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어머니 교회의 모습 (행 2:37-47)

  • 잡초 잡초
  • 276
  • 0

첨부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어머니 교회
 
- 김명혁 목사 


바로 나흘 전에 어느 영화사의 감독과 세 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는데 여러 가지 질문들 중의 하나가 오늘의 한국교회가 왜 사회로부터 불신과 비판을 받고 있느냐는 질문과 함께 한국교회가 이제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불신과 비판을 받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과 신자다운 신자의 삶을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교회가 교회다운 모습과 신자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지녔던 모습을 지닐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나흘 전에 한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오늘 좋은 소식교회에 두 번째로 와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어머니 교회의 모습”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를 바라보시면서 아주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자 예수님의 피로 그리고 성령님의 강림으로 세워진 교회였고 성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교회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사야에게 예언하신 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님과 그의 피로 세워진 교회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구원의 복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를 바라보고 기뻐하시면서 예루살렘 교회를 축복하셨습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행2:47). 그러면 이제부터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었고 백성들의 칭송을 받는 교회가 되었는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회개하는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途꼈� 구하시는 제사는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제사라고 말씀했는데,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8장에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는 바리애인의 유창한 기도가 아니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가슴을 치는 세리의 회개하는 기도라고 말씀했는데,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가슴을 치며 우는 회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선포하신 말씀도 회개하라는 말씀이었고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도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메시지를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라는 것이었는데,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의 분부를 따라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했고 그리고 모두가 가슴을 치며 회개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축복받으라는 설교나 성공하라는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저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으며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행2:37,38).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램 교회는 회개로부터 시작했고 회개로 계속해서 자라갔습니다. 사도행전 3장과 4장과 5장에서도 사도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행3:14,15).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행3:19).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4:1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5:30,31). 결국 예루살렘 교회는 회개로 시작해서 회개로 계속되었다고 하겠습니다.

한국교회의 어머니 교회라고 할 수 있는 평양 장대현교회도 회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1907년 1월 평양장대현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렸습니다. 갈선주 장로는 기도회 도중에 갑자기 일어나 큰 소리로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올시다” 라고 외치면서 지난 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속였고 친구와 그의 부인을 속인 도둑놈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이 그 돈을 부인에게 돌려주겠습니다” 라고 공중 앞에서 눈물로 자복하였습니다. “나 때문에 온 회중이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죄인 중의 죄인이올시다” 라는 자복기도는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회중은 이 때 모두 마루 바닥을 치면서 회개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한쪽 구석에서 어떤 사람이 울기 시작하였고 이어 모든 청중들이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일어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는 털썩 주저앉아 흐느껴 울다가 마루 위에 뒹굴며 고뇌에 찬 모습으로 마루바닥을 두 주먹으로 두들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절하게 회개하는 장대현 교회를 기뻐 받으시면서 한국교회를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한국의 어머니 교회인 장대현교회는 이렇게 회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뿐이 아니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은 전국교회를 다니면서 사경화를 인도하셨는데 사경회 때마다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라는 찬송을 계속해서 부르시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합니다. 이기풍 목사님도 이성봉 목사님도 김치선 목사님도 평생 스스로 회개하시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지니려면 그리고 사회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모습을 지니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부끄러운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상하고 통회하는 회개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회개하는 교회를 아무도 불신하거나 비판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회개하는 교회를 하나님께서도 내 버리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려면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과 동정과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교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부끄러운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회개하는 교회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예루살램 교회의 모습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도들은 보통 사람들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의 대리자들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대리자들인 선지자들이 있었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대리자들인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적한 대로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교회의 터이고 예수님은 교회의 모퉁이 돌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2:20).

결국 교회는 보통 사람들의 말을 듣는 곳이 아니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대리자들인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말을 듣고 가르침을 받는 곳입니다. 즉 하나님과 예수님의 대리자들인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고 그 가르침을 받는 곳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이 당신들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는 것을 보시며 기뻐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사무엘의 가르침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발 아래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는 베다니의 마리아를 보시고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10:42).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교회였습니다. 회개하라고 하면 회개하고 세례 받으라고 하면 세례 받고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하고 교제하라고 하면 교제하고 봉사하라고 하면 봉사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라고 하면 팔고 밭을 팔라고 하면 팔았습니다.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4-37).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가르침을 받으며 사는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와 성도들이고 그리고 백성들의 칭송을 받게 되는 교회와 성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초대교회도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고 순종하는 말씀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인 길선주 목사님은 요한계시록을 만독했고 요한계시록을 모두 암송했다고 합니다. 조선교회에는 처음에는 부흥회는 없었고 사경회만 있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에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유명한 사람들의 말이 너무 많이 들리고 인기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과 행사가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법륜 스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의 한국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따른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좋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고 사회의 신임과 존경을 받는 교회가 되려면 주님의 말씀과 음성을 듣고 주님의 가르침을 받은 베다니 마리아의 모습과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떡을 떼며 교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예수님 안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화해하며 교제하는 것을 보고 너무너무 기뻐하신다고 시편 기자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1-3).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지금 원수로 있는 나라와 민족들이 서로 교류하고 함께 예배 드리는 날이 온다는 예언의 말씀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사19:23).

그런데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인들은 물론 메소보다미아 가바도기아 애굽 구레네 로마 아라비아 등 십 사오 개 지역에서 온 다인종들이 함께 모여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행2:41,42). 교회의 세 가지 본질과 특징 중의 하나가 교제 즉 코이노니아입니다. 그래서 저는 강변교회를 세우면서 표어를 정했는데 그 첫 부분이 “서로 돌아보고”였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친밀한 교제가 없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회사이고 학원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이후 가장 좋은 교회였던 안디옥교회의 특징도 여러 종류의 인종이 함께 모여 교제하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장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빌립보교회의 특징도 성도들이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1:3-5). 교회는 설교 위주도 아니고 행사 위주도 아닙니다.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성도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이 참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건강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이 친밀하게 교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이 친밀하게 교제하고, 한국 사람들과 외국 사람들이 친밀하게 교제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보시고 너무너무 기뻐하실 것이고 사회와 백성들도 감동을 받으며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예루살램 교회의 모습은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14).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4:24,29,30).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6:4). 이것이 예루살렘 교회의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우리 죄인들의 기도 들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한나와 사무엘의 기도 들으시기를 기뻐하셨고 다윗의 기도 들으시기를 기뻐하셨고 히스기야왕과 엘리야의 기도 들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사56:7). 예수님도 꼭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21:12,13). 기도가 부족한 교회는 참된 교회는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회개의 기도와 새벽기도로 시작했고 회개의 기도와 새벽기도로 성장해왔습니다.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김익두 목사님 최봉석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등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고 새벽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새벽기도보다는 행사와 프로그램에 치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옥한흠 목사님이 교회가 무슨 학원처럼 프로그램에 치중하냐고 책망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 기도를 등한시하는 교회는 교회의 기본은 상실하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른 새벽에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명성교회가 새벽기도를 강조하는 모습을 너무너무 귀하고 아름답게 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기도를 힘쓰는 교회이고 특히 새벽기도를 힘쓰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사회와 민족을 위해서 북한과 일본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순수하게 금식하며 기도할 때 사회도 이웃 나라들도 한국교회를 인정하고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기뻐하시며 다시 한번 한국교회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은 사랑하고 봉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4-47).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2-37).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제일 길게 제일 상세하게 서술한 모습이 사랑하고 구제하고 봉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와 나그네와 병든 자들을 사랑하고 구제하고 돌아보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와 나그네와 병든 자들을 사랑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10:17-19).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6,7).

예수님께서도 주리고 헐벗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 곧 주님 자신에게 펴는 것과 꼭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5,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는 회개도 힘썼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도 힘썼고 교제하는 것도 힘썼고 기도하는 것도 힘썼지만 무엇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구제와 봉사의 손길을 펴는 데 제일 힘을 많이 썼다고 생각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구제와 봉사를 전적으로 하게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백성에게 칭송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게 되었습니다. 전도가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전도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전도하는 기술을 습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회개하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교제하고 기도하면서 사랑과 구제와 봉사에 전력을 다했더니 전도가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후에 안디옥교회의 전도도 바나바의 착한 행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 욥바에서 이루어진 전도도 도르가의 선행과 구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9:36).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행9:42). 온 욥바 사람이 도르가의 선행과 구제를 알고 많이 주님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한국의 초대교회도 사랑과 구제와 봉사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힘있게 이루어졌습니다. 제주도 복음화의 주역이었던 이기풍 목사님과 이사례 사모님은 기도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사랑과 구제와 봉사에 최선을 다하므로 제주도 복음화를 이루고야 말았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이 만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중요한 비결도 기도와 함께 나환자들과 원수들에게 쏟은 순수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봉사의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경직 목사님과 영락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은 것도 한경직 목사님께서 설교와 전도와 함께 무엇보다 사랑과 구제와 봉사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83년 7월 12일부터 10일 동안 화란 암스텔담에서 “국제 전도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지도아래 세계 132개국으로부터 온 4천여 명의 목회자들과 전도자들이 함께 모여서 전도대회를 가졌는데 은혜와 감동이 충만한 대회였습니다. 암스텔담 전도대회 때 빌리 그래함 박사는 “전도는 기술이 아니라 삶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전도는 기술이나 훈련보다는 변화된 사람의 삶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박사는 전도자가 전도자로서의 성결한 삶을 잃으면 전도자로서의 삶은 끝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그 때 너무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아 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들을 다시 회복하여야 하고 다시 몸에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지녔던 다섯 가지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회개하는 모습을 지녔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모습을 지녔고, 교제하는 모습을 지녔고, 기도하는 모습을 지녔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구제와 봉사의 손길을 펴는 모습을 지녔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축복을 받았고 그 결과 전도는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좋은 소식 교회를 생각하면서 준비했지만 사실은 한국의 모든 교회를 생각하면서 준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점점 세속화되어가는, 세상 유행을 따라가는,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는,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울면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종류의 사람들과 친밀한 교제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벽기도에 최선을 다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주변과 멀리 있는 도움이 필요한 가난하고 병들과 굶주리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구제와 봉사의 손길을 조건 없이 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한국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그리고 주변 나라들로부터 신뢰와 사랑과 존경을 받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무한한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돌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