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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 (엡 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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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 (엡 2:11-22)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11-22)

길을 가다 보면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공사 중’이라는 팻말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어떤 공사든지 끝내기 전에는 불편하고 귀찮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도 ‘공사 중’입니다. 우리 개개인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성전이요, 전 세계에 있는 우주적 교회도 하나님의 성전인데, 모든 교회는 지금 공사 중입니다. 

이 성전을 지을 때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아름다운 건물이 없었고 시멘트, 모래, 물, 벽돌, 나무, 유리, 못, 쇳덩어리 등 건축자재만 있었습니다. 그것도 원래는 어느 공장이나 강가나 산에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자재들이 교회에 하나씩 들어옵니다. 그리고 한동안 바닥에 방치됩니다. 그 상황만 보고는 ‘저게 뭐가 되겠나?’ 싶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그 자재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허름하게 옷을 입고 무표정하게 일하는 작업자들의 얼굴을 보면 ‘저 분들이 뭘 하겠나?’싶지요. 그런데 그 분들이 뚝딱뚝딱하니까 점점 건물의 형태가 나타납니다. 제가 1차 공사 때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지만 2차 공사 때는 거의 매일 건물 꼭대기부터 아래층까지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손 댈 곳을 일일이 살피고 기록을 했습니다. 공사과정은 불편했지만 흩어져있던 자재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결국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배드리고 있는 이곳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전으로, 경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건축대상을 두개나 받았습니다. 시작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재료들이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결국 이와 같이 아름다운 교회가 완성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허술한 상태였고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고 ‘저게 뭐가 되겠나?’ 싶을 만큼 연약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져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말, 태도와 행동, 습관과 인격 속에서 움직이면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변화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한 명, 두 명 모이면서 지역 교회가 형성되고 한국 교회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과거의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신분이었습니다. 본문은 우리의 예전 모습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11절). 내가 옛날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어떤 재목이었는지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육체로는 이방인’이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12절).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요, 하나님나라 백성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요,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고 사는 외국인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도, 천국도, 영생도, 부활도 몰랐으니 무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그저 한 생애를 살다가 늙어서 죽는 것 밖에 다른 소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기는커녕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조롱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옛날에 우리가 어떤 신분이었는지를 기억해야 오늘의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13절). 

하나님과 전혀 관계 없고 하나님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가까이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이 하나님과 멀리 떨어졌던 자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각자 배경을 봐서는 같이 모여 예배하고 같은 하나님을 찬양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입니다. 서로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있었고 우리 사이도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서로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우월감을 가지고 다른 나라들을 싫어하거나 무시하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식민지 생활을 했던 아프리카 사람들은 독립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독립한 이후부터 끊임없이 부족 간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동네 싸움이 많았습니다. 저는 서평양에서 자랐는데 우리 동네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둔 뒷동네가 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나가면 뒷동네 아이들이 때리기 때문에 아예 그리로 지나가지도 못했어요. 고작 10살 내외의 아이들이 패싸움을 했으니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우산의 살을 잘라 소총을 만들고 납총알을 끼워 총을 쐈습니다. 눈에 맞았으면 어쩔 뻔했어요? 어린아이들이 무엇을 안다고 동네 패싸움을 했는지…. 

그런 것을 보면 우리는 서로 간에 멉니다. 하나님과 머니까 사람과도 멉니다. 왜? 죄성이 있어 서로를 싫어하여 하나가 되지 못하는 사람이므로 각자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세계를 그려감으로써 주위에 배제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옆집 사람도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과거 신분을 설명을 하기에 너무 충분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이와 같은 인간세계에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졌고 인간관계가 조각난 이 세계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 모든 문제가 죄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하나 되게 하시고 사람들 사이를 하나 되게 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출발하고 그 분의 성전이 건축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13절). 예수님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혔던 담을 허셨습니다. 죄의 담을, 율법의 담을 없애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어 우리를 위해 희생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14절), 즉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로,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만들어 새로운 공동체, 새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가 이 땅에 시작된 것입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15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을 폐지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평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이제는 율법이 우리를 고소할 수 없고 파괴할 수 없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고 그 피로 우리를 사셨고 새 사람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새 사람들이 한 명씩 두 명씩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나기 시작하고, 각자 자기 자리와 위치를 차지하면서 하나님의 교회는 세워지고 있고 완성을 향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우리와 우리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예수를 믿지 않는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든 아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남편의 삶은 힘든 삶이었습니다. 가족들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로 남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힘들었던 남편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고 과거를 회개하고 변화가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그 아내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가족은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남편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습니까? 요즘은 딸의 말을 듣고 성경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있어요. 정말 놀랍습니다.” 평생 힘들게 살았던 그 가정에 이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얻고 새 사람이 됐기 때문입니다. 연세가 많은 그 부인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귀하긴 귀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던 사람들을 예수님이 중간에 매개체가 되셔서 하나로 만들어 주시고 평화를 누리게 하십니다. 지금 우리는 새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새로운 인간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고 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16절). “십자가를 통해서 이 둘을 한 몸으로”란 이제 하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원수 관계를 십자가로 소멸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 사람들, 여러분과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영원한 평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들 사이도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워진 사람들이 모인 교회도 더욱더 완성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신분은 어떤가? 이런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19절). 우리 삶의 토대는 사도와 선지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선지자는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들 토대위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선지자들이 쓴 구약성경과 사도들이 쓴 신약성경 위에 여러분의 믿음이 굳건히 서야 합니다. 이 두 그룹의 사람들과 이 두 그룹의 성경이 우리 신앙의 절대적인 토대인데 그 둘을 잇는 모퉁이 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서로 하나가 되고 구약과 신약이 하나가 되고 이 하나 된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 즉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21절). 

우리가 처음에 말한 대로 우리 교회 건물이 지어지기 전에는 그냥 어딘가에 던져져 있는 건축자재들에 불과했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모래 자체로서는 성전에 별로 가치가 없습니다. 모래와 시멘트와 물과 만나 교회의 벽이 되고 빌딩에 쓰이기 시작할 때 가치가 생깁니다. 그것들이 하나 둘씩 모여서 이 교회가 완성된 것처럼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한 부분이요 지체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먼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와 하늘나라 시민이 될 때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요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리가 있고 저는 제 자리가 있습니다. 각자 자기의 은사를 따라 자기 자리에 확실하게 설 때, 하나님이 지으시는 아름다운 성전이 완성될 것입니다. 

“서로 연결하라”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개인이나 교회, 교계, 세계적으로도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성전은 지금 완성되고 성화되고 성숙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면서도 종종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아직도 공사 중이어서 그렇습니다. 서로 간에 완전하지 못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둥근 버튼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데, PBP BGHNFWM이라고 씌어있어요. 궁금해서 무슨 뜻인지 물었습니다. "Please be patient"(제발 참아주세요). "Because God has not finished with me"(하나님이 아직 저를 완성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아직 미완성품이니 조금만 참아달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교회는 완성되어 가는 중이지만 아직도 미완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도 성령께서 계속 변화시키고 계시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좀 참아주면서 여러분의 가족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3:4, 7). 사랑에 있어서 인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미완성 작품입니다. 개인도 교회도 완성되어 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교회는 완성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깨졌던 우리가 회복되면서 완성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누군가가 제자리에 없으면 그저 야단치지 말고 제자리에 앉혀 주세요. 좀 튀어나왔으면 조금 밀어주세요. 데려다가 격려해 주세요. 우리 모두가 완성되어 가는 하나님의 미완성 성전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고 수고하는 가운데 마지막 못이 박히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절). 우리 모두가 완성되어 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계속 아름답고 깨끗하고 성숙하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 읽고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셔서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재목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전의 마지막 못이 박힐 때 저 하늘에서는 천군천사의 나팔소리가 울릴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수고도 끝날 것입니다. 아픔과 슬픔과 눈물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완성되는 그날, 주님께서 마련한 그 나라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완성된 교회와 개인으로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릴 때까지 인내로 우리 자신을 잘 다듬어서 하나님의 교회에 좋은 지체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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