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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토대 (골 1: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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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토대 (골 1:15-23)

 
예수 그리스도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이렇게 물을 것 같으면 별 걸 다 묻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알고 있는지 캐물을 것 같으면 의외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잘 몰라도 신앙 생활에 별 지장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사람들이 아주 단순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백화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고 만족하는 것처럼 교회에 가서도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만족할 것 같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그런 것이 괜찮을지 모릅니다.
특히 불교는 각자 자기 안에 있는 부처를 발견하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불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역사적 실존 인물인 석가모니는 먼저 깨우친 인물일 뿐입니다. 불교에 있어서 석가모니는 절대적 존재도 아니고 신앙의 대상은 더욱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또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했습니다. 초대교회 예배에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경배했습니다. 때문에 그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어찌 보면 신약 성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한 해명이며 또한 고백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 가운데 15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은 초대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스도 송가'입니다.
일종의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라는 말입니다. 이 '그리스도 송가'를 통해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먼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노래했습니다. 이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물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노래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노래는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가 그 중심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먼저 15절부터 17절까지 말씀을 그대로 읽겠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불렀던 노래라고 생각하고 듣기 바랍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여기서 그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바로 그가 만물의 근원이라고 믿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모두 그를 통해서 창조되었다고 믿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확실히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아쉽게도 성경은 그것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그리스도 송가'는 노래이고 신앙 고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늘 암송하는 사도신경과 그 성격이 비슷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 노래를 부르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부부로 사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어째서 사랑하게 되었는지 번번히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도 곤란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럴 때는 질문해야 하고 답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묻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믿게 되었습니까?

그 해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입니다.
18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초대교회 성도들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부활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부활은 일회적인 것입니다. 결코 반복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종말에 나타날 새로운 생명이 예수님에게서 미리 이루어진 것이 바로 부활이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을 설명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의 경험을 그대로 전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결코 객관적인 증명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건을 경험하고 전한 사람들의 경험이 확실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역사 속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증언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노래했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십자가 죽음은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오죽 하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하늘을 향해서 어째서 나를 버리셨느냐고 부르짖으셨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길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 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용서로 말미암아 만물이 하나님과 더불어 다시금 화해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죄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켰기 때문에 죽음이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다시 말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죽음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비싼 제물을 많이 바쳐도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는 결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하나님과 더불어 화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율법으로는 결코 의로워질 수 없다고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화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혀 죽으신 그 십자가뿐입니다.

이 '그리스도 송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아니 이것이 바로 신약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냥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진정으로 깊이 깨닫는 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한 번 물어보기 바랍니다.
"만물과의 화해라는 사실이 나의 삶의 능력으로 지금 역사하고 있는가?"

만물과의 화해라는 이 이야기는 추상적인 이론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꽤 중요한 것 같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지금 당장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교리가 아닙니다. 그가 만물을 하나님과 화해시킨다는 사실도 단순한 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능력입니다. 오직 그로 말미암아 이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가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바로 그 주님을 통해서 우리도 죽음 너머의 새 생명인 부활과 영생에 참여할 약속을 받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 믿음이 우리의 삶의 흔들리지 않는 토대인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이제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우리의 삶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사 마침내 십자가로 만물을 화목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만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언제 어디서나 화평하게 하는 자로 충성을 다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을 복을 지금 여기서부터 풍성하게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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