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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정의의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 민들레 홀씨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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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 / 2003 년 7월 13일 발행 (부정기 발행) 발행처: 민들레성서마을    발행 및 편집인: 김재성                            

정의의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       박경철/ 전주대 강사

논어의 『정명론』을 보면, “표현하려는 사실의 내용과 성질에 맞게 이름을 지어야 오해와 곡해를 바로잡을 수 있고 그것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한다. 오늘날 언론 매체들을 통해 접하는 뉴스의 제목들을 보면서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사건에 대해 바르게 접근하고 판단하도록 유도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 자리를 빌려 미디어비평을 하자는 것은 아니기에 거두절미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의 이야기 하나를 꺼내어 보고자 한다. 혹, 성서에서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어떤 제목으로 인해 성서의 본래의 뜻을 잘 못 알고 있는 것은 없는가 하는 문제다. 물론 성서가 각 책들의 이름을 갖고 있긴 하지만, 성서 자체 내에는 그 어떤 제목들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단지 여러 번역본 성서들이 나름대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성서 각 내용들에 대해 단락을 임의로 정하고 거기에 알맞게 제목을 달아 놓고 있는 것들을 흔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은연중에 당연시 해 왔던 어떤 책 하나에 대한 제목(?)이 그 책의 내용을 완전히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구약성서의 호세아서다.

호세아서 하면 거의 모든 이들이 제일 먼저 고멜을 떠올린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상징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고멜과 함께 등장하고 있는 자녀들 역시 같은 의미의 상징적 이름으로 거론되지만, ‘이즈르엘’, ‘로루하마’, ‘로암미’의 이름을 떠올리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사실 고멜과의 결혼사건 외에는 호세아서 전체 내용을 아는 이는 거의 드물지 않을까? 대부분의 이들이 고멜과의 결혼 이야기를 담고 있는 1-2장만 알고 있는 셈이다. 3장에서 다시 한 번 결혼 이야기가 다루어지긴 하지만, 3장에서의 여인이 고멜을 말하는 것인지는 학계의 논란이 심하다. 단 5절로만 이루어진 3장까지를 포함한다고 해도 전체 14장 중에서 고멜과의 결혼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는 내용은 전체 호세아서의 분량으로 치자면 작은 부분이다.

호세아 하면 음란한 여인 고멜로 연결하는 사고는 바알숭배로 인한 죄지은 이스라엘을 여성으로 인식함으로써 호세아서는 남성주의적 성서해석의 기초를 제공해 준 성서본문으로 인식되는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는 신실한 남편의 사랑을 묘사하는 하나님(남성)과 이를 배반하고 바람을 피우는 아내인 이스라엘(여성)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줌으로써 ‘남성 하나님’-‘여성 이스라엘’이라는 도식을 그려준다. 그러나 이는 호세아서 전체의 시각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을 여성적으로 묘사한다든가(11:3-4) 또는 이스라엘을 남성(아들, 11:1)으로 묘사하는 본문 역시 호세아서 안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호세아서 4장 이하에서는 이스라엘의 범죄의 대상으로 제사장, 예언자, 정치 권력자, 가장들인 남성들로 지목하기도 한다. 남성들의 간음이 문제이지, 여성들(딸, 며느리)의 음행은 벌하지 않을 것이라고 까지 말한다(4:14). 그렇기 때문에 호세아서 하면 고멜의 이야기, 곧 여자의 범죄로 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바알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여성적으로 상징화한 이유는 단지 바알신이 남성신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관장하는 바알의 특징은 땅을 경작하는 농경문화에서는 가장 강력한 숭배의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바알은 남성으로서 어머니 신인 땅에 비(정액)를 내려주고 이로 인해 땅은 생산을 하게 된다. 바알신은 곧 풍요와 다산의 신인 셈이었다. 땅이 풍요를 누리기 위해서는 바알의 정액(비)을 기다리고 맞아야 했다. 호세아서는 남성적 신인 바알을 숭배하는 풍요와 다산을 위한 종교 제의의 내용을 여성의 성적 행위의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스라엘이 여성으로 상징화 되는 이유는 단지 이뿐이다. 만약 바알이 여성 신이었고 이스라엘이 그를 섬겼다면,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의 모습은 남성의 성적 행위로 묘사되었을 것이다.

호세아의 결혼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호 1-3장은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의 심판과 구원을 말한다. 세 자녀, 이즈르엘, 로루하마, 로암미가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면, 이들은 다시 구원의 의미로 바꾸어진다(이즈르엘 → 이즈르엘 땅의 축복/ 로루하마(은혜를 받지 못한 자) → 루하마(은혜를 받은 자)/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암미(내 백성). 호 1-3장에 나타난 호세아의 세 자녀들의 상징적 이름들을 통한 심판과 구원이라는 대조적인 모습은 뒷 부분인 호 4-14장에서 역시 이스라엘의 심판과 구원의 내용을 펼쳐 보임으로써 호세아서 전체가 동일한 내용 구조를 보여준다. 문제는 심판이 어떻게 구원으로 바뀌는가 하는 것이다.

호 2:18-21에 따르면, 심판이 구원으로 바꾸어지는 동기는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온 땅의 생명들과 언약을 세우시는 일이며, 땅에서 활과 칼의 전쟁의 무기를 없애시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정의와 공의, 은총과 긍휼로 새로운 결혼을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될 것이며, 하늘과 땅이 서로 침묵의 무관심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응답하는 하나의 일치된 관계로 회복될 것임을 말한다.
호세아서의 근본 주제인 바알 종교 거부는 이스라엘 백성이 풍요의 근원을 바알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부정과 함께 오직 야훼만이 풍요케 하시는 절대자임을 말하는 것이다. 바알 종교의 풍요와 다산의 근원은 하늘이 땅에 비를 내려 줌으로 땅이 그 소산물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2:21-22에서 이 모든 관계의 근원은 다름 아닌 야훼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야훼가 하늘에 대답하니 하늘이 땅에 대답하고 땅이 곡식과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으로 이즈르엘에 대답한다는 것이다. 살인과 폭력의 피로 물든 땅 이즈르엘의 비옥한 풍요의 근원은 오직 야훼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풍요의 근거는 이즈르엘 땅이 바로 살인과 폭력의 금지의 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앞서 전제하고 있다. 바알 종교 제의 거부와 사회 정의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알이 비를 내려주어 땅이 풍요로워 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땅에 정의의 씨앗을 뿌리 때에야 하나님께서 정의의 비를 내려 주실 것이라(호 10:12). 결국 온 땅의 생명들과 맺은 계약은 온 땅에서의 전쟁의 사라짐과 모든 전쟁 무기가 파기된 평화의 세상이며, 정의와 공의의 회복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2:20).

이제 호세아서는 “호세아와 고멜”, “신실하신 하나님”과 “범죄한 이스라엘”, “하나님 아버지”와 “범죄한 우리(여성적 이미지)”라는 이미지로써의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별을 가져다주는 책이 아니라, “바알과 야훼”, 곧 풍요의 근원이 누구인가 하는 근본적인 신앙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이로부터 호세아서는 “묵은 땅을 갈아엎고 이 땅에 정의를 심는 신앙을 불러 일으켜 주는 책”이며, “정의의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도록 일깨우는 책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월간 홀씨  2003.6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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