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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감사하는 이유 (딤전 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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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사하는 이유 (딤전 1:12-17)


우리나라에 손꼽을 만한 믿음의 선배들이 있는데 그 중에 제일 감사의 챔피온을 꼽는다면 저는 당연 손양원목사님을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목사님은 여수,순천 반란사건때 두 아들 동인이와 동신이를 공산당에게 잃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을 장래하는 자리에서 놀라운 10가지 감사를 선포하셨습니다.

첫 번째 감사는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두 번째는 많은 성도들이 있는데 이런 보배들을 내게 맡겨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셋째는 3남 3녀중 제일귀한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넷째는 한 아들이 순교당해도 감사한데 두 아들을 동시에 순교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섯 번째는 예수믿다가 죽는것도 복인데 전도하다가 총살순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섯 번째는 두 아들이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일곱 번째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하는 사랑의 마음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덟 번째는 두 아들의 순교로 우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긴것을 생각하니 감사합니다. 
아홉 번째는 이같은 역경속에서도 이상 여덟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마음 그리고 여유있는 믿음주신 우리주 예수께 감사합니다.
열 번째는 이렇듯 과분한 축복 누리게 된 것 감사합니다. 

이렇게 10가지 감사를 발표했습니다. 어떻게 그런상황속에서 이런 감사를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이 최고의 축복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을 생각해 볼 때 사도바울이 많은 복을 받았지만 그가 받은 것중 최고의 축복은 그의 마음속에서 항상 감사가 넘쳤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영이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쓴 서신서들을 보면 감사로 충만해 있습니다. 항상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에 말씀합니다. 

그는 계속적으로 감사를 주님앞에 드리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특별히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쓴 성경입니다. 그는 빌립보서에서 놀라운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하거나 풍부에 처하거나 어떤 경우 어떤 환경속에서도 감사하기를 배웠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가져져 행복한것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이 최고의 행복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많이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마음에 감사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주받은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촌감삼이라는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그런말을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그것은 질병이나 실패나 죽음이 아닐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한다면 그의 마음속에 불신앙의 마음일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고 믿지못하는 불신앙의 마음, 성경말씀을 읽고 들어도 깨달아지지않는 막힌 귀, 그리고 말씀을 들어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강팍한 마음, 그것이 바로 저주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건너가는데 마지막 그들이 불평하다가 다 멸망당했습니다. 광양에서 죽었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것이 저주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의 강팍함이 저주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세우셨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달라고 하니까 순순히 내어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10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사실 10가지 기적입니다. 10가지 기적을 보이니까 바로가 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 주었습니다.

그 10가지 기적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속에 감사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들은 몇일 못되서 홍해앞에 가로막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당장 불평합니다. 홍해에서 우리 다죽게 되었다고. 이게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다를 치라 했더니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이 바닷물을 막아주시고 마른 땅 같이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그 감사가 하루도 못갔습니다. 얼마 못가서 그들은 물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을 겨우 찾아서 먹었더니 쓴물, 마라라는 곳에 지명이 붙은 쓴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또 불평을 하면서 모세를 향해 원망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쓴물을 단물로 또 바꿔 주십니다. 그들이 가다보니 또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먹을게 없다고 또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아침마다 맛나를 내려줍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그들은 맛나를 몇일 먹다가 또 불평합니다. 맛나만 먹다보니까 입에 질려서 못먹겠다고합니다. 씹는거 없느냐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동풍을 불어오셔서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또 감사가 없습니다. 목마르다 하니까 반석이 터져서 생수가 흘러나와서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감사가 없었습니다. 하여튼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은 다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감사가 없이 계속 불평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것이 바로 저주받은 마음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누렸지만 감사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여리고를 앞에놓고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을때 10명의 정탐꾼이 돌아와 부정적인 보고를 했을 때 동요되어져서 우리를 애굽에서 죽게 내버려두지 여기 데려와가지고 여기까지 인도해서 여기서 죽게 만드냐고 불평을 하고 돌을 들어 모세를 치려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너희 말이 네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갚아 줄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20세 이상의 어른들은 다 죽고 20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만이 가나안땅에 모세와함께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감사입니까. 어떤 환경속에서도 여호와로 인해 감사하고 찬양하는 마음 그것이 축복인 겁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불평하고 강팍한 마음 그것이 바로 저주의 마음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바울의 감사는 위대한 것입니다. 그는 40에 감한 매를 수없이 맞았습니다. 그는 풍랑에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굶주렸습니다. 핍박을 당했습니다. 몰매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불평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늘 감사했습니다. 그의 입술에는 찬양이 떠나지 아니했다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소유가 문제가 아닙니다. 건강하느냐 하지않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감사의 영을 부어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는 더 풍성한 감사를 주시지만 불평하는 자에게는 불행과 저주가 임할 수 밖에 없다 아니 그들의 일생은 평생 불평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그 놀라운 복을 누리지 못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의 감사가 위대한 겁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을 지라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여호와를 찬양한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감사는 위대합니다. 오늘 바울이 3가지를 감사했는데 무엇을 감하샜을까 함께 생각해 보면서 바울의 감사가 오늘 우리의 감사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바울은 구원받은 사건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서 최고의 감사의 조건이 뭐냐? 다른것 없습니다. 구원받은 것이 최고의 감사입니다. 마귀의 종으로 살던 내가 죄인의 괴수로 살던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죄가 용서받고 긍휼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 된 것 최고의 축복이요 감사의 조건인것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15절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여기서 말하는 죄인은 사도바울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다시말해 나 같은 것을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누구냐 죄인중에 괴수요, 괴수라는 말은 첫째라는 말입니다. 죄인중에 첫째 죄인중에 제일 악질, 그게 바로 자신이라는 겁니다. 나 같은 몹쓸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을 찾아오셨다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안믿고 구원받지 못했다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사단의 종이 되어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더럽고 추악한 삶을 살 것이고 정욕을 따라 욕심을 위해 살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질 인생들을 하늘의 영광된 처소로 우리를 인도해 주셨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이 구원의 사건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믿고 우리가 구원받은 것만이 아니라 우리삶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온것 기뻐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매일 보니까 예수믿어도 변한것 같기도 하고 안변한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합니다. 우리 남편이 뭘변해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그렇게 말할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예수믿었으면 다 변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눈에 안 띄어서 그렇지 다 변했습니다.

첫째 변한게 뭔지 아십니까. 전에는 마음 놓고 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죄짓는 것 힘듭니다. 고민하면서 죄지어야하고 불편해 하면서 죄지어야 합니다. 왜? 내 양심이 호소하기때문입니다. 내 속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죄 못짓습니다. 죄 지으면 양심에 거리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전에는 마음놓고 죄지었습니다. 성령이 내안에 있으니까 내 안에 성화의 사건이 진행되어짐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천사같이 될 수는 없지만 지금도 하나님이 나를 빚어서 새 사람으로 만들고 계신다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아는 김익두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원래 깡패출신인데 선교사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고 목사가 되고 부흥강사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그가 부흥회를 인도하려고 기차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옆에 한 노인이 긴 담뱃대에 불을 붙여서 담배를 피는데 그걸 쭉 빨아가지고 김익두 목사의 얼굴에다가 후하고 부는 것입니다. 독한 담배연기가 몰려오는데 견딜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두번이면 괜찮은데 노골적으로 부는 것입니다. 몇시간을 그러니 견딜재주가 없습니다. 기침도나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러지 말라고 약간 밀쳤습니다. 워낙 힘이 세니까 이 노인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담뱃대가 뿌러져 버렸습니다. 그러더니 이 노인이 일어나면서 하는 말이 그러면 그렇지 김익두 네놈이 별수 있냐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를 어떻게 아느냐물었더니 내가 너를 왜 모르냐고 내가 시장터에서 너한테 맞았는데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깜짝놀랐습니다. 이 노인이 김익두가 변했다 그러니까 시험을 해보려고 일부러 와서 괴롭힌 겁니다. 옛날의 성깔이 아직도 있나 알아보려고 큰일 났습니다. 김익두목사님이 사죄를 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며 살살 빌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장이 하는 말이 여보게 그만하면 됐네, 예전같았으면 내가 오늘 자네에게 맞아 죽었을거야 아마, 그러면서 김익두목사의 변화를 이해를 해주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었으면 변할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우리심령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처럼 감사한것이 어디있습니까 최고의 감사입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물질을 많이 소유해도 좋은 직장있어도 구원받지 못했다면 가장 비참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모든게 부족해도 예수님의 보혈로 내가 구원받았다면 여러분 최고의 행복한 존재임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무엇을 감사합니까. 직분주심에 감사합니다. 12절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게 직분을 주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직분이라는 것은 어떤 직분입니까? 사도의 직분입니다. 바울 사도에게 사도의 직분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생각해보면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나. 

13절에 보니까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어서 내가 지금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감격할 노릇입니다. 바울이 왕년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율법에 철저한 젊은이였는데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영적인 무지 때문에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죽였습니다. 그들을 가뒀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주님께서 나를 징계해도 부족한데 나같은 악행자에게 사도라는 귀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수가 없다 더더욱 나를 능하게 하셨고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이 충성되다라는 말은 다른 원어로보면 신실하다 진실하다라는 뜻입니다.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앞으로 신실한 사람이 될줄 알고 내게 이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내가 목사의 자격이 있어 목사가 된것이 아닙니다. 내가 권사의 자격이 있고 안수집사의 자격이 있어 내가 집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것이 너무많고 너무나 허물이 많은데 앞으로 진실한 종이 되리라 믿고 충성된 사람으로 인정해 주셔서 내게 이런 직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직분을 주신 주님께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직분을 주신 주인의 마음에 실망을 드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내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린 최선을 다하는 주의 종들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더 훌륭한 인물되리라 기대하시고 이렇게 은혜를 주신겁니다. 

나는 정말 헌신을 많이하고 충성을 많이 해서 이런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교만이고 자만입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내가 충성하고도 내가 충성했는지 모르는 겁니다. 그게 진짜 충성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면 많이 했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겠지, 내가 자격이 있지 이건 충성이 아니랍니다. 나는 그저 부족해서 열심히 했는데 남들이 충성했다고 말할 때 아!그런가보다 하고 여겨야지 내 스스로 나만큼만 해봐라 말한다면 그건 이미 교만이요 자만이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부족한 우리들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직분주신 것, 성도라는 명예로운 직분주신 것 전도할 수 있는 전도자의 직분주신 것, 내게 주신 직분따라서 감사하고 충성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사도바울은 감사하는데 오래 참아주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16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바울이 긍휼을 입었습니다. 긍휼을 입는다는 것은 저주받을 인생에게 저주가 면제되는 것이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로하여금 오래참으시고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오래 참아주신 것 그게 은혜입니다. 그러면 당장 멸망당해 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이 오래참으셨을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그 후에 사람들이 구원의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분에게 전도를 했더니 그럽니다. 목사님 내가 교회에 나가면 지나가던 개도 웃습니다. 왜? 나같은 사람은 교회에 나갈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사람들이 다 아는데 내가 교회나가면 지나가던 개도 웃고 교회창피라는 것입니다. 그럴만한 사람들도 사도바울이 구원받은 것 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사도바울같은 악질이 구원받은 것 보니까 나도 구원받겠네 이런 본을 보여주시려고 하나님이 오래 참아주셨다 우리는 오래참으심에 감사할수 있어야 합니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 목사 하나 제대로 된 것 만들려고 얼마나 오래참으셨을까. 

그런데 지금도 온전하지 못해서 누를 끼치는게 너무나 죄송합니다. 나같은 엉터리같은 권사하나 온전한 권사 만드시려고 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참으셨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났을 때 아버지가 너는 이제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연을 끊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오래 기다렸습니다. 저 아들이 언제나 돌아올까 또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돌아오니까 반지를 끼우고 새옷을 갈아입혀주고 새신발을 갈아 신켜주고 소를 잡아서 잔치를 베풀고 그 아들을 뜨겁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이게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기전에 하나님께 심판받았다면 우린 여기있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사도바울을 오래 참아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이 믿는 사람들 핍박하고 죽이고 감옥에 넣을 때 하나님이 거기서 심판하셨다면 거기서 끝났습니다. 어떻게 위대한 사도바울이 탄생되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습니다. 어디까지? 다메섹도상까지 참으셨습니다. 다메섹까지 그 다마스커스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고꾸러져서 새로운 사람이 될 때까지 하나님은 그를 참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참으시는 사랑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고 또 참아주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변화될 때 까지입니다. 주님이 기대하는 수준에 올라올때까지입니다. 우리는 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만해서는 안되겠다하는 겁니다. 오늘도 사도바울을 참아주신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셨고 기다리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존뉴톤이라는 사람은 노예상인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노예로 갖다가 팔았지만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가 깨닫고 나니 과거의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고백합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Amaging grace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은혜가 크고 놀랍다는 것입니다. 여기 구원받을 만큼 직분받을만큼 흠없고 의로운 사람 어디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린 다 흠 많고 실수가 많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고 우리의 허물을 쓰다듬어 주시고 우리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에 이 은혜를 우리 가슴깊이 새길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는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저주란 실패가 아닙니다. 죽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이야 말로 저주받은 심령입니다. 화인맞은 심령이며 강팍한 심령입니다. 

2달 전에 교우들이 헌금을 하고 나면 기도제목을 재정부에서 모아서 저에게 주일 저녁이면 전달을 해 주는데 그 기도제목을 보고 기도하고 교인들의 사정을 알게도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예물이 있어서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희망근로 직장을 얻게하시고 첫 월급을 타서 주님께 드립니다. 보니까 몇십만원 됩니다. 그런데 보니까 그게 십일조가 아니고 첫월급 전체입니다. 제가 잘 모르는데 희망근로하면 돈으로 안주고 상품권으로 주더군요. 상품권으로 몇 십만원어치를 모두 봉투에 다 넣었습니다. 첫월급으로 드렸습니다. 대단한 믿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이름입니다. 새가족인것 같습니다. 하나님앞에 첫월급이라고 다 드렸습니다. 이게 진짜 감사하는 마음이구나.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보니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것에 첫 열매를 거둔 것이라. 첫 열매를 드리는게 맥추절입니다. 이분은 첫 열매를 하나님앞에 모두 드리는 그 마음, 저는 그것이 감사절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지로 하지 말고  인색함으로 하지말라.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오늘 이 감사의 삶이 저와 여러분에게 이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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