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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즐거워 할 이유 (신 2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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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워 할 이유 (신 26:1-11)


성공한 사람들은 삶을 즐길 줄 압니다.

사람이 가장 관심이 많은 것은 자신의 행복입니다. 자신의 행복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이 1930년대 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 2학년생 268명의 삶을 70년이 넘게 추적하여 그들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연구한 책이 나왔습니다.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현재 90세가 넘었고,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질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는 어떤 법칙이 있는 것일까? 만약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인생을 누릴 준비가 되어있는가?” 

이 책에서 사람의 일생을 분석해보니 성공적인 삶으로 노년에 이른 사람과 성공적이지 못한 모습으로 노년에 이른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잘 살았다는 것은 얼마나 멋지게 늙어갔는가를 말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베일런트의 말입니다. “당신에게는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여유가 있는가? 나는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할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삶은 즐길 필요가 있다.” 

삶을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항상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의 기쁨을 방해하는 위기의 순간이 종종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때로 내 마음속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장애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를 나타내는데, 보통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신경질적이고 미성숙한 방어기제이고, 또 하나는 성숙한 방어기제입니다.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갖고 있는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금방 두려워하고 근심합니다. 그리고 남의 탓을 하고 비난하며 공격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는 분열증적인 증세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숙한 방어기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예측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에 필요한 자기 절제를 할 줄 압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남을 위해서 살려고 합니다. 넉넉한 유머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에는 삶을 승화시키는 능력으로 어려움을 방어하면서 극복해나갑니다.

이 책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들의 특징을 6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그들은 내리사랑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랑은 나부터 흘러가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보살피고, 모든 생각에 대해서 개방적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건강할 때 다른 사람과 사회를 위해서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 그들은 자기 약점을 인정할 줄 압니다. 나이가 들면 건강이 조금씩 쇠약해집니다. 육체의 모습도 초라해집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자기의 연약한 모습을 기쁘게 인정합니다. 그리고 내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자신의 삶을 받아들입니다. 

셋째, 그들은 희망을 가지고 자기주도적인 삶을 삽니다. 자율적이며 나이가 들었어도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살고 있습니다. 

넷째, 그들은 삶을 여유 있고 넉넉하게 살면서 유머를 사용할 줄 압니다. 놀이를 통해서 삶을 즐길 줄 알고, 근본적인 목표가 있으면 부수적인 것들을 잘라버릴 줄 아는 용기도 있습니다. 

다섯째, 그들은 과거를 되돌아볼 줄 알고, 과거의 잘한 일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음 세대에 관심이 있어 후배들에게도 배우려는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여섯째, 그들은 오래된 친구들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즐겁게 누리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기쁨입니다

일리노이대학교 심리학교수인 에드 디너(Ed. Diener)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살아가면서 더 많은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런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 

우리 또한 예수를 믿으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산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가지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정말 즐거우십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마음이 설레고 기대되십니까? 실제로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은 성공의 길을 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원리는 아는데 내 영혼을 봐도 즐거움이 없고 기쁨이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딘가가 삐걱거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신앙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이렇게 정의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이란 기쁨이다. 신앙이란 즐거움이다.” 기쁨이 결여된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쁨 그 자체이시고, 우리에게 기쁨 주시기를 열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슬픔과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슬프고 불행한 일들을 당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일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때로 상상할 수 없는 불행을 당하기도 합니다. 근본적으로 이 땅에 있는 고난과 불행의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렵고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 신앙적인 의미만 부여하면 기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기뻐해야겠다고 이를 악물고 다짐하면 슬픔이 사라질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만 하면 고통스러운 사건이 내게서 떠나가는 것일까요? 그렇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값 싼 낙관주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단순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어기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고통과 슬픔을 보면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이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장임을 매일 매일 확인하고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속에서 때로는 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탄식하고 신음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인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몸이 아파본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가정생활이 위기에 처했던 때도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의 얼굴이 보기 싫어졌을 때도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난 경험도 있지 않습니까? 사랑으로 낳은 자녀들이 내 뜻대로 하지 않고 말썽부리는 것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탄식했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사랑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삶에 얼마나 문제가 많습니까? 얼마나 큰 고통이 우리를 누르고 있습니까? 때로는 비참해지고, 때로는 좌절감을 느끼고, 때로는 어떻게 살아야 될지 흔들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나하고 상관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하나님께 토로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 가운데 있었던 백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고난에 속한 백성을 어디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고난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백입니다.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신명기 26:5-6)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신음과 고통의 현장을 넘어서 지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들은 자기 실존의 아픔과 위기를 깊이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슴에만 담아두었다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위대성은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가슴에서 끄집어내어 하나님을 향해서 토해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신명기 26:7 상반절)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 자기의 처지를 아뢰었습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더 이상 살 희망이 사라졌다고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 응답받기까지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아뢰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끄집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의 삶의 고백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신명기 26:7 하반절-9)

기쁨은 신앙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같이 작은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백성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능력이 있는 백성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능력의 역사, 자유하게 하는 역사, 기쁨의 역사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온 인류가 알 수 있도록 가장 작고 연약한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같은 사람에게도 새로운 길이 열려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접촉하면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새로운 것이 들리고 보이기 시작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 옆에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내 인생을 지키시고, 구렁텅이에서 나를 끄집어내신 사랑의 하나님을 친히 목격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6:11) 

그래서 기쁨이란 신앙의 목표가 아니라 신앙의 선물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말씀합니다. 그 중 첫 번째 열매로 사랑과 기쁨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갖게 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갖게 되는 것은 기쁨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갖게 되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나의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을 수 없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쁨과 즐거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슬픔과 걱정 속에서 나날을 보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 땅에 슬픔과 고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생각하면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가 울려 퍼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 인생이 바닥을 쳤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은 원래 영점이었습니다. 아니, 영점이 아니라 마이너스 100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죄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탄의 종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의 인생은 0점에서 플러스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이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눈으로 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내 귀로 듣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내 가슴으로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옆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모든 것이 감사요 기쁨이며 즐거움이 됩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행복의 조건을 말하면서 다음의 세 가지가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입니다. 둘째, 사랑할 사람이 있는 사람입니다. 셋째, 미래의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소명과 사명의식을 갖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셨구나.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셨구나. 내 남은 생을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사명을 주셨구나.’ 또한 우리는 최고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인간의 사랑은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나를 떠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를 향한 최고의 사랑을 만나면서 더욱 깊은 사랑을 배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세계를 약속해 주십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사랑의 희망과 소원을 품습니다. 
여러분, 누가 행복합니까? 누가 기쁩니까? 누가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랑의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신명기 26: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내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맏물’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첫 번째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했던 기억이 있습니까? 사랑하면 다 주고 싶습니다. 시간, 돈, 정성,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예배를 드립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신명기 26:11)

두 번째로 이웃의 연약함을 넉넉히 보듬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기쁨을 가지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만큼 멋지고 복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 것만큼 매력적인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매력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매력 속으로 들어갑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이 놀라운 기쁨과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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