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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높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시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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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시 113:4)


(시 113:4)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십니다

(사 57: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용납지 못할"만큼 크신 분이시십니다.

(대하 6:18)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는" 우주에 편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높으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 보다 하늘 보다 높으시다 합니다.. 
‘높으시며’(람)는 ‘높이 솟다’’‘고귀하다’를 의미하는 말(룸)에서 와 여호와께서는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하며 높은 존재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모든 나라들 위에’란 표현이 사용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주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들을 통치하심을 나타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최고의 지존자라는 말씀입니다.
절대 군주시대의 왕의 권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왕의 말이 곧 법이였고,신의 대리자로서 그의 말은 신의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만약 누구라도 최고의 권력자요 절대자였던 왕을 모독가거나 그에 대항하여 반기를 든다면 현존하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어야 했습니다. 왜입니까? 그 누구도 왕의 권력과 절대적인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였습니다. 그만큼 왕이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권력 을 행사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세상 나라의 최고 권세자들보다 더 높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이(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말했던 것처럼 세상의 모든 권세를 세우신 분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신 분이며,그 분보다 높거나 큰 존재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높으신 분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하늘’을 동원하고  있숩니다.
  
링컨이 언론계에 있는 그의 친구 노아브룩스에게 한 말이라 합니다. '나는 다른 방향으로는 가지 못하게 하는 위압적인 신념 때문에 꼭 그 방향으로 가곤 했던 것이 여러 번 있었다네.'

재무성 기록관 L.E. 치텐덴과의 대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리인으로 이용하시며, 인간생활에 직접 관여하신다는 것은 성경에 가장 명백하게 서술되어 있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이끄심에 대한 증거를 수도 없이 경험했으며, 내 의지 밖의 어떤 다른 힘에 의해서 조종 됐던 경우를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그 힘이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론상으로는 가시적인 근거가 없어서 결정할 길이 막막할 때도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를 명백하게 제시받곤 했던 것입니다. 나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한 식으로 결정한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그 결과가 불만족스러웠을 때이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서 결정한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후회하게 됐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라거나 하지 말하는 의견에 따라서 결정한 때는 언제나 그 결과가 만족스러웠죠. 또, 하나님께서는 중대사의 결정에 있어서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알려주십시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그 뜻을 따를 수 밖에 없는 노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높으신 하나님은 높은 곳에 앉으셨다고 합니다

(시 113:5)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높은 곳에’(합마그삐히)는 ‘높다’’‘솟아오르다’를 뜻하는 말(까바흐))에서 와 ‘높여진 자’를 뜻합니다.

‘앉으셨으나’(라솨베트)는 ‘앉기 위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앉기 위해 높여진 자’가 되는데 이는 높은 보좌 위에 앉으사 만물을 통치하시는 온 세상의 유일한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면모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프란체스코를 진지하게 바라보던 마쎄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그럽니까? 당신은 어째서 그럽니까?” 마쎄오는 마치 프란체스코를 놀리기라도 하듯 그 말을 반복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서 조용히 물었습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마쎄오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용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높은 학식도 없으며, 귀족의 혈통도 아닌데, 어째서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듣기를 바라며, 당신에게 순종하고자 하며, 또 당신과 함께 있기를 바라느냐는 것입니다. 어째서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따르려고 애쓰는 거지요?” 

프란체스코는 이 말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그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명상에 잠긴 뒤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높이 계신 분의 시선이 그런 일을 하고자 하셨기 때문이오. 그분은 모든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계신다오. 그리고 그분의 거룩한 눈은 죄인 가운데서도 더 이상 죄인일 수 없는 작은 사람, 이보다 더 자격이 없고 이보다 더 죄인일 수 없는 사람을 찾을 수 없으셨던 것이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나를 택하신 것이오. 그분은 나보다 더 천한 인간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를 택하셨고, 그분은 이 세상의 고귀한 신분, 위엄, 강함, 미모, 그리고 학식을 깨뜨리시기 위해서 이렇게 미천한 나를 택하신 것이라오.”

높은 곳에 앉으사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알 받는 사람을 위대하게 하시는 높으신 하나님 이십니다.

높으신 하나님 스스로 낯추사 천지를 살피신다고 합니다

(시 113:6)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하나님은 가장 높은 위에 앉으신 하늘도 그 영광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러우시며 하늘 위에 보좌를 두시고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면서도 연약하고 천한 인간들을 보살피기 위하여 스스로 낮추신 하나님이십니다
  
근본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사건을 예언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 구원을 위한 메시야의 사역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위하여 스스로를 낮추신 자비로우심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존귀하신 이가 이토록 겸손하게 비천한 곳에까지 임하셨습니다. 이는 앞으로 임하실 메시아의 사역 내용이 담긴 대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들이 가진 권위보다 더 높으시며 하늘보다 높으신 영광을 받으실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토록 위대하신 분이 거만하게 통치하지 않으시고“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인간의 일들에 깊은 관심을 갖고 돌보십니다.

옛날에 어떤 큰 도시에 한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저녁마다 그는 똑같은 식당에 가 똑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 청년은 몹시 외로웠습니다. 어느 날 언제나 앉는 식탁에 예쁜 장미 한 송이가 꽂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꽃을 보자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그는 날마다 식당에 찾아와 장미를 쳐다보며 식사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슬플 때도 있고, 행복할 때도 있고, 심드렁할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었습니다. 문득 자기 기분은 그렇게 늘 다른데 장미는 항상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아주 조심스레 장미를 만져 보았습니다. 전에는 감히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습니다. 딱딱한 잎사귀 가장자리를 만지는 순간, 장미가 생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교한 조화였습니다. 청년은 화가 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물 없는 꽃병에서 장미를 뽑아 손으로 으스러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는 전보다 더 외로워졌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우리에게 참 위로가 될 수 없고 오직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우리의 구주가 되신 것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주님의 실존과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희망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꼭꼭 닫힌 두려움의 문을 열어 우리를 온전한 자유와 온전한 진리에 이르게 하시는 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높으신 하나님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세우신다고 합니다.

(시 113:7)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이 세상을 지으시고 광활한 땅의 끝까지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지만  그것만이 여호와의 위대하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하고 못난 백성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자비롭게 돌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겸손함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UN 산하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의 통계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8억에 달하는 인구가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합니다.
‘기아’(starvation)는 먹을 것이 부족하여 영양실조에 이르는 심각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현재 이 세계에는 먹을 것이 없어 매일 이만오천 명 이상이 죽어 가고 있으며, 1초당 5명꼴로 어린이가 굶어 죽는다합니다

6.25 전쟁 후에 어느 영국 신문 기자가 한국을 다녀가서 한국에서 소망을 찾는 것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 했다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 나라 이 민족을 여호와께서는 먼지 더미 쓰레기 더미 속에서 허덕이는 백성들을 굽어보시고 회복시켜 세계 경제 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부강하게 하시고 G20 대회를 주최 하도록 높임을 받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히 추락해 버린 가장 비참한 지경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나라도 망하고 신앙도 빼앗긴 처지에 놓인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귀한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거름 무더기에서 우리를 높이 드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이렇게도 놀랍습니다.
높은 자가 낮아지게도 하시며 낮은 자가 높아지게 하십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가 먼저 되게도 하십니다. 종들이 말을 타고 방백들은 종처럼 땅에 걸어다니게 하십니다.
하나님 은 섭리를 통해서 가문과 문벌을 조롱하시며 때로는 인간이 자랑하는 모든 영예와 위엄을 망가뜨립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조롱하며 멸시하는 자들을 하나님을 위하여 택하십니다. 거름 무더기에서 높이 들어 방백들과 함께 세우십니다. 이것은 우리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가난이나 무식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조금도 장애를 받아서도 안되고 주어서도 안됩니다. 조금도 우리의 환경이나 조건이 어려운 자리에 있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자포자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심령의 상태가 아무리 어려운 자리에 있다고 해도 상관할 것 없습니다. 있는 그 대로 주님께 오면 됩니다.

내 심령이 가난한 대로 주님께 오면 주님은 우리에게 넉넉하게, 만족하게 하십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고 하십니다.

우리 심령이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졌습니까? 더러운 그대로 주님께 오면 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근심과 걱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고 계십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께로 나오면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거름 무더기에서 들어 세우십니다.
거름무더기는 무가치한 것들을 던지는 곳입니다. 물건이 쓸모없게 되었을 때, 아무 가치가 없어졌을 때 거름무더기에 던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에서 무가치한 존재로 거름무더기에 던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길이 미칠 때 가치 있는 존재로 바꾸십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려 세상에서 버림받은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날 때 그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셔서 가치 있게 사용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도 세상에서 버림받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날 때 변하여 새 사람 되고 복음을 전하는 가치 있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경우 아버지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아들에서 하루 아침에 노예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그는 감옥에 갇히는 죄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그가 무슨 꿈을 꿀 수 있었겠습니까 잘되어야 풀려나서 다시 노예로 살아가는 것일텐데 무슨 회망이 있겠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토와 같고 거름더미와 같은 그의 인생을 일으키셔서 당대 최고의 강대국인 애굽 땅의 제2의 권럭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에게는 가치 없는 존재란 없습니다. 
주님의 손에 들리기만 하면 마른 막대기라도 가치 있게 사용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다 무가치한 존재들이지만 이 시간 능력의 주님의 손에 잡혀서 가치 있게 사용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름무더기는 영멸의 장소입니다. 소망이 없어 보이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길은 소망 없는 우리에게 소망을 안겨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멸시하고 비웃는다고 해도 상관할 것이 없습니 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한 절대로 망하지 아니합니다.

높으신 하나님 가정의 문제까지 즐거게 하신다고 합니다

(시 113:9)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낮은 자뿐만 아니라 삶의 가장 기본단위가 되는 가정에까지 오셔서 문제를즐거움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임신하지 못했던 여자’는  ‘한나의 노래’(삼상 2:1-10)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시대에 아들이 없었던 여인은 죄인처럼 버림을 받고 가정에서 밀려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를 들으심같이 외로운 사람들에게 당당히 살 길을 열어 주시고 많은 아이를 거느리고 즐거워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고 노래하였습니다.
  
명절을 맞아 고향 집을 향하는 이들의 가정에 문제가 있다 할 지라도 가정 천국의 기쁨과 복락을 누리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남께 영광돌리며 사명감당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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