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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이키고 돌이키라 (겔 3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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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키고 돌이키라 (겔 33:10-16)

  
기독교에서는 죽는 길과 사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어떤 분은 ‘주여 삼창은 시끄럽고, 무당을 만드는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무당을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죽는 길과 사는 길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유다 백성은 지금 죽는 길을 갔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왜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4장 3절입니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언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언약을 모세 언약(시내산 안약)이라고 합니다. 모세 언약의 대상은 온 세상 사람들이 아니고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언약의 내용은 이와 같습니다. ‘언약을 지키면 가나안 땅에서 축복을 받고 번창할 것이고, 언약을 어기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의 하나님의 교회를 예표하는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계속해서 언약을 어기고, 우상 숭배에 빠지고, 이방 문화를 들여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어 경고했습니다. ‘언약을 지켜야 복을 줄 것이다.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너희는 포로가 될 것이다.’ 수없이 경고했건만, 이스라엘 백성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종교적으로 타락하고, 윤리적으로 부패했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 왕 사후에 두 나라로 갈라졌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B. C. 721년 앗수르 왕 살만에셀에게 멸망했습니다. 남 왕국 유다는 B. C. 587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멸망했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은 바벨론의 쇠사슬에 매여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포로가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시내산 언약이 실현된 것입니다. 
 
유다 백성이 포로가 된 것은 무엇을 예표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불신자들이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예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악하게 살면 이생에서 징계를 받고 괴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예표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다는 언약을 어기고, 악하게 살다가 이생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성전도 파괴되었고, 집도 잃게 되었고, 가족과 흩어지고, 고향도 잃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의 죄악에 대해서 징벌하시는 예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유다 백성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갔지만, 하나님의 영광(Shekinah)이 포로가 된 유다 백성에게 옮겨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에스겔 1장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그발 강가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24장 5절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온 사람들은 극히 좋은 무화과이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극히 악한 무화과라고 말씀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포로가 된 유다 백성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선지자(다니엘, 에스겔)들을 세워서 경고하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이 포로가 된 백성을 버리셨다면, 왜 하나님의 영광이 바벨론에 옮겨 왔으며, 포로가 된 사람들을 극히 좋은 무화과라고 칭하며,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하시고 교육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포로로 끌려 온 백성, 악으로 말미암아 징벌을 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유다 백성을 위한 파수꾼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에스겔 33장 7절입니다.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 
 
본문에서 에스겔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포로가 된 유다 백성에게 긴박하며,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돌이키고 돌이켜 살길로 가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Ⅰ. 유다 백성의 영혼상태는 어떠한가? 

첫째,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에스겔 33장 17절과 20절입니다.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공평치 아니하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치 않은 일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들과 언약을 맺은 대로 시행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은 자신의 허물을 반성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난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백성이고, 복을 받을 백성입니다. 축복은 우리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삶에 비참함이 오고, 고통이 오는 것입니까? 그 원인은 우리의 악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내게 무슨 악이 있기에 이런 고통이 왔는지 살펴보고 반성해야 합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도리어 비난하고 원망했습니다. 자신의 악은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그들의 마음속에는 절망감이 가득했습니다. 에스겔 33장 10절입니다.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중에서 쇠패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포로가 된 백성에게 편지를 보내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포로가 된 백성 사이에서 예언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언하던 사람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로 13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은 지금 유다 백성을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고통을 주시지만, 망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죄악을 고쳐 소망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다 백성은 절망감에 시달립니다. 
 
셋째, 완전히 망했는데도 여전히 자신들의 능력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자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33장 24절입니다. “인자야 이 이스라엘 황무한 땅에 거한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중다한즉 더욱 이 땅으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아브라함 혼자 보다 자신들이 숫자가 많기 때문에 그 땅을 기업으로 줄 것이라고 자만했던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죄로 말미암아 죄를 받고, 포로가 되었음에도 계속해서 죄를 짓습니다. 
 
넷째, 대인관계의 죄악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에스겔 33장 15절입니다.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찌라”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가난해서 겉옷을 전당 잡히고 돈을 빌려 밥을 사먹고 연명(延命)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겉옷을 전당 잡혔으니 낮에는 속옷만 입고 다닙니다. 낮에는 속옷만 입고 다녀도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추워서 얼어 죽습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은 돈을 못 받아도 옷을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은 전당물을 잡고 돈 받을 때까지 절대 돌려주지 않았고, 억탈물을 돌려주지도 않았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율례는 레위기 18장에 나오는 성윤리입니다. 골육지친(骨肉之親)의 하체를 범치 말고, 동성애를 하지 말고, 수간(獸姦)을 하지 말고,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포로가 되었음에도 전당물을 잡고 있고, 물건을 훔치고, 성적으로 부패했습니다. 에스겔 33장 26절입니다. “너희가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하고” 
 
에스겔 선지자는 이런 유다 백성을 향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악한 길에서 돌이켜 살길을 찾으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Ⅱ. 본문은 기본구원을 위한 메시지가 아니라 건설구원을 위한 메시지이다 

구원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입니다. 기본구원은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내세에 관계된 것이고, 예수 믿고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할 행위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기본구원으로 끝나지 않고, 건설구원이 있습니다. 기본구원이라는 터 위에 상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생에서도 축복을 건설해 나가고, 내세에서도 하나님의 상급을 건설해 나갑니다. 어떤 사람은 금과 은, 보석으로 건설해 나가고, 어떤 사람은 타버릴 나무나 짚으로 건설해 나갑니다. 하나님이 공력을 테스트하여 타버릴 것은 상을 주지 않고, 안타는 것만 상을 주시는 것이 건설구원입니다. 건설구원은 우리의 언행심사(言行心思)로 받는 것입니다. 
 
에스겔 33장은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성도를 향한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이 분명합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에스겔 선지자가 말씀을 전하는 대상은 이방 나라가 아니라 유다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에스겔 25장부터 32장까지 일곱 나라(이방 나라)에 대한 예언을 모두 마쳤습니다. 에스겔 33장부터는 다시 유다 백성의 회복을 위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은 엄격히 구별되어 있습니다. 유다 백성은 성도의 예표입니다. 
 
둘째,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 민족의 파수꾼이지 모든 나라의 파수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파수꾼을 세워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이 본문을 기본구원에 적용하면 행위구원설에 빠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의를 행하면 천국가고, 악을 행하면 지옥 간다는 말은 성경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의를 행하면 살고, 악을 행하면 죽는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를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도가 악을 행하면 망하고, 의를 행하면 산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33장에 열거된 죄악들은 모두 신자들이 짓는 죄악입니다. 전당물을 오래 잡고 있는 것, 피 있는 고기를 먹는 것,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는 것,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이욕을 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삶의 고통과 쇠패함을 가져온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Ⅲ. 에스겔의 간절한 탄원내용 세 가지 

에스겔 33장 11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에스겔이 탄원하는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악의 길은 반드시 죽는 길입니다. 죽음이란 육신적 사망뿐 아니라 모든 소망이 끊어지는 쇠패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언약의 백성이 악한 일을 계속해서 행하면 멸망하게 됩니다. 신약성경에서도 같은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로 13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함께 믿는 형제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성도들도 죄성에 이끌려 살면 이생의 삶이 반드시 쇠패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가 바람을 피우면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도박하고 거짓말만 하고 다니면 분명히 망할 것입니다. 점쟁이에게 점치러 다니면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사울이 왜 망했습니까? 엔돌의 신접한 여자에게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했다가 망한 것입니다.  바람을 피우고 계신 분들, 도박에 빠져 헤매시는 분들은 추석 명절을 당하여 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절대로 제사 지내지 마시가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신 사람이 귀신에게 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성도들이 계속해서 악을 계속해서 범하면 결국 죽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성도가 악으로 말미암아 쇠패한 길을 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성도 한 명을 구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시고 사셨는데, 성도가 악을 행하여 망하는 길로 간다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애굽에서 건져낸 백성이 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고 쇠패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랫동안 참고 참으시다가 징벌하십니다. 즉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해 놓고도 선지자를 계속 보내어 살길을 가라고 탄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성도가 악행에서 돌이키면 정녕 살고 죽지 않습니다. 에스겔 33장 12절입니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하리라” 우리가 악을 행하여 망하는 길로 가다가도 돌이키면 그 악이 우리를 엎드러뜨리지 못합니다. 이 말씀은 위로의 말씀입니다. 

에스겔 33장 15절입니다.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찌라” 제가 미국에서 목회 할 때입니다. 큰아들 승환이를 태우고 심방을 가다가 넓은 길을 만났습니다. 핸들을 틀었는데 차선을 잘못 들어 역주행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후에 경찰차가 다섯 대가 왔습니다. 경찰에게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설명한 후 주의를 받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거꾸로 가면 죽게 됩니다. 그 길에서 사는 방법은 돌이키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돌이키고 돌이키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 론 

성도를 쇠패하게 하는 이유는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성적인 죄악, 도적질, 방탕함, 술 취함, 도덕적인 부패에 빠진 성도들은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이 정녕 사는 길입니다. 과거에 행한 악이 있더라도 그것이 우리를 엎드러뜨리지 못합니다. 이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데 왜 죽고자 하는 것입니까? 에스겔은 성도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 본문으로 ‘돌이키지 않으면 인생이 불탈 것이다(Turn or Burn).’라고 설교했습니다. 우리 영혼이 얼마나 귀합니까? 예수님이 피 값으로 사셨고, 천하보다 귀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시고, 악으로 말미암아 망하게 하지 마시고, 돌이켜서 의롭게 살며 하나님이 마음껏 복 주시고, 번창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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