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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신앙의 부활 (마 22: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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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의 부활 (마 22:23-33)

기독교 복음에 두 가지 축이 있다면 하나는 십자가이고 다른 하나는 부활입니다. 십자가가 인간의 모든 허물을 완전히 씻어 주었다면 부활은 이 모든 허물이 완벽하게 깨끗해졌다는 징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은 신앙생활 하는 데 있어서 참 평안, 참 자유, 참 기쁨, 참 능력, 참 소망을 주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렇게 중요한 부활신앙을 일 년에 한 번 있는 부활절에만 기념하고 평상시에는 부활신앙에 대한 감격과 기쁨을 놓치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가 힘을 잃고 성도가 삶의 현장에서 영적 영향력을 입히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부활신앙의 힘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신앙이 다시금 부활되어야 합니다. 일 년 365일 내내 부활이 주는 영적 힘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부활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두개인들은 교리적으로 부활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있지도 않은 억지 상황을 만들어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도리어 이런 상황을 활용하셔서 복음의 핵심인 부활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참된 부활신앙이 회복되어 가는 곳곳마다 복음을 증거하여 천하 만민 가운데 명성과 칭찬을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벗어나야 할 영적 무지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마 22:23)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 내용이 24~28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집안에 7형제가 있었습니다. 그중 맏아들이 장가들었는데 상속자가 없는 상태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형수를 취했는데 그도 후사 없이 죽었고 마지막 일곱째까지 가서도 후사 없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그 여자도 죽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일곱 형제가 다 한 여자를 취했는데 부활 때에는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들은 신 25:5~6에서 나오는 율법의 내용을 가지고 궤변론적인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형이 후사 없이 죽게 되면 동생이 형의 아내를 취해 후사를 보게 하였습니다. 이를 계대결혼이라고 합니다. 이런 제도를 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장자권 계승을 통해 대를 이으려는 취지였습니다.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들어 낳은 첫 아들은 형의 자식이 되어 형의 유업을 이어가도록 법적으로 정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홀로 남은 여인이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 때문에 이를 돌보기 위한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도가 있다고 하여 실제 본문과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의 허구적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마 22:29)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이 성경의 내용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오해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이처럼 성경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윤리·도덕적으로 교훈이 되는 내용도 많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근본은 이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영적인 실체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보여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원래 상태, 왜 인간에게 생로병사의 문제가 발생했는가, 왜 인간은 영적·정신적·육신적 문제 속에서 갈등하고 염려하고 불안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문제를 일으킨 원인 제공자는 누구인가, 여기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무엇인가? 이런 영적인 실상에 대해 성경은 아주 구체적인 답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이 열리지 못하고 무지하면 이런 것들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분문에 나오는 사두개인들은 지식·권력·재력을 갖춘 유대 사회의 상류층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무지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을 지키는 것만을 중요시 했을 뿐 부활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천사의 존재,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 조차 부인했던 것입니다. 마치 요즘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영적인 본질은 부정하며 인간적인 접근을 통해 이성과 상식을 만족시키는 부분만을 인정한 것입니다. 사단이 이처럼 얼마나 교묘하게 영적인 부분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는지 우리가 영의 눈을 열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차에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운전자는 도로의 교통상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받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성능이 좋은 내비게이션이라 할지라도 한 가지가 되지 않으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바로 업데이트입니다. 도로의 상황은 매일 바뀝니다. 공사 지역이 새로 생기고 새로운 길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를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실제로 활용이 불가능해집니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업데이트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응답을 제대로 된 시간에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사두개인들을 비롯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보면 영적 업데이트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심으로 구약의 율법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복음시대가 열렸음에도 영적 업데이트가 되어 있지 않으니 온당치 않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업데이트를 하게 되는 시간이 언제일까요? 바로 예배시간입니다. 예배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방향을 정확히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전투기 조종사가 비행을 하며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하다 보면 방향 감각을 잃게 됩니다. 그때는 계기판을 보며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게 됩니다. 계기판을 보지 않고 자신의 감각대로 방향을 찾다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언제나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따라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미 과거의 버전이 된 것을 계속 사용하지 마시고 최신 프로그램으로 새롭게 업데이트하여 복음적 신앙생활을 누리며 천하 만민 가운데 명성과 칭찬을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 22:30) 예수님께서 부활을 오해하고 있던 사두개인들에게 실례를 들어 부활 이후의 삶에 대해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부활 이후에는 이 땅에서처럼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혼은 이 땅의 질서이지 천국의 문화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문화에 젖어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두개인들의 주장은 부활이 있다면 형과 동생 간에 아내를 두고 곤란한 일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부활 이후의 삶을 이 땅에서의 삶의 틀로 묶어서는 안 됩니다. 

부활 이후 우리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연하여 말씀하셨듯이 부활 이후에는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은 상태로 변화하게 됩니다. 육신을 입고 제한적인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천사와 같이 신령한 몸을 입고 하나님 자녀로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주 안에서 한 가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이러한 영적인 가족으로서 oneness의 축복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 22:31~32) 이 말씀은 출 3:6을 인용한 내용입니다. 모세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이 말씀을 하시며 과거형 동사로 표현하지 않으시고 현재형 동사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죽은 사람이 아니라 지금 살아서 함께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죽음을 겪을 때 우리의 육신은 원래 상태인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완전한 부활체로 다시 살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실패와 실수를 비롯해 죄와 허물을 다 씻어 버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참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런 참된 신앙을 회복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으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성경적 부활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구기자의 전설’이라는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이 글에 따르면 한국 남자들이 지금 무력한 상태에 있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라는 것이 약을 잘못 달여 먹었기 때문인데 한약 속에 넣지 말아야 할 ‘구기자’를 넣어서 남편들에게 먹인 바람에 다 구겨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겨진 남편을 위해 한 아내가 기도하는 중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사다 먹였는데 남편이 다시 활기차게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피자’입니다.

단순한 우스개로 볼 수 있지만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영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창세기 3장 사건을 통해 모든 인간을 구겨지게 만들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다시 완벽하게 펴 주셨습니다. 사단은 인간을 멸망 길로 이끌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회복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아무리 구겨진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과거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염려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참된 부활 소망을 가지고 지금 이 시간을 최고로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참 복음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깊은 은혜 속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바로 기도와 전도입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 오늘의 말씀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화되면 제자화되고 다시 세계화된다는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부활신앙이 부활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부활신앙을 주셔서 부활 소망 속에서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영적 무지 속에 있는 종교인, 불신자, 이웃을 살려내는 전도 제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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