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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명자들아 오순절을 통과하라 (행 0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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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최선을 원하십니다.
최선의 삶은 아름답습니다. 에디슨은 자신이 발명한 특허만도 이천개나 됩니다. 하루는 기자가 '당신의 좌우명이 무엇인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가 대답하기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로 시계를 보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보수가 얼마인지? 일의 결과가 어떠한지? 칭찬받을 일인지? 아니면 책망받을 일인지를 따지지 않고 다만 열심히 일할 뿐이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팔십이 되는 때에 어떤 분이 '요즈음 어떻게 지내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요즘 다섯시간 자고 나머지는 연구에 전념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장례식 삼일전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인간의 매 순간이 다 기회입니다.

정상에 서야 동서남북이 보입니다.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든지 고지를 정복해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눈이 열립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까지 가서 이삭을 결박하여 제물로 올려 놓고 칼을 뽑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의 거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떨기나무 환상을 보기까지 사십년 동안 임상훈련을 하셨으므로 출애굽의 야전사령관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은 주님의 부활신앙의 최종합격자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지상최대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던 자들입니다.

오순절 통과
오순절을 통과합시다. 주님을 잃은 그 순간에 오순절까지 기다림은 놀라운 결단입니다. 그들은 최소한 일주일 이상은 마가 다락방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합심하여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으니 식음을 전폐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가정과 직장에도 엄청난 충격이 같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기도는 결사적인 기도였습니다.

다같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삼상7:5-6) 하나님의 역사는 모일 때 일어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라'(히10:25)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홀연한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홀연한 순간에 일어남으로 우리의 지각으로서는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행9:3)고 했습니다. 그가 빌립보 옥중에 갇혔을 때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16:26)고 했습니다. 오순절 사건도 홀연한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같은 것을 귀로 들었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을 눈으로 보았고, 각국 방언을 입으로 말하는 입체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
베드로가 달라졌습니다. 복음서에 베드로는 비겁한 겁쟁이였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를 잡아 대제사장 가야바 궁전으로 끌고 갔을 때 그도 뒤따라 갔서 하속들과 같이 있다가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던 것입니다(마26:69-75). 그러나 성령을 받고난 이후의 베드로는 완전이 달랐습니다. 소리를 높여 부활의 주를 증거했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20)고 했습니다.

때가 제삼시입니다. 우리 시간으로 말하면 오전 9시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번씩(삼시, 육시, 구시) 기도합니다. 이것은 포로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아집니다(단6:10). 그러므로 경건한 유대인들은 오전 9시에는 아침식사도 하지 않습니다. 고기와 포도주는 주로 저녁 만찬에 먹습니다(출16:8, 전10:16-17). 그러므로 '때가 제삼시라'는 말은 지금은 취할 시간이 아니고 기도할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당신이 건강하고, 물질이 있고, 배운 기술이 있으면 주를 위해 헌신할 제삼시임을 알아야 합니다(전12:1).

말세의 현상입니다. 장사를 할 때 마지막 파물에는 팔던 물건을 막 퍼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 주셨습니다. 이는 남왕국 유다의 요시아왕 때 사역한 요엘 선지가 예언한 것처럼 자녀들이 예언하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이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무리들의 회개운동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성령은 말씀의 레일 위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말씀을 선포하면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생기고 자랍니다. 믿음의 사람이 세상을 정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고 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무기는 믿음입니다(요일5:4).

마음에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이 복음과 접할 때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이 죄의식입니다. 복음은 두가지 기능을 합니다. 하나는 복음을 믿음으로 죄인을 구원하지만 다른 하나는 복음을 거부함으로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방주로 들어오기를 거부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유월절 피가 없었던 애굽의 집에는 다 재앙이 내렸던 것입니다. 여기 마음에 찔림의 상태는 몽둥이에 많이 맞아서 부어 오른 상태를 말한다. 죄악으로 굳어진 우리의 심령은 말씀의 방망이에 맞아서 우리의 교만이 터져야 합니다.

회개하며 탄식합시다. 미국 시카고에 클라크라는 강패인 술주정뱅이가 변화받아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귀하여 설교를 할 때마다 울었습니다. 그래서 「울보목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는 별명이 챙피해서 울지 않고 설교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에 눈물이 없이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눈물이 사라짐과 동시에 그의 설교를 듣고 변화받는 자들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눈물을 달라고 기도하여 이전의 영성을 회복했던 것입니다. 눈물없는 신앙은 죽은 믿음입니다. 당신이 눈물의 골짜기로 통행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기쁨의 샘으로 바꾸어 주십니다(시84:6).

세례받고 죄사함을 받읍시다. 세례를 통해서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가는 것이라'(벧전3:20)고 했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읍시다. 성령을 주시는 목적은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충만한 상태로 넘치게 받아야 합다. 성령충만의 내적인 증거는 믿음의 담력입니다. 그리고 외적인 증거로는 언어와 생활의 변화입니다. 무디는 유리병에 든 공기를 뽑기 위해서 병에 물을 채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속에 죄악은 성령을 충만히 받을 때 사라집니다.

초대교회 공동체
사도의 가르침을 받읍시다. 어떤 교인이 좋은 성도인가? 목회자의 가르침을 잘 받는 성도입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로서 좋은 양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11:29)라고 하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복하는 삶이었습니다(빌2:8). 사명자들은 순종의 학교를 졸업해야 합니다.

서로 교제합시다. 서로 하나가 됩니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무리들이 하나되는 비결은 자기 자아를 죽이는 것입니다. 자아의 정체를 싸고 있는 껍질을 벗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웃과 하나로 연합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 좋은 소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진설병이 되어 성소의 떡상에 올려져 제사장의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떡을 뗍시다. 이 떡은 주님의 몸의 상징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이 찢어졌습니다. 바로 희생을 가르칩니다. 공동체 생활에는 반드시 떡을 떼는 희생의 성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험악한 곳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이 차량에 봉사하는 분들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희생하는 종들입니다. 내가 희생하므로 내 이웃이 사는 것입니다.

기도에 힘씁시다. 어떤 분이 링컨에게 말하기를 '대통령은 공연히 기도하는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만일 내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전능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에 직책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이다'고 했습니다. 스폴존 목사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교회가 기도하지 않고서도 많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기도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가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성결교 총회장을 지냈셨던 차몽구 목사님이 전도사 때 시골 교회를 부임하여 첫 심방을 갔습니다. 그 교회 여집사님 딸이 귀신이 들려 고생하던차 전도사님 심방와서 고쳐달라고 하고 나가서는 밖에서 문을 잠갔습니다. 그때 그는 기도와 찬송를 계속하니 귀신이 떠나가고 변화를 받아 함께 찬송을 부르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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