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쉼을 얻는 비결 (마 11:25-30) - 안식

  • 잡초 잡초
  • 276
  • 0

첨부 1


쉼을 얻는 비결 / 마태복음 11 : 25~30 


요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단히 피곤해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는지 모를 정도로 몸과 마음이 대단히 지쳐있습니다. 소위 정치를 하는 정치인의 경우를 보십시오. 마음 편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권력을 잡은 자나 권력을 잡으려는 자, 모두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또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나 직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역시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현직 삼성전자 부사장이 투신자살했습니다. 이 일을 두고 보통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자리,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뭐가 부족해서 자살을 한다는 말인가? 그가 1년 동안 받는 연봉이 얼마인데…’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다. 그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습니까? 삼성전자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시키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또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직장에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겠습니까? 

결국 너무 지친 나머지 돈이고 명예고 가정이고 직장이고 다 싫어져서 극단적인 길을 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사람이 너무 지치게 되면 삶의 의욕을 잃고 극단적인 생각도 서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죽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삶에 지친 사람은 이들 뿐만이 아닙니다. TV나 영화에 등장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탤런트나 배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청자나 관객의 눈에는 탤런트나 배우가 대단히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못합니다. 

인기 있는 탤런트나 배우는 그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또 그렇지 못한 탤런트나 배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유명 탤런트나 배우의 자살 소식을 듣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삶이 너무 피곤하고 지친 결과입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심하게 부끄러움을 타기도 합니다. 헐벗어서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사람 만나기를 싫어합니다. 세상에 사람 만나는 일처럼 신나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참으로 피곤한 일입니다. 병든 것도 아닌데 아픈 곳이 많습니다. 

의사가 제일 다루기 힘든 환자가 바로 이런 환자라고 합니다. 아무리 진찰해도 탈이 난 곳이 없는데 환자는 아프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병원을 찾는 그 수많은 환자의 절반 이상이 이렇게 병이 없는 환자들이라고 합니다. 병이 없는 데도 아프다고 하니 정말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피곤하다는 증거입니다. 또 지금 어떤 무거운 짐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말미암아 지친 심령들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주십니다. 

첫째, 주님께로 오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여기서 수고한다는 것은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자기 책임 하에 고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만히 보면 세상에는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고생을 사서 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지나친 욕심 때문에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거운 짐이라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는 짐, 곧 자신이 약하여 피할 수 없어서 지는 짐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부득이한 고생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짐이 다 무거운 짐입니다. 어쨌든 사람은 누구나 다 이런 고생에 시달리고 있기에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초청에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네 처지를 떠나서 내게로 오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혹 자신의 욕심 때문에 지금도 일을 만들어서 고생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거기서 떠나 주님께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사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초청에 기쁜 마음으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주시는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배우라”는 말은 “내 제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즉 전적으로 나를 믿고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를 본 받으라는 말입니다. 내 마음까지도 곁에서 보고 배우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배워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하늘로부터 임하는 평강에 의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리고 배우되 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하십니다. 세상 멍에를 벗어버리고 예수님 당신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멍에가 어떤 멍에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멍에입니다. 이 멍에를 함께 메자고 하시면서 “내 멍에는 쉽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쉽다”는 말은 몸에 잘 맞는다는 말입니다. 무겁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질 수 있는 그런 멍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①주님과 함께 메는 멍에이기 때문입니다. ②사랑으로 메는 짐이기 때문입니다. ③죄의 짐을 벗고 메는 짐이기 때문입니다. ④미래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두 가지 메시지를 주십니다. 첫째, 주님께로 오라는 것이요, 둘째,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의 멍에를 함께 지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에 쉼을 얻는 비결이 있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