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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가난한 과부 (막 12: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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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난한 과부 (막 12:41-44)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 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 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1.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가운데 1위는 올해로 3번째인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입니다. 2위는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실러 베어 회장, 3위는 펩시의 인드라 누이 회장 등입니다.

이번 리스트는 경제적 영향력을 종합 평가해서 작성된 것으로 이들 여성들이 세계에서 주무르는 돈의 규모는 26조 달러라고 합니다. 이들 여성들에 비하면 ‘코끼리 비스켓’(A drop in the bucket) 에 지나지 않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기억되는 여인들입니다. 먼저 가나안 여인이 있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흉악하게 귀신들려 고통스러워하는 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께 찾아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며 소리를 지르며 애절하게 간청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보지도 아니하시고 아주 냉정하게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하셨습니다. 그 이방 여인이 더 가까이 다가와 엎드려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 라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며 그 이방 여인을 아예 개 취급하며 도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이방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면서 개처럼 취급해도 좋으니 ‘부스러기’같은 은혜라도 베풀어 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고 말씀하시므로 그 이방 여인의 믿음이 ‘크도다!’, 다시 말해 참으로 ‘위대하다!’(you have great faith!)고 칭찬하셨습니다. 

물론 그 여인의 딸은 말씀이 떨어지자 곧 치유되었습니다.(마15:24-28) 믿음이 큰 사람들이 영원히 기억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위대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의 이름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기억하십니다.(히11:6) 

또 한 여인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베다니에 있는 문둥병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300데나리온이 넘는 값진 향유 한 병을 가지고 와서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에 너무나 감사하여 아낌없이 부어드린 것이었습니다. 300데나리온은 노동자 1년 품삯에 해당되는 거금이었습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행동을 보고 가롯 유다가 분개해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낭비하시오? 이 향유를 비싼 값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지 않겠소?’ 라며 제법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가 그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한다는 구실로 횡령하려는 속셈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요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14:6-9)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 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what she has done will also be told, in memory of her.)

참으로 마리아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영원히 기념되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에 동역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있습니다. 

(롬16:3-4)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사도 바울과 함께 오랫동안 복음 전도에 동행하며 일사 각오로 생사고락을 함께 한 부부였습니다. 이러한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 대해 바울뿐만 아니라 이방인 교회들까지도 감사와 경의를 표한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와 함께 영원히 기억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 부부로 기록된 것입니다. 세상 돈과 권력을 다 주무를지라도 하나님 나라에 기억되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한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비록 무명한 자 같으나 하나님 나라에서 유명한 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비록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비록 겨자씨같이 하찮아 보이는 삶이라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고 기억되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오늘 본문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성전 뜰에 가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뜰은 ‘제사장의 뜰’, ‘남자들의 뜰’, ‘여인의 뜰’, ‘이방인의 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여인의 뜰’에는 마치 나팔과 같은 모습을 띤 13개의 연보궤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중 9개는 성전세와 제물을 위한 연보궤였고, 나머지 4개는 각종 구제를 위한 연보궤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자 ‘여인의 뜰’로 가셨습니다. 여러 부자들이 헌금을 많이 하는데,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헌금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막12:42-4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분명 부자들이 헌금한 액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헌금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렙돈’(한 고드란트)은 로마의 화폐단위로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의 1/64에 해당합니다.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을 5만원으로 계산하면 ‘두 렙돈’은 800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돈 800원이 그 과부의 전 재산이고 생활비 전부라는 것은 그만큼 생활이 비참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49개국에서 하루 생활비가 1달러(1200원) 미만인 사람이 무려 3억 70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에 따르면, 이 중 65%는 평균 86센트, 850원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가난한 과부’는 지금 형편으로 보아도 세계에서 가장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시 사회 형편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12:38-40)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예수께서는 당시 사회 지도계층인 서기관들을 주의하라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가장 거룩한 복장으로 다니며 가장 깨끗한 사람처럼 행세하여 칭찬받고 존경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자신들에게 주어진 종교적인 특권을 악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과부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 하면서 결국에는 과부의 재산을 통째로 약탈하는 전문 사기꾼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길게 기도하여 가장 경건한 체하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하여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자신을 믿도록 해서 과부들의 재산을 삼키기 위한 위선(僞善)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들 서기관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벼룩의 간까지 빼먹는 서기관들을 주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한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당시 사회악을 지적하신 것은 그 가난한 과부 역시 착취당한 약자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3. 여기 가난한 여인이 헌금한 ‘두 렙돈’은 부자들에게는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지만 이 여인에게는 전 재산이었으며 그야말로 하루 생존에 필요한 절대적인 금액으로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 여인의 헌금을 두고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드렸느니라.” 고 하신 것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자신의 생명의 주인, 삶의 주님으로 믿는 고백이며 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은 그 액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님으로 믿고 자신의 삶을 주님께 맡기는 믿음으로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연보궤에 헌금하는 것을 보실 때 그 금액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 헌금에 담긴 신앙을 보신 것입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을 만유(萬有)의 주(主)님, 곧 만물의 소유주로 고백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역대상 29:11-12을 보겠습니다. 

(대상29:11-12)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하나님은 만유를 지으시고 만유를 통치하시는 만유의 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시 103:19)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엡 4:6) 하나님도 하니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하나님을 만유를 지으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며 만유를 통치하시는 만유의 아버지로 고백하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헌금하여 이 여인처럼 영원히 기억되시고 칭찬받으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B.C.870년경,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왕상17:9) 너는 시돈 근처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에 사는 한 과부에게 명령하여 너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도록 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사르밧으로 갔는데 성문에 이르렀을 때 한 과부가 나무를 줍고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물 한 컵을 부탁합니다. 그녀가 물을 가지러 가려고 할 때 ‘떡도 한 조각 갖다 주시오.’ 하고 그는 다시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그 과부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살아 계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나에게는 떡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밀가루 한 움큼과 약간의 기름뿐입니다. 나는 내 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나면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엘리야가 ‘염려하지 말고 가서 먼저 그것으로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 가져오시오. 그런 다음이 남은 것으로 당신과 당신의 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 땅에 비를 내리시는 날까지 당신의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러자 그 과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했더니 엘리야와 그 식구들이 여러 날 동안 먹었는데도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그 통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그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았습니다.(왕상17:8-16) 여기 사르밧 과부가 살던 당시 형편은 3년 동안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아니하는 극심한 가뭄으로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살기 어려운 때였습니다.(왕상17:1-7) 

사르밧 과부 역시 아들과 함께 마지막 끼니를 때우고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너무나 비참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그 한 끼마저 엘리야가 와서 자기에게 먼저 달라면서 그리하면 “이 땅에 비를 내리시는 날까지 당신의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 고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부는 하나님 말씀 그대로 믿고 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는 날까지 쌀독에 쌀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행위가 바로 자신의 삶,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 시행하는 믿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이 바로 이러한 사르밧 과부와 가난한 과부와 같은 헌신과 헌금을 하나님 앞에 드렸다며 이렇게 전합니다. 고린도 후서 8:2-5을 보겠습니다. 

(고후8:2-5)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중세 폴란드의 어느 소국을 다스리던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이 왕은 이웃 나라에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자기가 아끼던 주교를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주교는 이교도들에게 피살되고 말았습니다. 왕은 주교의 시신이라도 찾을 셈으로 그들과 협상합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에서는 주교의 시신 무게와 같은 황금을 가져오면 주교의 시신을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왕은 전국에 금붙이 모으기를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이교도를 찾아가서 저울의 한쪽에는 주교의 시신을 올려놓고 한쪽에는 전국에서 모은 금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저울은 꿈쩍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백성들에게 금을 더 가져오게 다시 저울에 금을 달아보지만 여전히 저울이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거지 노파 한명이 자기의 전 재산이자 목숨과도 같은, 허리춤에 꼭꼭 숨겨두었던 때 묻은 동전 두 닢을 저울에 올렸습니다. 그러자 저울의 균형은 순식간에 역전하여 주교의 시신을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황금의 양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중에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을 기억하고 인정해 주십니다. 가난한 과부, 그리고 사르밧 과부, 그리고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과 같은 신앙고백이 담긴 헌금, 자신의 삶을 주님께 맡기는 믿음으로 헌금하여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마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4. 다음으로, 그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다른 부자들보다 더 많다고 말씀하신 것은 인색함이나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드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 9:6-8에서 이렇게 헌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고후9:6-8)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B.C. 850년경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였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 부유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엘리사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해서, 엘리사는 그 곳을 지나칠 때마다 거기에 들러서 음식을 먹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인이 자기 남편에게 ‘여보, 우리 집 앞을 늘 지나다니는 그가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내가 압니다. 이제 옥상에 벽으로 둘러친 작은 다락방을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 침대와 상과 의자와 등잔을 갖추어 놓아둡시다. 그래서 그가 우리 집에 들르실 때마다, 그 곳에 들어가서 쉬시도록 합시다.’ 며 하나님의 사람을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갔다가, 그 다락방에 올라가 누워 쉬게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부인, 우리를 돌보시느라 수고가 너무 많소. 내가 부인에게 무엇을 해드리면 좋겠소? 부인을 위하여 왕이나 군사령관에게 무엇을 좀 부탁해 드릴까요?’ 그러나 그 여인은 ‘저는 저의 백성과 한데 어울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며 사양했습니다. 엘리사가 자기 시종 게하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이 부인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게하시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남편은 너무 늙었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 여인을 다시 불러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내년 이맘때가 되면, 부인께서는 한 아들을 안을 것이오.’라는 말씀으로 축복했습니다. 이에 그 여인이 ‘그런 말씀 마십시오. 선생님! 하나님의 사람께서도 저 같은 사람에게 농담을 하시는 것입니까?’라며 믿지 않았습니다. 남편도 늙어 그 나이에 자식을 생산할 능력도 없는데 헛된 소망으로, 헛된 꿈만 부풀게 하지 마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엘리사의 축복대로 그 여인은 임신했고, 엘리사가 말한 대로 다음해 같은 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왕하4:8-17) 수넴 여인과 그 남편은 그야말로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섬기는 생활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만 그 가정에 사람의 힘으로 채울 수 없는 부족함을 아시고 채워주신 것입니다. 당시 히브리 사회에서 자식이 없는 것은 모욕과 수치로 생각되었는데(창 30:6;삼상 1:6,7;눅 1:25) 아무런 대가 없이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선지자를 섬기고자 했던 것이었는데 꿈에도 생각지 못한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과 넉넉한 마음으로 봉사한 결과였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예수님의 기준에서 볼 때 그야말로 많이 심은 자입니다. 

가난한 과부는 인색함이나 억지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보시고 예수께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움 중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린 예물을 기쁘게 받으시고 그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막 12:30) 믿음으로 헌금하시므로 성도 여러분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하시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엡 3:20) 

너무나 유명하여 널리 알려진 일화입니다만 성도 여러분의 복된 헌금생활을 위해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백화점 왕 죤 와나메이커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소년 죤은 그가 출석하는 교회의 건축을 위해 벽돌 한 리어카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죤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그는 성장하여 세계 백화점의 왕이 되었습니다. 미국 10대 재벌 중에 한 사람이 된 죤 와나메이커는 후에 100만불을 드려서 교회를 건축하고 헌당식을 하면서 “어렸을 때는 구차한 중에 적은 것을 드렸는데, 지금은 이렇게 큰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축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죤은 그가 바친 선교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나 보려고 중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방문한 그 마을에 아름다운 성전이 우뚝 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때마침 밭가는 철이었는데 한 노인이 쟁기를 잡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쟁기를 두 마리의 소가 끄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의 소와 한 청년이 멍에를 같이 쓰고 쟁기를 끌며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죤은 이상히 생각하여 그 연유를 물었더니 노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 예배당을 건축하려고 하던 때 내 아들과 나는 헌금할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우리는 소 한 마리를 팔아 건축헌금으로 드리고 제 아들이 그 소의 멍에를 대신 메고 끌고 있습니다.” 

죤 와나메이커는 그 이야기에 너무나 감격하여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이시여, 저로 하여금 멍에를 메게 하사 저렇듯 희생적인 헌신의 즐거움을 알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예물에는 분명한 믿음의 고백과 기쁨, 희생이 담겨져 있습니까? 여러분의 신앙고백과 자발적인 기쁨, 그리고 희생이 담긴 예물이 가정에 부족함을 채워주시며, 금세와 더불어 하늘나라 창고에 풍성히 쌓여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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