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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것이 무엇이냐? (출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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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무엇이냐? (출 16:13-20) 
 

유대인 한 사람이 아랍인 두 사람과 함께 비행기를 탔습니다. 유대인이 구두를 벗고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랍인들이 유대인의 옆구리를 위협적으로 찌르면서 “어이, 가서 주스 두 잔만 가지고 와”하고 다그칩니다. 유대인은 기분이 나쁘지만 싸우기 싫어서 얼른 일어나 오렌지 주스를 가지러갔습니다. 그러자 아랍인들 둘이서 유대인이 벗어 놓은 구두 속에 침을 마구 뱉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유대인이 가지고 온 주스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마셨습니다.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유대인이 구두를 신으려고 보니 구두 안에 침이 질퍽거렸습니다. 그 구두를 들고 유대인이 아랍인들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랍이 평화로우려면 아랍인들은 유대인의 구두에 침을 뱉지 말아야 되고 유대인은 아랍인들이 마시는 오렌지 주스에 오줌을 싸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내적인 평화 속에서 현세천국을 누리려면 버려야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망하는 버릇입니다. 2, 3, 7, 8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그리워하면서 원망합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합니다.
민 21:4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로 인하여 원망합니다. 그들은 그 원망으로 인하여 심판을 받습니다. 갑자기 불뱀들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뭅니다.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뱁의 독으로 고통을 당하다가 죽어갑니다. 여기서서 불뱀은 악한 영들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불뱀에 물려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원망이 신앙을 죽인다는 사실과 원망이 인생에 고통을 부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를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광야에 이르렀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후에 일어난 기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그리워합니다.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추억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그들은 “차라리 애굽의 고기 가마 곁에서 죽는 것이 더 나았을 텐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광야로 이끌어내어 주려 죽게 한다”고 불평을 합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소행을 참아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 하늘의 창고를 여시고 하늘에서 양식이 비와 같이 내리게 하십니다.
하늘에서 내린 양식의 이름은 만나입니다. 만나라는 뜻은 히브리어로 ‘이것이 무엇이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려 주셨습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게 하셨고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만나는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입니다. 이것이 마치 이슬처럼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렸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물체를 보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그 말이 이것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만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수많은 보화 같은 음성이 있습니다만 오늘도 몇 가지만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방이 막힐 때도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해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사방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동서남북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나갈 길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봐야 할 곳은 바로 하늘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던 곳은 광야입니다. 광야는 말 그대로 사막입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곳이 광야입니다. 저는 이스라엘에 가서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있는 유대 광야를 보았습니다. 풀은 간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한 그루도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선 것입니다.
   
광야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정만 60만이 넘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200만 명은 족히 넘는 숫자입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광야에서 먹을 양식을 구할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정말 난감한 상황입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 주님은 찾아오셨고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먹을 것을 공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메추라기로 아침에는 만나로 백성들의 양식을 공급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이것은 구약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한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약1:17을 보면 하나님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구약 시대에 살아계셔서 역사하신 하나님은 신약시대에도 살아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공급하신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 107:19,20을 보면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가 위경을 만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험한 지경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의 한 집사님은 집을 샀는데 마지막 잔금 삼백만 원을 지불하지 못하여 계약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아는 곳에 다 연락을 해 보았지만 삼백만 원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여니 함께 군 생활을 했던 친구가 서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 내려왔다가 옛 친구가 보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그 친구가 집사님의 얼굴을 보며 말했습니다. “자네, 얼굴이 좋지 않네. 왜 그래?” “사실은 오늘이 잔금 만기일인데 삼백만 원이 없어서 집도 잃고 계약금도 잃어버리게 되었다네.” “그래? 마침 내게 삼백만 원이 있네.” 그래서 집사님이 잔금을 치르고 그 집을 샀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돕는 사람을 보내주십니다. 사방이 막혀서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방이 막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문제를 만났는데 내 힘으로 풀 능력이 없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사방이 막혀도 우리가 기도하면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2.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지 맙시다. 
   
4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명령대로 그날의 양식을 당일에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날치를 한꺼번에 거둘 수 없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한꺼번에 며칠 먹을 것을 주시면 덜 번거러울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날마다 공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날마다 공급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쌓아놓지 않았다고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신실하게 공급하셨습니다. 출애굽 이후 한 달이 지난 때로부터 시작해서 39년 11개월 동안 변함없이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쌓아놓지 않아도 염려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친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믿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내가 지금 가진 것이 없고 앞으로도 공급될만한 길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고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콘웰 목사님이 필라델피아 템플 침례교회에서 시무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기도회를 마친 어느 날 저녁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십일조 헌금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이 있는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일곱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콘웰 목사님은 그들로 하여금 앞으로 나와서 간증을 하게 했는데 모두가 십일조 헌금으로 인한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간증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일곱 번째로 나온 한 부인은 좀 머뭇거리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앞에서 간증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사실 하나님께 정직한 십일조를 드리느라 참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제 저는 나이가 많아졌고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곧 나와야 할 실정입니다. 이제 직장을 잃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런 방도가 없습니다.” 이 여인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조용해졌고 냉냉하고 낙심한 분위기로 기도회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튿날 콘웰 목사님은 당시 백화점 왕으로 알려진 존 워너메이커에게 점심초대를 받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워너메이커는 식사를 하면서 자기 회사의 일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우리 회사에서 오랫동안 잘 근무한 직원을 위한 연금제도를 실시하기 위해 수년 동안 연구를 하고 계획해 왔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25년 정도 잘 근무한 한 직원에게 평생 연금을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회사의 자랑스러운 일이요,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그 때 콘웰 목사님은 “그 평생 연금을 타는 회사원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워너메이커는 그 최초로 연금을 받는 사람의 이름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때 콘웰 목사님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어제 저녁에 일곱 번째로 나와 간증했던 바로 그 성도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바랍니다.
   
가일스 플레처의 에수님에 관한 은혜로운 글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그 분은 길입니다. 헐벗은 자에게 옷이며, 굶주린 자에게 음식입니다. 묶인 자에게 자유이며, 약한 자에게 강함입니다. 죽은 자에게 삶이고, 병든 자에게 강건이며, 눈먼 자에게 광명이고, 가난한 자에게 부요입니다. 다시는 잃지 않는 즐거움이며, 도둑맞지 않는 보물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남자 장정만 60만 명이 넘었습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200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39년 11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염려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3. 하늘 양식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몇 년 전 아프리카 오지 마을 사람들이 구토하고 신음하고 피부병이 퍼져나가더니 마침내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정부에서 전문가들을 파견하여 이곳저곳을 조사하다가 저수지를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잠수복을 입고 연구원들이 식수원 상류의 수중을 탐색했습니다. 연구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커다란 어미 돼지와 새끼 돼지들이 떼로 죽어 수원 입구에 끼어 썩어 있었습니다. 돼지들의 썩은 사체가 오염시킨 물을 사람들이 마신 것이었습니다. 연구원들이 죽은 돼지들을 치우자 물은 다시 깨끗해 졌습니다. 그리고 깨끗한 물을 마신 마을 주민들의 건강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 양식을 먹었습니다. 시105:40에 보면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를 가져 오시고 또 하늘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 양식을 먹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은 하늘 양식은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영적인 상징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늘 양식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하늘 양식입니다. 만나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요6:25) 예수님은 자신의 살은 참된 양식이고 자신의 피는 참된 음료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 양식입니다. 신 8:3에 보면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고 살았던 것처럼 우리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삽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 양식을 날마다 먹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날마다 하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묵상하며 주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하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3일 혹은 일주일동안 밥을 먹지 않고 있다가 한번에 3일치 혹은 일주일치를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몸에 이상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 양식을 그런 방법으로 섭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에 하늘 양식을 먹고 3일간 참았다가 수요 예배 시간에 또 하늘 양식을 공급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에 하늘 양식을 먹고 또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다음 주일에 하늘 양식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분명히 영적인 면에서 심각한 병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만나는 이른 아침에 거두어야 했습니다. 새벽에 이슬처럼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벽에 나가서 만나를 거두어 들였습니다. 왜냐하면 태양이 뜨면 만나는 곧 스러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새벽부터 부지런히 살라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굶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 부지런히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늘 양식은 이른 아침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슬 또한 이른 아침에 내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슬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이른 아침 새벽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얻기 위하여 새벽에 일어나서 움직였듯이 영적인 만나를 얻어먹으려면 새벽기도회에 나와야 합니다. 매일 드리는 새벽기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응답하시고 새벽에 도와주십니다.
   
새벽기도에 못나오는 이유는 늦게 자기 때문입니다. 늦게 자면 정신병과 우울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날마다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새벽을 여는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건강하고 영적으로는 신령해지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시간은 축복의 보물창고에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새벽잠을 포기하면 하늘의 보물창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하려면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저는 18살 때부터 새벽기도를 했지만 아직도 새벽체질이 되질 못했습니다. 30년을 새벽기도를 하고도 새벽마다 나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나의 육체는 잠을 원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쳐서 복종시키고 새벽기도를 나오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새벽기도 기간은 하늘의 보화를 캐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양식이 내리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서 몸의 상태도 달라지고 정신상태도 달라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양식을 먹어야 영적으로 건강하고 생활에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늘 양식을 먹어야 사람이 변화됩니다.
   
미국의 갑부 록펠러는 53세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알로페시아(Alopecia)라는 병에 걸려 머리털과 눈썹이 빠지고 소화불량으로 우유와 크래커로 연명했습니다. 그리고 공포심에 사로잡혀 수십 명의 보디가드가 지켜야 했고, 불면증으로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의사는 1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선언했고, 각 신문들은 그의 특집과 죽은 다음에 실을 조사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깨달음과 함께 회개하고 거듭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구호단체, 의학연구소, 대학 등을 도왔습니다. 페니실린도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개발된 것입니다. 록펠러는 건강을 되찾아 98세까지 살았습니다. 영원한 만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었고 또 하늘의 양식인 말씀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먹어야 건강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먹어야 삶에 활력이 넘칩니다. 사람답게, 가치 있게, 뜻있게, 보람 있게 살려면 하늘의 만나를 먹어야 합니다. 
 
4. 욕심 부리지 말고 욕심을 비우고 살아야 합니다. 
   
16절을 보면 먹을 만큼만 거두라고 했습니다. 먹을 만큼은 1인당 한 호멜씩입니다. 한 호멜은 약 2. 3리터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 호멜을 재는 그릇이 없었기 때문에 짐작으로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짐작으로 만나를 거둬다가 호멜로 되어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는 게 없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은 욕심을 부린다고 남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조금 비운다고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욕심 부리지 말고 비우며 사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말씀합니다.
톨스토이 우화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 속에 담겨있는 [우리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라는 글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시골에 사는 한 농부는 결혼해 소작을 하며 그런대로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소작을 하다 보니 지주와의 충돌도 있고, 주변에서 땅을 사기 시작하자 농부도 땅을 살 필요를 느끼게 되면서 땅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땅을 사서 풍작이 들고 여유로워 지면서 점점 더 넓고 좋은 땅을 찾아가던 어느 날 아주 매력적인 제안을 하는 마을에 머무르게 됩니다. 땅을 사고 싶은 사람이 하루 동안 걸어 다닌 땅을 모두 1천루블에 양도하는 대신 출발한 당일에 출발점에 되돌아오지 못할 때는 지불한 돈이 무효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천천히 출발하였는데 앞으로 나갈수록 자꾸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15리쯤 왔을 때 돌아가려고 했는데 땅이 너무 좋아서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고, 습지가 너무 아까워서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갔습니다. 목표점의 푯말이 점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걷다가, 자기가 욕심 부린 것을 깨닫고 그제서야 출발점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걸음을 재촉해도 5리 밖에 못 왔는데 벌써 해가 지평선 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숨이 막힐 정도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드디어 출발점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그는 쓰러졌다. 땅을 차지한 순간 숨을 거둔 것입니다.
   
그 농부의 일꾼은 주인이 가져갔던 삽으로 그가 누울 수 있는 6척의 구덩이를 파고 주인을 묻었습니다. 결국 그가 목숨을 걸고 차지했던 땅은 한 평도 되지 못하는 땅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비유적으로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인생이 마치 모래사막에 자동차가 빠져서 바퀴가 헛돌면서 빠져 나오지 못 하는 것처럼 인생의 함정에 깊이 빠져있다면 욕심을 비우십시오. 모래사막에 자동차가 빠져서 바퀴가 빠져 나오지 못할 때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타이어에서 바람을 조금 빼냅니다. 그리고 운전하면 헛바퀴가 돌지 않는답니다. 탄탄하게 바람을 많이 넣은 타이어보다 조금 덜 바람을 넣으면 된답니다.
지금 여러분이 빠진 인생의 모래사막에서 나오려면 바람을 빼십시오. 욕심을 비우십시오. 높고자 하는 욕심, 더 가지고자 하는 욕심을 비우십시오. 그러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시는 교훈을 정리합니다.
   
1. 사방이 막힐 때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고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지 맙시다.
3. 하늘 양식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4. 욕심 부리지 말고 욕심을 비우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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