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회, 샬롬의 공동체 (엡 2:11-18)

  • 잡초 잡초
  • 624
  • 0

첨부 1


교회, 샬롬의 공동체 (엡 2:11-18)


최근 일간신문의 기사 한편을 읽다가 마음이 너무나 훈훈해 지고 따뜻해 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례적으로 아직은 유명하지 않지만 유명해질 조짐을 보이는 한 축구 선수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1987년 7월 15일생, 키 183cm, 체중 70kg, 학력은 상지대 중퇴, 2006년 인천 유나이티드 FC 입단, 2005년 경기도 축구협회장기 최우수 선수상, 2008년 프로축구 K리그 2군 리그 최우수 선수상, 이름은 강수일그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중요한 원인은 혼혈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경기도 동두천 시에서 얼굴도 모르는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는 말썽쟁이 였고 싸움꾼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싸움을 말리던 한 선생님의 권유로 그는 축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주먹질 대신에 축구에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실은 그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혼혈아/흑인종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의 벽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2005년 경기도 축구협회장 상을 받고도 축구를 포기할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그에게 2006년 기회가 찾아옵니다. 미국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가 2006년 4월 한국을 찾아왔을 때 그를 만난 것입니다. 같은 혼혈아 출신의 스타 하이스 워드는 강수일을 만나 3가지 충고를 합니다.

“목표를 높이 잡아라, 기도해라, 어머니를 잊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충고를 가슴에 품고 상지대를 포기하고 축구 프로선수의 길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마침내 작년 2군 최우수 선수가 되었고, 올해 당당히 1군에 올라 팀의 주력 공격수가 되었습니다. 연봉도 2배 올랐고 그는 흑진주라는 애칭을 갖고 축구계의 주목을 받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다문화권 이웃들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경 본문은 교회야 말로 이 편견의 벽을 넘어서도록 선물로 주어진 그리스도의 공동체라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도 이런 편견을 극복하지 못하는 많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교회가 편견을 극복하는 공동체, 진정한 샬롬의 공동체로 세워져 갈 수 있을까요?

1.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사람들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이것을 교훈으로만 하신 것이 아니고 마침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고 있는 하나님의 원수된 사람들의 죄를 당신이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상태가 실제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 있다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본문 14절을 읽어 보십시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바울 사도는 같은 맥락의 말씀을 롬5:10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마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_-” 

다시 말하면 이제 인간은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 화목의 죽으심으로 더 이상 하나님과 원수로 살아갈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로 살아가던 담/벽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마땅할까요? 우리가 참으로 십자가를 묵상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원수라고 생각되는 편견의 대상인 이웃들을 향하여 물어야 할 증요한 한 질문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In His Steps, 찰스 쉘돈)라는 질문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 책의 주인공은 이 질문을 하면서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는 오늘도 참으로 십자가의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의 원수들, 우리를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면 역사를 바꾸는 경천 동지할 일들이 일어 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십자가는 장식이 아니라, 삶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고 다시 사는 곳입니다. 나의 죽음으로 이웃을 살려내는 곳입니다. 나의 죽음으로 공동체를 살려내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또 다른 더 큰 공동체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 십자가의 살롬을 경험한 공동체를 바로 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2. 이방인과 유대인의 벽도 무너진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 남자들의 유명한 세 가지 감사를 기억하십니까? 첫째가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나게 하신 것을 감사, 둘째가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을 감사, 셋째는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을 인해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두 가지는 많이 변했는데 세 번째 감사는 지금도 안 변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이방인에 대한 편견은 정말 뿌리 깊은 것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라고 했겠습니까?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의 증언에 의히면 과거 예루살렘 성전에 이방인의 뜰과 성전 구내를 나누는 곳에는 높은 벽이 있었고 거기에는 또 한 성전구내에 침입하는 이방인은 누구든지 사형에 처한다는 경고문이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경고문 두개가 1871년과 1935년에 발견 됨)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벽이 중간에 막힌 담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헐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이방인과 유대인을 한 몸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16절을 읽어 보십시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실제로 본문의 시작인 12절은 이방인의 예수이전의 상태의 증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들,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들 그리고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후 예수를 믿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언약을 기다리는 자가 되고, 함께 교회 안에서 예수 믿는 유대인들과 한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편견의 벽이 무너진 기적입니다. 이 기적이 가능했다면 이제 우리가 무너뜨리지 못할 편견은 없습니다. 당신의 편견은 무엇입니까? 지방색입니까? 인종입니까? 교육입니까? 자본입니까? 이제 우리 각자의 편견을 십자가 아래서 내려놓을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죄인 된 당신 같은 사람을 받아 주셨다면 당신이 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13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는지라”

3. 성령으로 함께 아버지께 나아옴을 학습해야 합니다.

자, 여러분! 이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벽이 무너지면서 우리에게 일어난 가장 위대한 기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8절이 그것을 증언합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함이라”

쉽게 말할까요? 그들이 함께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함께 한 자리에서 함께 아버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함께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하늘의 평화를 경험한 샬롬의 공동체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도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은 견고하지만 이스라엘 메시아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종종 팔레스타인 아랍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예배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고, 제가 이스라엘 방문시에 들었던 소식중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 지도자들과 아랍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함께 광야에서 만나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는 놀라운 부흥의 자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 있었던 가장 큰 편견 세 가지는 유교문화권 아래 오래 동안 지속되어 온 남녀의 성 차이에 대한 편견, 다음으로 신분에 대한 편견, 그리고 지방색의 편견이었습니다.(지방색은 사실 최근세사의 정치가들의 왜곡된 민중 선동으로 강화된 것) 그런데 이 세가지 편견을 무너뜨린 한 교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 한 달전 은백회를 중심으로 국내 성지 순례를 하면서 우리가 은혜 받은 곳이 많았지만 특히 우리는 전북 김제군 금산리 정읍과 김제읍으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금산교회 방문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이 교회는 우선 < ㄱ >자 건축으로 유명합니다. 남북으로 다섯간, 강단에서 동으로 다시 두 칸 집을 덧붙여 27평의 건물을 1908년 4월 4일에 헌당하여 지었던 것입니다. < ㄱ >자는 남녀를 구별하여 커텐을 치고 서로 눈길을 주지 않고 예배하기 위한 구조였던 것입니다. 유교의 영향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경을 공부하면서 점진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커텐을 걷습니다. (1920년) 첫 번 째 편견 남녀의 차이를 극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던진 더 큰 감동은 따로 있습니다. 

이 교회가 던진 더 큰 감동의 간증은 이 교회 개척 공신이었던 조덕삼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지역에 최초로 복음을 전한 Tate(최의덕)선교사에 의해 이 지역 지주인 마방을 운영하던 그가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그의 사랑채에서 금산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에 조덕삼의 마부였던 이자익이란 청년이 복음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주인 조덕삼과 이자익은 함께 세례를 받습니다. 함께 집사로 임명을 받습니다. 문제는 세월이 지나 장로 투표하는 날이 다가온 것입니다. 이 투표는 최의덕 선교사의 사회와 예배에 이어 진행되었는데 여기서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마방의 주인 조덕삼은 떨어지고 그의 하인 이자익이 당선된 것입니다. 주목할 사실은 이 마부 이자익은 전라도 출신이 아닌 경상도 출신인 것을 온 교회가 알았음에도 그가 피택된 것입니다. 이 발표가 선언되자 교회당은 찬물 끼얹듯 조용해 졌고 긴장감마져 감돌았습니다. 

그런데 뜻 밖에 조덕삼이 일어나 발언권을 얻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금산 교회 교인들은 오늘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당선될 분이 당선된 것입니다.)참으로 감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교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후 조덕삼씨도 장로가 되었고 그는 자기 하인 이자익 장로를 신학교에 보내어 목사가 되도록 지원하여 그는 그를 다시 자기 교회 담임 목사로 청빙하여 그를 섬겨 지역 복음화에 헌신합니다.(세 번에 걸쳐 장로교 총회장으로 봉사) 

이 교회는 신분의 편견과 지방색의 편견의 벽을 보기 좋게 허물어 버리는 기적의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마부 이자익을 섬긴 조덕삼 장로 이야기)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참된 교회 공동체상이 아닌가요!

그런데 더 큰 감동의 사건은 그후 2005년 4월 29일에 일어납니다. 대전 신학교에서 이자익 목사님의 전기 출판 식을 갖던 날, 강당에 초만원을 이룬 가운데 조덕삼 장로님의 손자 조세형 장로님(금산 교회 3대 째 장로, 국회의원, 주일대사)이 축사를 한 후 이어서 인사말을 이자익 목사님의 손자인 이규완 장로님(대전 제일 교회 장로, 카이스트 대 고분자 화학 교수)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는 조세형 장로님 앞에 먼저 머리숙여 인사를 한 후 이렇게 인사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주인을 잘 만나셨습니다. 만약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못 만났다면 우리들도 없고 우리 할아버지도 안계셨을 것입니다”고. 

이 말은 사실이지만 이 말을 좀 더 성서적으로 바꾼다면 이 분들은 서로를 잘 만났다기 보다 예수를 잘 만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참된 구주요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루어진 벽을 허는 사랑의 기적, 십자가의 기적인 것입니다. 나는 이런 기적이 우리 교회중에 아니 한국 교회 안에 21세기의 기적으로 재현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기적의 마당, 샬롬의 기적의 공동체가 우리 중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십시다. (이동원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