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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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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 (마 16:13-20)


언젠가 심방하다가 돌예배를 드리는 곳에 가서 인도하고 돌아오는데 돌을 맡은 아이의 어머니가 책을 한권 줍니다. 보니까 그 책이 빠담빠담 파리라는 책이었습니다. 양나현 성도라고 원래 방송작가로 활동을 했었고 지금도 하고 계시는데 몇 년전 파리에서 1년정도 가이드로 활동하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파리에 대한 경험이 많아서 그 경험을 책으로 냈습니다. 우리 교인이 쓴 책이라서 열심히 읽어 보니까 재미있었습니다. 파리에 여행가실 분들은 꼭 읽어보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거기 읽다보니까 에펠탑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파리의 명물 에펠탑을 아시죠. 원래 이 에펠탑이 1889년 건축이 됐는데 312미터, 당시에는 가장 높은 골조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에펠탑은 처음에 설계할때부터 논란이 많았습니다. 저런 고철덩어리를 저기에 왜 세우느냐 하면서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에펠탑을 세우고 나서도 계속적인 반대와 방해 에펠탑을 없애자 그런 운동이 많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유명한 화가인 모파상 같은 사람은 에펠탑을 쳐다보기 싫다고 에펠탑이 안보이는 곳이 어디냐 에펠탑 1층 식당에 가면 에펠탑이 안보이니까 거기가서 식사를 하면서 에펠탑 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에펠탑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나고 지금은 에펠탑을 헐자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에펠탑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합니다. 에펠탑은 파리의 명물이라고 실제로 에펠탑 때문에 벌어드리는 관광수입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끝에 한번 올라가려면 돈을 내고 몇 백미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만큼 파리의 명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내용을 책에서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교회같습니다. 교회가 이 땅에 처음 태동할 때에는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교회가 왜 생겨서, 공산주의 권력자들 교회를 없애려고 눈에 불을 키고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역사가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갔고 오늘도 세계 곳곳에 하나님의 교회는 세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은 이제 130년정도가 되어서 안정기에 정체기에 다다랐다고 말하지만 지금도 제3세계나 아프리카에 가면 잠자고 나면 교회가 하나씩 생길정도로 교회가 놀랍게 번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의 생명력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의 모택동은 문화대혁명을 일으키고 교회를 없앨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불살라버리고 문 닫아버리고 목사와 성도들을 다 감옥에 가두고 죽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에 종교적 자유가 찾아온 이후에 뚜껑을 열어보니까 300만밖에 안되던 중국의 크리스챤이 5천만명으로 늘어나 있더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무서운 생명력은 세상의 어떤 권력도 막을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들이 기독교를 말살시킬려고 얼마나 정책을 펼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을 잡아죽이고 사자굴에 던져넣고 사지를 찢어 죽이고 굶겨죽이고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결국 로마가 기독교를 정복했습니까? 아닙니다. 로마가 기독교에 정복당한줄 믿습니다. 오히려 로마가 기독교에 정복당했습니다. 콘스탄틴대제때 A.D 312년에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생명력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못하는 교회다. 음부의 권세가 무엇입니까? 사망과 죽음의 권세이고 그 배후에는 사탄과 마귀가 또아리를 치고 있는 겁니다. 오늘도 마귀는 수많은 영혼들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수많은 생명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수 없는 공동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믿고 얻는 가장큰 축복이 무엇입니까?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왜 믿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인격도야하기 위해서 아닙니다. 예수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함입니다. 가장 큰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 보니까 내가 너희에게 생명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터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면 주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죽음의 권세가 음부의 권세가 우리를 빼앗아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영원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부를 찬송이지만 시온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없다 허락하신 말씀위에 주가 친히 세웠다 교회를 세운분은 주님이십니다. 반석위에 세운교회 흔들자가 누구랴 모든 원수 에워싸도 아무근심 없도다. 하나님의 생명의 공동체 교회속에 우리가 들어오면 아무근심할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교회는 반석위에 세워졌기에 흔들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과 마귀의 권세도 교회만은 흔들자가 없습니다. 주님이 보호하시고 주님이 지키시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1955년 10월 2일 역사의 한페이지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무슨날입니까? 우리 교회가 역사에 태동한 날입니다. 이 허름한 언덕위에 방재항목사님외 10분의 성도님이 모여서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교회의 출발입니다. 세 번의 건축을 하면서 이런 아름다운모습으로 발전해 온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우리 교회를 세워주시고 오늘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55주년의 아름다운 역사를 가진 우리 교회가 이제 음부의 권세가 틈타지 못하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못하는 교회가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먼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 음부의 권세가 틈타지 못하는 교회가 되려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교회는 이 고백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13절부터 16절입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동네를 지나가시다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말합니다. 어떤이는 세례요한 죽었던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사람. 엘리야가 살아났다고, 예레미야가 살아났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선지자중에 한사람이라고, 그런데 예수님 보시기에 그것은 다 틀린 대답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 평가했습니다. 선지자중에 한 사람으로 평가했습니다. 예수님은 좀 더 올바른 대답을 듣고 싶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속에 바른 신앙고백을 심어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또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그때 수제자인 베드로가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귀한 줄 모릅니다. 왜 귀한 고백입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그리스도란 말은 메시야라는 뜻입니다. 메시야라는 말은 기름부음받은자, 기름부음받은자는 누구를 가르키느냐 구약에서 세종류의 직책을 가진 사람입니다. 

첫째는 선지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는 기름부어 세웁니다. 그 다음에 제사장, 백성의 모든 죄를 하나님앞에 가지고 나아가서 백성과 하나님사이의 죄의 담을 허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기름부어 세우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왕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백성을 다스리고 섬기는 왕 기름부어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땅에 오실 그들의 메시아는 이 세분을 완성시킬 분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사상속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는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왕으로 오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이땅에 오셨는데 누구셨을까요? 예수그리스도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분을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제자들은 그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 기름부음을 받은자의 원어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구주, 다시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그런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이름으로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은 예수가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그건 이름이 아니고 직분을 말합니다. 메시아라는 직분, 구원자라는 직분, 이영무목사하면 앞에자만 제 이름입니다. 목사는 제 직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이 메시아시다. 바꿔말하면 예수는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고백인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죽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종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바꿔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오늘 베드로는 자기의 스승이요 스승인 예수님을 가리켜서 주는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동시에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되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고백을 한 가이사랴빌립보라는 동네는 특이한 곳입니다. 헤롯왕이 그 지역을 분봉왕으로 통치하면서 로마의 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성전을 세웠습니다.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거기가서 로마의 황제 가이사는 우리의 신이라고  하나님이라고고백했습니다. 우상이 있는 그곳, 우상의 신전이 있는 그곳, 사람들은 로마의 황제를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그곳에서 오늘 베드로는 주님 예수님 당신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당신이 구주이십니다. 당신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백한 겁니다. 이 고백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섬깁니까? 물질, 황금만능주의, 물질을 돈을 자기의 신처럼 여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쾌락을 자기의 신처럼 쾌락을 얻을수만 있다면 뭐든지 아낌없이 즐거움만 얻을수 있다면 어디든지 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명예를 어떤사람들은 자기의 자아나 자기 고집이나 자기 자식을 신처럼 여깁니다. 그런 세상문화속에서 우리들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물질도, 명예도, 쾌락도, 자식도 나 자신도 아니고 바로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십니다. 이고백이 위대한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그분, 그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구주이십니다.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이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수순천반란사건때 공산당들이 목사님들을 붙들어 갔습니다. 한 목사님이 심방갔다오다고 공산당 폭도에게 붙들려서 끌려갔습니다. 방앗간 빈 창고로 끌려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끌려와서 포송줄로 묶여 있습니다. 거기 있다보니까 한 공산당 청년이 총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너희중에 예수쟁이 있지? 있으면 나와", 목사님은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나가면 죽으니까. "너희 중에 예수쟁이 있는 것 알고 왔어 빨리 나오란 말이야"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내가 봉양해야 할 나이드신 어머니가 계시거든, 어린 자녀들이 있는데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 나갈수가 없었어요. 

공산당 청년이 그래도 안나오니까 한사람씩 가슴팍에다 총구를 들이대면서, "너 예수믿지?" "너 예수믿지?" 하였습니다. 목사님이 괴로워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죽는게 낫지 거짓말하고 못살겠다. 그래서 목사님은 죽으면 죽으리다 하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내가 예수믿는 목사요" 하며 일어났습니다. 청년이 이 목사님을 끌고 나갔습니다. 목사님은 '그래 난 죽어도 좋아 어차피 죽을거니까 그래도 죽을거면 당당하게 죽어야지. 목사가 부끄럽게 죽으면 안되지'. 

마음에 얼마나 평화가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그 순간 창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더니 이 청년이 목사님께 꾸벅 절을 합니다. "목사님 맞으시죠? 목사님 빨리 좀 나오시죠". 어떤 일인가 했더니 어떤 청년이 자기교회 목사님이 공산당 폭도에게 끌려갔다는 것을 알고는 자기한테 부탁한 겁니다. 우리교회 목사님 좀 빼달라고 자기가 목사님 구하려고 왔는데 누가 목사님인지 몰라서 그랬다고 빨리좀 나오시지 왜 안나오셨냐고, 책망을 하더랍니다. 목사님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어떻습니까. 오늘날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때문에 손해보고 핍박받는다면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 불교인인데 기독교인을 제일 싫어한다면 그 앞에서 내가 집사라고 권사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손해볼까봐. 주님께서는 이 고백을 요구하십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네 위에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베드로라는 말은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오해합니다. 베드로위에 교회를 세웠다. 아닙니다. 베드로의 고백위에 교회를 세운겁니다. 왜냐면 베드로가 얼마나 연약한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라고 고백하니 주님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있도다. 이를 알게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칭찬받고 으쓱했지만 조금있다고 엉뚱한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다. 베드로가 깜짝놀라서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 예수님을 붙드는 겁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뭐라했습니까. 베드로를 보고 사탄아 물러가라 하십니다.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베드로가 사탄은 아닌데 사탄이 베드로를 통해서 활동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거절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막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지않으면 인간에게 구원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연약한 베드로위에 어떻게 교회를 세우겠습니까. 안됩니다. 그 고백위에 주는 그리스도라는 그 고백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고백이 우리 영신교회에는 세워진줄 믿습니다. 이 고백이 확실한 분들이 장로님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장로이기 때문에 물질의 손해를 봐도 시간을 손해봐도 나는 아깝지 않아 주님을 위해서라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라면 나는 다 드릴수 있어 그런분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야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못하는 교회는 주님이 교회의 주인된 교회입니다. 18절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로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누구의 교회입니까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 시온성과 같은 교회 찬양 가사에 그러지 않습니까 주님이 세우신 교회입니다. 교회는 사람이 세운것 같지만 그 교회를 세우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역사속에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영향력있는 공동체로 발전해 올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요 이교회를 이끌어온 수많은 목회자들의 헌신, 그 훌륭한 목사님들 때문에 세계 많은 곳에 교회가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또 어떤분들은 그 교회를 섬겨온 수많은 평신도들 수많은 성도들의 희생과 땀 때문에 교회가 오늘까지 이렇게 존재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다 맞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그 자리를 지키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뭘까요 바로 그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주인된 예수님께서 몸된 교회를 지키시고 인도하신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한것 같지만 주님이 친히 그 교회를 인도해오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그 교회를 깨우쳐주시고 그 교회를 도와주셨습니다. 섬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니까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이 말은 바꿔말하면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교인들도 아닙니다. 교인이 주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목사도 아닙니다. 장로도 아닙니다. 영향력있는 교회 직분자도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바로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신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누구도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양천교회에 가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그 교회 장로님들, 남신도회원들, 목사님과 다과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 선임장로님이 김종일 장로님이라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자랑을 합니다. 우리 양천교회는 매우 평화스러운 교회입니다. 너무 좋은 교회이고 평화스러운 교회입니다. 왜 양천교회가 평화스러운 교회입니까 했더니 단번에 말씀하십니다. 

우리교회는 똑똑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교회는 똑똑한 사람이 없어서 평화스럽다고 합니다.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 주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 주장이 다 바보같으니까 자꾸 자기주장을 내세웁니다. 이것들이 몰라도 한참 모르네 내가 좀 알려줘야지. 하면서 자꾸 떠들고 다닙니다. 목소리가 자꾸 커집니다. 교회의 주인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교회의 방향을 틀어줘야 해 목사가 잘못 끌고 가고 있거든. 내가 이것을 바로 잡아야해 장로들도 멍청이야. 모르고 있어 내가 바로 잡아줘야 해. 교회의 주인이 되려 합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이 이끌어가는 것 같지만 성령님이 교회의 주인되셔서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되셔서 그 교회를 이끌어가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생각대로 하면 잘될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배후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주님이 교회의 주인되실 때 진정한 화평이 교회에 이루어집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이라는 유명한 작품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아주 넓은 벽화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친구에게 다빈치가 물었습니다. 이 그림중에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어느 부분인가 친구가 보더니 예수님의 손에 들려있는 잔이 살아있는 잔같아 너무 빛나네, 너무 멋있어 그랬더니 다빈치가 붓을 들어서 예수님의 손에 들려있는 잔을 뭉개버렸습니다. 없애버렸습니다.  

여보게 멋진 것을 왜 없애버리나 다빈치가 말합니다. 이 그림에서 예수님보다 그 어떤것도 더 돋보여서는 안되네. 이 그림에서는 예수님이 가장 돋보여야 되지. 예수님보다 다른것이 돋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주님만이 나타나야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늘에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주님만이 영광받으시고 주님만이 주인되시는 교회 그것이 바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못하는 교회가 되려면 천국열쇠를 소유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9절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천국열쇠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하십니까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앞에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천국문을 열수있는 열쇠를 누구에게 베드로에게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교회의 대표인 베드로에게 준것이지 그 열쇠를 온교회와 모든 성도에게 준 것입니다. 천국문을 열수있는 비결이 뭡니까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전도를 통해서 복음을 영접하면 우리는 천국문을 열수가 있습니다.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받는다는 것은 뭡니까 천국문이 열린다는 것이고 천국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많은 사람을 천국백성이 되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성도가 되야할 줄 믿습니다. 전도는 교회의 본질인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전도를 내려놓는다면 누가 제일 좋아하겠습니까 음부의 권세를 가진 사탄마귀가 제일 좋아합니다. 내 자식들 많이 오겠구나 예수안믿으면 다 지옥가니까. 지옥으로 몰려드는 겁니다. 음부의 문이 열려지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믿는 사람들이 어렵지만 한영혼 한영혼을 향해서 사랑과 말씀을 가지고 나아갈 때 오늘도 천국문은 열릴것이고 천국백성은 늘어날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의 확장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거라 내거 너희로 사람을 낳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너희는 만민에게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주님의 유언과 같은 명령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명령은 없습니다. 교회에게 주신 마지막 명령 만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것을 피할자가 없습니다. 이거 외에는 교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교회 아무의미가 없습니다.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유럽의 교회가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니까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필요없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문을 닫게 만드시는 겁니다. 복음전하는 교회 오늘도 음부에 들어갈 한 영혼을 천국문으로 인도하는 교회 그것이 진정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어야할 줄 믿습니다. 

그 교회가 음부의 권세를 딛고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55년의 역사동안 하나님은 이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수많은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이 교회를 보호하고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되셔서 이 교회의 앞날도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교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가 아는 목사님이 그런 고백을 하십니다. 자기 교회에 연로하신 목사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보니까 그분은 작은 개척교회를 하시는 목사님이신데 연말이 되면 달력을 만드는데 개척교회 목사님이 연로하신데 달력만들 걸 수거해서 가져가서 만들어주고 거기서 나온 수익금을 그 교회 선교비로 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도와드리려고 이왕이면 목사님에게 우리가 달력을 만들겠습니다하면서 차를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그 목사님이 그럽니다. 

목사님은 좋겠어요. 나는 우리 사모가 20년전에 세상을 떠나서 혼자사는데 사모가 없으니까 목회도 힘들고 교회도 부흥이 안되고 너무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정말 그런것 같더랍니다. 사모가 없으니까 목사님이 집안일도 해야지 목회에도 집중이 안되지, 목사가 할 수 없는 곳에 사모가 대신 심방도 하고 해야하는데 그것을 할 수 없으니까 교회가 부흥도 안되고 너무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이 그 얘기를 듣고 돌아오면서 지금까지 사모가 있다는게 그렇게 고마운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몰랐는데 들어보니까 사모가 있어주는 것만해도 너무 고맙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옆에 있으면 잘 모릅니다. 그러나 있던 사람이 없어질 때 아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도 늘 교회와서 예배드리니까 교회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싸움하는 교회를 안보셔서 그럽니다. 싸움하는 교회를 보면 교회 앞에서부터 장구치고 북치고 난리입니다. 그리고 서로 자기쪽으로 들어오라고하고 한쪽은 본당에가서 예배드리고 한쪽은 식당에가서 예배드리고 복잡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평화로운 교회에와서 아름다운 미소로 인사를 나누면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 우리의 특권이요, 자랑이요, 감사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자랑이 있습니다. 55년동안 이교회가 한번도 갈라지지 않고 분열이 없이 평화로운 교회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 너무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55년 역사 보면 대개 한 두번씩은 갈라졌습니다. 싸워서 갈라지고 문제일으키고 그러나 우리 교회는 너무너무 감사하게도 교회가 늘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운교회로 자라왔습니다. 늘 목회자를 볼 수 있고 장로님을 만날 수 있고 구역장님을 만날 수 있고 얼마나 좋은 교회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대한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늘 불평이 입에 꽉 차 있습니다.  불평하기전에 이런 교회마저 없었더라면 어떻게 할 뻔 했습니까. 우리가 마음놓고 예배할 수 있고 마음놓고 기도할 수 있고 마음놓고 말씀들을 수 있는 교회가 있다는 것 너무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주막같은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상처입은 사람을 주막에 데려다 맡기니까 상처를 치료받고 거기서 쉼을 얻고 다시 힘을 얻어서 떠나갈 수가 있잖습니까. 한주간의 삶이 피곤하고 지친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생명의 양식을 얻고 힘을 얻고 상처를 치료받고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교회는 어머니의 품과 같다고 했습니다. 늘 포근한 추석때 찾아가 뵌 넓은 어머니의 품처럼 우리의 실수와 상처와 아픔까지도 다 닦아주시고 쓰다듬어 주시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교회 그런 교회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판하는 교회, 흠을 찾는 교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교회가 아니라 모두의 허물과 잘못을 다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어머니의 넓은 치마폭처럼 모두를 다 감싸줄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될 때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들어서 더 위대하게 사용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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