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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례의 의미 (롬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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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의 의미 (롬 6:3-4)


오늘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주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2절~13절 말씀에“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하셨기 때문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가 돌아왔을 때, 길 잃지 아니한 양 아흔 아홉 마리보다 더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잃은 영혼을 찾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노래하는 찬양 가사가 있습니다. 

예수 이름이 온 땅에 온 땅에 퍼져가네
잃어버린 영혼 예수 이름 그 이름 듣고 돌아 오네
예수님 기뻐 노래하시리 잃어버린 영혼 돌아올 때
예수님 기뻐 춤추시리 잃어버린 영혼 돌아올 때

예수 이름이 온 땅에 온 땅에 선포 되네
하나님의 나라 열방 중에 열방 중에 임하시네
하나님 기뻐 노래하시리 열방이 주께 돌아올 때
하나님 기뻐 춤추시리 열방이 주께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시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많은 영혼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시인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이 그 증거로 세례를 받는 날이 오늘입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두 가지 거룩한 예식이 있는데, 성찬예식과 세례예식입니다. 이 두 예식을 성례(聖禮)즉 거룩한 예식이라고 합니다. 두 예식은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셨으며 세상 끝 날까지 이를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세례란 무엇입니까?

一. 세례란 씻는다는 뜻입니다. 

세례(洗禮)란 Baptism으로 물에 잠기는 침례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친히 침례를 받으셨고, 침례를 베푸셨습니다. 더러워진 몸과 옷을 물에 씻으면 깨끗하게 되듯, 세례(洗禮)란 더러워진 마음과 행동을 뉘우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는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22장 16절에 기록하시기를“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씻는다는 것은 회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마태복음 3장 11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시골교회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세례를 베푸는 주일에 한 남자 성도가 일찍 교회에 와서 종탑 밑의 땅을 파고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목사님이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이 대답하기를 “지금까지 세상에서 즐기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던 것들을 다 청산하고 세례를 받고자, 술병, 화투, 담배, 라이터를 여기에 묻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곧 세례자의 마음입니다. 

二. 세례란 옛사람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물속에 잠기면 3분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세례는 옛사람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이에 대해 본문 3절~4절에 말씀하시기를“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이처럼 세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죽음이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옛사람 즉 죄를 범하며 살아왔던 못된 삶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본문 6절에 말씀하시기를“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란 방탕하게 살아가던 옛 행실을 죽여 없이하듯, 끊을 것은 끊고, 버릴 것은 버리고, 새사람으로 살아가고자 다짐한 것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서약하는 의식이 세례입니다. 옛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힘이 듭니다.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 고통이 있었습니다. 비웃고 흉보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침 뱉고 멸시하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친하게 따르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혼자 남는 외로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하나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만민의 무릎이 예수님께 꿇게 하신 왕중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웃고 흉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옛 친구들이 떠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부끄러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회사에 다니는 신자가 목사님을 만나서 하는 말이“목사님! 예수믿기가 참 힘이 드네요.”“왜요?”“점심시간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여러 사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계란이 매일 하나씩 나옵니다. 기도하고 나면 계란을 누가 가져가버리고 맙니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자네가 기도하는 시간에 계란이 병아리가 되어 도망갔어.’합니다. 그래서 다음날에는 계란을 붙들고 기도했더니 또 하는 말이‘자네는 기도는 하지 않고 계란 생각만 했지?’하면서 놀립니다.”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 까닭에 놀림의 대상이 될 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좋아하던 습관을 고치는데 적지 않은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술과 담배 습관이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제치하와 6.25 당시에는 생명까지 버려야 하는 극한 상황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의 세례문답은 지금처럼 성경상식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일본경찰이 예수 믿는 다는 이유로 체포해가도 끝까지 예수를 믿겠는가?” 이 한마디였다고 합니다. 이 질문에 “예”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6.25 당시에는 “공산당이 가슴에 총을 겨누어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겠는가?” 이 한마디에“예”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뉴질랜드의 원주민 피지 족들의 생활을 연구한 선교사의 기록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사는 동네 한 가운데에는 Killing Stone이라는 바위가 있다고 합니다. 이 바위는 우리나라 단두대라는 것과 역할이 비슷한 것입니다. 이 Killing Stone은 죽이는 바위로서 아주 무서운 사형 방법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죄가 많은 사람을 이 큰 바위에 묶어 놓고 머리를 짓눌러서 죽이며 흐르는 피를 닦아내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 참혹한 광경을 보여줌으로써 죄에 대한 경고를 대신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온 선교사가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서 예수를 믿게 하고 세례를 줄 때, 이 죽이는 바위 앞에서 주었습니다. 그 바위에서 피를 보게 하고“자, 옛 사람들은 이렇게 죽습니다.” 라고 하며 세례의 의미를 가슴 깊이 인식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옛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 세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뒤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듯 옛사람 죽이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가까이 오셔서 그를 존귀하게 하십니다. 나의 옛사람이 죽어져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옛사람은 하나님과 원수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고욤나무 둥치를 자라내고 좋은 감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접을 붙이는 이치와 같습니다. 고용나무 둥치를 그대로 두고는 좋은 감나무를 접붙일 수 없습니다. 

三. 세례란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본문 4절에“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하셨습니다. 세례를 가리켜“새 새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함이라”는 것입니다. 죄의 사람이 죽고 의의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세례입니다. 불신앙의 옛사람이 죽고 믿음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불순종의 사람이 죽고 순종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교만한 옛사람이 죽고 겸손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미움의 옛사람이 죽고 사랑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세례는 신앙의 완성이 아니라 신앙의 시작입니다. 세례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갓 태어난 아기와 같습니다. 새로 태어난 생명은 자라납니다. 자라되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자라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르게, 곧게 자라나야 합니다. 올바로 자란 하나님의 자녀는 교회의 덕이 됩니다. 올바로 자란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의 빛이 되고 세상의 소금이 됩니다. 올바로 자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 모두 올바르게 자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비행청소년들이 있어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르게 성장하지 못한 신자들이 있어서 교회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되 올바른 자세로 신앙이 성장해야 합니다. 

신앙성장을 위한 영혼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가르치는 설교와 교회교육입니다. 음식에도 유해음식이 있어서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신앙교육으로 인해 광신자(狂信者)나 이단자가 되어 가정과 사회에 큰 해를 끼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신앙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바른 신앙교육을 받아야만 합니다. 신비하다하여 무분별한 종교집회 참석이나, 무분별한 신앙교육은 경계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세례에 대하여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말씀하시기를“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하셨습니다.“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세례를 구원받은 표시라고 했습니다. 세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내 구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므로 구원이 확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로 행하는 의식이 세례인 것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실 분들은 이후로 하나님의 사람답게 믿음이 잘 성장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내가 과연 세례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의 신앙을 재점검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람과 함께 하셔서 그에게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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