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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시민사회를 태동케 한 사건은 프랑스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프랑스혁명은 근대 시민혁명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프랑스혁명이 시민혁명의 교과서와 같은 지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그 이념 때문입니다. 근대 이전의 사회체제는 계급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는데,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아래 인간 없다’는 만인평등의 사상은 계급사회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동양에서도 계급에 근거한 체제에 대하여 하층민이나 노예계급의 저항이 종종 있었는데, 그들의 구호는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만인평등의 근대적 이념을 주창했다기보다는 체제전복을 통한 신분의 변화를 꾀했다는 점에서 시민혁명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계급의 타파나 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시민의식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민의식이 고취되고 실현된 결과 오늘날에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계급사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근대국가의 법이념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모든 면에서 전적으로 평등한 세상을 구현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지만, 회사에서 사장님과 종업원이 평등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심지어는 아파트 평수에 따라 그룹이 나누어지는 현실이잖습니까? 개인의 능력이나 또는 가진 소유의 차이에 따라 우리는 불평등한 세상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은 돈 많고 유식한 사람들 앞에서 굽실거려야 하고, 힘 있는 사람의 눈에 나서 고생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가진 사람이 대우받고 능력 있는 사람이 인정을 받습니다.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합격하고, 얼굴이 예뻐야 인기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야 그렇다지만 천국에서도 그렇다면 어떨까요?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여부가 세상에서의 성공에 의해 좌우된다면, 세상에서 실패했거나 힘없이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예를 들어 달리기 시합을 해서 선착순으로 천국에 간다거나 하나님께서 공부 잘하고 똑똑한 사람들만 구원하신다면 우리처럼 달리기 잘 못하고 공부도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 주님이 맨 처음 선포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사역을 시작하실 때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으심으로써 자신의 사역의 성격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는 말을 보세요. ‘형제들아, 너희 부르심을 보라.’ 여기서 부르심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효과적인 구원으로의 부르심입니다. 부르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향한 공개적인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믿고 구원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듣지 않고 자기 가던 멸망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효과적인 부르심이란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구원에 이르게까지 하는 부르심입니다.

그렇게 고린도 교인들을 구원으로 부르신 것을 보니까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으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지혜 있고 좋은 가문의 사람들만 부르셨다면 대부분의 고린도 교인들은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부르실 때 무엇을 보고 부르십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구원으로 부르실 때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돈도 아니고 미모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뿐이지요. 그 사실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우리가 잘났든지 못났든지, 우리가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으세요. 그것 가지고 구원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지 않아요. 오직 우리에게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불만 있습니까? 노래 잘하는 사람만 뽑아서 구원하신다면 노래 못하는 사람들은 데모라도 해야겠지요. 얼마나 공평하신 하나님입니까?

그런데요,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매우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그 공평하심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이 어떤 사람들에게 불리하겠습니까? 똑똑한 사람들, 잘난 사람들에게 불리하단 말이지요.

사실 지혜롭고 똑똑하다는 것은 영적 진리를 깨닫는 데 있어서 불이익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나님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겠다는 사람들, 몸이 건강하고 힘이 있으니까 그런 소리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병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소리 못해요.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더 찾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믿음은 아주 단순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대로 믿고 구원을 얻는 거예요. 그러나 복잡하고 정교한 학문을 마스터한 사람은 자기 학문세계만 알 뿐, 그보다 훨씬 크고 위대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사실을 언급하신 적이 있는데, 마태복음 11장 25절에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세상에서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진리가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연약하고 미련한 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는 더 유리한 조건이 되어버렸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어요. 영생을 얻고자 하는 열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재산이었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 부르심에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람들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이 원양어선을 가지고 있었다면 배를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바울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많이 못 배우고 재능도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 되신다는 것을 믿고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복음의 진리를 비웃는 위대한 철학자보다 훨씬 더 지혜롭지 않습니까? 최후의 심판이 있은 후에 그 지혜롭다던 사람들은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통탄하게 될 것입니다. 권력을 최고로 알고 돈의 능력으로 큰소리치는 사람들보다 가진 것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훨씬 강하지 않습니까? 물 한 방울을 간절히 사모하게 된 지옥의 부자가 아브라함 품속의 거지 나사로를 얼마나 부러워했습니까?

때로는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지난 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한 선수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이처럼 유명한 사람들이 다 기독교인이 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려고 할 테니까요.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오히려 우리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유명한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도매금으로 비난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힘은 없지만 자기 서 있는 자리에서 성실하고 아름답게 사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그 모습으로 사람들을 감화시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시험을 봐서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뽑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무식하고 투박한 사람들이었지요. 그러나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을 변혁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전혀 다른 시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것이 어떤 것이고 정말 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해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과 약한 것을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과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기 위해서일까요? 똑똑하고 돈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대접을 충분히 받았으니까 이번에는 고생을 좀 시키기 위해서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만약 얼굴 예쁜 사람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콧대가 높아지겠어요? 구원받은 이유는 전적으로 자기가 잘났기 때문이거든요. 구원받기에 충분할 만큼 아름다운 자신의 미모를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에는 구원받는 사람의 공로가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자랑하고 내세울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식하고 가난해서 구원받았으니까 무식하고 가난한 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연약함과 미련한 것을 택하여 주신 것을 감사해야지, 그것을 자랑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우리는 구원받아 의인이 된 것이지 의인이어서 구원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자신의 의로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착각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어요.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는 것은 행위로 의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쓸데없는 법들을 만들어놓고 열심히 지켰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다 지켰으니까 자기들은 의롭다고 목에 힘을 주고 다녔던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토록 책망하시고 못 마땅해 하시던 것이 바로 그들의 거짓된 의로움과 교만 아니었습니까?

결국 우리의 의로움은 전혀 없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로움이 덧입혀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성도, 즉 거룩한 무리가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구속함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특징짓는 한 가지 요소는 겸손인 것입니다. 겸손이 없는 삶이란 그리스도인이란 이름과 호환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9장 23-24절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에서 사는 우리의 삶이 참으로 하나님만 자랑하는 모습으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과 교만함이 자리를 비켜주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거룩하심이 우리의 삶에서 빛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그래서 새로운 방법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진정으로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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