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삶의 성공과 실패를 가져오는 자화상 (고후 05:17)

첨부 1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성공과 실패를 가져오는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떤 회사에 근무하는 20대의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는 교양이 있고 얌전하고 착한, 밉지 않게 생긴 아가씨였습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그는 별로 말이 없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잘 웃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달 휴가를 내고 난 후 회사에 출근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왔습니다. 그의 외적모습은 여전하게 보였지만 그의 성품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명랑하고 자신이 가득하고 친구들이나 이웃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수심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그가 변화가 왔는지 알고 싶어했으나 거기에 대하여는 전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그의 존경하는 사람에게 변화의 이유를 말해주었습니다. 사유인즉 그는 오랫동안 자기 코가 잘못생겼다고 생각하고 그로 인해 미운 자화상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그를 이상하게 본다고 생각하고 열등의식과 좌절감에 쌓여있었습니다. 자기는 코 때문에 사람들에게 조롱감이 되고 애인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우울하고 사람을 피하고 근심 어린 얼굴을 가지고 지냈습니다. 그 후 돈을 모아서 그는 휴가를 얻어 성형외과에 가서 코 수술을 받고 마음에 드는 코를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의 자화상이 확 달라졌습니다. 자기의 마음속에 예쁘고 사랑스런 자기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는 삶의 자신을 얻고 명랑하고 활달하게 변했습니다. 저는 그 소녀를 전부터 잘 알고 있었는데 저 보기에는 옛날 코나 현재 코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도 코를 고쳤는지 안 고쳤는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오직 달라진 것은 그 소녀 자신의 자화상이 달라진 것입니다. 코 때문에 미운 자화상을 가졌으나 코를 약간 고친 후에는 예쁜 자화상을 갖게 되고 그 자화상이 인격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어떠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가 거기에 따라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잘못된 자화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담의 타락후 인간의 마귀와 죄의 종이 되고 그 때문에 으끄러지고 삐뚤어진 자화상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악에 포로된 자화상을 갖고 있어요. 인간은 죄를 짓고 불의에 대하고 추악하며 자기 모습을 마음대로 고칠 수 없는 삐뚤어지고 일그러진 형상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화상의 포로가 되어 그 생활에서 죄악과 마귀의 억압을 벗어 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나는 죄인이고 나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고 죄의 노예가 되었다는 그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자화상을 갖고 있는 이상은 결코 그는 죄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나쁜 습관에 묶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욕의 포로가 된 자기의 모습, 알콜의 포로, 도박의 포로가 되어 있는 속물된 자기 자화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속물인간이다 나는 세상의 습관에 묶인 사람이다. 해방될 수 없다. 그러한 무의식적인 자화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속과 마귀의 유혹과 시련에 견디지 못합니다. 그를 저하할 수 있는 힘이 조금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는 사람들에게 온 가족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며 미움을 갖고 있다는 자화상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문제의 청소년들을 보면 대게 결손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떴다든지 이혼을 했다든지 가정에 불행한, 그래서 사랑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은 삐뚤어진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미움을 받는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가 나를 미워하기 때문에 나는 사회에 대해서 저항하고 살아야 한다. 그런 미운 오리 같은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매사에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미움과 분노의 포로가 되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병약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이 약한 사람은 병약한 자화상을 가지고 항상 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 속에 살고 있습니다. 늘 자기 자신은 허약하고 연약하며 병약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병에 대한 정신적인 저항력을 완전히 상실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병이 오면 곧장 쓰러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평생에 늘 골골하고 병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실패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능력하고 빽도 없고 늘 가난하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고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버림받은 사람, 하청인간, 쓰레기라고 스스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를 찾아온 한 실직자가 있었는데 그 실직자는 자기 자신은 완전히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없고 능력도 없고 이 세상에 쓰레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노만 빈센트 필 박사가 그 사람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아내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돈을 잘 못 벌고 못도와주지만은 그러나 충성스럽게 나와 함께 살아주는 아내가 있다. 자식이 있느냐? 예, 교육은 잘못시키지만은 건강하고 튼튼한 자식이. . . 친구들이 있느냐? 몇 사람 친구는 참 좋은 친구가 있고. . . 당신 없어서 못 먹습니다. 잠 잘 자느냐? 돈벌이는 못하면서 잠은 잘 잡니다. 건강하냐? 건강하다 당신 들어 올 때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 버림받고 아무도 없고 도와 주는 사람도 없고 돌볼 사람도 없다고 했는데 지금 물어보니 당신 굉장히 부자구나.

마누라도 있고 자식들도 좋은 자식이 있고 친구도 있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건강하고 돈 많은 사람 중에 밥 못 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위장병이 걸려서 죽만 먹고사는 사람들도 많고 권력 있는 사람 불면증에 걸려서 잠 못자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생활이 유복한 것 같지만은 가정이 파탄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으냐? 당신은 굉장한 부자인데 무슨 잔소리하느냐 당신은 잘못된 자화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헐벗고 굶주리고 버림받고 빈 손들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없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있는 것을 바라봐라 그러자 그는 말하기를 박사님, 박사님 사무실에 들어올 때는 내가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해보니깐 꽤 있네요. . . 그럼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라 구두가 뭐냐. 뒤축을 꾸겨 신고있고 머리도 매만지지 아니하고 수염도 깍지 아니하고 당신 그러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니깐 그런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그 사무실에 나가서 곧장 나는 있는 사람이다 나는 부자다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게 스스로 중얼거렀습니다. 머리도 깎고 면도를 하고 옷을 깨끗이 입고 구두도 뒤축을 눌러서 신던 구두를 바로 신고 그리고 취직을 하러 나갔는데 곧장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올바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노만 빈센트 필 박사에게 전화를 해서 박사님, 박사님 말을 듣고 내 스스로의 자화상을 바꾸고 난 다음에는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대접해 줍니다. 곧장 취직을 했습니다. 나는 이제 직장을 갖게 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실제보다도 자기 마음에 그려진 자기 모습, 즉 자화상을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취급해 주는 것입니다. 삐뚤어진 자화상은 삶의 절대적인 실패를 가져옵니다. 이스라엘의 12정탐꾼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40주 40야를 정탐하고 나왔는데 그 중에 10사람은 얼마나 삐뚤어진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들은 말하기를 성은 높고 그곳에 사는 사람 아낙사람, 대장부는 우리가 도저히 이기지 못한다 우리가 스스로 볼 때에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 메뚜기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들을 스스로 메뚜기라고 보고있는데 어찌하여 감히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들이 지키고 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점령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버림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도 버림받고 세상에도 버림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삶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로 우리가 변화된 자화상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자화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오게 되면 놀라운 자화상의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을 지라도 내가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고 명예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오면 무조건하고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아서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남녀 노유 빈부 귀천할 것 없이 누구든지 입니다. 그 누구든지에는 여러분과 제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옛날 것이 지나가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새사람이 되어버림으로 새로운 자화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예수를 바라보고 살려면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버리고 만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서 의와 영광의 자화상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고 영광을 얻은 자기의 모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값없이 주님께서 일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가슴에 그린 자화상은 용서받고 의의 선물을 받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기의 당당한 모습입니다. 이 자화상은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받아 드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때 16명을 죽인 살인마 김대두는 굉장한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가 사람을 16명을 죽인 살인마가 되었을 때는 흉악범이었습니다. 그는 사회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고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는 버림받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손가정 출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서 열심히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그는 완전히 변화를 받았습니다. 감옥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는 하나님 앞에서 깊은 생활을 하고 지냈습니다. 그는 자화상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살인마에서 의와 영광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 받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이제는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아니라 정체가 불명했습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정체가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신분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사형 받는 날 사형장에 들어가면서 이렇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방청석에 손을 흔들었습니다. 저를 오늘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제가 오늘 주님께 영접 받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이 죽음이 너무나 가분합니다. 지옥 밑바닥에 떨어져야할 흉악범인 저를 십자가로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 품에 받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사형장으로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사회를 저주하고 자기를 저주하고 사람들을 향해서 이를 갈던 이 흉악범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모습이 완전히 변화된 천사와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화상이 변화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와 해방을 얻은 자화상을 마음속에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는 세상에서 세속에서 해방되고 마귀와 근신해서 자유를 얻고 스스로의 자화상을 마음 속에 가자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능력으로 세상과 마귀는 떠나가고 성령으로 새롭게 된 자기의 모습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베드로가 자기는 못났다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을 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통곡하고 스스로를 포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난 다음 성령충만하자 자화상이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못나고 비겁하고 연약하던 그가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고 힘있고 능력 있는 주의 종이 되고 하루에 3천명 이튿날에 5천명씩 회개시키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바친 위대한 사도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변화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자기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옛사람이 아니요, 이젠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새사람이 되고 새로운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는 자화상을 얻게 되었을 때 그는 큰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얻은 자기가 되었다는 자화상을 갖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의 품에 안겨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자화상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의 이치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그리스도와 살게 될 때에 나는 기쁨의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와 갚은 자화상을 가지고 살 때에 우리는 항상 기뻐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든 자는 치료받고 건강한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지금 내가 병들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치료할 수 없는 무서운 병에 걸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병에 잡히고 나약하고 죽어 가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병에 대한 저항력을 전혀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벽을 능히 극복하면 이길 수 있는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 자화상은 마태복음 8장 17장을 읽을 때에 얻을 수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주님이 우리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니 내가 주님 안에서 옛사람은 지나가고 새사람이 되었으니 치료받은 사람의 자화상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미 2천년 전에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음을 받은 자기의 모습을 마음속에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건강하고 치료받고 왕성하게 된 모습을 바라보고 그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어마어마한 병에 대한 저항력이 마음과 몸에 생겨나게 되고 그를 통해서 병은 쫓겨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치료받고 건강한 자화상을 우리는 늘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하고 축복 받은 자화상을 갖고 저주에서 해방된 자기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현재에는 내가 가난하고 낭패를 당하고 실망을 당했을 지라도 이것은 나의 진실한 모습이 아닙니다. 진실한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된 것입니다.

그 새것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우리를 위하여 저주(詛呪)를 받은 바 되사 율법(律法)의 저주(詛呪)에서 우리를 속량(贖良)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하셨으니 나는 예수 안에서 현재의 내가 아니라 새롭게 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감이란, 자화상을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의 말씀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부요케 된 모습을 마음속에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보혈이 이것이 확정하여 주었기 때문에 보혈로 그린 자화상은 새롭게 된 자화상 이건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스스로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천국 백성된 자화상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4절로 6절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 이미 하늘에 앉아 있습니다. 내 육신의 장막 집 덮어쓰고 지금 지상에 살고 있지만은 실상은 내 속사람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있으므로 육신의 장막 집 벗어버리면 손으로 짓지 않는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아 저희 쏘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고 담대하게 사망을 매도하고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새 신분을 얻은 새로운 자기의 모습 자화상을 마음 속에 확실히 바라보고 그 자화상을 따라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우리는 변화된 자화상을 확실히 소유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변화되고 복 받은 자화상을 여러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야고보서 1장 23절에서 25절에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자기 모습이 어떤가를 돌아보고 난 다음, 돌아서서는 자기의 모습을 잊어버리는 이러한 사람은 복을 못 받는다고 했습니다. 새롭게 변화된 자기의 모습을 성경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들여다보았으면 그 모습을 보존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5절에 so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恩澤)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破滅)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이것은 잊지 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화상을 잊지 말라, 마음에 늘 기억하라 이 자화상을 바라보고 이것이 나의 참된 모습이라는 것을 주장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의 독수리와 닭이라는 이야기는 정말로 유명합니다. 어느 날 모험을 좋아하는 소년이 근처 산에서 발견한 독수리 알을 암탉이 계란을 품을 때 살짝 집어넣었습니다. 드디어 병아리도 독수리도 알에서 깨어났습니다. 이 독수리 새끼는 자기가 병아리라고 생각하며 병아리와 똑같이 행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독수리 하나가 닭장 상봉을 날아 멋지게 맴돌다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세히 보고 있던 독수리 새끼는 야 나하고 닮았지 않느냐? 나는 여태까지 병아리하고 왜 안 닮았나 싶어했는데 저 공중에 나는 저 어마어마한 새하고 나하고 닮았지 않으냐 비로소 독수리 새끼는 그제야 자기 모습을 살펴보고 자기가 누군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화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병아리가 아니야 나는 저 독수리를 닮았어 이 닭장은 내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닭장에 살 팔자가 아니야 나는 높은 하늘을 날고 바위 산을 오른 독수리야, 이제까지 병아리라고 생각하고 병아리처럼 생각하였으나 이를 다 청산하고 날개를 쳐보니 힘차게 솟아 올라갑니다. 그때부터 독수리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옛사람이 아닙니다. 옛사람처럼 이 세상에서 살다가 가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십자가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모습을 바라보고 이 새사람이 나와 닮았구나 나는 옛사람이 아니야, 나는 병아리가 아니야, 나는 독수리야 나는 독수리처럼 살아야만해,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고 새 자화상을 가지고 힘차게 믿습니다하고 날개를 치면 희한하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셔서 푸른 창공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자기가 된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의 자화상을 항상 입술로 고백을 하십시다. 사람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한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개들도 자녀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할 때에 오 여자여 내 믿음이 크도다 네가 이 말을 했으므로 내 딸에게서 귀신이 나갔느니라 말하므로 그 결과로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자기의 변화된 자화상을 입술로는 고백을 하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자화상을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에 만 입이 내가 있으면 그 입 다가지고 내 구주 주시는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을 기억하고 우리는 늘 주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며 그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새로운 자화상의 반대되는 생각이나 느낌이나 환경은 단호히 대적하고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신분이 되었다. 나는 정치 불명의 사람이 아니라 정체가 확실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자화상을 가진 사람인데 여기에 반대되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생각이나 일이 다가오면 단호하게 서서 나와 상관이 없다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지어다 흑암의 세력아 떠나가라 저항하고 물리치고 내 자화상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내 신분을 확실하게 붙잡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의 공격에 넘어지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학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자신을 사랑하라고 슐러 목사는 말했습니다. 이것이 새 자화상을 갖고 사는 삶이며 이렇게 해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가? 그는 말하기를 당신은 이 세상에서 한 사람 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를 사랑해야 된다. 왜? 수 많은 사람이 살지만은 자기와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이 지구상에 한 사람 밖에 없어요 여러분과 똑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두 사람 없어요 한날 한시에 태어나도 쌍둥이도 지문이 다릅니다. 이 우주 가운데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은 여러분 하나 밖에 없어요 그러기에 굉장히 귀한 존재입니다. 내가 유일하게 지구상에 나 같은 사람은 하나 밖에 없으니 이 하나님이 얼마나 귀하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독자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슐러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 나름대로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저가 시골에서 자라날 때에 이웃 동네에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아버지가 굉장히 부자였는데 그 아들을 공부를 시키려고 서당에 보냈는데 이 사람은 공부를 하지 아니하고 지게를 지고 언제나 산으로 도망을 칩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매를 가지고 종아리를 때리면 이놈아 공부를 하라고 하는데 너는 왜 지게만 지고 산으로 도망치느냐 너 바보 아니냐 그때 그가 대답한 말이 내 귀에 쟁쟁합니다. 아버지 나 바보 아니에요 다른 애들은 공부를 할 줄 알지만은 나는 나무 할 줄을 압니다. 그 아버지는 가슴을 치시면서 이 놈의 자식아 나무를 할 줄 알다니 그러나 그 사람은 당당했습니다. 나는 공부가 싫다 다른 사람들은 공부를 할 줄 알지만은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지게 지고 나무 할 줄 모르지 않느냐 나는 나무 할 줄 아니까 나무를 해서 평생을 살겠다 그 다음 그 사람은 결혼해서 우리 집 아래채에 와서 살았습니다. 당당하게 나무를 해서 처자식을 먹이고 살았습니다. 그는 그 자신으로서 그 부모는 아무 능력이 없는 버림받은 놈이라고 했지만 나무를 할 수 있는 능력은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독자적인 능력이 있으니깐 여러분 자신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무엇인지 시키신 일이 있기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장미꽃만 꽃이 아닙니다. 며느리밥풀 꽃도 꽃입니다. 그러므로 장미꽃만 사명이 있는 것이냐 며느리밥풀 꽃도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주신 사명이요 특권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자기 마음 판에 자기의 모습을 그려놓고 그 모습을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만일 그 자화상이 부정적이고 열등하며 패배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그대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자화상이 소망차고 낙관적이며 긍정적인 모습이면 또한 그렇게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성공과 실패가 우리의 외면적인 모습이 아닌 내면적인 자화상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 지음을 받은 피로 그린 자화상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다 버렸다 할지라도 십자가 앞에 나와서 우리는 새 사람이 되고 새로운 자화상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자화상을 얻고 우리는 마음에 강하고 담대하여 소망차고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 갈 수 있고 우리의 생활 속에 위대한 승리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병아리가 아닌 독수리라는 사실을 알고 닭장에 살지 말고 푸른 창공에 믿음으로 날면서 살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