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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히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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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오직 은혜로!” (sola gratia).  이 말은 16세기 종교개혁의 기수였던 마틴 루터의 결론입니다. 루터의 신학은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십자가의 신학’ 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주어진 것들입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은혜는 하나님의 중간 이름(middle name)’ 입니다.
  원래 우리는 하나님께 무가치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귀한 존재로 만들어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 롱펠로우(Longfellow)가 휴지에 시를 썼더니, 이것이 6,000 달러에 팔렸습니다. 휴지에 문학성이 가미(加味)된 결과입니다. 
  한국 정부의 도장이 종이조각에 찍히는 순간 이 작은 종이 한 장이 1만원의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종이조각에 정부 보증이 가미된 결과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엄청난 가치를 가진 자로 돌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로 우리를 예수님 닮아가도록 변화시키십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고난의 잔을 마시도록 하십니다. 때로는 시련의 철조망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를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에게 소명을 주시고 직분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기능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계속 능력을 부여하시고, 봉사케 하시며, 장차 천국에서 영원한 상급을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목사님이 어느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집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집사님, 집이 참 좋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 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저희 남편이 아주 성실한 사람이라서 열심히 일한 덕분입니다.” 
  아들이 쓰는 방을 보았더니 벽에 상장들이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들이 공부를 참 잘하는 모양이지요?” 그러자 집사님은 기분이 좋아서 대답했습니다. “이 집안의 사람들이 머리가 좋다는 말은 늘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내친 김에 목사님은 한 마디 더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집사님은 인물도 예쁘시니 참 복도 많으십니다.”
  그런데도 그 집사님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인물이야 부모님을 잘 만난 덕분이지요.”

  잠시 뒤에 집사님은 다과를 준비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일체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함께 간 사람들도 덩달아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안절부절못하는 집사님을 보면서 목사님은 넌지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는 다과를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사는 존재랍니다. 제가 다시 물어볼 테니까 이번에는 잘 생각해서 대답해 보세요.”
  그러면서 차례차례 다시 물어봅니다. 집사님도 목사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바르게 대답했습니다.

  “이 집이 참 좋군요.”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아들이 공부를 잘 하는군요.”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지요.” “집사님은 남편도 잘 만나셨고, 아들도 잘 두셨고, 인물도 예쁘시니 참 복이 많으십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은혜를 가능한 한 많이 누려야 합니다. 본문 16절은 은혜를 얻기 위해 주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은혜를 마음껏 받을 수 있을까요?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1.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자  (적용적해석: 기도 신앙)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16절은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의 모습과 그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엎드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 ‘나아갈 것이니라’의 원형(프로스에르코마이)의 원래의 뜻은 ‘가까이 다가가다’ 입니다. 상대를 볼 수 있고, 그에게 말할 수 있으며, 만질 수도 있을 정도로 가깝고 친밀하게 접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은혜의 보좌를 실존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나아가도록 권유받고 있습니다.
  ‘은혜의 보좌’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이곳은 은혜의 근원입니다(엡 2:8,9).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는 이곳으로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었습니다(엡 3:12).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은 성도의 기도 신앙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첫 번째 비결은 기도 신앙입니다.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God of all grace) 이십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의 보좌입니다. 그곳에서 모든 은혜가 흘러나옵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보좌 우편에 우리의 대언자(代言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십니다(요일 2:1).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담대히 그곳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그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14절). 
  주님은 단순히 대제사장의 직분만을 맡은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주님은 친히 받으신 고난으로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우리가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일입니다. 

  1952년 한국전쟁이 끝난 12월 어느날, 밥 피얼스 목사님과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피얼스 목사님이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에게 ‘한국교회는 새벽마다 모여 기도를 드린다’고 말하자 빌리 그레이엄은 ‘그것은 모든 것이 갖춰진 기성 교회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천막을 치고 예배하는 개척교회에서는 불가능할 것‘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피얼스는 ‘내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천막교회를 찾아가 보자’ 고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두 사람은 어둡고 추운새벽 길을 걸어 그들이 말한 천막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둥과 천막만 서 있는 꽁꽁 언 땅 바닥위에 장작개비를 깔고 앉아서 새벽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새벽 모인 사람들은 189명 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새벽기도회를 통해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아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는 자는 주님으로부터 긍휼하심을 받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가 처해 있는 고난과 불행의 처지를 이해해 주시고 연민의 정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선물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이런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 못했습니다. 과거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 위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죽음의 공포로 떨었습니다(출 20:18,19). 선지자 이사야는 환상 가운데 본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성도인 우리는 매일 매순간 그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으며, 거룩하신 그분과 교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고, 우리는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요 1:12,13). 할렐루야!

  기도 신앙으로 때를 따라 돕는 주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에 이끌림 받자  (적용적해석: 말씀 신앙)
  행 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은혜는 성령의 도우심이라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 모인 목회자들을 향해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 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을 든든히 세울 것’ 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 받는 또 다른 비결은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에 의해 이끌림 받는 것입니다. 은혜 받는 비결은 성도의 말씀 신앙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말씀 없이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말씀은 성령님의 손에 들린 검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는 길은 내가 말씀과 가까이 하며, 말씀이 나를 좌우하도록 내 자신을 말씀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말씀의 형태는 여러 가지입니다. 예배시의 설교는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설교를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이 여러분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도록 하십시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특히 말씀 암송에 힘쓰십시오. 기억된 말씀은 효과적인 성령의 검이 될 것입니다.
  구역을 통해 나누어지는 동료 성도의 간증과 권면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은 이 모든 것을 동원하여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를 세워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책일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과 절친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실제적인 도움의 책으로 삼으십시오. 내 인생을 설계하고 설계도 대로 이루어 나가는 구체적인 비결을 성경에서 찾아내어 적용하십시오. 
  성경 안에는 인생의 모든 삶의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객관적 진리의 원천입니다. 그 진리를 캐내어 지혜로 삼아나가는 일에 매진하십시오. 
  특히 성경에서 우리는 생명을 주는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말씀과 동화되는 수준으로 성경 말씀과 가까이 사귀십시오.

  여러분, 성경 말씀에 정규적으로 우리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정기적인 계획을 세우십시오. 
  우리가 평소에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필요한 때나 위급한 때 초자연적으로 우리의 입에서 영적인 말씀의 경험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신비한 말씀들이 우리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경험(divine utterance)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순종하자  (적용적해석: 순종 신앙)
  벧전 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은혜 받는 비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겸손과 순종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겸손히 순복하는 자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받는 지름길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심성은 겸손과는 반대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본래 우리 속에는 성령님의 사역에 저항하는 요인들이 가득합니다. 작은 일에 불평하고,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며,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하나님 나라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기가 일수입니다.  

  우스 땅의 욥이 돋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욥은 자기의 많은 재산과 많은 자녀들을 한꺼번에 잃고, 자신의 육체에 몹쓸 병을 갖게 되었어도 창조주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욥 1:21=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의 위대성은 그가 하나님의 주권에 절대 복종한 모습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 신앙으로 무장한 욥에게 엄청난 은혜를 더해 주셨습니다. 

  족장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절대 순복한 사람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십대에 애굽으로 팔려가 온갖 시련을 이기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 조아리는 형들에게 했던 말이 무엇입니까?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변 환경 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을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손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훈련시키시는 섭리의 손길입니다. 때로 그 손길은 징계의 채찍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히 12:7=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 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우리를 거룩함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섭리의 손길에 절대 순복하는 믿음을 가진 성도는 복된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happiness)을 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를 거룩(holiness)으로 이끄시기 위해 우리의 환경을 조정하십니다. 일시적인 행복보다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자가 됩시다. 물질적인 번영보다 영적인 부요함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성도가 됩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직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4. 서로에게 은혜의 채널이 되자 (적용적해석: 지체의 삶, body life)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수단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주위 성도들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 여러 성도들을 배치해 두시고, 그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공급하십니다.  
  고전 12: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 보게 하셨으니”
  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 성도들은 서로에게 은혜를 공급하는 은혜의 채널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은혜 받는 비결 중 우리가 흔히 간과하기 쉬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들의 상호 사역, 다시 말하면 지체의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은혜 받는 비결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이나 어려움을 내어놓지 못하고 감추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 앞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인양 행동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중 거의 대부분은 여러 가지 부족과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와줄 손이 필요하고 기도해 줄 사람이 꼭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서로 서로 돕고 짐을 나누어지기를 원하십니다(갈 6:2). 옆 성도의 중보 기도가 내게는 은혜의 수단이 되고, 같은 구역원의 따뜻한 위로가 내게는 천금보다 더 귀한 보화가 됩니다. 

  신대륙 미국 땅에 이주한 청교도들은 ‘배꼽 친구’(bosom friend) 한 명 이상 가지는 것을 필수로 여겼습니다. ‘배꼽 친구’란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말합니다. 나의 어떤 수치스런 과거나 비밀스런 일마저 스스럼 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를 한 명만 가져도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그룹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서로에게 은혜의 사역을 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먼저 받는 입장이 되어 상대에게 나의 필요를 알리고 상대가 나의 삶에 들어오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주는 입장이 되어 상대에게 허락을 받고 상대의 필요를 알고 도와줄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로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적용하는 일에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을 긍정적인 시각과 전망으로 보도록 서로 도와줌으로써 은혜의 사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일방통행(one-way)이 아니라 양방통행(two-way)적인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우리를 핍박하는 자에게까지 은혜의 사역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집사 스데반이나 사도 바울과 같은 사역자들처럼, 나를 미워하고 나의 앞길을 막아서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은혜의 사역자가 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무섭게 박해받고 있던 끔찍한 상황 속에서 순교하기 직전의 한 성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저주하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저주하면 할수록 나는 당신들을 더욱 사랑할 것입니다. 
  내게 침을 뱉어 보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숨결을 뿜어낼 것입니다.
  나를 구타하십시오. 그러면 나는 신음 소리로 사랑을 고백할 것입니다. 
  나를 찌르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절규할 것입니다. 
  나를 짐승의 먹이로 던지십시오. 그러면 나는 기꺼이 사랑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나를 불태우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열기로 당신의 증오의 가슴을 녹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용서를 압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을 닮아갑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지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우리 모두는 은혜의 사역자들(ministers of grace) 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은 자들이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은혜의 하나님은 성도들이 천성문까지 가는 여행에도 낙오되지 않도록 은혜의 수단들을 주셨습니다. 은혜 받는 비결은 이 수단들을 잘 활용하는 데 있습니다. 기도, 말씀, 우리의 순종, 그리고 성도들의 상호사역이 바로 은혜 받는 비결입니다. 

  이 수단들을 사용하고 또 사용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의 풍족한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을 쏙 빼닮은 작품들로 가득한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특히 성도들의 상호사역을 통하여 연약한 자들이 강하게 되며 영적인 중풍병자들이 고침 받는 교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박순오목사, 대구서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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