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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마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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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마 13:44)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지난 9월 4일 남미 엘살바도르에서는 땅속에서 돈 다발이 가득 들어 있는 드럼통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엘살바도르 경찰은 수도 산살바도르로부터 동쪽으로 62km 떨어진 사카테콜라카라는 농장에서 두 차례에 걸쳐 1900만 달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200억 원 넘는 드럼통을 발견하였는데, 이 엄청난 돈은 중남미 마약 밀수범들이 감추어둔 돈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땅속에 감추인 드럼통에서 200억이라니 보물이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를 상고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의 요점은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의 기쁨과, 그것을 소유하기까지의 노력과 희생에 대한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말할 수 없는 환희와 기쁨과 더불어, 값진 희생도 따라야 함을 일깨워 주는 비유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와 같은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1. 비유의 배경

원래 유대민족은 수많은 전란에 시달린 민족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피난을 갈 때는 값진 물건들을 대개 땅 속에 파묻어 두고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난 갔던 주인이 때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 그 보화는 땅속에 그대로 묻혀 있다가 농부들이 밭을 갈 때에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의 은행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오늘날의 은행과 달라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귀중한 보물을 보관하는데 가장 안전한 곳으로 땅에 묻어 두었던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보면 무익한 종은 자기의 달란트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유대 랍비의 가르침에 의하면 “돈을 숨기는데 안전한 유일한 장소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를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금과 은과 그외 가장 중요한 보화들은 뜻하지 않는 전쟁에 대비해서 모두 땅속에 감추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톰손’은 1876년에 처음 출판되어 나온 ‘그 땅과 그 책’이란 저서에서 그 자신이 시돈에서 발굴한 보물의 경우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도시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늘어선 유명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 거리에 있는 한 정원을 파헤치고 있던 노동자들이 몇 개의 동으로 된 항아리에 금돈이 가득 들어있는 것을 파냈다고 합니다. 그 금화는 모두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아버지 필립의 화폐였습니다. ‘톰손’은 그 금화에 대해서 말하기를, 알렉산더가 예기치 않게 바벨론에서 죽자 그 소식이 시돈에까지 알려져서 마케도니아 군인이나 혹은 정부 관리가 장차 일어날 혼란을 대비해 그 돈을 땅에 묻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밭을 일구다가 그와 같은 보화를 발견한 소작 농부의 비유를 통하여 천국의 진리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나라는 로마와 그 법률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은 전통적인 유대의 율법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감추인 보물에 대해서 유대 랍비의 율법에는 “발견한 물건은 발견한 자에게 속한다.” 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시의 그러한 관습을 두시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2. 비유의 중심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여 결국 그것을 소유하게 되는 사람의 기쁨은, 말로서는 형언키 어려운 감격적인 일일 것입니다. 천국! 그것은 바로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감추인 보화를 모르고 헛된 보화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까?

1)인생의 참된 보화

무엇인가 가진 자가 되어 최고의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물질적인 보화에 크나큰 애착을 갖습니다. 그래서 무덤에까지 가지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물질은 그의 허무한 인생의 운명을 바꿀 만큼 능력이 있거나, 행복을 주는 소유물은 되지 못합니다. 인간은 결코 세상에서 얻는 보화로는, 삶의 의미와 보람을 얻지 못합니다. 돈으로 인간의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이 돈을 가진 자의 고백입니다. 이 땅의 모든 보화를 다 가지고 있었던 솔로몬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고 탄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물질로 영혼의 안식과 평안을 얻으려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 하였습니다. 이 세상 보화로 죄지은 양심을 달랠 수 없고, 영혼의 깊은 공허를 채우지 못합니다. 

2)참된 보화는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가치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사들인 보화가 숨겨진 밭에 비유하셨습니다. 천국은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얻어야 할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외치신 최초의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이었고, 팔복의 첫 번째에서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떠한 곳입니까? 계 21:3에 이하에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천국을 소유한 자 만이 참된 보화를 간직한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많은 구름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이 목숨까지 바꾸어 버릴 정도로 귀하게 여긴 천국의 가치를, 진지하게 감정하는 감정사가 되어 보아야 합니다. 바로 그 때만이 “기뻐하며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라는 표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눈으로 천국을 감정하여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남아프리카 말라위 공화국의 블랑튀르(Blantyre)에 가면 리빙스톤 기념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 기념관에는 색 유리창이 있는데 거기엔 리빙스턴이 남긴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리빙스톤의 편지에서 따온 것으로 그의 사역 초기에 쓴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계된 것이 아닌 한, 무엇을 소유하든 거기에 가치를 두지 않으며 소유하겠다는 기대도 않으리라.” 

3)참된 보화는 영생입니다.

천국을 소유한 자는 곧 영생을 얻은 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천국과 영생은 하나입니다. 영생은 한 번 얻게 되면 아무도 앗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기쁨 또한 이 세상에서 주는 평안과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인생이 소유해야 할 참된 보화인 것입니다.

다음은 김준곤 목사 칼럼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불로장수는 인간 소원의 첫째 꿈입니다. 뱀도 먹고 산삼 녹용이 무값으로 팔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진시황은 국력을 기울여 불로초를 구했습니다. 만일 100살까지 사는 비약이 개발되었다면 세상이 뒤집히는 소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는 문자 그대로 영생 부활의 비약입니다. 8. 15 해방 되던 날 우리 겨레는 태극기 물결 속에 목메어 만세를 불렀습니다. 묘소에 가서도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TV, 라디오, 신문의 정규 프로를 모두 중단하고 임시 긴급 뉴스로 “예수 그리스도는 영생부활의 비약입니다!” 라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4)궁극적인 보화는 예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인생의 궁극적이고 참된 보화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에게 천국을 얻게 하셨고, 영생을 얻게 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며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충만하십니다. 예수라면 비웃고 코웃음 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리스도 안에 큰 보물이 있음을 알고, 내 전 생애를 걸고 전부를 걸고 그 보물을 사고 기뻐하는 삶이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가장 귀한 보물이기에 사자 굴로 들어가면서도 찬양했고, 교수대 위에 올라가면서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귀한 보화이기에 그 주님을 위해 고문당하면서도 놓임 받기를 원치 않았고, 조롱당하고, 채찍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돌에 맞기도 했고, 창과 칼에 찔리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양과 염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산과 들을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굶주림과 고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광야와 산과 땅굴 속에 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가장 귀중한 보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 보화를 발견한 자

1)농부의 삶

이 비유의 주인공은 지주가 아니라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 농부가 분명합니다. 그는 후에 이 땅을 샀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하여, 타인의 밭을 빌려 농사를 지으려 했을 것입니다. 부도 명예도 영화도 소작 농부에게는 영원한 환상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우리들 자신의 삶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진정한 행복도 소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허무주의자들이었으며, 사탄과 죄악의 권세 아래 종노릇 하며,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도록 헛그물질만 하던 절망과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었던 우리들이 아니었던가요?

2)의외의 발견

소작 농부가 밭을 갈던 중 보화를 발견한 것은 꿈에서나 생각해봄직한 일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소작 농부에서 일약 큰 부자로 바뀌는 한 인생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알고 믿는 사람의 삶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철학자인 ‘키엘케고르’는 기독교의 복음을 비유로 설명하기를, 마치 고아가 상상도 못했던 부자 아버지를 만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 인간의 노력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된다는 기독교의 구원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은사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엡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3)농부의 지혜와 노력

농부가 밭에서 뜻밖의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은 농부의 다음과 같은 반응으로 비유되었습니다. 첫째로 숨겨두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숨겨둔 행위는 당시로서 부도덕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임자 없는 보물은 먼저 발견한 자가 주인이라는 법이 있었기에, 그는 땅 주인에게 알릴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은 오직 개인적인 결단 행위입니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기만의 대 결단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야 합니다.

둘째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그가 소작 농부라면 그는 가난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상 그의 소유를 다 팔았다고 해도 별것 아닌 셈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몇 푼 되지 아니하는 소액으로, 엄청난 보화를 사게 된 셈입니다. 그 사람은 가장 적은 것으로 가장 큰 것을 얻은 최대의 거래를 한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무엇을 버렸거나 혹은 잃었거나 간에, 그는 가장 많은 이익을 거둔 상거래를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혹은 이 사람의 소유라는 것이 실상은 죄뿐인 인간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남은 소유란, 죄와 그 죄로 인하여 생긴 결과뿐입니다. 그가 소유한 것을 다 팔아 보화를 샀다는 것은, 죄를 회개하고 천국을 소유한 성도의 구원의 의미를 보여준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필히 두 가지 것을 해야 합니다. 우선 소극적으로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이는 나의 모든 죄악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또 적극적으로는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면서도, 가끔 현세의 물질이나 명예 때문에 순간적으로 그 나라를 포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양심과 현재의 이익이 서로 갈등을 일으킬 때에, 우리는 항상 신앙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은 당장 손해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손해를 반드시 복구시켜 주십니다. C. C. C 창설자 빌 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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