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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때 (행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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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때 (행 8:1-8)


교회성장학자들이 한국교회를 진단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한국교회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라는 진단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초대교회는 교회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만드신 초대교회, 그 초대교회는 앞으로 교회들이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원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어떤 면에서 아름다웠을까요? 우리가 흔히 세 가지로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이야기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초대교회 모습은 첫 번째, 성령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갔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그들에게는 성령의 놀라우신 능력과 성령의 가르침, 즉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의 인격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아주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모여 있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두 번째, 초대교회는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아름다운 사랑공동체였습니다. 자기 물건을 자기의 것이라 이야기 하지 않고 가난하고 굶주리고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나눠줄 줄 아는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였습니다.  

세 번째, 초대교회는 모이기만 하면 기도하고 말씀 훈련 받는 교회였습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말씀 훈련 받는 그런 말씀에 대한 뜨거운 갈증이 있었던 교회,   

이 세 가지 요소가 초대교회를 건강하게 만들었고 이 세 가지 요소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초대교회의 원형, 그 모습을 그대로 닮고 있었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는 어떤가요? 말씀 훈련이 점점 없어지고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가 점점 없어져 마치 교회가 교회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훈련 받는 일 보다, 모여서 끼리끼리 놀고 여행하고 나누고 그래서 교회는 점점 사회로부터 동떨어져가는 이런 폐쇄된 집단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에 각성하는 마음을 주사 우리 한국교회가 이제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 그래서 세계교회의 아름다운 교회의 아름다운 원형을 보여주기 위하여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날이 갈수록 왕성하게 부흥했습니다. 베드로사도가 한 번 설교하면 몇 천 명씩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지면서 교회가 점점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유대교의 제사장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날로 부흥발전 하게 되자 교회 안에 조금씩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려움은 바로 바깥에서 오는 박해였습니다. 스데반은 초대교회가 세운 일곱 집사 가운데 가장 성령 충만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복음을 증언하자 유대인들이 그의 복음을 듣고 참지 못해 결국 돌을 들어 스데반을 죽입니다. 스데반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이 교회에 대한 박해가 바로 스데반의 순교로부터 시작이 되었고 교회는 그 때부터 외적인 핍박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외적인 어려움을 당하게 되자 이제 교인들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교회에 지도자들인 예수님의 제자들만 예루살렘 교회에 남고 많은 교우들이 핍박을 피해서 박해를 피해서 이제 다른 지방으로 또는 외국으로 이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시고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는 계획을 하나님이 실천에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외부로부터 오는 박해와 핍박을 통해 교인들을 강제로 흩으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성도들이 이제 이웃지방으로 또 다른 나라로 피난을 가게 되면서부터 교회는 모이는 교회에서 이제는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 중 우리가 읽은 본문 가운데는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복음을 증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유대사람들이 무시했던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증언하고 복음만 증언한 것이 아니라 그 사마리아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과 육신과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게 되어 어두움과 그리고 비난과 외로움의 존재로 살아갔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주었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렇게 내적으로 강하고 모이기를 좋아했던 이 예루살렘 교회가 이제는 흩어지는 교회가 되서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해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하는 그런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몇 가지 하나님의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오늘 본문에 나타난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시작으로 해서 초대교회가 박해를 받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

여기서 박해자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이 박해자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 유대인들, 유대 정치 지도자들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로마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이 유대인들은 왜 기독교를 교인들을 핍박했을까요? 우리가 두 가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유대인들을 박해한 이유는, 기독교 공동체가 점점 성장하게 되자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이 종교 정치 지도자들이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죽고 난 다음에 예수를 따르는 믿음의 공동체가 날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백성들 몇 명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유대교의 제사장들 서기관이나 바리세인들 이런 사람들도 기독교에 가담하게 되었고 그래서 기독교가 날로 확장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은 너무너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유대인들이 성도들을 박해한 이유는, 그들이 쥐고 있는 기득권에 영향을 어떤 도전을 받게 된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종교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분리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사회 모든 면에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독교인이 점점 성장하여 강해지면서 이 유대교에 강한 대적자가 되면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이 쥐고 있는 기득권에 심각한 위험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이 권한을 내어주어야 할지, 자기들의 재산이나 모든 지위가 없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을 핍박하게 된 것은 겉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 때문에 기독교를 박해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런 깊은 내막 때문에 기독교인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유대인들을 들어서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수단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지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과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이 박해를 받게 된 성도들이 그 때서야 비로소 그들은 눈을 바깥으로 돌려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이 이스라엘 성도들, 그리고 초대교회 교인들이 모여 있는 교회에 박해를 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결국은 박해의 결과로 성도들을 흩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백성들을 향한 유대인들의 박해를 허락하셨고, 왜 하나님은 성도들을 흩어 놓으셨을까요? 우리는 커다랗게 두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으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증언하라고 하는 이 하나님의 명령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흩어 세계 끝으로 보내 복음이 온 세상 끝에까지 전파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예루살렘에 모여 신앙생활 잘 해서 유대인들만 구원 받는 백성이 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유는 민족을 뛰어 넘어 지역을 뛰어 넘어 온 세상 끝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들어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기독교인들은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을 흩어야만 이들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가야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박해라는 방법을 들어 교회 교인들을 흩어놓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온 세상 끝까지 복음을 증언하지 않을 때 사람들을 흩어놓으시기도 하십니다. 이 사람을 빼 내 지방으로 보내시고 이 사람을 빼 내 세상 끝 선교지로 보내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교의 비전을 이루시기 위하여 때때로 사람들을 흩어놓으시기도 하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박해를 통해 성도들을 흩어놓으신 이유는 성도들이 예루살렘에만 모여 있으면서 현상 유지에만 관심을 갖고 세계를 향하여 눈을 들지 않는 안타까움을 보시고 현상유지 기득권을 깨기 위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박해를 통해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꽤 괜찮은 교회였습니다. 성도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거기는 사랑이 있고 은혜가 있는 성령의 능력이 있는 아주 아름다운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도 사람이 많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전도는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직도 교회가 더 많아야 되고 여기에 아직도 구원받아야 될 백성들이 더 많이 있다. 

지금 우리 교회는 날로 성장 발전하고 있다. 우리가 땅 끝까지 복음을 들고 가지 않아도 구원 받아야 될 사람들이 여기에 너무 너무 많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이렇게 눈을 안으로만 돌렸습니다. 일반적은 사람들은 보수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지금 있는 것을 지키려고 합니다. 어떤 개혁이나 개방, 이런 것 보다는 편하고 쉽고 안전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도 그랬습니다. 초대교회 자체에도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셨던 명령과 분부, 너희는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는 이 주님의 명령을 먼 훗날 미래에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늘 그들은 눈앞에 있는 것만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가 현실에 안주할 때 교회가 이렇게 현상 유지에 관심이 있고 교회가 이렇게 기득권 유지에만 관심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흔들어 놓으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지금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텐트를 짓고 여기서 전도하고 여기서 구제하는 것으로 끝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눈을 들어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언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형편에 이만큼 헌금하고 내 형편에 이정도 봉사하고, 내 형편에 이정도 훈련 받고, 내 형편에 이 정도 예배드리는 것, 과한 거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현실 믿음 생활에 안주하고 여기에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그것을 원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도전하십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땅 끝까지 가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형편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대단한 존재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만족하고 즐거워하고 우리는 괜찮다고 여기는 순간, 하나님은 고개를 젓습니다. 하나님은 만족해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들을 흩어 놓으시기 위하여 박해를 주신 것입니다. 

거짓된 안전의식, 잘 못된 현상 유지에 대한 몰입,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변화와 개혁을 경험해야 합니다. 교회는 어느 한 순간에 만족해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좋은 건물, 많은 사람들, 많은 프로그램, 많은 인원들, 우리는 여기에 안주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언하기 위하여 선교사를 보내고 구제하고 훈련하고 돕고 교회를 개척하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은 우리의 비전을 우리의 꿈과 우리의 눈을 세계만방 곳곳에 펼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계로 흩어지는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강한 교회일 줄로 믿습니다.

두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첫 번째 교회는 모이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주일 날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은혜를 경험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합니다.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의 인치심과 만지심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많은 성경공부 프로그램과 훈련 프로그램 기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성도들이 모여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말씀을 통해 기도회를 통해 힘을 얻습니다. 새로운 능력을 받습니다. 모이는 교회는 능력을 받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이는 교회로서 끝나야 할까요?

이제 두 번째 교회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흩어지는 교회입니다. 왜 흩어져야 할까요? 우리가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복음화 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흩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셨습니다. 사마리아로 가라고, 안디옥으로 가라고 로마까지 가라고 하나님은 이제 모이는 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를 흩어지는 교회로 바꾸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모이시는 교회입니까? 아니면 흩어지는 교회이십니까? 여러분은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하지만, 정말로 여러분이 삶의 현장에 나아가 복음을 증언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언해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나가고 계십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건강한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박해를 주사, 기도 가운데 사람들이 흩어져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게 하셨습니다.

폴 하비라는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불행하게도 요즘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고 하기보다 수족관에 있는 고기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관심은 수족관, 요즘으로 치면 교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 여기에 온 교회가 신경을 쓰는 것 보다 바깥에 죽어져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성도들이 나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 이것이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심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가야합니다. 우리는 흩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우리가 경험한 성령의 인치심과 능력을 가슴에 담고 여러분의 삶에 곁에 있는 땅 끝이 어디입니까? 그곳으로 갈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영혼과 우리 교회를 건강한 영혼으로, 건강한 교회로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했습니다.
빌립 집사는 누구입니까? 초대교회가 뽑은 일곱 집사 가운데 두 번째 서열에 있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박해를 피해 이제 복음을 들고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갑니다. 사마리아 성은 유대사람들이 싫어하는 같은 동족이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이 하나의 나라였는데 솔로몬의 아들 여로보암 때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나뉜 것과 똑같았습니다. 

북 왕국은 이스라엘이라고 불렀고 남 왕국은 유대라고 불렀습니다. 이 북 왕국은 수도가 사마리아였습니다. 그런데 북 왕국 윗 쪽에 있었던 앗시리아라는 나라가 예수님 오시기전 721년 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을 침략해 사마리아 성에 있던 사람들을 잡아가고 자기네 나라 사람들을 사마리아 성에 거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사마리아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혈통적으로 혼합주의가 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남 왕국 유대는 바벨론에 포로생활을 하였습니다. 587년 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많은 고초와 어려움을 당했지만 이 남 왕국 유대 사람들은 그런대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도움으로 민족 교회 성전과 이 나라를 재건하려고 노력을 했을 때 북 왕국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남 왕국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때 남 왕국 사람들은 이런 지하에 거절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마리아 사람들이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혈통을 잃어버리고 혼합 주의로 빠져 더러운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 때까지 약 400년 가까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유대 사람들은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개나 돼지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 이 여인을 만나 복음을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은 민족정인 종교적인 정치적인 이런 활동에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사마리아 사람들이야 말로 복음을 듣고 돌아와야 될 불쌍한 영혼들이었습니다. 

빌립은 흩어지면서 제일 먼저 사마리아 성으로 갔습니다. 복음은 미움과 원한과 무시를 뛰어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빌립이 가지고 간 복음이야말로 유대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계기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었던 모든 기독교인들은 사마리아에 복음이 들어가 그들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게 됩니다. 

복음이 아니면 나라와 나라가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북한이 하나가 되려면 기독교인이 많아야 되고 기독교 복음이 북한에 들어가게 되어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을 하나가 되게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마리아 성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전초기지였습니다.
  

세 번째로, 빌립은 복음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7절)

빌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로만 증언하지 않고 그들의 영혼의 문제, 육신의 문제, 귀신 들린 문제,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은 사람의 영혼의 문제, 정신의 문제만 해결해 주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여러분의 마음의 문제, 삶의 문제, 육신의 문제, 심지어는 여러분의 재정의 문제까지도 복음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말씀으로만 압니다. 그러나 복음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전부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만을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 남자가 필요로 하는 여인에게 복음을 가져다줌으로 말미암아 성적인 유혹에서 벗어나 참다운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먹을 것을, 병든 자에게는 육신의 치유를, 귀신들린 자에게는 영혼의 맑음과 깨끗함을 예수님은 갖가지의 모든 면에 모두 완벽하게 치유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기쁨이 넘쳐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커다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8절)

그렇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의 마음속에 기쁨이 차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요 며칠 전에 행복전도사라고 불림을 받던 분이 두 내외가 자살한 끔찍한 불행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분이 TV나 무슨 책자를 통해 행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신은 육신의 질병을 이기지 못해 남편에게 목 졸라 자기를 죽이게 하고 그리고 남편은 목을 매어 자살해 죽었습니다. 이런 불행한 일이 한국 사회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행복을 찾으려고 추구하려고 애썼겠지요! 그 사람이야말로 우상이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행복을 이야기 했던 행복 전도사였던 사람이 육신의 질병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살했다고 한다면 그를 따라 다녔던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라는 것일까요?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나라에 아니 전 세계에 말기 암 때문에 고생하고 육신의 죽음을 문 앞에 두고도 병마와 싸우는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정이 해체되어 고통당하고 직장을 잃고 재물을 잃어 고통 당하고 자살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은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행복은 성경이 이야기 하는 행복과 다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행복을 이야기 하고 행복 전도사라고 할지라도 끝은 불행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복음이 들어가게 되면 그 병마와 싸워 그 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믿습니다. 

복음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 사람의 말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아무리 이야기 한다 할지라도 사람의 이야기 갖고 사람에게 완벽한 행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사람에게 생명과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모이는 교회를 넘어 이제는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양손에 성령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 뜨거운 피 끓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세상 끝까지 가셔야 합니다. 가서 세상에서 아파하고 버림받고 고통당하고 외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복음을 증언해 그들의 삶을 위로해 주고 그들에게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가를 전달해 주셔야 합니다. 바로 여러분이 나가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 교회와 여러분의 영혼이 건강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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