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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고통의 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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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자보다 신실한 기독인 되고 싶다’라는 정근모 박사의 신앙고백의 책이 있습니다. 한국인으론 최초로 국제원자력기구 의장을 지냈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창립 공신이며, 두 차례나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경력보다 크리스천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적인 핵물리학자로 탄탄대로를 걷던 그를 신앙의 깊은 세계로 인도한 것은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은 역경이자 축복이었습니다. 아들이 열 살 때 만성 신장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자신의 신장을 떼어내 아들에게 이식했습니다. 그 후로도 아들은 26년을 병과 싸워야 했고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고통을 못 이겨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고통의 나날을 통해 정 박사 가족은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어 기도를 배웠고, 신앙의 동역자들과 교제하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나 혼자 고통 받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징계는 다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이상하다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가난과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병원마다 병상이 모자랄 정도로 환자가 넘칩니다.
 교회 안의 가정들도 다들 문제를 갖고 어려움도 있고 고민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문제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잘 참아 견디기 때문이며, 결국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잠시…징계하나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10절) 라고 하셨습니다. 징계는 영어성경에 ‘discipline’ 즉 훈련, 수양의 의미가 있습니다. 군인들에게 훈련이 필요하고, 연주자들에게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듯 믿는 이에게도 훈련이 필요하기에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했으나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구나 하며 위로 받으십시오. 형통하고 잘되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습니다(잠30:9). 편함이나 형통함이 결코 축복이 아니며 오히려 고통이 축복일 수 있습니다. 고통이 있기에 기도하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시며 영적 성숙의 기회로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이긴 후 열매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후에…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11절). 당시는 현재입니다. 오늘은 고통스럽고 슬픕니다. 그러나 후에, 즉 미래에는 열매가 분명 있습니다. 성도는 오늘을 삽니다만 미래를 내어다 보며 희망 갖고 사는 인생들입니다. 잠시 고통스럽습니까? 열매가 있음을 기억하시며 힘내어 사시기 바랍니다.

「21세기 인터넷 선교방송 매일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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