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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께 받는 기업의 상 (골 3: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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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받는 기업의 상 (골 3:23-24)


사람들은 목사를 성직자 또는 주의 종이라고 부릅니다. 목사를 성직자 또는 주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목사만 주의 종 또는 성직자라고 생각하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 전서 2장 9절에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택하신 족속과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씀이 곧 성직자를 의미하는데 성경은 그 성직자를 ‘목사는’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너희는’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성직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성직자라는 말씀은 모든 직업이 다 주 앞에서 성직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보편적으로 사람과 직업에 성과 속의 차별은 없습니다. 물론 속된 사람과 속된 직업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만 성직이고 나머지 모든 직업은 다 속되고 세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여러 해 전에 어느 대학병원 신우회 예배에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엘 가기 전에 그 병원의 열심 있는 믿음을 가진 의사 중에 여러 사람이 의사를 그만두고 신학을 하여 목사가 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식일 수도 있겠으나 썩 잘 한 일은 아니라고 설교하였습니다. 목사는 성직이고 의사는 세상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이 성경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말씀해 드렸습니다.

목회만 성직이고, 목회 외에 다른 모든 직업은 다 속된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서 사업을 하거나 직장 생활을 할 때 그 사업과 직장생활을 신앙생활과 분리시켜 생각하는 큰 잘못을 범하게 합니다. 그냥 교회생활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은 신앙생활과 분리하여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이 이중적인 이상한 그리스도인들을 생산해 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번 바른 교회 아카데미 연구원 세미나에서 어느 교수님의 연구 발표 제목이 ‘바울 선생과 야고보 씨’였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바울의 로마서와 야고보의 야고보서를 차별하여 생각한다는 것을 지적한 내용이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지적이었습니다.

바울은 당시 율법주의자들과 특히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그릇된 율법주의에 대하여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옳은 말씀이고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바울이 지적한 행함은 믿음 없는 행함을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이신득의의 교리가 무조건 행함을 부정한 것으로 오해하여 행함 없는 믿음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극단에 대하여 야고보는 행함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말씀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의 극단은 믿음 없는 행함이었다면 지나친 은혜주의자들의 극단은 행함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서로 분리될 때 극단이 됩니다.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을 때 믿음은 행함 없는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 한국 교회는 거의 율법주의자들의 극단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아 많습니다. 그리하여 그냥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교회생활만 열심히 하면 구원을 얻는 줄로 생각한 면이 많았습니다. 목회만 성직이라는 차별주의와 행함이 빠진 지나친 은혜주의로 인해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이중적이 되었고 교회에서의 생활은 주께 하듯 하였으나 세상에서의 생활은 주께 하듯 하지 못하고 분리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인 골로새서 3장 23절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주의 일입니다. 직업적인 구별은 있을 수 있으나 직업적인 차별은 없습니다. 목회자는 교회의 제사장이고 여러분들은 세상의 제사장들입니다. 여러분들의 사회생활은 세속적인 사회생활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사회생활은 그 생활 자체가 목회입니다. 목회자들이 교회 안에서 목회를 하듯 여러분들은 세상 속에서 목회하듯 사회생활을 하여야만 하니다.

목회자들의 목회도 늘 세속화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의 사회생활이 목회자들의 목회생활보다 더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리만큼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의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은 하나님 밖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안의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은 그리스도 없는 속된 세상식과 구별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직장생활과 사회생활 그 자체가 신앙생활이 되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해야만 합니다.

일을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첫째, 정직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불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는 없습니다. 주께 하듯 일을 하는 사람은 그러므로 정직해야만 합니다. 살다보면 의(義)와 이(利)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그럴 때 쉽게 의 보다 이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도 욕심이 있어서 의보다 이를 선택하고 싶은 본능이 있지만 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는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의를 선택하여야만 합니다. 

산상보훈의 팔복 중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천국을 상으로, 복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그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와 이가 충돌 할 때 이를 버리고 의를 선택하여 손해를 보게 되면 세상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복으로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초기 우리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분명 세상 사람들보다 정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정직의 면에서 세상 사람들 보다 우월하지 못합니다. 정직이라는 면에서 교인과 세상 사람들을 구별해 낼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의 세상 사람들보다 점점 더 정직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교인들은 전의 교인들 보다 점점 더 부정직해지고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선생’으로 높히고 야고보는 ‘씨’로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 교회교인들은 의 때문에 받는 손해와 핍박을 피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살고 있습니다.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기 위하여 노력하고 기도하는 우리 높은 뜻 교인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늘 하나님 앞에 있는 듯한 삶을 살았기에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듯이 우리도 그래야만 합니다. 그 때문에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는 한이 있어도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억울한 감옥살이 때문에 애굽의 총리가 되는 복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성실하라는 뜻입니다.

종들은 주인이 있을 때 성실합니다. 주인이 없을 때 꾀를 부립니다. 그것을 저들은 요령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주인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정말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일을 꾀 부릴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차이가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늘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늘 꾀 부리지 않고 성실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일 뿐 아니라 세상과 직장의 일도 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교회의 일은 열심히 하고 세상의 일은 적당히 할 수 없습니다. 목사는 교회의 제사장이기 때문에 세상의 일보다 교회의 일을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세상의 제사장이기 때문에 세상의 일보다 교회의 일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열심히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교회에 보면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하는데 가정과 세상의 일은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는 세상에는 게으르고 무능하면서 교회 안에서만 열심인 사람들 때문에 혼란스러워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일을 열심히하는 교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일을 열심히 주께 하듯 하는 교인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서 일과 봉사를 등한히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의 주 사역장이 세상과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더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셋째, 소명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세 번 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람들 중에도 정직한 사람 많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 중에도 우리 믿는 사람들 보다 더 성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께 하듯 하지 않고 사람에게 하듯 하는데도 우리들 보다 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과 성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명입니다. 주께 하듯 하는 사람은 소명으로 일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야망으로 일을 합니다. 쉽게 말해 주께 하듯 하는 신앙인들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는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는 이유와 목적은 자신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요즘 우리 한국 교회에 소명을 가지고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차이 없이 개인적인 욕심과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돈을 벌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인과 세상 사람들의 변별력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요즘 세상에는 하나님 없이 사람들이 소명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홍콩의 유명한 두 배우가 평생 모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주윤발이 자기 재산의 99%를 사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하였고, 또 홍콩의 유명한 배우인 성룡이 몇해 전에 4,000억 원이라는 재산을 세상에 환원하였습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세계 일등과 이등의 부자인 빌게이츠와 워렌버핏이 그와 같은 삶을 앞서 살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앞장서서 세계적인 부자들에게 권면하여 순식간에 1,500억 불을 모금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야망을 소명으로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은 정말로 좋아질 것입니다. ‘돈 벌어서 남주냐? 출세해서 남 주냐?’는 말과 사고방식이 ‘돈 벌어서 남 주자!, 출세해서 남 주자!’로 바뀐다면 정말 이 세상은 좋은 세상이 될 것이고 돈 많은 부자와 출세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인정받고 존경받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래야만 합니다. 그게 바로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왜 사업을 하십니까? 왜 직장생활을 하십니까? 왜 열심히 돈을 모으시고 버십니까? 야망 때문이십니까 소명 때문이십니까? 여러분의 일과 사업의 목적은 자신이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이십니까?

넷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은 그 모든 일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입니다.

주윤발과 성 룡 그리고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야망을 버리고 소명감을 가지고 세상을 위하여 위대하고 좋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그 훌륭한 일을 통하여 영광을 받는 것은 결국 그 자신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일을 다 하나님을 위하여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가 참 좋습니다. 단순한 기도이지만 할수록 정말 기가 막힌 기도입니다. 그런데 요즘 주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 부끄럽고 죄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를 시작할 때부터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 때문에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데 하나님은 요즘 우리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삶 때문에, 그리고 세상 사람들보다 더 이기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 자신의 영광을 삼으려고 하는 모습 때문에 하나님이 이름이 이 땅에서 더 이상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시기 때문에 참 많이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우리는 높은 뜻 교회 교인들입니다. 세상에 쌓이고 쌓인 것이 교회입니다. 그 많은 교회 중에 우리 높은 뜻 교회 몇 개 부흥하고 잘 된다는 것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좋은 교회 만들겠다고 너무 교회에만 열심 내는 사람들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으로 눈을 돌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신 가정과 직장과 세상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곳을 여러분의 목회지로 받아 들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그곳의 제사장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곳에서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하시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시기 바랍니다.

정직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정직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고 정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실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직장 덕 보려고 하지 말고 직장이 여러분 덕 볼 수 있도록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 한 것 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 행운아를 꿈꾸지 말고 받은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 직장에 덕을 끼치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망으로 일하지 말고 소명으로 일하시는 사람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분들 때문에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우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되기를 위하여 일하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복을 받습니다. 24절에 보면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이라는 말씀은 ‘그렇게 하면’ 이라는 뜻인데 그렇게 하면 기업의 상을 받는다고 하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물론이지만 세상에서 기업도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복과 약속하신 기업의 상을 함께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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