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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혈을 지나 하나님께로 (히 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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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인터넷에 접속해서 외국에서, 오지에서, 병상에서, 우리와 함께 예배에 동참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하는 것만 들어봐도 그 사람이 나이가 들었는지, 어린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나이든 사람은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현실과 미래에 관심이 많습니다. 말하는 것 뿐 아니라 반응하는 것을 보아도 그 사람이 젊었는지, 나이 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 아이들은 '나이 들어 보인다, 성숙해 보인다'고 하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은 '어려 보인다'는 말 듣기를 좋아합니다. 옆의 분들과 '나이가 들어 보이십니다'라고 인사하겠습니다. 그 인사를 받으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일전에 조문경사모님이 오셔서 저를 좋아하게되었던 이유를 말씀하여 주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저의 설교를 듣고 있는데 설교내용중에 이런 이야기를 제가 하더랍니다.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전화를 해서 아 박목사 요즘 떳더구만! 글세요 하나님께서 뛰워주신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네 교회 지었나! 예 교회는 이미 건축이 되었습니다. 아니 소문도 없이 교회를 건축했단 말인가? 예 제 마음에 미래의교회가 건축이 되었습니다.“ 라고 얘기하더라는 것입니다. 조사모님의 얘기를 듣고 저도 제가 했던 설교를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그려진 설계도가 그대로 건축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은 젊은 사람입니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 있음에 희망이 있고 우리가 살아 있음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를 살게 하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은 본문(히 10:19-25) 말씀을 중심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 말씀은 구약의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연결하여 교리적인 것을 가르치고 그에 이어서 그리스도인들의 실질적이고 윤리적인 삶에 대해 권고하는 말씀입니다. 19-22절에 소개된 핵심은 '그러므로 형제들아…(18절) … 하나님께 나아가자(22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예수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지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같이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복음찬송을 함께 불러 보시겠습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본문 19절에 보면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이동식 성소는 성막(Tabernacle)이었습니다(출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출25:8)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 주시는 곳이어서 '회막'이라고도 했습니다.(출27:21, 33:7-10)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는데 레위기 16장에 보면 지성소에는 1년에 한번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속죄일에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대제사장이라고 함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규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 규정들을 지키지 않고 들어갔다가는 대제사장도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죄는 물론이고 헛된 생각까지도 용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고 자기 자신과 가족의 죄를 사하기 위한 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당시의 대제사장이 그랬으니 일반인들은 성소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일반인들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감히 하나님을 잘못 만났다가는 대제사장도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려운 분이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좋으신 분이지만 무섭고 두려운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직접 기도 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 직접 회개하고, 직접 달라고 하고, '하나님'이라고 직접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피 흘리심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에(히10:19-21) 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히10:19-21) 자신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고 죄를 깨끗하게 씻음 받은 확신을 가진 참 마음(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 가식 없고 변함 없는 마음)과 온전한 믿음(확실한 믿음, 의심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22절) 다시 말해 죄를 회개하고 용서함 받은 확신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죄책감에 눌려 살지 말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 졌다, 거룩해졌다' 하는 담대함과 당당함(엡3:12)을 가져야 합니다. 따라서 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나는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 흘리신 공로로 용서받았다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나는 멸망치 않는다 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즐기고 가면 안됩니다. 예배를 구경하고 가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용서받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많은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리사이틀 하는 것처럼, 가수들이 공연하는 것처럼 예배드립니다. 예배는 공연이 아닙니다. 예배는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배드림으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물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 그 마음으로 세상에 나가 빛 되고 소금 될 살 결심을 하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 구원받은 백성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니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비록 육신이 이 땅에서 고통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저는 본문의 말씀을 의지해서세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소망을 굳게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소망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23절). 23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히10:23)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분명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23절의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라는 말의 '미쁘시니'(faithful)는 '믿음직스러우니, 참되니…'라는 뜻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신실하신주 나의 주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 믿음이 없이는 온전한 믿음 없이는, 확실한 믿음 없이는, 의심 없는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11:6) 그렇기 때문에 흔들림 없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믿어야 합니다.(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15:58) 군대에서 혹독한 훈련을 할때 군가를 많이 시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군가는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격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그리스도인의 군가는 이렇습니다. 나가세 나가세 주 예수 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고 싸움터로 나가세 일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계22:12) 그러므로 사람들이 알아주느냐, 마느냐? 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안 하는데 나 혼자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나 혼자만 미쳤나봐! …' 등등 헛된 생각으로 마음 상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장 13절 말씀처럼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고후5:13) 사실 목사인 저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목회를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일거리를 만들어 이 고생을 해야 하나? 빚을 져가며 일하고, 빚 때문에 쩔쩔매야 하나? 그런 일 때문에 말 듣고, 들은 말 때문에 상처받고… 가만히 있으면 누가 뭐래나? 가만히 있을 걸, 가만히 있으면 내 맘도 몸도 편하고 교인들도 편할텐데… 저도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을 굳게 붙들고 나아가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라 ! 24절에 보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24절)라고 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선하다고 하신 일 그것을 하도록 서로에게 자극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 혼자만 잘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뭐 하러 이렇게 열내나' 라고 말하시는 분들, '남들은 안 하는데 나는 왜 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서로에게 권하여, 자극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있는 사람, 특별히 죄짓지 않으며, 특별히 남에게 손해나는 일 하지 않고 그렇다고 남에게 유익한 일도 않고 혼자 지내는 사람에 대해 뭐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그런 사람에게 '악하고 게으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선과 반대입니다. '악'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 악입니다. 여러분 간혹 '날 좀 내버려둬'라는 생각을 하시지 않습니까. '날 내버려 둬…, 그 사람 내버려 둬…'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내버려두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하심이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자극을 주어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삶이 되게 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 여러분 자신, 여러분 자식,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 가족들, 친구, 믿음 안에서 만난 이들… 외면하지 마세요. 내버려두지 마세요. '안봐', '상대 안하고 살면 되지'하고 등돌리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여러분 가운데도 '안보고 살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더불어 살며, 위하여 기도해 주고, 불쌍히 여기며 도와 주며 살라고 맡겨 주신 사명인지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지고 가라고 주신 십자가인지 어떻게 압니까? 여러분, 안 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버려두면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내가 잘하니까? 내게 도울 은사가 있으니까…' 나보고 도우며 살라고, 위로하며 살라고, 성질 받아주며 살라고 붙여준 짐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한번 더 생각해 보시고, 한번 더 기도해 보시고, 한번 더 참아보시고, 한번 더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예수 잘 믿으라고 권면하다가 비난받아도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다가 비난받아도 하시기 바랍니다. 신문에 난 이야기 그대로 소개합니다. <예수의 사람을 만나라 (국민일보 200

4.

6. 19. 겨자씨에서)> 이 집사는 노방전도대의 팀원이었습니다. 전도대가 어느 날 지방 소도시를 찾아 거리에 나섰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외지인에 대해 예우를 해주는 것인지 주민들은 그렇게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에 귀를 기울여주는 듯했습니다. <P style='FONT-SIZE:10pt;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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