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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의 신앙적인 의미 (레 23: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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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의 신앙적인 의미 (레 23:33-43)


추석입니다.
40년만에 더위와 싸운 후의 추석이라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할까요?
구약 성경은 모두 예수의 모습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니라>(요5:39)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5:46)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절기도 결국은 그리스도의 놀라운 모형입니다. 구약은 수건을 벗고 보면 모두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2-18)

레위기 23장은 절기장입니다. 이 곳에 나오는 7절기는 모두 모세가 기록하였고 이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제1절기 유월절(레23:4-5)------그리스도의 죽음 
제2절기 무교절(레23:5-8)------그리스도와의 친교
제3절기 초실절(레23:9-14)-----그리스도의 부활
제4절기 칠칠절(레23:15-22)----그리스도와 성령의 교대
제5절기 나팔절(레23:23-25)----그리스도의 성도 부름
제6절기 속죄절(레23;26-32)----그리스도의 사죄
제7절기 초막절(레23;33-43)----그리스도의 성도 추수

그런데 추석은 초막절에 해당합니다. 초막절이 주는 교훈이 바로 추석이 주는 교훈입니다. 초막은 어떤 집입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변화하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에게 와서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17:4)

왜 베드로는 궁궐을 짓자고 하지 않았을까요? 큰 저택을 짓자고 하지 않고, 하필이면 초막입니다. 초막은 풀로 얼기설기 만들고 과일들을 달아 놓은 원두막같은 것입니다.
왜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고 모세를 그리고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을 만들자고 하였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석 즉 초막절이면 초막을 만들어 놓고 일주일을 지내야 합니다. 모세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추석에 지어 살아야 할 초막은 어떤 집인지 알아 보면 자연히 추석의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1. 초막은 구원의 집이기에 구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초막절은 추수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알곡과 죽정이를 가르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에는 우선 초막을 만듭니다.
어디에 만듭니까? 느헤미야 8장에 초막을 만드는 장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뭇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무 가지를 취하여 혹은 지붕위에, 혹은 뜰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느8:16)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초막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가을에 추수한 많은 열매들로 초막을 만들고 그 속에서 온 가족이 삽니다. 옥상이 넓은 집은 지붕위에 만듭니다. 뜰이 넓은 집은 뜰 안에 만들기도 합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은 베란다에 초막을 만듭니다. 여기 저기에 초막을 만들기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성전에 공동 초막을 만들어 그 곳에 거하며 살게 됩니다. 초막절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초막에서 자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니다. 심지어 초막절에 낙타를 타야만 하는 사람은 낙타위에 만듭니다. 배를 타고 가야하는 이는 배위에 초막을 만들어 잘 때에는 그 곳에서 자야 합니다. 여행중이라 호텔에서 지내야 하는 이는 풀을 뜯어 호텔 방에 놓고 자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나 다 초막절에는 초막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초막은 알곡을 모아들이는 집입니다. 초막은 구원의 집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초막을 지어 드리고 싶다고 말한 것입니다. 알곡으로 구원받았음을 기억하도록 초막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나는 처음으로 우리 교인들에게 갑자기 앙케이트를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주일 예배드리면서 물었습니다. 앙케이트가 나중에 182장 접수되었습니다. 12 가지 질문중에 첫 질문은 구원에 대한 확신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1. 귀하는 구원의 확신을 확실히 가지고 있습니까? 

(1)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확신이 있다 ( ) 
(2) 그저 그렇다 ( ) 
(3) 아직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 ) 

이에 대하여 162명이 누가 무어라고하여도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다는 대답이었고, 그저 그렇다가 19명, 아직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10명이었습니다. 우리 교인들은 대부분이 구원의 확신이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여 주었습니다. 모두가 영적 초막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공로나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구원입니다.

어느 날 아침 기차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오전 8시 50분발 기차가 역에 도착했습니다. 승객들은 대기실에서 나가 기차를 탔습니다. 역장은 기차가 출발한 것을 확인하고 출입문을 다시 통제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한 신사가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는 역장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기차를 타려고 티켓을 샀습니다. 그런데 늦어서 그 기차를 놓쳐 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역장이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안심하시고 저 안에 들어 가셔서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신사는 역장의 친절한 말을 듣고 역 안에 있는 역장실로 들어갔습니다. 방안에는 큰 책상이 있었습니다. 전도책자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정돈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신사는 자리에 앉아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다음 기차를 탈 때까지는 시간이 넉넉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역장이 플랫폼에 서 있었습니다. 기차가 도착하자 한 신사가 내리더니 역장에게 말했습니다.
<역장님,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아, 물론 기억합니다. 당신은 전에 기차를 놓쳐서 곤란을 겪었던 분이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그 때 저는 기차를 놓쳐 당신의 도움을 청했었습니다. 그 날 아침에 나는 기차를 놓친 대신 나의 구세주를 발견했습니다. 그 전까지 나는 하나님을 생각할 만한 시간 없이 사업으로 눈코 뜰 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나는 역장님 방에서 그 분에 관한 책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날 기차를 놓친 것, 그리고 역장님을 만

우리는 추석에 알곡을 보면서 구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감옥에 40년가 수없이 드나들었습니다. 가죽 채찍으로 50번씩 여덟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 보호소에서 하루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바로 그 곳에서 18년 동안 봉사하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400번의 가죽 채찍이나 40년 간의 교도소 생활로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로 인해 불과 1, 2분만에 변화되었습니다.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 중에 제일 중요한 사람은 대제사장입니다. 장소중에 제일 중요한 장소는 지성소입니다. 날 중에 가장 중요한 날은 대속죄일입니다. 일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죄사함받는 일입니다.>

죄사함받고 구원받는 것이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중세 시대 전쟁에는 왕도 직접 나가서 싸웠습니다. 왕이 죽게 되었을 때에 한 병사가 왕을 구해주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왕은 그 병사를 불러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박힌 컵을 하사하였습니다. 그 병사는 정교하고 비싼 잔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네에게는 과분하겠지만 내게는 별 것이 아니네.>
구원의 선물은 하나님에게는 별 것 아닐이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추석에는 결실하여 하나님의 곳간 초막에 있는 열매를 보면서 구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초막절에는 구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2. 초막은 심판의 집이기에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추석은 알곡과 죽정이를 가르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추석에 가장 중요한 의미는 심판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초막절 즉 추석에 성전에 올라가셔서 중요한 교훈을 하셨습니다. 초막절에 가르치실 때에는 외쳐 가르치셨습니다(요7:28) 성경전체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외쳐 가르치셨다는 것은 이 곳 뿐입니다. 그 때 외치신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3-37)


알곡과 죽정이를 분명히 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도 찾지 못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오는 자는 다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에서 살고 있을 때입니다. 알곡과 죽정이를 갈라서 초막을 지은 이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를 그들은 잘 알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날 자와 만나지 못 할 자의 심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초막 즉 추석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과일이나 새 곡식을 먹으면서 맛만 느끼지 말고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미국 선교사 중국에 가서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감자를 심을 때 큰 감자는 먹고 작은 감자를 종자로 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작은 것을 먹고 큰 감자를 종자로 심습니다. 큰 것을 심으면 큰 감자가 납니다.> 그 후 중국 농부들도 큰 감자를 심었습니다. 좋은 감자를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지난 주간 뉴욕에 가 있었습니다. 911 9주년 행사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2,700명 이름을 일일이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날 밤 호텔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밤 2시가 조금 넘었을 때 누가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무서웠습니다. 호텔 카운터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누가 문을 두드립니다. 처리하여 주십시오.> 후론트에서 말했습니다.
<경찰입니다. 누가 우리 호텔에 폭탄장치를 하였다는 제보가 들어 왔습니다. 모두 밖으로 나오십시오. 위험합니다.>

황급히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벌써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던 옷차림에 담뇨를 뒤집어 쓰고 나와 있었습니다. 모두 당황하는 기색이었습니다. 경찰들이 화약 전문 개들을 데리고 방마다 수색에 들어 갔습니다. 미국에는 개들을 마약 전문 냄새 맡는 개호 훈련시킵니다. 어떤 개는 화약을 찾는 개로 훈련시킵니다. 심지어는 암 환자에게서 암 냄새를 맡는 개로 훈련시켜서 암 발견하게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수색이 끝난 시간이 4시였습니다. 한 시간 가량 더 자고 새벽기도를 인도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는 200여명을 하나 하나 살펴 보았습니다. 놀랐습니다. 불륜 관계로 자는 남녀가 구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급하게 심판할 때가 옵니다. 도적같이 옵니다.

초막절 추석에는 심판을 생각하십시다.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많으면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이 임할 때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금년은 유난히도 지진이 많았습니다. 추석에는 알곡을 보면서 추수를 보면서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어느 불신자가 성실하게 교회 다니는 성도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주일에 교회 가지 않고 씨를 뿌리고 밭을 매고 농사하여 당신보다 더 수확이 많습니다. 더 축복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때 그 성도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금년 가을에만 심판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렇습니다.
길게 놓고 보아야 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 보아야 합니다.

3. 초막은 부요의 집이기에 부요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초막절은 부요의 계절입니다. 추수하여 일년중에 가장 풍요한 절기입니다. 그래서 즐거워하며 춤추며 노는 절기입니다. 우리 민족도 추석이면 밝은 보름달 밑에서 강강수월래같은 춤을 추면서 온 동네가 즐겼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가위만 같아라.>

이것이 우리 민족이 추석때면 늘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요속에서 <차라리 추석이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달>이라는 노래가 <달 달 무슨 달 통장같이 텅빈 달>이라고 바꿔서 부른다고 합니다.
초막에 들어가면 첫 인상은 부요를 느끼게 합니다. 일년동안 지은 농사 열매를 주렁주렁 달아 놓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초막절 바로 전 절기인 대속죄일에는 슬퍼하여야 하고 초막절에는 즐거워 하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 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동안 즐거워할 것이라>(레23:39-40)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부요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추석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부요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불교 절을 가보면 어디든지 세 건물이 있습니다.
대웅전, 명부전, 삼성각입니다. 대웅전은 불타에게 소위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명부전은 죽은 사람에 대한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삼성각은 삼신 즉 칠성신, 산신, 독성신을 모시는 곳입니다. 복을 비는 곳입니다. 그런데 불교인들에게 제일 인기가 있는 곳이 바로 삼성각입니다. 

<장사 잘 되게 해주십시오, 자식 잘 되게 해주십시오, 오래 살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비는 곳입니다. 가장 붐비고 사람이 많이 몰립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원래 불교에는 삼성각이란 것이 없습니다. 삼성각은 무당 종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은 완전히 불교 고유의 것인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휴암스님이 지은 '한국불교의 새 얼굴'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불교개혁에 대한 책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마술종교, 무당종교가 불교를 지배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복에 환장한 한국 불교인들아! 너희 스승은 너희들이 구하는 왕궁을 버렸는데 너희는 그 스승에게서 무엇을 구하느냐? 나는 오늘의 불교인들의 생리에 저항하고 싶다. 설령 불교가 오늘의 병든 복 사상에 저항하다가 설사 신자가 천 삼백 만에서 백 삼십 명으로 줄어들지라도 여지없이 타락된 물질주의 복 사상을 철폐하는 데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 복에 환장한 불교 신자들아.>

불교는 기복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십자가 종교입니다. 고난을 같이 하며, 아픔을 함께 하며, 무거운 십자가를 같이 지고 가는 종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결과로 축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축복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을 복을 주시되 1,000대까지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일본 여류작가 미후라 아야꼬는 작가가 되기 전에 조그만 구멍 가게를 하였습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비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자기 집 한 쪽에 구멍가게를 낸 것입니다. 그런데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트럭으로 물건을 공급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남편도 직장을 그만 두고 이제는 구멍가게가 아닌 수퍼를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가게가 너무 잘 돼어 이웃 가게들이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것이지요.> 이 말에 자극 받은 미후라 아야꼬는 일부러 상품을 적게 준비하고 적당히 팔면서 이웃 가게로 보내주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하였습니다.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 시간에 소설을 썼습니다. <빙점>입니다.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하나님이 몇 배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추석에는 열매를 보며 부요를 생각하여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4. 초막은 나그네의 집이기에 천국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을 짓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초막에서 살 때에 사람들은 “이 곳은 내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니다. 본 집으로 돌아 가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7일간 초막절이면 초막에서 지내면서 애급에서 나그네 되었던 시절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 땅은 나그네 땅이며 우리가 가야할 곳은 영원한 천국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생활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도 저런 훈련을 해마다 한번씩 하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이 땅에 나그네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초막같은 일시적인 집에 불과합니다.
다행히 우리 민족도 추석때면 민족 대이동을 하며 고향을 찾습니다. 이런 때마다 다음과 같은 진리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1) 추석때면 조상묘를 성묘합니다.

여름내내 산소에 자란 풀을 잘 다듬어 주는 좋은 풍습입니다. 초막에서 살지는 않는다고 할 지라도 우리는 산소에 벌초하면서 인생은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숙연하게 살아야 합니다. 추석이면 우리는 나그네 생활을 하는 것이며 천국이 영원한 집임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2) 금년에도 약 3,000만 명이 이동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민족적인 대이동입니다. 민족 대이동이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 나라와 이스라엘 둘뿐이라고 합니다.
같은 셈족의 같은 뿌리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창세기 10장을 보면 이스라엘과 우리 민족이 같은 뿌리임이 분명합니다. 성경이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인간은 고향을 찾고 싶어 하고 또 고향을 찾고 싶어하는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하늘의 고향을 찾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아무리 길이 막혀도 고향가는 길은 즐거운 길입니다. 그 것처럼 하늘나라 가는 길은 즐거운 길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즐거워야 합니다.

(4) 고향에 가면 부모를 비롯한 반가운 이들을 만나듯이 천국에 가면 그리운 모든 이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천국가면 그리운 분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모두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무덤에서 만나는 이들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날 것입니다.

(5) 귀성열차나 비행기표나 고속버스 표를 지닌 자는 고향으로 가는 보증인 것처럼 믿음은 천국가는 보증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추석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1. 초막은 구원의 집이기에 구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2. 초막은 심판의 집이기에 심판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3. 초막은 부요의 집이기에 부요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4. 초막은 나그네의 집이기에 천국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평양에 갔을 때였습니다. 이북이 고향인 70대 노인들이 30명 가량 있었습니다. 이 때 예쁜 초등학교 아이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꼴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자리인 동네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모두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었습니다. 훌쩍 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본능을 귀소본능이라고 합니다. 여우는 죽을 때 꼬리를 자기 굴로 향하게 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연어는 알에서 깨어 강에 놓으면 바다로 가서 살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반드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습니다. 

추석에는 고향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정말 고향은 천국입니다. 초막절 추석에는 초막에서 살면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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