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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물찾기 (마 13: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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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마13:44-46) 

 
195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이야기를 잘 아시지요.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산티아고라는 노인은 쿠바의 하바나 항을 근거 삼아서 바다에서 고기를 낚으며... 라디오를 통해서 전해지는 미국의 프로야구를 듣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입니다. 일생을 바다에서 보낸 그는 이제는 젊은 날의 기력은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소년 마놀린의 도움으로 함께 배를 타며 어부로서의 삶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노인이 오래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들은 소년을 다른 배로 보내버립니다.
 
노인은 할 수 없이 혼자서 배에 오릅니다. 지난 84일 동안을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그래도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배에 오릅니다. 이날따라 노인은 다른 배들은 뒤로한 채 혼자서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갑니다.  드디어 그의 낚시에 고기가 한 마리 걸립니다. 그것은 그가 이제껏 잡아 보지 못했던 거대한 놈이었습니다. 

노인은 이 고기를 잡기 위해서 삼일 동안을 끈질긴 싸움을 벌여야만 했습니다. 노인도 지치고 정신이 가물가물해 오지만, 결국 손을 든 것은 거대한 돛새치였습니다. 노인은 자기의 배보다도 더 긴 고기를 배 옆에 단단히 묶어 두고는 항구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는 예기치 못한 적을 만납니다. 물고기에서 나는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들기 시작한 상어였습니다. 노인은 상어를 쫓느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 보지만, 고기는 결국 상어들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항구에 도착했을 때, 고기는 앙상한 뼈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지칠대로 지친 노인은 간신히 자신의 오두막에 들어가서 잠에 빠져들고 그를 기다리던 소년은 노인의 상처투성이인 손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다시 노인 곁으로 돌아올 터이니 빨리 일어나서 함께 바다로 나가자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소설을 가리켜서 헤밍웨이 특유의 삶의 허무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삼일 동안의 치열한 싸움 끝에 얻은 고기를 상어 떼에게 빼앗겨버리는 이야기야 말로 인생의 허무함을 말한 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서 헤밍웨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은 어차피 싸움이고 중요한 것은 이기고 지는 일이 아니라 누가 끝까지 위엄 있게 싸우는가...’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노인은 정말 훌륭하게 싸웠습니다. 고기를 잡기 위해서 보내었던 삼일 간의 시간이며... 집요하게 달려드는 상어들을 향하여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해서 싸우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비록 노인의 모든 수고는 수포로 돌아가고 그가 잡았던 물고기는 뼈다귀만 아상하고 머리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이렇듯 자기에게 주어진 힘든 싸움을 끝까지 잘 싸웠다는 자체만으로도 그의 삶은 고귀하고 가치 있는 삶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는 노인의 이런 싸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때로 우리에게도 무엇을 얻기 위한 싸움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우리에게도 간신히 얻은 것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결과에 참 민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과보다는 이렇듯 삶 자체를 즐기면서.. 어떻게 하면 상어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한 삶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면 삶은 그 결과에 상관없이... 때로는 무엇인가를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고 때로는 지키는 과정만으로도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서 기억할 만한 노인의 말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육체가 가진 시한적 생명은 쉽게 끝 날 수밖에 없겠지만, 인간의 영혼의 힘, 의지, 역경을 이겨내는 투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계속 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노인은 또한 이런 말도 합니다. 그것은 죽은 물고기를 지키기 위해서 상어와 치열한 싸움을 하면서 하는 말인데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희망입니다. 노인이 지난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했으면서도 다시 바다로 나가는 것... 그것도 남들 보다 더 먼 바다로 나가는 것.. 이것은 희망 말고는 다른 말로는 설명을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노인의 곁에는 항상 소년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만약 이 책에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그것은 ‘노인과 소년’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만큼 노인과 소년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록 부모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다른 배를 타게 되지만, 그날 노인이 바다로 나갈 수 있도록 낚시의 미끼를 챙겨주고 그를 도와 준 것은 바로 소년이었습니다. 또한 노인은 삼일 동안 물고기와 힘든 싸우면서 내내 하는 말이 ‘지금 소년이 곁에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인이 지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 왔을 때에 그를 챙겨주며 다시 일어나서 함께 바다로 나가자며 희망을 불어 넣어 주는 것도 그 소년이었습니다. 이렇듯 마치 그림자처럼 노인 곁에 머물러 있기를 즐거워하는 소년이야 말로 노인에게는 주어진 운명과 한계를 넘어서서 다시금 일어서게 하는 희망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천국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함께 읽었습니다. 천국이라고 할 때 여러분들이 가지는 느낌은 어떤 것입니까? 간단하게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천국 또는 하늘나라라는 말에서 풍기듯 적어도 천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곳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이 가지는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저는 분당이라는 곳에 가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고층 건물이 줄지어 서 있고,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는 마치 공원처럼 잘 가꾸어 졌습니다. 마치 아주 세련되고 화려한 서양의 어느 도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말도 못 들어 보셨나?’ ‘아 그래서 거기가 분당이로구나...’ 

그런데 여러분 한 번 이 말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천당 밑에 분당이라...’ 분당은 천당보다 조금 못한 곳인가? 다른 말로 하면 분당에서 조금만 더 발전하면... 그곳이 천당인가? 그들이 사는 집이 조금만 더 넓어지고... 그들의 수입이 더 많아지고... 그러면 그곳이 바로 천당으로 승격되는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가 천국 또는 하늘나라를 말할 때에 그 속에는 그곳은 적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곳이라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말씀하시면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또는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국이 가지는 또 하나는 모습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천국은 우리가 지금 누리고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이지만, 그러면서도 우리의 현실 적인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로 견주시는 이야기를 생각해 봅시다. 예수는 천국을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어떤 곳에 가야만 발견하거나 누릴 수 있는 곳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밭에 감추어진 것처럼 생각될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밭이란 어떤 곳입니까? 지금은 도시의 생활을 하느라고 밭을 일구려하면 멀리 나가야 하지만, 우리에게도 문을 열기만 하면 작은 텃밭 하나쯤은 누구나 일구던 때가 있었습니다. 또한 농사짓는 일을 직업으로 삼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던 당시 예수의 시대를 생각해 볼 때, 밭이라고 하는 곳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의 터전이 되는 곳입니다. 
 
‘천국을 찾으려고 멀리 나갈 필요가 없어. 단지 지금 네가 있는 곳에서... 지금 네가 몸담고 살아가는 가정에서... 지금 네가 일하는 일터에서... 지금 네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천국을 찾으려 한다면... 너는 얼마든지 그 속에서 천국을 찾을 수가 있을 거야...’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에게 이렇듯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보화와 같은 천국을 찾으려하는 의지가 있는가?’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비유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5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 하나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생각해보면 좀 생소한 느낌이 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은 어떤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말하기를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상인의 마음... 상인의 인격 그것이 바로 천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천국을 찾으려하는 마음이나 의지가 참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천국을 찾으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천국은 거의 다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씀입니다. 산티아고 노인이 그렇게 큰 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84일 동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바다를 향하여 나가는... 그것도 남다르게 먼 바다를 향하여 나가려했던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인 것이지요. 
 
마치 노인이 바다를 향하여 나가면서 고기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듯, 상인은 세상이라는 바다를 향하여 매구 귀하고 값비싼 진주에 대한 희망을 품고 나아갑니다. 예수는 바로 이런 마음이 이미 천국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쩌면 상인도 노인처럼 그토록 좋은 진주를 구하기 원했지만, 빈손으로 돌아 온 시간이 대부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금 밖으로 나갑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값지고 귀한 진주에 대한 희망이 불타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그런 마음이 이미 천국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이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천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그렇지만 현실로부터 멀리 동떨어져 있지도 않습니다.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우연히 찾게 되는 곳... 천국은 그런 곳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84일 동안을 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다음날도 여전히 바다로 나가는... 남들 보다 더 먼 바다로 나가는 그런 마음.... 아직 원하는 진주를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결국에는 얻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시금 진주를 구하러 나가는 그 상인의 마음... 이런 마음이 우리들 모두의 마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천국은 이런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만 열려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천국에 대한 진지한 마음가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을 이야기를 통해서 만났습니다. 하나는 밭을 일구는 사람이고 하나는 상인입니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감추인 보화나 값비싼 진주를 발견한 후의 그들의 행동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발견한 보화나 진주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하여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아낌없이 버린다는 것입니다. 
 
밭을 일구던 한 농부가 우연히 보화를 발견했을 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삽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보화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값비싼 진주를 만난 상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역시 그 진주를 얻기 위해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농부나 상인이 보화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진지한가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이것이 그 두 사람이 가진 공통점입니다. 생각해보면 바로 이것이 천국을 얻기 위하여 우리들이 가져야할 마음가짐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가 천국에 대하여 가진 소유를 다 팔아서 전적으로 자신을 투신하려는 의지와 각오가 없다면 어쩌면 우리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교회에서 보낸다고 하더라도 천국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한 목사님의 글에서 읽은 것입니다. 교인들이 무심코 하는 말 중에서 정말 듣기 싫은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서 도너츠나 먹읍시다...’이 말입니다. 교우들이 모여서 뭐 좀 진지하게 신앙에 대하여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려 하면 뒤에 앉아 있다가 꼭 이런 말을 해서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지요. 지기가 가진 믿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기 보다는 아주 가벼운 흥밋거리로 그렇게 믿음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천국에는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들이 가진 것이 얼마나 되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돈이 많은지 적은지... 중요한 것은 그들은 이제 막 그들이 발견한 보화를 위해서 선뜻 자기의 것을 다 팔아 치우는 결단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우리들의 마음을 머뭇거리게 하는 요소일 수  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리 보회나 진주가 마음에 든다고 한들... 가진 것을 다 팔아 치우면 그 후에는 어떻게 살아가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를 찾아 왔다가 맥없이 돌아 간 한 부자청년을 생각하게 됩니다. 젊은이답지 않게 영생을 문제를 가지고 예수에게 나왔지만...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예수의 이 말이 그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말지요. 그는 맥없이 예수를 등지고 돌아갑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참으로 부담스런 일입니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또는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예수는 거듭해서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예수의 요구에 어떻게 응답할 수가 있을까요? 물론 예수는 부자청년이 돌아간 후에 제자들에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적어도 가진 것을 다 파는 일은 맨 정신으로는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감동시킨다면 이 일은 누구라도 할 수가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대한 진지함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소중히 여기면 주님도 우리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를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로 생각한다면 예수도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자기가 발견한 보화를 위해서 모든 소유를 다 파는 사람들의 마음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만큼 내가 가진 믿음에 대하여...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께 대하여 그만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나의 다른 목적과 계획을 위하여 그분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목적이나 생각도 희생할 수가 있도록 그렇게 산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 모두가 우리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를 향하여 이런 진지한 마음가짐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예수가 천국을 말하면서 그것을 보화나 값비싼 진주에다가 비유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접하면서 가장 힘들게 느껴졌던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보화나 진주가 그렇게 탐스럽고 매력적인 것은 아니거든요. 어쩌면 예수님도 평생을 살면서 보화나 진주와는 동떨어지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값비싼 진주를 가질 만큼 예수는 그렇게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을텐데... 예수는 그래도 천국을 보물에다가 비유하셨습니다. 
 
이 대목을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후서 4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4:7) 바울의 고백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보화나 진주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까닭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먼저 바울은 자기 자신을 질그릇에다가 견주었습니다. 질그릇이란 연약한 것입니다. 쉽게 깨어지기가 쉽지요. 또한 질그릇이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흔한 것이 질그릇이어서 사람들은 그것에 어떤 가치나 미련도 두지를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그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혹시라도 자기 자신이 아주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사도 바울이 말하는 인간의 모습에 공감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약하고 가치 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인간 그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 달라져 보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배로운 존재가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와서 머무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통해서 이런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질그릇처럼 약하고 무가치 하게 느껴졌던 자신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환경이나 조건 속에서도 그의 내면 가운데 자리 잡기 시작한 행복함이나 풍성함... 그리고 삶에의 깊은 감동과 기쁨을 빼앗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자신이 가진 내면의 신비를 고백합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놀랍고 행복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예수라는 매우 값진 보배가 내 마음 속에 들어 왔을 때... 그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신비한 빛을 내 마음 속에 비추기 시작했을 때... 나는 더 이상 무미건조하고 메마른 질그릇과 같은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빼앗길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이 살아 있었고... 문득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자기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이 열렸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천국은 시작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어떤 남이 가지지 못한 소중한 보석이나 진주를 가졌을 때의 느낌이 비로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기쁘고 감동이 오고... 자부심이 생기고 삶이 풍성해 집니다. 우리의 삶에 이런 기쁨과 감동을 주시는 분... 우리를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로 이끄시는 분... 보석처럼 우리를 감동시키시고 우리의 생을 빛나게 하시는 분!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나사렛 예수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나의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분임을 알게 될 때...    
내가 찾는 보화가 바로 나사렛 예수인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천국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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