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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표적 중의 표적 (마 12: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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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중의 표적 (마 12:38-42)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삶 밖에 없다. 한 가지는 기적 같은 건 없다고 믿는 삶. 또 한 가지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후자이다.” 최고의 과학자가 인간의 삶 자체를 모두 기적이라고 믿는 겸손과 신앙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일본의 유명한 종교가입니다. 하루는 그에게 어떤 대학생이 찾아와 심각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우찌무라 간조 선생님, 저는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셨다는 이야기, 부활하셨다는 이야기 등은 정말이지 제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황당한 이야기나 이해할 수 없는 기적 등은 빼놓고 다른 내용으로만 성경 공부를 하면 안 될까요?” 우찌무라 간조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학생, 성경에서 사람의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적들을 다 제하고 성경 공부를 한다면, 성경에 꼭 두 가지만 남는다네. 그것은 바로 성경의 앞과 뒤 표지 뿐이지.” 우찌무라 간조에 의하면 성경은 기적으로 가득 찬 책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참된 메시아라는 표적을 보여 줄 것을 요구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답변과 경고의 내용입니다. 38절에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기를 원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여기 표적은 이적을 말합니다. 이적은 자연 법칙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말합니다. 유대 랍비들은 장차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면, 그가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메시아라는 것을 증거 할 수 있는 표적을 보여 줄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진짜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궁금증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닐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마 16:1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라고 했고, 막 8:11절에도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마음 문을 열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침이나 지금까지 행하신 수많은 이적을 보고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말씀 한 마디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 이미 많은 이적을 나타냈는데도 불구하고, 보다 충격적인 하늘로부터 오는 이적을 보여 달라고 그들은 요청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조금 전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신 표적을 보고,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며 조롱하고서 또 다시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표적은 참된 신앙을 위한 시청각 교육 수단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말씀과 진리의 권위를 확증하기 위해 보여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표적은 그저 기적도 한낱 서커스에 지나지 않습니다. 병 낫는 기적, 가난이 물러간 기적, 못 낳던 자녀를 생산하게 된 기적, 또 악한 자가 아주 선량한 주님의 제자로 변한 기적 등을 불신자들도 스스로 체험도 하고 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이들은 아주 드뭅니다. 

그들은 엄연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자신들의 노력으로 또는 운이 좋아서 혹은 우연히 된 일로 생각을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죽었던 자가 살아나는 기적을 보고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계속 표적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처럼 표적만을 구하며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기록된 66권 성경 말씀을 내 신앙의 기반과 표준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도 견고해지며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위해 베푸시는 표적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곧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이신 표적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요 10:25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 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 하는 것” 이라고 하셨고, 요 12:37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요구한 것은 오직 예수님을 비난하고 정죄할 근거를 찾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악한 의도를 파악하신 예수님께서는 3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그들의 요구를 일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규정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음란하다란 말은 ‘간음하다’는 의미를 가졌지만, 이 단어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함’ ‘신앙을 버린’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전에 참 신앙을 가졌던 자들이 그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면, 보이지 않는 말씀에 만족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이적을 찾게 됩니다. 지금 예수께로부터 책망 받고 있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역시 ‘독사의 자식’이라고 불리울 만큼 악하였으며, 눈에 보이는 표적으로 자신들의 공허한 마음을 달래야 할 정도로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지자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요나의 표적이란 B. C 8세기 경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사흘간 갇혀 있다가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 자신도 죽어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비평가들은 ‘요나’서를 가리켜 실제의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신화나 우화로 엮어진 소설문학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도망치던 ‘요나’가, 풍랑을 만나고, 제비에 뽑혀 바다에 던지어지고,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3야를 고생하다가, 물고기가 그를 토하므로 다시 살아나, 결국은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요나서의 내용은, 픽션 곧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하 14:25에 보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요나” 하고 한 말씀이 있는데, 요나서 1:1에도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이요, 북왕국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 시대의 선지자라는 역사적 사실과 일치되는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요나서가 역사적인 사실과 부합되는 결정적인 증거는, 전지하신 예수님의 권위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마16:1-4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로부터의 오는 표적을 요구하는 무리들에게,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요나의 표적이란, 큰 물고기에게 삼키어져 죽은 줄 알았던 요나가, 그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만에 온전하게 살아나옴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를 선지지로 세우셨음을 보여주신 표적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표적을 말합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사건을 자신의 장사지냄, 그리고 부활과 관련하여, 요나가 실제의 인물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신성과, 전지성을 믿을 때, 요나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요구하였을 때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대답은, 이미 수많은 이적들을 목격하고도 여전히 불신앙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는, 또 다시 새로운 이적을 보여 준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이야말로, 예수께서 참된 메시아가 되심을 확증해 주는 최고의 표적이 될 것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행한 그 크신 권능과 기적을 보고도 불신앙하고 새로운 표적만을 요구하는 사람들 엄중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41절에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 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여기에서 비교하고 있는 것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로부터 받은 심판의 메시지”와 ‘유대인들이 예수로부터 받은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예수님의 예표에 불과했던 선지자 요나의 심판의 메시지 하나만을 듣고서도 회개하였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그 놀라운 천국 복음의 메시지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다는 죄 때문에, 그들은 심판 때에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을 더욱 철저하게 정죄할 것을 보여 줍니다.

또한 42절에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했습니다. 여기 ‘남방 여왕’이란 구약시대에 솔로몬 왕을 찾아왔던 스바 여왕을 말하는데, ‘스바’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에디오피아 지역이라고 합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 왕의 지혜에 대한 소문을 듣고 불원천리 하고 찾아왔습니다. 

스바 여왕은 지혜를 갈급하여 찾는 자의 표본이요, 또 지혜를 깨달은 자의 표본입니다. 스바 여왕은 단순히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만 듣기 위함이 아니라, 그에게 있는 모든 지혜를 보고 듣고 알고 배우기 위해서 그에게 왔던 것입니다. 그것도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유대 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보다 더 큰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 즉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진리를 전해주고 깨우쳐 주는데, 그 진리를 사모하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문을 닫고 불신앙으로 일관하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과,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믿은 스바 여왕이 심판 날에 그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니느웨 사람들과 스바 여왕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모두 ‘이방인’들이라는 점입니다. 즉 선민 이스라엘의 자손이 아니라 하나님도 모르고 예배의 언약도 없는 불신앙인의 죄에 깊이 빠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도리어 믿지 않는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말씀입니까?

솔로몬은 지혜의 왕입니다. 하나님께 놀라운 지혜의 은사를 받아서 나라를 지혜롭게 다스리고, 이스라엘 중근동의 위대한 왕국으로 번영시킨 인물입니다. 그는 정치학은 물론 모든 학문과 철학과 종교 신학에 통달했으며, 잠언서, 전도서, 아가서 같은 주옥같은 지혜서를 기록한 사람입니다. 현재 기네스북에도 세상의 가장 큰 부자는 솔로몬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위대한 분이십니다. 예수님께는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의 은사를 받았으나, 예수님은 솔로몬에게 바로 그 지혜를 허락하신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만 지혜로 다스렸으나, 예수님은 온 천지만물을 그 지혜로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지은 땅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뵈었으나,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하늘 아버지 하나님과 늘 교통하시는 분이십니다. 솔로몬은 인생들에게 삶과 신앙에 대한 수많은 교훈을 했으나 ‘영생 얻는 길’은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인생들에게 영생 얻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훗날에 타락했으나, 우리 예수님은 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지혜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신앙과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주님께 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멘!

예수님이야말로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요, 요나보다 더 크신 분이요, 성전보다 크신 분이요, 안식일의 주인이시요, 다윗보다 높으신 분이시오, 아브람보다 먼저 나신 분이시오, 모세보다 위대한 분이시요, 엘리야 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크고 위대하심은 그의 가르침이나 능력에도 있지만, 그 보다 중요한 이유는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또한 하나님의 본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의 누구보다 더 크시며, 공자보다 석가모니보다 마호멧보다 비할 수 없이 크고 위대한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한다면, 그 예수님만 의지하며 살고, 그 예수님만 사랑하고, 그 예수님께만 충성을 바치며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그 많은 이적을 목격하고서도 계속해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성경은 기적의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이 엄청난 기적입니다. 예수께서 각색 병든 자를 고치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신 일 등은 모두가 놀라운 이적에 속합니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에 변함없이 오늘도 기적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적은 옛날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에도 수많은 기적의 간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적보다 기장 크고 놀라운 표적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갇혀 있다가 사흘 만에 살아 돌아온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기적입니다. 부활은 요나의 표적보다 더 완벽한 표적입니다. 참 표적이며 가장 큰 표적입니다. 모든 표적 중에 부활의 표적보다 더 큰 표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인류에게 가장 큰 소망 곧 영생의 소망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가져왔고, 죄에 대한 의의 승리를 가져왔고, 마귀에 대한 승리를 가져왔고, 어둠에 대한 광명의 승리를 가져왔고, 절망에 대한 영원한 생에 소망의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두 기둥 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과 같이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텅 빈 무덤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부활의 소망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영원한 사망의 지배권에서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키엘 케에골은 인생을 가리켜 “사형 언도를 받은 죄수들이 감방에 갇혀 있다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실 인간이 가진 모든 불안의 근본 뿌리는 죽음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영생 불사의 영혼을 부여받은 영생하는 존재인데, 죄로 말미암아 그 영원한 생명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던 사람의 관 앞에서 하룻밤을 울어 새워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죽음이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아는 사람은, 사랑하는 가족과 사별을 해본 사람일 것입니다. 저는 ‘마음이 아프다’는 또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사랑하는 동생과 두 조카의 죽음을 통해서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인류 최고의 복된 소식’이 무엇일까요? 인류 최고의 복된 소식이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는데, 이 사실을 확실히 믿기만 하면, 이 놀라운 표적 중의 표적을 믿기만 하면,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심판과 영원한 지옥 형벌을 면하고, 세세 무궁토록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것, 이것이 온 인류에게, 최대의 기쁜 소식 곧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목적도,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신 것도,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도, 모두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고 영원한 본향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성도 여러분 이것을 믿습니까? 표적 중의 표적인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꼭 얻게 되시기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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