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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혼합주의에 대한 경고의 말씀 (레 19:19-20, 고후 6: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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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독교인 25.4%가 종교다원주의를 허용하고 있다는 통계자료가 있습니다. 전체 기독교인의 4부의 1이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교인의 63.6%가, 천주교인의 62.5%가 어느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종교 성향은 한국인의 독특한 종교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사고가 혼합적이라는 말입니다. 
  
어느 기독교 신문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종교 생활은 종교성이 약화되고, 다원주의 경향이 심해진다고 하였습니다. 개신교인들이 교리에 동의하는 비율이 낮아지고 있고, 개신교인 절반이 성직자가 권위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종교의식은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종교다원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의 구원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종교다원이란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구원자인 그리스도는 얼마든지 많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그리스도라고 하는 유일의 메시야에 대하여 반대합니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가 없는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우리가 믿는 야훼 하나님이 아닌 신은 영혼을 구원하거나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신은 그 이름이 무엇이건, 그 종교가 무엇이건 간에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가 아니면 이 또한 참 하나님이 아닙니다. 
  
종교학자들은 한국인의 의식구조나 종교의식이 혼합적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의식구조나 종교의식이 혼합적인 것은 비빔밥문화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비빔밥은 이것저것을 다 섞어서 먹는 혼합식사입니다. 우리 식사는 비빔밥뿐만 아니라 국밥도 그렇습니다. 국에 밤을 말아서 먹습니다. 섞어찌개도 그렇고, 부대찌개도 이것저것 다 집어넣어 끊여 먹습니다. 요즘에는 콜라와 사이다도 섞어 마시고, 술도 섞어 마시는 폭탄주가 있답니다. 무엇이든지 잘 못 섞으면 폭탄이 됩니다. 
  
우리 시대는 퓨전이 대세입니다. 미래는 퓨전사이언스 시대라고 합니다. IT(정보기술)와, BT(바이노기술)와, NT(나노기술)를 접목해서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합니다. 인공심장도 있고, 가상세포 프로젝트 등 최첨단 퓨전 과학이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에서 사역하는 권오덕선교사의 부친이 권세열목사님이십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저의 교회에 그분을 모셔서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영어와 한국말을 모두 잘 하셨습니다. 설교 서두에 “성경에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오늘 부득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습니다”라고 시작하셨습니다. 한참 설교하시가 본인도 영어와 한국말이 혼돈되어 두 말을 잘 못하셨습니다. 한 입으로 두 말을 할 수는 있지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며 한 영혼이 두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영혼의 혼합은 신앙이 아닙니다. 영혼은 유일합니다. 영혼은 혼합이 불가능합니다. 
  
레위기 19:19에는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섞지 말라고 하십니까? 왜 혼합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신명기 22:9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다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고 하십니다. 10절에는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라고 하십니다. 11절에는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과 다른 신을 혼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혼합주의를 배격하십니다. 

  
째, 성전과 우상은 하나 되지 못합니다. 

고린도후서 6:16 상반절에는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하리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이 있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장 거룩한 곳에 가장 더러운 것 있다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절대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거룩한 성전과 같은 몸에 귀신이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는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아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한 회당에 더러운 귀신이 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과 귀신은 함께 하지 못합니다. 우리교회 안에 귀신이 들어올까요? 어림도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6:14-15에는 의와 불법,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벨리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함께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시약성경 당시에 ‘그노시스주의’라고 하는 영지주의는 심각한 이단이었습니다. ‘그노시스’는 지식이란 말인데 높은 지식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여 가현설이라는 이단설을 만들어냈습니다. 유대주의, 동방의 신비주의, 그리스 철학 등 그리스도와 혼합된 일종의 혼합주의였습니다. 최근에도 ‘다빈치 코드’는 예수님의 신성을 거부하는 소설입니다. ‘유다복음’은 영지주의 가인파의 복음입니다. 지식주의와 복음이 혼합된 것이 이런 유의 책들입니다. 
  
미국에서는 혼합주의적인 신비주의인 ‘카발라’가 계속 번져가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나온 신비주의 사상입니다. 세상에 들어온 악으로부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님 나라의 수립이라고 믿는 것이 ‘카발라’ 신앙입니다. 종말론적인 형태의 중세 유대교의 신비주의인 명상과 계시, 마술 등의 요소와 초기 기독교가 뒤섞인 혼합주의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 카발라입니다. 이런 혼합주의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했던 마귀의 시험에는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는 시험이 있습니다. 아무 것에나 경배하려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시험입니다. 혼합주의의 시험입니다. 우상을 만들고, 신을 만들고, 미신을 믿고, 무속을 따르는 것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긴 역사입니다. 우상숭배는 인간의 역사와 맞먹은 인간사입니다. 
  
요한계시록 2:14에는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거룩한 전 안에도 세속적인 우상이나 물질이나 지식이 들어오게 유혹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더 섬기는 것은 모두가 우상입니다. 우리의 취미나 운동, 물질이나 습관 이 모든 것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모두 우상입니다. 
  
우상숭배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제쳐두고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게서 육체적,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자원 공급을 찾으려는 관습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이 그분의 지혜로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는 것에 의지하기보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 예를 들면 돈, 과학, 교육, 연인, 섹스, 권력 혹은 우리 자신 을 통해 필요를 채우려는 욕구가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언제나 혼합주의라는 좀 더 미묘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레위기 20:27에는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죽이신 이유가 이런 무속인에게 의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를 책망하시는 이유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성전의 깨끗함을 지켜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6:16 하반절에는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합니다. 성전과 우상은 일치하지 못합니다. 성전은 유일성을 지켜야 하고, 언제나 깨끗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를 보세요. 열왕기상 6:7에는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합니다. 성전은 외형이 청결할 뿐만 아니라 소리도 깨끗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기록이 두 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공생애 초기와 말기에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까? 깨끗해야 할 하나님의 성전이 깨끗하지 못하니까 깨긋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전이 상업주의로 물들어 물건을 사고파는 자리로 전락했습니다. 성전이 교권주의로 제사장이 장사꾼에게 이권을 주고 자릿세를 받는 장터로 전락시켰습니다. 

성전이 혼합주의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에돔 사람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하나님 성전을 건축하여 종교와 정치가 야합한 것입니다. 제사장들도 헤롯이 성전을 지어주는 것을 묵인하였습니다. 정치적 목적과 종교적 목적이 혼동된 것입니다. 혼합된 성전이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대제사장과 헤롯의 결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성전입니다. 이런 성전을 예수님께서 좋아하실 리가 없습니다. 
  
교회 속에는 온갖 세상적인 것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희망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비난하지만 세상은 교회가 없으면 망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보세요.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기도를 합니다. 기도가 계속되는 동안 하나님은 멸망을 유보하시지만 기도가 끝나자 유황불로 멸망시키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 나라가, 이 도성이 망하지 않게 하는 힘입니다. 
  
사도행전 27장에는 바울이 로마로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 배에 탄 사람은 모두 276명이었는데 밤에 사자가 바울에게 나타나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276명이 바울 한 사람 때문에 목숨을 잃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때문에 세상 사람이 삽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희망입니다. 
  
교회성장은 경제성장의 기초입니다. 교회쇠퇴는 경제쇠퇴의 요인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비추는 희망의 등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개인이나 교회가 깨끗해야 합니다. 깨끗하지 않은 개인과 교회가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지 않습니다. 
  
세상과 교회는 마치 물과 배의 관계와 같습니다. 육지에 있는 배는 가장 안전하지만 그러나 배는 육지에 두려고 지은 것이 아니라 바다에 다니려고 지은 것입니다. 아무리 바닥 험해도 배는 바다에 있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이 없으면 교회는 가장 안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을 위해 세우셨습니다. 배는 물에 떠 있어야지 물에 가라앉으면 안 되듯이 교회가 세상 위에 고고히 서 있어야지 세상 속에 빠지면 안 됩니다. 등불은 등경 위에 둬야 하고, 등대는 산 위에 있어야 합니다. 
  
아주 옛날 초기 전쟁에서 군인들이 전사한 것은 총알이나 포탄 때문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총상에 뒤따르는 감염 때문에 죽은 자가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초의 인류의 죄가 아니라 죄의 결과로 무너진 인격이나 도덕성이 인간을 더럽게 만들었습니다. 회개는 그 과정 끊고 인간을 깨끗하게 합니다. 
  
요한일서 1:7에는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합니다. 회개는 피로 씻는 예식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을 만큼 권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모든 사람의 피를 씻을 만큼 힘이 있습니다. 
  
여러해 전 일본 홋가이도 오타루라는 곳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호텔에서 내려다본 바다의 경광이 절경이었습니다. 호텔 아래쪽에 요트주차장이 있었는데 방파제가 두 겹으로 되어 있어 아무리 파도가 쳐도 요트는 꿈쩍도 안 했습니다. 파도는 항상 있지만 파도를 막는 장치가 있으면 배는 아무 흔들림이 없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죄가 많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세상의 죄가 문제가 아닙니다. 죄를 막는 힘이 있다면 죄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힘이 있으면 세상의 것이 감히 침입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깨끗한 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채찍을 드십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하시려고 채찍을 드십니다. 사람이 주인이 된 더러운 교회를 깨끗하게 하시려고 채찍을 드십니다. 교회가 만민의 집이 되게 하시려고 채찍을 드십니다. 교회가 어떤 특정한 사람의 집이 되지 않게 하시려고 채찍을 드십니다. 교회가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시려고 채찍을 드십니다. 교회가 장사하는 집이 되지 않게 하시려고 채찍을 드십니다. 전도서 5:1에는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서 신을 벗는 모세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깨끗한 하나님의 집에는 깨끗한 사람들이 들어올 자격이 있습니다. 교회를 깨끗케 하는 깨끗한 성도가 되길르 바랍니다. 

  
결론 

오래 전 일본의 도시바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되는 반도체가 결함이 발생했습니다. 일반적인 발생률보다 항상 많은 결함이 발생하여 비상이 걸렸습니다. 알고 보니 멀리 철로가 있는데 기차가 지나갈 때 생기는 아무 작은 진동으로 결함이 발생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미 공장이 세워졌고 엄청난 투자를 했는데 공장을 이전할 수도 없는 형편에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때 한 여직공이 좋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공장 주위에 해자(moat)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옛날 성 주위에 인공 호수를 파서 물을 담아 놓아 적들이 벽을 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여직공의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공장 주위 전체를 해자로 둘렀더니 결함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우리 영혼, 우리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막는 해자 필요합니다. 방파제가 필요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세상의 것이 나가게 하지만 세상의 것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들어온 세상의 것을 내보낼 것이 아니라 아예 세상의 것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세상의 것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하면 교회는 더 이상 교회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여호수아 24:15에는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여호수아가 결단합니다. 우리도 이런 결단을 가지고 세상과 혼합되지 않는 정결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세상과 혼합되지 않는 교회가 되게 합시다. 세상과 함께 하되, 세상 속에 빠져 안주하지 않는 우리들과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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