 아이들은 충주에 있는 병원에, 애들 아빠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고, 혼자 낸 사고라 보상을 받은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의료 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병원비를 내고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퇴원한지 한 달 반만에 셋째 애가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트럭이 밀치고 가버리는 바람에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몇 달을 입원했다가 지난 금요일에 퇴원 했습니다. 트럭은 뺑소니를 쳤구요. 애가 퇴원하자마자 성모님께 가자고, 가서 말씀드리자고 해서 이렇게 오늘 그동안 모으고 모아온 성모님 땅 1평 감을 가지고 여기 왔습니다. 99년으로 고통이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자매님은 아기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여보, 잠깐만 나가 계세요. 신부님과 따로 얘기 좀 할께요.' 남편은 밖으로 나갔다. 좁은 면담실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듯한 아이가 내 앉은뱅이 책상 위에 있는 필통을 엎어서 볼펜이랑 형광펜 같은 것을 집어 들고는 입에 넣었다가 빼기도 하고 또 빨기도 하다가 집어 던지고는 다시 메모지랑 카드 같은 것을 만져서 흩뜨려 놓는다.

아이 엄마는 울면서 말했다. '신부님! 저 어떻게 해야 하지요? 남편 사고 나고 애들 사고 나서 병원에 있었고 그 모든 것 다 받아들이고 참아 냈는데요. 지금 너무 힘듭니다. 애들이 넷인데 또 아기를 가졌습니다. 제 건강도 안 좋고 아기를 더 낳아서 키울 수 있는 형편도 안되고 너무너무 괴롭습니다. 요즘은 온통 머리 속에 낙태에 대한 생각밖에 없습니다. 다른 고통들은 참을 수 있었는데 아이가 넷이나 되는데… 또 낳아서 키울 형편은 안되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이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할말이 없었다. 애 하나 낳아서 키우는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일이 돌보아 주어야만 되는 것이 아이들인데 돌보고 뒷바라지해야 할 애가 넷이나 되는데 지금 또 아기를 가졌다니 이 엄마의 마음이 어떨 것인가? 딸린 아이가 없다면 당장 돈벌이를 나가도 시원찮을 형편인데 말이다.

그런 엄마를 아는지 모르는지 애는 여전히 내 책상의 물건들을 이것저것 만지고 흩뜨려 놓는다. 아이 손이 내 책상 유리판 밑에 넣어놓은 예수님 사진을 만지기도 했다. 그 사진은 예수님께서 한 손 위에 낙태된 태아를 올려 놓으시고 한 손으로는 머리를 짚으시고 고통스러워하고 계시는 모습이다. 나는 생명을 수호하기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예수님 사진을 내 책상 위에 두 장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엄마에게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자매님, 고통스러운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나님과 성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낙태를 해서는 안 되는데, 아이를 낳아서 키워야 하는 일은 현실적인 것이고, 경제적인 문제는 말할 수없이 열악하고… 제가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나라에서도 아이 많이 낳으면 불이익을 주기까지 하니 힘만 더욱 들뿐이지요. 교회도 '아이를 낳아라'라고 얘기 하지만 양육비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는 보탬을 주지 못하니… 자매님의 괴로운 심정 느껴집니다. 그러나 낙태하시면 더 괴로우실 겁니다. 정신적으로 죄책감에 시달리셔야 되고 건강에도 안 좋습니다. 성모님과 예수님이 낙태하는 것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 아시지요? 애가 자꾸 만지고 있는 여기 이 사진 보세요. 이 사진의 예수님이 고뇌하고 계시잖아요.'

'신부님, 이 사진 저 가지고 가도 됩니까?' '그러세요. 자매님 힘내세요.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볼께요.' 그날 저녁 기도 가운데 그 가족들이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했더니

'신부님, 성모님께 갔다 오길 참 잘했어요. 마음이 너무너무 평화스러워졌습니다. 아기를 낳기로 했어요. 제가 애 낳는걸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보다 낙태 때문에 예수님께서 더 고통스러워 하시잖아요. 그 동안 살아온 것도 하나님께서 다 도와 주셨는데 이 아이 낳으면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겠지요. 신부님 고맙습니다.'

'자매님 지금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아빠가 다리 절단한 뒤 일을 못하고 계시니까 하나님 섭리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살고 있다는 자매의 말을 들으며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을 중얼거렸다. '하나님의 섭리로 산다. 하나님의 섭리로 산다.'

그 하나님의 섭리는 어떻게 나타날까?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서 나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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