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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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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36)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해방기념주일>입니다.

꽃꽂이 하는 분들이 무궁화로 대한민국 지도를 장식해 주셨습니다.
참 잘 하셨습니다.
무궁화로 통일 되었습니다. 이런 통일이 있기 바랍니다.
나라 꽃이 무궁화인데 살면서 무궁화 보기가 어렵습니다.
무궁화를 심지도 않고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이 보세요.
그리고 남북한이 꽃으로 하나 된 것처럼
하나 되는 날을 위해서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렇게나 하나 되면 안 됩니다.
민주주의로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하나 되는 나라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가 아프리카 모잠비크에 가서 교회 봉헌식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와서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공항에 대기하고 있다가 화장실을 갔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남자가 화장실에서 걸레질을 하면서
“Welcome to my office!” 그러는 것입니다.
깜짝 놀랬습니다.
‘내 사무실에 와주신 것을 환영한다’는 인사였습니다.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그러다가 보니까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Welcome to my office.”
‘내 사무실에 들어온 것을 환영합니다.’
그 사람을 한참 쳐다봤습니다.
화장실 청소하는 게 자기 담당입니다.
그러나 그 화장실을 자기 사무실로 여기고
‘내 사무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얼마나 당당한지….
우리도 이런 당당함이 있어야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사십니까?
여러분들이 일터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당당하게 사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갈 수 있잖아요?
가슴 좀 펴보세요!
가슴 펴고 당당하게, 씩씩하게, 멋있게
그렇게 사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가지 자유

일본은 당파싸움으로 비틀거리던 조선을 침략하여 삼킨 후에
식민통치를 했습니다.
국호는 사라졌고 백성들은 이름을 갈아야 했습니다.
말도 문화도 일본식을 따라야 했습니다.
저들의 전쟁을 위해 젊은 남자들은 죽음의 전쟁터로 끌려갔고
젊은 여자들은 정신대로 끌려갔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습니다.
왜지요?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동물들도 자유를 좋아하지만
동물들은 단지 주어진 조건에서 살든지, 죽든지 적응하며 삽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선택하며 사는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인간은 정해진 레일을 달리는 기차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 같은 존재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정해진 대로 산 인간을 심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셨고
그 허락하신 자유를 어떻게 누렸는지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리며 살아야 할 참 된 자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요 8:31~32)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 …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요 8:33)고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

유대인들과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두 가지 자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자유입니다.
유대인들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자신들이 왜 자유를 필요로 하느냐? 우리는 자유하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민족이지만
아브라함의 후예로서 선민으로서의 자유를 누리며,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고 정한 시간에 기도하고 살았던 유대인들은 
압제나 강압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또 하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유입니다.
죄로부터의 자유, 내적인 자유, 영적인 자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남의 압제로부터의 자유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로부터의 자유, 영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참된 자유자가 아니라고 하는 선언을 해 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한 가족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남자, 둘째 아들이, 형도 제쳐놓고 아버지에게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내게 주실 유산 중에 일부를 미리 좀 나눠 주십시오.”
이거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요.
아버지 살아계신데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 것.
이것은 도대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의 무례한 요구에 응해서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돈을 받아가지고 둘째 아들이 길을 떠납니다.
물론 잠시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계속 즐거웠습니까?

잠시의 즐거움을 누렸지만 곧 탄식으로 변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탕자가 아버지를 떠난 후 사기를 치지 않았습니다. 폭력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도적질 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것 같지 않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돈, 자기 것 가지고, 있는 돈 가지고
마음대로 썼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성경에 ‘허랑방탕했다’고 그랬습니다.
‘허랑’이 뭐냐? 말이나 행동이 허왕되고 착실치 못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허랑이라고 합니다.
‘방탕’은 술과 여자에게 빠져서 행실이 나쁜 것을 방탕이라고 말합니다.
허랑방탕했어요.

당시 유대인식 사고방식으로는 자유입니다.
자기 것 가지고 자기가 마음대로 썼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들 주변을 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됐지 무슨 상관이냐?’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되는 것 아니냐?’
내 것 가지고 내 마음대로 쓰는 데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양심이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만족만을 추구하며 삽니다.
부모도 형제도 이웃도 무시된 삶을 삽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를 다녀도 자기 멋대로 신앙입니다.
성경 말씀도 귀찮게 여깁니다.
하나님도 자기 편한대로 묶어 두려합니다.
목사가 설교를 해도 자기 마음에 드는 소리만 듣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드는 소리만 가슴에 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행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 하시는지
자신을 점검해 보십시오.

탕자는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삶을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형과의 관계도 끊어졌습니다.
삶의 현장과의 관계도 끊어졌습니다.
잠시 누렸던 그 자유 때문에 돼지 우리에서 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돼지 먹는 쥐엄 열매조차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누가복음 15장 17절에 보면
‘나 이제 굶어 죽게 생겼구나’ (눅15:17)
그렇게 탄식하는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참 된 자유입니까?


자유롭게 하시는 예수님

사람은 자유스러워졌을 때에
편안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불안함을 느낍니다.
사람은 자유를 갈구하면서도 
동시에 무엇엔가 묶여 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끊임없이 자유로워지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무엇엔가 묶여 있어야, 엃혀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모순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호막이 걷힌 자유속에 있는 사람은 
무기력과 공포를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참 자유가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 그 진정한 자유는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32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예수님이 스스로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면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인생들에게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진리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6절에
“…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하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인간의 노력으로, 인위적인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갈5: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았음을 믿어야 합니다. 믿습니까?
- 범죄한 인간에게 구원의 길이 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요3:16)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1:12)
천국 시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빌3:20).
우리들은 죄가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 1:9)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 고백하면 여러분의 허물과 죄도 용서하시는 것 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함 받지 못했으면 제가 어떻게 설교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은 하늘 백성이 될 수 있습니까?

광복절이 되니까 대통령이 사면을 했습니다.
대통령이 가진 권한 중에 아마 최고의 권한이 이 사면권일 것입니다.
사형수라 할 지라도 대통령이 사면한다 그러면 끝입니다.
일부 사람들 중에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용한다고 얼굴에 힘을 줘가면서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 이도 사면 받은 사람입니다.

물론 너무 많이 놓아주는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법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 수도 있습니다.
제가 1977년도에 운전면허를 따서
그 다음 해인가 명지대에서 신호 위반을 해가지고 벌금을 낸 적이 있고
다음에 강화에 가서 밤에 비가 오는데 앞에 보느라 속도도 못 보다가
과속으로 벌금 통지서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 외에는 제가 신호 지키고 속도 지키려고 애 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냥 과속하고 신호 위반하고 벌점 받은 사람들을 다 사면해 준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까
제가 무슨 생각이 들었었는 줄 아세요?
“그럼 나도 막 달릴 걸 그랬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사면이 남발되면 법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같지는 못 합니다.
그러나 ‘사면이 너무 많다.’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은 잘 들으세요.

만일 여러분의 남편이 이번에 사면을 받았다면 어떻게 얘기했겠습니까?
여러분의 자식이….
저는 목사로서,
아주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 외에는 교도소를 싹 비워놓고 다시 시작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사면을 받았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너무너무 기쁜 일 아니에요?
그런데 대통령이 사면을 너무 많이 했는지, 덜 했는지 그런 것을 떠나서
우리가 그런 것을 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회개하면 싹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 나라가 내가 갈 곳이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고 나는 멸망함이 없다고 성경을 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기쁨과 감사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노아의 홍수 때 방주 속에 들어가는 것이 속박인 것 같았으나 거기가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때의 참 자유는, 방주 속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방주 속에 갇히는 것이었습니다. 거기 갇히지 못하면 다 죽습니다.
방주 밖은 자유가 아닙니다. 길이 아닙니다. 진리가 아닙니다. 생명이 아닙니다.
이 죄악 세상에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의 품에,
예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 사는 것.
그것이 참 된 자유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난 길이 자유인 것 같았으나
그 길이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로 간 것 자체가 죄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5장 18절에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눅15:18)
라고 말해야겠다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를 오용하며
하나님을 떠난 것,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지 못한 것,
순간순간 하나님을 외면했던 것.
그것을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와 기쁨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속박을 속성으로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허락하셨지만
동시에 규정으로 얽매 놓으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자유롭다. 그러나 이대로 살아라.’

에덴 동산은 즐거움의 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열매는 먹지 말아라”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 규정이 싫은 아담과 이브는 규정을 어겼고 
결국 추방이라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잠시의 즐거움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막을 떠나는 어리석은 생각을 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에 묶여 있는 자유가 진짜 자유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언제 주님 오실는지 아는 이가 없는 세상에,
주님의 날이 도적같이 이르지 않도도록,
언제 주님이 오셔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고 영접할 수 있도록
깨어 있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

우리는, 우리 민족은, 우리 대한민국은
다시는 남에게 나라를 빼앗기지 말아야합니다.
주권도, 국토도, 국민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는 자유를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의 자유를 빼앗기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일본에게 빼앗겼던 것들을 다시 되찾은 이 ‘광복절’에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영적 자유도
마귀에게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특별히 젊은이들.
여러분들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도 강건해야 합니다.
부강한 나라, 힘 있는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나라를 빼앗기는 것은 모든 것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갖게 된 하나님과의 관계,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백성이에요.
그러나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나라도 사랑하며 귀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만든 걸작품입니다.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천하보다 귀하다고 선언해 주셨어요.
그러므로 우리들 각자는 귀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합니다.
“나는 천하보다 귀하다.” 아멘!
함부로 얘기하지 마세요.
‘나 같은 것 뭐해.’
나 같은 게 어쨌다는 것입니까? 천하보다 귀한데…
그런 자긍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 자신을 사랑할 뿐 아니라 여러분들의 가정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묶어 주신 작은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으로 이루어 주신 가정입니다. 
그곳을 마귀의 소굴처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미워하고, 비난하고, 후회하고, 탄식하고,
비교하고,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특별한 남자 없습니다.
속지 마세요. TV에, 드라마에, 영화에 나오는 남자, 없습니다.
이 세상에 특별한 여자 없습니다.
어느 집에도 문제가 있고, 어느 남자도, 어느 여자도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하고 칭찬하고, 용서하고, 덮어 주고 참고 견디며 사시기 바랍니다.
힘들면 사명이라고 생각해 볼 수 없겠습니까?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나가있는 이들, 그들이 좋아서 합니까?
사명이기 때문에 하는 거에요.
가족을 떠나서, 말라리아에 걸려가면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 그 일을 합니다.
사명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사명이라고 생각하면 참을 수 있습니다.
사명이라고 생각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
심야 때 제가 물어봤습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저를 딱 보면 ‘야, 목사님 같으시다.’ 이렇게 느끼십니까?
딱 보면 인자함이 느껴지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정이 가고,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더울 때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까? 찬 바람이 휭 분다면서 …
우리 교회 권사님이 그러셨습니다.
친구들한테 그렇게 얘기 하셨답니다. 우리 목사님 사귀어보면 따뜻한 분이라고 …
왜 사귀어봐야 압니까? 원래 따뜻한데 …

저는 제가 저를 잘 압니다. 사람 사귈 줄도 모르고, 잘 웃을 줄도 모릅니다.
제가 싫은 것은 분명히 싫다고 그러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하고 같이 앉아있기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맞습니다. 쌀쌀합니다. 찬 바람이 휭 분다고 그럽니다.
그래도 그런 제가
달라져보려고, 따뜻해 보려고, 사랑을 표현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왜? 사명이기 때문에 …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이라면 내 부모,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 내 친척 … 
모두 귀한 존재입니다.
그래, 내가 참지.
나 하나 견뎌서 화목할 수 있다면, 나 하나 견뎌서 평안할 수 있다면 내가 한 번 참아보지.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맡기셨으니 하겠습니다.’
여러분, 노력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십시오.

- 신앙생활 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적을 두고 신앙생활하는 교회를 사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좋은 눈으로 보면 좋은 교회, 좋은 목사님, 좋은 성도들입니다.
좋은 눈으로 보세요.
여기 오늘 우리 교회 처음 오신 분 계십니까?
좋은 교회 찾아다니지 마세요. 좋은 교회 없어요.
어느 교회나 다 문제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나 속 썩이는 사람 있습니다.
좋은 교회 찾아다니지 말고 좋은 교회 만드는 사명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우리 조국 대한민국, 이 나라 좋은 나라입니다.
전 세계를 다녀보세요. 그래도 우리 나라가 좋습니다.
여러분, 여기가 좋은 나라입니다. 이 만한 나라 없습니다. 다녀보세요.
제가 느끼기에 하나만 잘 하면 진짜 끝내주는 나라입니다.
정치만 잘하면 좋겠습니다. 좀 싸우지 말고 … 헐뜯지 말고 …
안 된 것도 지적하지만 잘한 건 잘했다고도 말하고
서로 격려하고 세워주고,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서울 시청 앞을 중심으로
전국의 많은 곳에서 모여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여러분들도 형편이 되는 분, 갈 수 있는 분들은 가 보세요.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한 번 기도해보세요.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하여,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이기 때문에 기도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 그리스도와의 얽매임
- 가족과의 얽매임
- 교회와의 얽매임
- 사회와 국가와의 얽매임을 허락하셨습니다. 
얽매 놓으셨습니다. 얽혀 놓으셨어요.
여러분, 이 얽혀 있는 것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얽혀있지 못한 것, 비극입니다.
소속 없는 이들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적을 두지 않고 아무 교회하고도 얽혀있지 않은 분.
교회에 나가든 말든 간섭도 하지 아니하고
연락도 없이 편안하게 가고 싶으면 가고,
말고 싶으면 말고 나는 그렇게 신앙생활 한다.
편한 것 같습니까? 영적으로 불쌍한 영혼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해방 기념 주일에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여러분 어떤 자리에서도 여러분 때문에 웃고, 여러분 화목하고, 
여러분 때문에 살맛나고, 여러분 때문에 소망이 있는
그런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리이신 예수님, 자유케 해 주신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답게
하나님 마음에 합한 복 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와의 얽매임을 허락해 주셔서
구원받은 자로 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가족과의 얽매임, 교회와의 얽매임, 사회와 국가와의 얽매임을 허락하신 것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얽혀있는 곳에서 빛 되고 소금 된 삶을 살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하는 믿음의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믿음의 승리자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거룩한 해방 기념 주일에 단순히 나라가 해방된 것만을 기억하지 않게 하시고
저들도 마귀의 유혹에서 놓임 받는 믿음의 승리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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