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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움 없는 마음 (딤후 0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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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봉독하신 말씀 중에 디모데후서 1:7절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 니 디모데는 그 성격이 퍽 수줍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과업이 맡겨질 때마다 퍽 주저하곤 했습니다. 성격이 수줍은 것은 지도자가 되는데 약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 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0절에 보아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고 했습니다. 이처럼 젊은 디모데, 몸도 약해서 약으로 포도주를 조금씩 쓸 정도의 디모데, 더구나 성격이 수줍어서 사람들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는 디모데를 하나님은 부르셔서 그리스도를 섬기고 교회 를 지도하게 하기 위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두려워하 는 마음이 아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만족스럽지 않아 불안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허버트 웰치 주교님은 80회 생신 때 어떤 사람이 주교님은 어떤 상황에 서도 영혼이 항상 고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웰치 주교님은 나이가 들 어 갈수록 모든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저녁 햇빛에 더 밝히 보여지기 때문에 산다는 것이 점점 쉬워져요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지나친 욕심이 사라질 때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 생활 주변에는 질병으로 인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마음의 갈등이 내 적인 평화를 파괴합니다. 사람이 마음속에는 높은 차원과 낮은 차원의 본성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양극의 두 가지 본성이 서로 계속적인 갈등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영혼과 육신의 갈등, 새 사람과 옛 사람의 다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평화를 헤치는 갈등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불화 때문입니다. 다 른 사람이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 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 한 내 마음에 평화가 없습니다. 더구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가운 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했는 데 우리가 이 기도를 드리면서도 이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른 사람의 죄 를 용서해 주지 못하면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사실 경우에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 4:5절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걱정이 있을 때 두려움이 생깁니다. 걱정과 염려는 우리 삶에서 생명력과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염려는 사람에게 질병을 초래합니다. 우리가 왜 염려합니까? 우리가 처 해 있는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우리 힘으로 도저히 바꿔 놓을 수 없는 환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꿀 수 없는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바꿀 수 없는 환경을 받아 드 릴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바꿀 수 없는 환경과 조건 때문에 염려하고 불평하는 것은 전 혀 가치가 없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근심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은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에게 꼭 같은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 사 람이 하는 것을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사 람의 정원에 세상 모든 화초를 다 심어 놓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왜 내 정 원에는 평범한 꽃 채송화만 심어 주시고 다른 사람의 정원에는 아름다운 장미 꽃을 심어 주셨는 가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정원에 심겨진 채송화를 가꾸지 않고 다른 사람의 정 원에 심겨 있는 장미꽃을 시기합니다. 그러면 내 인생의 정원은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 고 쑥밭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 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해 낼 수가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장점이 우리의 삶에서 제일 중요 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두려워합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믿음이 없어서 그럽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한 마음속에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 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마음에 평화가 깃들이고 능력이 솟아납니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제일 큰 두려움 가운데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오늘까지는 괜찮았는데 내일 좋지 않은 일이 생기지 아니할까? 이 달까지는 그럭저럭 지냈는 데 다음달에 어려움이 부딪히지 아니할까? 금년은 그런대로 지냈는데 내년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고 초조해 합니다. 우리는 있지도 않은 재앙에 대한 근심과 염려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기쁨과 만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 니다.

여러분,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만 허락하여 주신 최 대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이 축복을 현명하게 사용해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만 합니다. 내일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인간만이 미래를 기준으로 생각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망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사람 들만이 가진 특권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축복이 잘못 사용되면 이 때문에 인간에게는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따라 서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비극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은 바로 사용 하면 축복이 되지만 그것을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비극이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주신 편지에서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 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볼일 듯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이 말은 우리가 지닌 모든 힘과 능력을 사용하여 진정한 인간이 되라고 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 며 최선을 다 할 때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낄 것이 아니라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근신하 는 마음을 가지면 우리 앞에 던져진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른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시편 27편은 다윗이 쓴 시입니다. 그는 1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 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했습니다. 여기 보세요. 다윗은 주님이 구원을 주시거나 능력 을 주신다고 하지 아니하고 바로 주님이 우리의 빛이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면 요일과 계절이 변하여도 차이가 없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 을 지니고 계십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의 빛이요 우리의 구원이요 우리의 능력이시기 때문에 나 에게 힘든 모든 것을 주장하여 주십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다 이 말은 히브리 사람들이 항상 사용하는 말입니다 마는 그 다음은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라는 말은 흔히 쓰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말도 바로 이것입니다. 이 말은 놀란다 무서워한다 또는 위험을 받는다 는 뜻이 있는 말입 니다. 사람에게 있는 이 두려워하는 감정이 바로 사용되면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는데 도움이 됩니 다. 그러나 잘 못 사용되면 오히려 많은 손해를 가져오고 우리가 할 일을 바로 하지 못합니다. 그 두려움은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에 모든 방면에 위축을 당하게 합니다. 몸이 약한 사람만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고 몸이 크고 힘이 센 사람도 두려워합니다. 권력 없 는 사람만 두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 있는 사람에게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옆에서 볼 때 자신과 확신에 가득차 있어 보이는 사람의 마음속에도 새 장에 갇힌 것 같이 두려움에 떠는 작은 아이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속으로 두려워하고 떨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밖으로 나타내 말하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라고 다윗은 말했습니다.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무서워하지 아니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거인 골리앗 앞에서 그가 들고 있는 창과 칼 같은 무기의 우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바로 오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빛이요 너의 구원이니 우리 가운데 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안계십니까? 다윗이 당한 상황은 나처럼 그렇게 다급하지는 않았을 테죠 하고 말입니다. 다윗의 형편이 어땠어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했습니다.

사울 왕은 전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 한 사람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혼자 싸우고 있었 습니다. 이 글을 읽을 때 다윗의 형편은 한없이 두려워할 입장이었습니다. 어렵다면 이 이상 더 어려울 수가 있겠습니까? 이 이상 더 긴박한 상황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 까? 사울의 군대가 다윗을 포위하여 조여들어 오고 있습니다. 다윗이 동굴에서 나아와 바위 뒤 에 숨었을 때 사방에서 군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만일 다윗이 하나님께 확신이 없었다면 시편 27편과 같은 글을 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갈등이 격렬하게 일어났습 니다. 육신적으로 말하면 장인이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지만 이처럼 정신이 나가서 악을 행하는데 해명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억울하게 쫓겨다니며 생명의 위협을 순간 순간 당 하게 될 때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을까, 짐작이 갑니다. 사울 왕의 말만 듣고 사울의 군대는 다윗이 정말 그처럼 나쁜 사람인 줄 알고 눈에 불을 켜고 다윗을 잡으려고 진을 치고 달려듭니다. 이런 때 다윗이 한 말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렇게 원수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지만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확신에 가득찬 표현입니까? 이 확신은 자신감도, 인간의 지혜도 아닙니다. 이 말에 는 안전하게 된다 확증을 얻는다 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윗에게 이런 확신을 줄 수 있 던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셨습니다. 바로 이 점이 유약한 것처럼 보이는 기독교가 힘을 얻 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 확신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바라시는 것도 하나님 안에서 그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두려움은 이길 수 있습니까? 참으로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고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될 것은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정말 두려워 할 분이 누구십니까?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거듭거듭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왜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시편 103편에도 다윗은 세번씩이나 하나님의 축복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가운데 세 상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해서 그의 백성을 향해 주신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 하 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이기는 비결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장래를 지키십니다. 만일에 우리가 다가오는 앞날 때문에 걱정하고 두려워하게 되면 그것은 믿음이 없 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두려워 가운데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믿음 없이 세상을 두려워하며 근심하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두려워서 떨고 무 서워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믿음이 적은 자여 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요한 계시록 21장에 보면 죄의 종목 가운데
첫째가 두려워 하는 것인데 그런 사람은 하늘 나 라 밖으로 내 버린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8절을 보세요.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 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 째 사망이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믿음으로 살아 두려운 세상에서도 두려움 없이 살아가시기를 바 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십니다. 하나님만을 존경하고 두려워하십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 주십 니다. 우리 다 함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읽어 보실까요. 시편 23편 4절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7편 1절여호와는 나의 빛이시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32편 7절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 리이다 시편 34편 9절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시편 56편 3절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편 91편 2절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 는 하나님이라 시편 112편 1,7절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험한 세상을 두려움 없이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십시 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다. 하나님의 인도만을 따르십시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에게 네 가지 두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궁핍의 두려움, 고난의 두려움, 실 패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입니다. 헨리 포드는 그가 사는 마을에 세워진 높은 시계탑 밑에 가끔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시계가 정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그 뒤를 따라 작은 소리의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습니다. 주님, 이 시간도 주님께서 인도하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능력으로 실족치 않게 하옵소서 하는 간단한 노래 였습니다. 그러면 헨리포드는 조용히 앉아서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감사합니 다. 다음 한 시간도 나와 함께 할 것이니 내가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포드씨는 여러가지 무거운 책임을 맡았지만 두려움 없이 당황하는 것도 없이 여유 만 만하게 평온한 삶을 살수가 있었습니다.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두려움 없이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양무리인 우리를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사 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우리를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요? 그때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하시 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 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펫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의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의 일은 내일이 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의 괴로움만이라도 족하니라 너무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일의 일을 염려하다가 그만 오늘의 일을 바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라일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맡은바 할 일은 멀리 있는 희미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확실하게 있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할 수 있습니까? 하루의 일과를 정해 놓고 자신의 능력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앞날 에 대한 막연한 일로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실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대개 그 날 하루의 일이 아니라 앞날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 는 넘지 않아도 될 산을 놓고 근심하며, 건너지 않아도 될 강 때문에 걱정하고, 만나지 않을 원 수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하지 않아도 될 공연한 일로 근심하는 때가 너무 많습니다. 안식일 다음날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을 보세요. 그날 새벽은 유난히 모든 것이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만한 마음의 여유 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무덤을 막고 있는 바위를 누가 굴려 줄까 하며 근심에 쌓여 있었 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무덤을 막고 있던 그 큰 바윗돌이 굴려져 있 었습니다. 보세요. 그러니까 이 여인들은 이미 해결된 문제를 놓고 계속 근심한 것입니다. 오늘 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사는 것이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우 리는 세상에 던져진 고아가 아닙니다. 주어진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이 세상과 우리 인간 을 지으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필요합니 다. 사도 바울은 평생의 신앙을 세마디로 간증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누가 능히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은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도 다 이런 간증을 할 수 있어서 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 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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