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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고생 (행 2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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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중에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괜한 고생, 안해도 되는 고생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생은 해 봤자 아무런 상급이 없고, 후회와 아쉬움만 남게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될 수 있으면 안 받으면 좋고 또 빨리 끝나면 더 좋은 그러한 고난들입니다.

바울이 아직 예수 믿기 전 청년 사울이었을때에 사서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울이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며 잡아넣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는데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광채
가운데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채를 뒷발 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주님의 이 한마디의 말씀은 지금 바울의 현재 실상을 그대로 표현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혈기를 부리면서 주님을 핍박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실은 주님의 가시 채를 뒷발질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이것이 바울에게 괜한 고생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시채란 가시처럼 만들어진 채찍, 즉 가시와 같은 쇠붙이가 달린 채찍을 말합니다. 맞으면 따끔따끔 합니다. 쟁기질하는 소 뒤에서 방향을 잡아 주고 앞으로 가라고 채찍질을 하는 데 그 소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오히려 가시와 같은 채찍을 향하여 뒷발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 아플 것 아닙니까? 이것이 웬 고생입니까?

먼저 그 당시의 이 청년 사울의 심리 상태를 한번 분석해 봅시다. 11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살아가면서 마음에 평화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심히 격분한 상태로 살고 있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마음에 평화가 없이 심히 격분한 상태로 지금 사울은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울은 도대체 왜 주님께로부터 이러한 채찍질을 당해야 했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이 모태에서 조성되기 전부터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리고 사도행전 9장 15절에서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래서 사울로 하여금 빨리 예수 믿고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사도가 되도록 그 동안 계속 채찍질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지금까지 도리어 뒷발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이 지금까지 계속 이렇게 뒷발질을 해 오자 이제는 주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하신 것입니다. 그 동안에 뒤에서 채찍질을 하시다가 이제는 정면으로 사울 에게 나타나셔서 책망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울 곁에 다가와 계셨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끔 채찍을 들고 때리셨다는 말입니다. 아니, 사울의 이 처음 다메섹 체험 전에 도대체 언제 어디서 무
슨 가시 채로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접근을 해 오셨다는 말입니까? 저는 이 문제를 놓고 고심하다가 사도행전 7장에서 드디어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1절부터 53절까지는 스데반의 최후의 설교가 나옵니다. 스테반은 유대인들 앞에서 감동스런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것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의 마음 상태가 어떻다고 성경은 지적합니까? 54절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분명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으로 인해서 마음에 찔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누가 있었습니까? 바로 사울 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데 주동자였으며 스데반을 돌로 치는 데에도 주동자였습니다. 사울도 그 자리에서 스데반의 최후의 설교를 분명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찔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스데반의 설교』라는 말씀의 채찍으로 사울의 마음에 찔리도록 때리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 이러한 말씀을 듣고서 사울을 포함한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으나 그만 뒷발질 해 버렸습니다. 말씀이라는 가시 채를 뒷발질 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고도 오히려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았던 것입니다.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 이처럼 말씀을 되받아 치자 구약의 말씀들을 중심으로 설교를 하던 스데반에게 이번에는 갑자기 하늘나라의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스데반이 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7:56)

지금까지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설교하게 하신 주님께서 이제는 하늘의 모습,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스데반에게 보여주셔서 스데반으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있는 하늘나라에 계신 주님의 생생한 체험적 모습을 간증의 방법으로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를 갈고 있던 그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행7:57)

사울은 아마 돌로 직접 치지는 않았는가 봅니다. 그러나 그는 주동자였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8장 1절에도 보면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에 가편 투표를 했다고 했습니다.(행 26:10) 큰 소리로 「저놈 죽여라!」하고 사울도 외쳤던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스데반을 통하여 전해지는 성경 말씀을 들음으로 마음이 찔렸는데도 발길질 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두 번째로 스데반에게 하늘을 열어서 보여주신 체험적 장면을
말하게 했는데도 또 발길질했습니다. 주님이 스데반을 통해서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시고 그 다음에는 생생한 간증을 들려 주셨는데도 계속 발길질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살기 등등하여 괜히 마음고생하며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체험을 간증으로 전하는 데에는 조금 과장된 면이 있을 수도 있고 조금씩 잘못 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서 어떤 사람들에게 체험적인 증거를 보여 주어서 이를 통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이 땅에 있는 자들을 구원시키려고 하십니다. 말씀으로 전해서 안되니까 간증을 통해서 전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간증도 거부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내가 직접 안 보았으니 못 믿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울도 물론 스데반의 간증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오늘 본문에 주님이 바울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정면으로 하늘의 광채를 직접 보여 주시면서 눈이 멀어 버리게 했습니다. 사울 이라는 청년을 더욱 세게 때리신 것입니다.

사울의 회심은 첫 번째 스데반의 설교와 두 번째의 스데반의 체험적 간증으로 안되었으나 세 번째 자신의 직접 체험으로는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사울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돌이킵니다. 지금까지 대항하던 사울은 드디어 깊이 깨닫고 자기의 인생을 돌이켰습니다.

19절에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라고 바울도 고백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마음 고생만 하고 있던 바울! 그러나 주님의 커다란 채찍을 한 대 맞고서 그는 다행스럽게도 돌이킵니다.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사울은 하나님을 거스르고 살아왔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사서하는 고생이었습니다. 이런 바울에게 예수님께서는 스데반의 설교와 간증으로 채찍을 가하셨고, 그 채찍을 맞으며 마음에 찔림을 받고도 그 채찍 앞에 순종하지 못하고 분해하며 이를 갈고 더 나아가 살기등등하여 다메섹까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들이려 하던 사울의 모습을 『뒷발질하는 고생』이라고 묘사했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도 하나님을 거스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것은 내게 고생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때까지 계속 압박을 가하실 것입니다. 빨리 말씀으로 나를 깨우치실 때에 돌이켜야 합니다. 덜 아픈 채찍으로 접근해 오실 때에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먼저 세미한 말씀으로 접근해 오십니다. 그래도 안되면 더 큰 것으로 때리십니다. 혹시 오늘 내게 들려 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향하신 가시채는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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