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나 여호와가 거기 있었느니라 (겔 35:10-15)

  • 잡초 잡초
  • 592
  • 0

첨부 1


나 여호와가 거기 있었느니라 (겔 35:10-15)


에스겔 35장은 이스라엘의 원수인 에돔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35장에 에돔의 멸망이 처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에스겔 25장에 에돔의 멸망이 예언되어 있습니다(겔 25:12-13). 에돔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원수 취급함으로 그 죄로 말미암아 멸망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에돔의 남쪽인 데만에서부터 북쪽 끝인 드단까지 황무지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에서의 후손인 에돔과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원수였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의 두 아들이요, 쌍둥이 형제임에도 철천지원수가 되었습니다. 

원수가 된 이유는, 동생인 야곱이 형인 에서의 축복을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축복을 판 것입니다. 팥죽 때문에 축복을 팔아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에서를 망령된 자라(히 12:16)고 말합니다. 야곱이 사기를 치긴 했어도 에서의 잘못도 있는 것입니다. 에서는 소리 높여 울면서 “아버지여, 주실 축복이 그것밖에 없습니까? 저에게 남겨 놓은 것은 없습니까?”라고 축복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축복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말을 했습니다.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아우를 섬길 것이며”(창 27:40) 이렇게 해서 에서와 야곱의 적대감은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하자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20년 도피하고 돌아왔습니다. 조상 한 사람이 팥죽 한 그릇 먹은 허물 때문에 후세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민족이 둘로 갈라지게 되어 대대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3장에 보면 야곱과 에서가 어설프게 화해를 하긴 합니다만, 적대감은 역사적으로 지속되었습니다.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애굽에 가서 430년 동안 종노릇하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출애굽을 하게 되었습니다. 광야를 통과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데 에돔 땅을 먼저 통과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에돔에게 길을 통과하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민 20:17). 그러나 에돔왕은 지나가기만 하면 나가서 칼로 죽이겠다고 합니다(민 20:18). 형님이 아우에게 할 말입니까? 이렇게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적대감을 에돔은 야곱에게 보인 것입니다. 이 적대감은 여호수아 시대, 사사 시대, 왕정 시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라기 1장 2절로 4절입니다.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찌라도 나는 헐리라”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아말렉 함께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최고의 원수였습니다. 제1원수는 아말렉과 에돔이었던 것입니다. 아멜렉은 형제가 아니기에 원수가 될 수 있다고 해도, 에돔은 야곱의 쌍둥이 형이면서도 원수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에돔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축복의 말씀을 하지 않고 심판의 말씀만 하신 것입니다. 저는 에스겔 35장을 읽으면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에스겔 25장에서 이미 에돔의 멸망이 예언되었는데, 왜 에스겔 35장에서 또 언급하는가?’입니다. 

에스겔 33장 이후의 주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는 것인데, 왜 에돔의 멸망을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는 가운데 끼어들어 다시 언급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돔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비교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도 죄를 지었고, 에돔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에돔은 영원히 황무하여 회복되지 않고,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아도 회복이 되는가를 비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Ⅰ. 에돔의 죄악과 심판 

1. 에돔의 죄악 
 
첫째, 야곱을 향해 한을 품었습니다. 에스겔 35장 5절입니다.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끝 때에 칼의 권능에 그들을 붙였도다” 에돔은 옛날부터 한을 품었습니다. 원한(hostility)을 품은 것입니다. 적대감, 즉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한이 많은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노래를 불러도 한 많은 미아리 고개는 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축복 받은 사람은 용서, 감사, 평안함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속에 한을 버리고 용서와 감사, 평안을 품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에돔은 이스라엘 백성 중 도망하는 사람들을 붙들어 바벨론에 넘겨주는 비인도적인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오바댜 1장 12절로 14절입니다.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 야비한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같은 죄를 지어도 야비한 죄를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야비하고 비인간적인 죄를 고약하게 여기시고 큰 심판을 내리십니다. 예를 들어, 약자의 임금을 착취하는 것, 노인에게 중노동을 시키는 것, 전당물을 잡아 밤까지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이스라엘과 유다가 망해서 그것이 자기 차지가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에스겔 35장 10절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은 다 내게로 돌아와서 내 기업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나 여호와가 거기 있었느니라” 두 민족은 이스라엘과 유다입니다. 아우의 불행위에 건설되는 형님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이 계서서 모두 듣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 말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돔은 하나님에게 틀렸다고 말합니다. 
 
넷째, 말로써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에스겔 35장 13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입으로 자랑하며 나를 대적하여 여러 가지로 말한 것을 내가 들었노라” 

 
2. 에돔에 대한 심판 

에돔은 멸망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겔 35:4,6,9). 사람이 죄를 지어도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죄를 지으면, 그 가정과 후손을 심판하시고 일어나지 못하게 하십니다. 에돔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결정타를 맞고, 알렉산더 대왕에서 정복당해 망했습니다. 그리고 에돔은 하스모니안 왕조 때에 모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에 편입되었습니다. 결국, 에돔은 정체성을 상실해 버리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Ⅱ. 에돔과 이스라엘의 차이 

에돔과 이스라엘은 모두 죄를 지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에돔은 망했고, 이스라엘은 회복되었습니다. 에스겔 35장이 에돔의 영원한 멸망을 예언한 장이라고 한다면, 에스겔 36장은 이스라엘은 심판받아도 회복된다는 내용입니다. 

에스겔 36장 11절과 15절입니다.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으로 많게 하되 생육이 중다하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접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또 너로 열국의 수욕을 듣지 않게 하며 만민의 비방을 다시 받지 않게 하며 네 나라 백성을 다시 넘어뜨리지 않게 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신약 성경에 가롯 유다와 베드로 중 누가 더 나쁜 사람입니까?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했습니다. 오십보백보입니다. 가롯 유다는 영원히 멸망했고, 베드로는 위대한 사도가 되어 지금도 존경받고 있습니다. 에돔은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말씀을 심판의 권능을 가진 하나님으로 체험케 되고, 이스라엘은 ‘무한한 용서와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이 차이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9장 11절로 13절에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야곱과 에서는 행위에서 선악 간에 차이가 있지 않습니다.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주권적인 은혜로서 야곱은 택하시고, 에서는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에게는 복을 주시고, 에서에게는 복을 주시지 않기로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야단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은 불의가 없다고 말합니다(롬 9:14). 하나님이 공평하시지 않게 왜 야곱에게만 은혜를 주시느냐는 질문은 하나님보고 공의롭게 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하나님이 공의롭게 하면 야곱도 지옥 가고, 에서도 지옥 가는 것입니다. 에돔도 멸망하고 이스라엘도 멸망하는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은혜 받은 야곱도 못 받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물귀신 작전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누가 더 낫지 않습니다. 선악의 차이에 따라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에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은혜라고 하는 것은 원래 주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은혜를 주실 의무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실 의무가 없습니다. 받을 자격도 없습니다. 은혜는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10만 원씩 드릴 의무가 있습니까? 제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왜 안 주느냐고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은혜는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고, 안 주고 싶은 사람에게 안 주는 것입니다. 전혀 불공정한 것도, 불의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입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 주실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택하심의 은혜(grace of election)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심판 중에도 다시 회복시키는 견인의 은혜(grace of perseverance)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택한 사람은 영원토록 버리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있고,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떠나고 망하는 사람이 있고, 안 떠나고 안 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떠나고 망하는 사람은 택함 받는 척하고, 택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회복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증거입니다. 택함 받은 사람은 신앙을 지키는 견인의 은혜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Ⅲ. 택함 받은 이스라엘의 특권 

에스겔 35장 10절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은 다 내게로 돌아와서 내 기업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나 여호와가 거기 있었느니라(the LORD was there)” 히브리어로 ‘나 여호와가 거기 있었느니라’는 ‘여호와 삼마’입니다. 

에스겔의 마지막 절은 48장 35절입니다. 회복될 이스라엘 땅에 관한 예언입니다.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하나님의 이름 가운데 에스겔서에만 나오는 이름이 ‘여호와 삼마’입니다. 에돔 족속이 즐거워하면서 하나님을 향해서 대적하며 비웃었지만, 하나님이 그곳에 계셨습니다. 

여러분, 묘지 이장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5도 움직이는 것도 큰 싸움이 납니다. 왜냐하면,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조상의 골분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땅을 에돔이 함부로 차지한단 말입니까? 가나안 땅은 여호와 삼마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며, 에돔 족속의 악한 말을 다 들으시고, 에돔 족속에 행하는 야비한 짓을 모두 보셨습니다. 

결 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은 징벌해도 때가 되면 고토에서 회복시키지만, 에돔은 영원히 멸망시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때로는 악하여 징벌을 받을지라도, 에돔처럼 영원히 황무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여호와 삼마) 때문입니다. 

교회가 약하고, 미련하고 때로는 세상보다 더 악한 죄를 저지른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교회가 망하지 않고 확장되는 이유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이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계시며, 진리 보존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부으시고, 악한 사단의 모든 공격에서 보존하셔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가 된 지 3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를 업신여기는 사람도 보게 됩니다. 주의 종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나중에 훌륭하게 되지 않습니다. 주의 종이 약하고, 부족해도 ‘여호와 삼마’라고 생각하고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때로는 약하고, 때로는 죄에 빠져도 악한 마귀가 만지지도 못합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삼마’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망하기는 다 틀렸다. 나는 지옥 가기는 다 틀렸다.” 
 
여호와가 계신 곳에는 두 가지가 따릅니다. ‘승리’와 ‘희락’입니다. 에덴동산이 희락인 동산인 이유는 ‘여호와 삼마’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삼마의 가정, 여호와 삼마의 교회, 여호와 삼마의 국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 땅은 원수가 삼킬 수 없고, 번창할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삼마의 가정, 교회, 국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