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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라합의 신앙과 복 (수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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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의 신앙과 복 (수 2:1-12)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기생 라합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라합은 본래 축복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멸망 받은 여리고 성의 기생에 불과했습니다. 70인역 성경에는 그를 매춘부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중에 아름다운 이름,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1) 그는 다윗 왕의 고조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마 1:5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보면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일개 멸망 받을 성의 기생이 일약 한 나라의 왕의 고조 할머니가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신분 상승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족보에 등재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46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 라합의 이름이 있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거룩한 여자가 아니라 창녀였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일에 공헌한 5대 여인 중에 한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멸망 받는 여리고 성에서 멸망의 백성이었지만 멸망에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이미 드린 대로 다윗 왕의 고조 할머니가 되고 메시야 탄생을 위해 이어지는 족보에 올라가는 엄청난 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답을 신약 성경 히브리서 기자는 그 이유를 “믿음” 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11:31절에 보면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믿음 때문에 구원받고 복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 믿음 때문에 다른 사람들 다 죽을 때 죽지 않고 살았고 예수님의 족보에 참여하였으며 다윗 왕을 낳는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라합이 가졌던 이러한 믿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냥 믿음으로 라고 설명하였을 뿐 그가 어떤 믿음을 가졌었는지에 대하여는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 라합의 믿음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①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라합의 신앙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을 정탐하러 갔던 정탐꾼들이 들켜서 위험에 처했을 때 라합은 자기 집에 그들을 숨겨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라합 때문에 두 정탐군은 무사히 임무를 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 정탐꾼들이 가지고 돌아간 정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사기를 높이는데 대단히 중요한 정보였습니다. 
라합이 그들을 살렸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수 2:8-12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두 사람의 정탐꾼과 라합과의 대화가 나오는데 라합의 말을 살펴보면 구구절절히 여호와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수 2:8)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수 2: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수 2: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수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수 2: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말끝마다 여호와를 거론합니다.
이것은 라합의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며 의식하는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심을 믿습니까? 

설익고 건방진 공대 4학년생이 진실한 크리스천인 어느 교수님과의 대화에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교수님은 그 학생에게 "그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은 조금은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10%를 아는가?" 했더니 100만 분지 1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대가 모르는 99%속에 하나님이 존재할 수도 있지 않는가 했더니 그 학생은 “존재하는지 않는지 그것도 모른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이 “그럼 자네가 모른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했더니 “그것도 모르겠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우리는 전 우주 공간과 시간, 그리고 모든 존재를 다 뒤져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함부로 하나님을 논하는 자체가 불경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철학 속에서, 비교종교 속에서, 역사 속에서, 이성과 양심 속에서, 실험관 속에서, 자연 속에서 찾아봐도 확실치 않습니다.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느 무신론자가 말했습니다. 
"나는 무신론자임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I am atheist, thank God)"
이것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완전하게 무신론자가 될 수 없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자주 들먹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말은 그들 마음속에 무엇인가 신 존재를 의식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의식적으로만 하나님을 부정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하게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면서 기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합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고 그가 상 주실 줄을 믿었습니다. 

②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수 2:10절에 보면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육지 같이 건너고 앞을 가로막던 이방의 왕들을 전멸시킨 것을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계 3:8절에 “그가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그가 문을 닫으면 열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단 4:35절에 보면 “그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실 수도 있다” 고했습니다. 
또한 단2:21절에 보면 “주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기도 하시는 주권자”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 127:1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그가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 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읍시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은 그가 무엇을 했습니까? 

1)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평안히 영접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의 정보를 얻기 위해 두 사람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두 사람의 정탐꾼들은 여리고성에 침입해 들어갔으나 여리고성의 수비대에 발각되어 쫓기게 되었습니다. 급한김에 어느 집으로 숨어들어갔는데 그 집이 기생 라합이었습니다. 
라합은 쫓기는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옥상위의 널어놓은 삼대 밑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뒤쫓아온 수색대를 따돌렸습니다. 궁지에 몰린 두 사람을 살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믿음을 말할 때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한 믿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정탐꾼은 하나님이 보낸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하나님의 일군을 평안히 영접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르밧 과부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평안히 영접하여 복을 받았습니다. 수넴여인도 엘리사 선지자를 평안히 영접함으로 자식의 복을 받았습니다. 

2) 믿음의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면 모험을 합니다.
정탐군을 숨겨 주는 일은 모험이었습니다. 만일 여리고 성의 군사들이 그 집을 샅샅이 뒤져서 정탐꾼들을 찾아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만일에 그 사실이 발각되면 그와 그의 온 가족은 죽임을 당할 위험이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뻐하여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말로만 나타난다면 그것은 아무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행함과 더불어 나타나야 합니다. 
믿음은 아는 것을 행합니다.
그는 여리고 성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바클레이라고 하는 신학자는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쳐서 이길 확률은 1000분의 1이었다고 연구하였습니다, 

어쩌면 라합이 가진 이스라엘이 이길 것이라고 하는 믿음은 조롱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알았고 확신하였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초대 교부 크리스소톰은 “온 세상이 나를 반대하느냐 ? 좋다 그러면 나도 온 세상을 반대하리라” 라고 말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그것이 가치있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모험을 감행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모험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③ 우주에서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한 분 뿐임을 믿었습니다. 
수 2:11절 끝에서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개역성경에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우주 만물 가운데 신은 오직 여호와 한 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절대적인 하나님을 믿기보다 마음의 수양과 마음의 평안을 위한 도적적 차원에서 종교를 신봉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절대성이나 살아 계심이나 역사하심에 관하여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없다고 해도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이 라는 것입니다. 

신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뿐입니다. 
십계명의 1계명에서 그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언급하신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출 20:2-3절에 보면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시게 여호와 한 분뿐임으로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들을 인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신으로 불리는 온갖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모두 신이 아닙니다.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 뿐입니다. 다만 인간들이 신이 아닌 것을 신으로 믿고 섬길 뿐입니다. 

라합의 믿음이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요? 
수 2:9-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여기서 두 개의 단어를 유의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는 “내가 아노라” 라고 말한 것과 “들었음이라” 는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며 유일하신 분으로 지금도 살아계신 분임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할 때 하나님에 대하여 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목표로 행진하고 있음을 알았기에 이스라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게 대하여 많은 소문들이 들려왔을 것입니다. 라합은 들리는 소문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생깁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자꾸 들으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자꾸 들으면 예수을 믿는 믿음이 생깁니다.
롬 10:17절에서 이 사실을 아주 잘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고 말입니다. 

믿음과 신념은 다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신념은 스스로「굳게 믿는 마음」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라고 하는 자기 생각에서 비롯되는 자기 확신입니다. 그래서 신념을 「인간의 믿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신념을 세워 공부를 하고, 사업도 하고 정치도 하고 그래서 신념대로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념대로 살다가 실패하여 절망의 늪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념은 사람들에게 노력과 인내를 주기도 하지만 신념은 중요한 단점이 있습니다.
반드시 성공한다는 약속과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로 신앙입니다. 신념은 자기 생각이지만 신앙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신념은 나의 확신이지만 신앙은 하나님의 확신입니다. 신념은 나의 믿음이지만 신앙은 하나님의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신념을 버리고 신앙을 붙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신앙은 바로 말씀을 주의 깊게 들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 그리고 한 분 뿐임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자기의 신념이 아닌 말씀을 들음에서 얻어진 즉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그를 멸망 받는 여리고 성에서 구원하였고 후에 다윗왕의 고조 할머니가 되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는 파격적인 복을 누렸습니다. 
메시야가 태어나는 과정 즉 구속사의 한 맥을 이어주는 놀라운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라합의 믿음을 가집시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지 말고 그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는 하나님뿐이고 생명의 구주 또한 주님밖에 없음을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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