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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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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마 11:28-30)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시지프스의 신화(The Myth of Sisyphus)’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죽기 싫어 신들을 속이고 오래 살다가 지옥으로 간 시지프스(Sisyphus)는 죽어서도 벌을 받게 됩니다. 커다란 바윗돌을 등에 지고 산꼭대기로 올려놓는 벌입니다. 죽을힘을 다하여 산꼭대기로 돌을 올려놓으면 돌은 그 무게 때문에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면 시지프스는 또 다시 그 바윗돌을 산꼭대기로 올려놓아야 합니다. 또 굴러 떨어집니다. 또 올려놓습니다. 그 일을 영원토록 반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의 숙명입니다. 인간도 어쩌면 그와 같은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죄 짐보다 더 무거운 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죄짐을 지고 허덕이다 결국은 영원한 지옥 형벌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인 것이 사실입니다.

폴 틸리히(Paul J. Tillich)는 인간의 세 가지 불안을 말합니다. 존재의 불안, 양심의 불안, 죽음의 불안입니다. 인간은 장래에 대한 불안과 지난날에 대한 끝없는 후회의 짐으로 마음이 가벼울 날이 없습니다. 때로는 힘겨운 질병의 짐을 지고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가난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억척같은 마음의 짐을 지고, 젊은이들은 성공에 대한 야망으로 몸과 마음을 쉼 없이 혹사시킵니다. 그러기에 현대인들은 한결같이 ‘쉬고 싶다’ 고 말합니다. 삶의 무게에 지쳐 힘들어 하는 인생을 향해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쉼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본문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수고하고’ 는 ‘코피아오’ 인데 능동형으로 쓰여 졌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한 결과 피곤하고 지친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 ‘무거운 짐 진 자’ 는 ‘포르티조’ 로서 수동형으로 쓰였으며 타의에 의해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부담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율법의 짐, 유대 전통의 짐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신 “무거운 짐” 의 의미는 그보다 훨씬 넒은 범위를 의미합니다. 예수 당시의 백성들이 지고 있던 로마정부로부터 부과된 각종 세금의 짐, 가난의 짐, 인생이기에 질 수밖에 없는 죄의 짐, 병의 짐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짐들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예수 당시의 사람들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던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현대인들은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살아갑니까? 무엇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일을 하거나 떠밀리다시피 하면서 억지로 일을 하는 사람에게 평안이 없습니다. 욕심의 노예가 되어 감사와 기쁨을 잃고 힘들게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인생들을 향해 예수께서 본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초대하시며 진정한 쉼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첫째로 내게 오라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이 한때 세계를 제패했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패전한 후 세인트 헤레나 섬에 유배됩니다. 인생무상입니다. 기자들이 그를 만나려고 했지만 거부합니다. 그런데 한 기자가 어렵사리 그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지나온 생애 가운데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나폴레옹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였습니다. 잠시 전투가 그친 어느 주일 아침이었는데, 산 아래 조그만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려왔습니다. 

그 소리에 이끌려 교회당으로 들어갔는데,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며 최고의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안식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영혼의 안식은 더 나아가 육신의 건강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등 3개 대학에서 공동으로 ‘신앙생활과 수명의 상관성’에 관해 연구한 자료가 있습니다. 9년에 걸쳐 2만 2천 명을 대상으로 연구했더니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이 불신자보다 수명이 7년쯤 길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마음의 평안이 육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겁니다. 주님 품으로 나아오십시오! 아버지 품에 안기시기 바랍니다. 

본문 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라 함은 너무 많은 일을 계속해서 피곤에 지친 상태를 뜻하며 타의에 의해 무거운 짐을 진 채 계속해서 지쳐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들을 초대(invitation)하십니다. 구원과 안식을 주리라 초대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실망스러운 초대가 얼마나 많습니까? 상처와 손해를 끼치는 함정적인 초대도 많습니다. 

예수께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을 초청하신 것이 아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을 초청하신 것입니다. 예수께로 가기만 하면 반드시 쉬게 하십니다. 생활에서의 모든 갈등과 무거움으로부터 평화와 안식을 허락하십니다. 죄와 염려와 고통에서 해방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차별 없이 다 오라고 부르십니다. 지금까지 잘하신 일 가운데서도 예수께로 오신 것이 가장 잘하셨습니다. 날마다 더 가까이 예수께 나아가는 쉼을 얻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내게 배우라

미국의 대부호 코넬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가 임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재물이 신앙이며 존재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흑인 하녀가 그를 위해 찬송을 불러주었습니다.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밴더빌트는 조용히 찬송가 가사를 음미했습니다. 찬송가에는 예수의 속성이 아주 쉽게 표현돼 있었습니다. ‘우는 자의 위로, 없는 자의 풍성, 천한 자의 높음, 잡힌 자의 놓임, 죽을 자의 생명, 추한 자의 정함, 멸망자의 구원, 죽은 자의 부활.’ 밴더빌트의 입술이 조금씩 떨려왔습니다. 

그리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저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재물과 지식, 명예를 포기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을 잃으면 바로 절망하고 무너지고 맙니다. 예수를 열심히 배우면 예수의 인격과 성품, 희생과 봉사 그리고 사랑까지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본문 29절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모름지기 성도는 예수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참된 쉼을 얻게 됩니다. ‘그리하면’ 은 조건형으로 예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지 아니하면 결단코 쉼을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자세를 낮추고 배우는 순간 참된 쉼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의 온유와 겸손은 배우면 배울수록 기쁨을 체험하게 됩니다. 배움은 끝이 없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온유해지고 겸손하게 됩니다. 예수만이 진짜입니다. 예수외에 모든 것은 방부제입니다. 배운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본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닮아 간다는 뜻입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주님께 길들여지는 시간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예수를 닮아갑니다. 그리할 때 우리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쉼이 있습니다. 주님의 평안이 우리 마음에 솟아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내 멍에를 메라

한 선교사가 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앞에 앉은 사람이 낙심을 하고 얼굴이 창백하여 기차에서 뛰어내릴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에 선교사가 말합니다. “형제여, 예수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기면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군. 당신이 내 처지에 있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어디 계세요? 하나님이 계시면 이런 고통을 당하게 해요?” 선교사가 만년필을 꺼냈습니다. 기차가 흔들리는데 “이 만년필을 테이블에 세워 보시오” “아니 나를 조롱하는 거요? 이렇게 흔들리는 기차에서 만년필을 세우라니 어떻게 세운다는 말이요?” 되묻습니다. “나는 세울 수 있어요” “어디 세워 보시오” 선교사는 만년필을 손으로 잡은 채로 만년필을 세웠습니다. “세웠지 않습니까?” “만년필을 손으로 잡고 세우면 누가 못 세웁니까?” “그렇습니다. 

만년필을 그냥은 못 세우더라도 손으로 잡으면 세워지는 것처럼 인생도 혼자서는 못설 때 주님의 손이 붙잡아주시면 설 수가 있다니까요” 우리 힘만으로는 아무리 하려고 해도 못 섭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면 우리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의 멍에 밑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멍에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부패와 질병과 저주와 죽음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네 짐을 내게 맡기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내 멍에 밑에 들어오너라. 나와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본문 30절입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중동에서 밭을 갈 때 어미소 멍에 밑에 송아지를 넣어 밭을 갑니다. 어미 소가 잔뜩 힘을 내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멍에를 끕니다. 그러나 새끼는 하나도 안 무겁습니다. 멍에가 어미 목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미의 멍에 밑에 들어가서 따라가니 쉽고 가볍게 갑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예수께서 걸머지셨습니다. 순종하고 낮아져서 예수를 따라가면 쉽고 가볍게 인생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십자가에 다 얹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멍에는 확실한 구원을 가져옵니다. 나 혼자 멍에를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사랑으로 메기 때문에 놀라운 기쁨이 임합니다. 함께 보조를 맞추어 순종할 때 인생의 짐은 쉽고 가벼워집니다. 예수의 멍에는 피하면 어렵고 무겁지만 메고 따르면 쉽고 가벼워집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역설적 진리입니다. 여기에 은혜와 감동이 있습니다. 멍에를 진만큼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멍에를 피하면 은혜와 축복도 피하게 됩니다. 

WBC 세계야구대회에서 한국팀을 준우승을 이끈 김인식(金寅植) 감독은 이레 교회의 안수집사입니다. 기자가 질문을 합니다. “감독님, 승패가 갈리는 긴장 속에서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나요?” 그랬더니 김 감독이 대답했습니다. “아, 예배를 통해서죠. 특히 찬송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를 좋아하죠. 이 찬송가를 부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마음이 편해져요. 그래서인지 노래방에 가서까지 꼭 부르게 되죠.” 우리 안에 연약함이 있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인해 염려가 있습니다. 불안한 미래를 앞에 놓고 두려움에 갇혀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초대하신 예수께서 포기하지도 놓치지도 아니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부디 예수께 나아와 예수를 배우고 예수의 멍에를 함께 멤으로 참다운 쉼을 얻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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