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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 즐겁게 한다 (엡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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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즐겁게 한다 (엡 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에베소서 6:5-9) 

몇 주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 삶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어떤 태도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할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2천 년 전에 어느 그리스 조각가가 신전의 조각을 맡았는데, 그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세밀하게 시간과 노력을 바쳐서 조각을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나는 늘 이렇게 해왔소. 사람들은 안 봐도 신들이 보고 있소!” 우상을 숭배하는 신전 조각가도 이렇게 철저한 태도로 일하는데,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일을 잘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특징이 나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인류의 절반이 노예였습니다. 노예는 돈을 주고 사든가, 전쟁에서 잡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인의 소유물이었습니다. 말을 안 들으면 주인이 죽여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면서 주인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나는 자유인”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이지만 로마의 시민권이 있고 부잣집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를 나와 당대의 지식인으로 아무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9장에 보면 "내가 자원해서 모든 사람을 위해 종이 됐습니다"라고 합니다. 왜?

첫째는 사람을 얻고 싶어서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한 사람이 온 우주보다 더 가치 있다. 그래서 나는 유대인을 얻기 위해 유대인처럼, 이방인을 얻기 위해 이방인처럼, 법 있는 사람을 얻기 위해 법 있는 사람처럼, 법 없는 사람을 얻기 위해 법 없는 사람처럼, 높은 사람 앞에서 높은 사람처럼, 낮은 사람 앞에서 낮은 사람처럼 행했다." 하나님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살인은 하나님에 대한 반항입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라카" 즉 "바보 같은 놈"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옥불에 던져질 죄라 하셨습니다. 둘째는 복음을 전해주기 위함입니다.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게 하려고 그들에게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자유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으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나는 종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내 가족과 이웃과 직장 상사들과 동료들을 섬긴다. 높은 지위와 권력과 돈을 갖고 더 많은 사람을 섬긴다. 이것이 내 삶의 목적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제가 마지막으로 쓴 책 하나가 “섬기는 당신이 최고입니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견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높은 자리와 권력을 가진 사람을 귀하게 여겨도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잘 섬기는 사람, 나의 위대함을 과시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사람을 귀하게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사람을, 가족을, 직장을 어떻게 섬겨야 하나요? 주님께 하듯이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5절에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 뜻을 기뻐하라.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던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 대가를 받을 줄을 앎이라.” 우리의 마지막 평가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작은 사람 큰 사람, 위대한 사람 무명한 사람"을 말해도, 결국에는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작은 일도 전심으로 기쁘게 섬기면 큰 자가 되고, 아무리 큰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않으면 작은 자입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알고 사람의 눈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눈가림으로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로만 합니다. 그런 사람이 기억납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오니까 이런 저런 것들을 해야 한다고 열심히 주장하는 분이 있었어요. 할 수 없어 가결을 했는데 그 다음에 그분이 보이지 않아요. 남들에게 짐만 짊어지게 하고 본인은 나타나질 않아요. 얼마나 괘씸하던지! 감사하게도 그분이 우리 교회에 지금 없습니다. 안 계시니까 이 이야기를 하지요. 

어떤 사람은 잔꾀로 일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머리 굴리다가 애굽 가서 자기 아내를 뺏길 뻔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몸으로만 일을 하고 마음엔 없어요. 그 얼굴을 보면 마지못해 하는 것이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겁이 나서 억지로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보상이나 칭찬을 기대하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만 때웁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 위선자들아!”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는 뭘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으로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합니다. 공부도, 가정일도! 우리는 칭찬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주님 안에서 주님을 위해서 마음의 중심을 잡고 다스리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사람이야 돌아서면 안 보잖아요. 하나님은 돌아서도, 물구나무를 서도 보시니까 속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멋있게 사는 방법은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의 비즈니스 대단합니다. 큰 기업일수록 직원훈련을 얼마나 잘 시키는지 놀랠 지경입니다. 요새는 한국, 살기 참 좋습니다. 옛날과는 아주 틀립니다. 저도 집에서 무슨 문제가 생겨서 전화하면 바로 옵니다. 이렇게 서비스가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화를 받는 태도를 경험하면 ‘아, 우리 교회도 이렇게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 고객을 못 도와줘서 안달인 것 같아요. 뭐가 또 부족한지를 묻고 앞으로도 필요하면 전화하라고 하면서... 아, 얼마나 서비스가 좋은지, 그러니까 돈을 잘 버는 겁니다. 기쁘게, 즐겁게 섬기니까 장사를 잘 하는 겁니다. 

제가 옛날 미국으로 들어갈 때 동대문에 가서 뭔가를 조금씩 샀습니다. 마지막으로 내의가 얼마냐고 물어보고 금액만큼 돈을 내고 돌아서는데 그 상인 둘이서 “저 병신!”이러는 겁니다. 돈을 달란다고 다 줬다는 이유예요. 제가 뭘 깎을 줄 알아야지요.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 4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안 잊어버렸어요. 그 가게가 어딘지 이제는 모르지만요. 미국에 갔더니 정반대더라고요. 가게에 갔더니 "Satisfaction guaranteed or your money back" 즉 "만족보장! 아니면 환불"이라 써있어요. 제가 ‘이래서 이들이 잘 사는구나!’ 느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미국이 달라졌어요. 세탁기가 고장 나서 신고하면 한 달 후에나 옵니다. 한국은 당장 오는데. 책 출판하는데 미국에서는 1년이 걸리는데 한국은 1주일이면 된답니다. 믿기 어려워서 해보라 했더니 정말 1주일 만에 출판한 책을 저에게 가져오더군요. 아, 한국 사람들 “빨리 빨리!”라고 하더니 정말 빠릅니다. 좋습니다. 

어느 가게에 게으르고 손님을 불편하게 하는 직원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해고시키려고 보니까 아내가 있고 자식이 둘이에요. 그래서 주인이 오래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가게에 단골이 와서 보니 그 직원이 없어요. “어, 그 종업원 어디 갔어요?” “그만 뒀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을 고용해야겠네요?” “안 할 겁니다.” “왜요?” “그가 없어도 불편한 점이 없거든요. 앓던 이 빠진 듯 시원해요. 별로 한 일 없이 월급만 받아 갔거든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진가가 언제 나타납니까? 우리가 섬기는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눈치를 보고 억지로 마지못해 시간 때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작은 일 하나도 주님의 일인 줄 알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표를 내면 “아니, 왜? 나는 이 사표를 받을 수 없어요. 서랍에 넣어 놓을 테니 한 달만 더 생각해봐요!” 한 달 후에 가서 “그래도 제가 떠나야겠습니다” 하면 “언제든 다시 돌아와요. 당신 자리는 언제 와도 있어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고, 하나님께 하듯이 사람들에게 한다면 여러분과 제가 이런 말을 들을 것입니다. 꼭 듣고 사십시다. 어딜 가든지 - 직장이든, 교회든, 가문이든 - 여러분의 존재가 주님 앞에서 기쁘게, 즐겁게, 정성을 다해서, 부지런히 섬기는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한 번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미국서 공부할 때 직장생활을 하다 사표를 냈더니 책임자가 못 받겠다는 겁니다. 1년 반만 있으면 승승장구해서 얼마든지 승진하고 돈을 엄청 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가 못 될 뻔 했어요. 한 달 후에 다시 갔더니 언제든 돌아오라 하더군요. 마음속으로 기뻤습니다. 제가 그 회사에서 3년 반 일하는 동안 주님 말씀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윗사람이 보나 안 보나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은 못 볼 수도, 안 볼 수도, 봐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늘 보십니다. 그분 앞에서 그분께 인정받도록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도 하나님께 하듯이, 이런 태도로 기쁨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서 즐겁게 살며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시편 40편 8절에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하나이다.”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좋아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려고 하잖아요.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를 위해서 얼마나 정성을 쏟았습니까! 저도 고백하지만 그 중 한명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그를 위해서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5장 20절에 “너희 중에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라.” 책임을 맡았으니 어쩔 수 없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라.” 어차피 할 것이면 불평불만 대신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정성을 다해서, 힘껏 하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왜 문제가 생겼습니까? 불만입니다. 하나는 빼 놓고 다 먹으라고 했다는 겁니다. 불만을 품고 그 말을 한 그 여자 때문에 우리가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정말 먹지 말라고 했어? 괜찮아. 그걸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까봐 그러는 거야. 먹어봐!” 했을 때 하와가 “보암직도 하고 만지고 싶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셨으니 안 먹어!” 이랬어야지요! 사탄이 또 먹으라 하면 “안 먹는다는데 왜 그래?” “그래도 한 번 먹어봐!” “사탄아 물러가라!” 여러분, 이런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나요? 가인이 자기 마음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내가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내게 편안한 방법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비가 올 기미도 없고, 사람들이 조롱하고 비난해도 가족과 함께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므로, 사회에서 직장에서 조롱을 받아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바보처럼 순종하며 즐겁게, 기쁨으로, 신실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다른 사람들은 대홍수 때 다 죽었지만 노아는 자기 가족들을 살려서 우리가 노아의 자손입니다. 

편견을 가졌던 요나처럼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성으로 가라 하셨으면 가야지요. 다시스로 도망을 가다니요! 하나님이 절대자인데 어디로 도망갑니까? 저 하늘에 가도 거기 계시고, 바다 끝에 가도 거기 계시고, 땅 밑에 가도 거기에 계신데, 하나님의 신 앞에서 “어디로 내가 피하리이까?” 배 밑창에 들어가서 잠을 자면 못 볼 줄 알았나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불순종했다가 죽도록 고생을 한 후에 순종한 요나처럼 하지 말고, 처음부터 주님께 "네.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십시오.

저는 운동은 할 줄 몰라도 보는 것은 좋아합니다. 배구 선수들을 보니까 코치가 뭐라고 하니까 “네! 네! 네!” 아, 이렇게 복창을 하더라고요. 아주 멋져요. "자기가 코치라고 또 야단법석이야" 할 수도 있는데. 제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들이 주께 하듯 하는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요즘 운동선수들, 코치들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네”를 잘하더라고요. 여러분, 어차피 할 거 “네!” 하세요. 불평불만과 짜증, 귀찮아서 억지로 하는 이런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불평과 불만을 누가 듣는 줄 아십니까? 생명체인 여러분의 세포들이 여러분의 불평을 전부 듣고 있습니다. 계속 들으면 세포들 전체가 휘청휘청합니다. 그 저주스런 음성을 매일 듣는 세포가 건강해지겠습니까?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육체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모세는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여 장막을 건축했습니다. 그러자 그 장막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찼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 전심으로,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는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런 것들은 주님께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즐겁게 하면 됩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사도바울이 떠나려 하니까 떠나지 말라고 설득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 보니 당신이 그곳에 가면 붙잡혀서 고생하다 죽을 것 같으니 떠나지 마세요.” 그러나 사도바울은 기어코 예루살렘으로 떠나겠다고 합니다. 가지 말라고 눈물을 흘리며 바울을 붙들었지만 바울은 가겠답니다. 가겠다는 것을 어떡합니까? 에베소 교인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사도행전 21장 14절에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리다 하고 그쳤더라.” 말 안 듣는 걸 어떻게 합니까?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움직일 수 없는 것을 어떡케 합니까? 이런 것들을 가지고 계속 실랑이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다”하고 그냥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편안해집니다. 

저도 바울과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부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습니다. 형님들한테 말했더니 “서울이 어딘 줄 알고 가냐? 못 가!” 그래도 “갈래요!” “못 가! 우린 너 공부시킬 수 없어. 아무도 없는 그곳에 네가 어떻게 가?” “갈래요!” “못 가! 가지마!” “갈래요!” 우리 형님들이 어떻게 합니까? “주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노라!”하고 보내주신 겁니다. 잘 왔지요. 그때 안 왔으면 어떻게 됐을지...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그때 서울에 오기를 잘했습니다. 6.25직후 혼자서 왔지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때 만약에 형들이 끝까지 내 손과 발을 묶어 놨다면 어쩔 뻔 했어요? 지금 돌이켜 보니까 ‘참 그때 내가 서울에 잘 갔지! 정말 잘 갔어.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어!’ 지금도 생각하면 감사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여러분이 할 일만 즐겁게 하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끝으로, 야고보서 4장 15절에 죽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달렸답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 아이를 못 갖는 것,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생과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우리의 손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겠다”라는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 놓고 죽더라도 죽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여러분,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즐겁게’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심지어 전도서에서 “음식을 즐겁게 먹는 것, 물 한 모금도 즐겁게 마시는 것,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마저도 즐겁게, 맛없어도 맛있다고 먹으면 맛있는 겁니다. 내가 맛있다는데 누가 맛이 없다고 합니까? 쓸데없는 것입니다. 내가 좋고 내가 맛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여러분, 물 한 모금 마셔도 고마운 마음으로 즐겁게 마시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을 때는 하나님이 더 좋은 곳으로 이끌어주시니 "내게 해방과 완전한 자유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환영하기 위해 두 팔을 벌리신 모습을 보며 그분의 품에 안기세요. 그 시간까지는 즐겁게 사십시오. 야고보 4장 12절처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고 주의 뜻이면 우리가 죽겠다" 하며,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있으니 걱정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이 끝나기 전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끝나면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습니다.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날마다 즐겁게 기쁨으로 감사하며 수행하면서 하루를 살아도 반드시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제가 사람들의 성품을 관찰해보니,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재미있더라고요. 그저 모든 것이 깔깔깔. 제가 옛날 미국에서 신학을 가르칠 때 신학교 식당에서 일하는 덩치가 아주 큰 하와이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저만 보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저만 보면 “김 교수님!”하고 달려와서 학생과 교수들이 다 보는데도 그 큰 덩치로 이 작은 저를 꽉 안아줍니다. 그리고 밥을 퍼 주면서도 흥얼거려요. 그 사람이 오면 노래 소리가 들리니까 어디서 오는 줄 다 알아요. 행복한 여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속이 없어요. 이런 사람은 소원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이렇게 좋은 성품 주셔서 인생을 즐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속도 차게 해 주세요."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온 세상이 다 슬퍼요. 그냥 못마땅하고 싫어요. 이런 경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이분들은 과학자 자격이 있는 분들입니다. 모든 것이 현미경 없이 다 잘 보여요. 상대가 잘 못한 것이 다 보여요.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싫고, 저것도, 이것도 다 싫고 속상합니다. 이런 사람이 몇 명은 있어야 과학이 발달합니다. 그리고 계산이 정확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회계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나에게 믿음과 사랑과 기쁨을 주시옵소서. 감사할 줄 아는 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떤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던지 부족한 부분을 놓고 기도하면서 사십시오.

여러분, 하루를 살아도 주님 앞에서 주님을 기뻐하며 주를 위해서, 주님이 주신 삶을 만족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 마지막 날까지 이렇게 행복하게 사십시다.(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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