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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외솔 최현배와 패티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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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예화 329.외솔 최현배와 패티 킴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은 연세대학교를 중심으로 정인보, 김윤경 들과 더불어 1910년 즈음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물려받은 한글 운동을 널리 확장하고 크게 발전시킨 훌륭한 한글학자이며 우리 한글을 말살시키려한 일제에 항거하여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942년 투옥되어 1945년 해방되기까지 3년 동안 옥고를 치른 투철한 민족주의자이며 애국지사였습니다.

그 외솔 최현배 선생 장례식이 1970년 3월 25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있었습니다. 장례식에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보내왔고, 학계, 정치계, 종교계, 사회 각계각층에서 오신 조객과 학생들로 강당은 초만원이었습니다. 장례식은 기도, 찬송, 말씀, 고인 약력, 조시, 애도사, 헌화,... 등으로 엄숙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弔歌 순서가 되었을 때, 사회자가 이제 弔歌 순서가 있겠습니다. 弔歌를 불러주실 분은 <패티 킴> 양입니다! 하자, 강당 안은 술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연예인들을 <딴따라 패>로 업신여기던 시절이라, 사람들은 <아니, 뭐 패티 킴이라구,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안에 훌륭한 성악가가 없어서 이 엄숙한 장례식에 그래 하필이면 딴따라 패티 킴이 웬 말이야!> 하고 수군수군 하였습니다.

이런 반응이 있으리라 미리 예견하였던지 사회자는 이렇게 해명하였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의아하게 여기실 분이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다름 아니라 외솔 선생께서 평소 패티 킴 양의 노래를 즐겨 들으시고 좋아하셨고, 내 장례식 때 패티 킴 양이 조가를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말씀이 계셨기에 오늘 패티 킴 양이 조가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패티 킴은 검은 드레스를 입고 조용히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피아노 반주가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가는 <올드 랭 자인> 곡에 이별의 슬픔을 담은 가사로 되어 있는 비가였습니다. 패티 킴은 이런 자리에서 조가를 부르게 되어 영광이라는 둥, 외솔 선생을 평소 존경했다는 둥 하는 너절한 잡소리 한 마디 없이 곧 바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잘 가시오, 내 친구여! 슬픔을 잊고서,.........>.

풍부한 성량과 호소력 있는 패티 킴의 목소리가 강당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처음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조가의 첫 절이 끝날 때 즈음이 되자 <어, 패티 킴도 그만 하면 괜찮네>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2절이 끝나자 사람들은 숙연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지막 3절이 끝나자 사람들은 너무 감동하여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리고 <딴다라가 어디 감히 이런 자리에 설 수 있는가?> 했던 사람들은 <패티 킴! 우리 모두 너무 큰 감동을 받았네, 자네 참 훌륭한 가수일세, 딴따라라고 멸시했던 우리를 용서해 주게, 고맙네!> 하는 눈길로 무대 뒤로 사라져 가는 패티 킴을 전송하였습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자기를 드러냅니다. 가수는 노래로 자기를 드러냅니다. 사람은 그 닦은 실력으로 자신을 드러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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