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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짓을 행하지 말라 (말 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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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행하지 말라 (말 2:10-16)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닭고기를 사기 위해서 정육점에 들렀습니다. 때마침 정육점 주인은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주머니는 정육점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만 닭고기가 조금 필요해서 그런데 살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듣고 정육점 주인은 냉장고로 갔습니다. 문을 열었습니다. 다행스럽게 다 팔고 딱 한 마리의 닭이 남아 있었습니다. 주인은 아주머니가 보는 앞에서 그 닭을 저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3kg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그것보다도 조금 더 큰 것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주인은 알겠다는 듯이 그 닭을 들고서 다시금 냉장고로 돌아갔습니다. 주인은 냉장고 문을 열고서 그 닭을 집어넣고 다른 닭을 끄집어내는 듯 하면서 똑같은 닭을 다시금 끄집어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닭은 딱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똑같은 닭을 다시금 저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똑같은 닭인데도 4kg이 나왔습니다. 
주인이 자기의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서 무게를 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르고서 아주머니는 그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싸달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돈을 지불하고 가게 문을 나서더니 갑자기 뒤돌아서면서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아무래도 이것 가지고는 조금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 전에 달았던 것 마저 싸 주세요.”
그러니 그 말을 들은 주인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용서받을 수 있는 거짓말이 있을까요?
탈무드에서는 두 가지 경우에는 거짓말을 해도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미 누군가가 사 버린 물건에 대해서 의견을 물어 왔을 때는, 가령 그것이 나빠도, 훌륭하다고 거짓말을 하라.
다음에 친구가 결혼했을 때에는 반드시 부인을 대단히 미인이며 행복하게 살라고 거짓말을 하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통해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거짓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모두 형제자매들입니다. 따라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에게 서로에 대하여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순한 이웃이 아닌 한 분 아버지 밑에 있는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더 서로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사랑을 베풀지 못한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사랑해야 할 대상을 단지 내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지극히 작은 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내가 받은 만큼 나도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적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부터가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시기로 하신다면 예수님은 먼저 우리를 죽여 놓고 시작하셔야만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으니 죽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어 마땅한 우리를 위해 자신이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친구라 하노니 나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가운데 죽어 마땅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도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한데 우리는 내가 받은 만큼 갚아야 된다고 합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면 마땅히 나도 사랑을 베풀겠지만 상대방이 나를 소 닭 보듯이 한다면 나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사랑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내가 먼저 해야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게 유익만 된다면 약속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것쯤이야 별로 대수롭게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게 유익이 된다면 상대방이 조금 해를 당해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그러한 행동들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살아야지 욕되게 살면 안 됩니다. 그렇다며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중에 먼저는 부모 공경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 것이 부모 공경 한 마디로 말해서 효의 실천입니다. 거기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물론 부모도 부모 된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부모는 공경의 대상이지 멸시하지 않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 부모 공경이야 말로 “네가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고 하는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이어서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주의 일을 하는 자를 도우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리라고 하십니다. 아울러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되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곧 받는 사랑이 아닌 주는 사랑입니다. 나를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내가 받지 못한 관심 내가 받지 못한 사랑 때문에 섭섭해 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가 먼저 베풀고 내가 먼저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내가 먼저 남에게 해주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이라는 복음 성가가 있습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더러운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 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 있네
어찌 할 수 없는 이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여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 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이해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여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추악한 나의 욕심이여 오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 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 있네
어찌 할 수 없는 이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이 가사의 내용처럼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며 내가 먼저 섬겨주고 내가 먼저 이해하고 내가 먼저 높여주며 내가 먼저 져주고 내가 먼저 손해 보는 이런 사랑의 실천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여호와께 거짓을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고 신명기 7:3~4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고 내가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결혼이란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닌 돕는 배필이 됨으로 함께 유익함을 이루어나가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정에 질서를 세우시어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결혼의 대상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만 결혼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성결을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성결은 구별됨입니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만 그러나 우리의 소속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 곧 성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명령 가운데 믿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그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결혼하게 되면 그들이 여호와를 떠나게 만들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만들어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께 놀라운 지혜를 얻어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거룩한 성전을 지어 하나님 앞에 봉헌했던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을 맞아 아내와 첩으로 맞이한 결과 그 말년이 얼마나 망가져 버렸는지를 잘 압니다.

그 총명한 솔로몬조차도 아내들의 등쌀 아래 그 총명이 흐려지고 맙니다. 그래서 이방 신전을 만들고 거기서 분향하며 제사하는 지경까지 나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결국에는 하나님 신앙에서 떠나고 온전히 망해버렸던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은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배필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대로 배필을 고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짝지어주시는 것임을 우리가 분명히 안다면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바 믿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은 처음부터 없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혼인을 이렇듯 귀하게 생각하느냐 하면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를 혼인 관계로 설명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신랑이 되십니다. 신랑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 거처를 마련하시고 이제 신부된 우리를 마련된 하나님 나라의 거처로 맞아들이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갖는 성찬예식의 의미도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임을 성찬예식에 참여함을 통해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떡을 먹음으로 나를 위한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에 감사하는 것이요 잔을 마심으로 주님에 대한 사랑과 나의 신부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떡을 먹지 않으면 나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요 잔을 마시지 않으면 나는 주님의 신부됨을 고백하지 않는 자입니다. 당연히 주님의 신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미 결혼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무지해서 아니면 주님을 알지 못해서 내 마음대로 짝을 정하다 보니 지금까지도 믿음으로 하나 되지 못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믿음으로 하나 되기 위해서 정말 눈물로 기도해야 할 것이요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아주 가까운데 같이 잠을 자다가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는 남겨지는 이런 비극이 우리 가정에 있지 않도록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약속을 따라 온 집 안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그 아낌없는 수고가 우리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예배의 중요성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의 신부라면 마땅히 신부는 신랑과 함께 있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예배의 자리입니다. 하지만 악한 마귀는 어떠한 이유로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자리에 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결국에는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그것이 망하는 길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항상 주님과 동행해야 하고 주님과 대화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는 자요 하나님 앞에 깨어 있어 기도하며 예배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과의 약속에 신실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다짐한 일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 한데 그것이 단지 립 서비스(lip service)로 그저 듣기 좋은 말로만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받고 있고 우리의 입술의 고백을 듣고 계십니다. 그런데 말로는 하겠다고 하면서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상급의 대상이 되어야지 결코 징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실 때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세 가지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 첫째가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고 쉬시면서 사람들과의 교제의 시간으로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일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비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쁨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해야 하고 그 어떤 이유로도 이 예배가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예배야 말로 우리 영혼의 안식 다시 말해서 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다음으로는 가정제도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허락하신 것은 그 가정이 작은 천국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의 머리로서 다스리는 이유는 주님이 교회의 머리됨을 우리가 항상 기억하며 실천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동의 신성입니다. “생육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시는 것은 결국 일이야 말로 우리의 행복을 위한 또 하나의 조건임을 알려줍니다. 

일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힘들다고 하지 마시고 오히려 내가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기쁨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즐겁게 일을 하되 때를 따라 쉴 줄 아는 여유도 가져야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귀한 제도들을 허락하셨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세워놓으신 질서를 따라 행복을 누리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한 남편의 책임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거룩한 혼인예식을 통해 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내를 향한 남편들의 사랑이 어떠합니까? 처음 약속대로 그렇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내로 하여금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그 원인이 아내에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그 어떤 불편함과 연약함까지도 다 감싸 안는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때보다 불편하고 어려움이 있고 상처가 될 때 더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고멜이라는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밖으로 나대는 아내를 끝까지 사랑합니다. 심지어 남의 애를 배기까지 했음에도 여전히 아내를 사랑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사랑하도록 하셨을까요?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적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오래 참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쉽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주먹질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언어폭력입니다. 물론 주먹질을 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먹질도 안 되지만 언어폭력은 더더욱 금물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보다 연약한 그릇인줄 알아 끊임없는 배려를 해야 합니다. 물론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해보이는 여자도 끊임없는 남편의 배려와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런 아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지 마십시오. 제일 큰 상처는 다름 아닌 무관심입니다. 이보다 더 큰 학대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쪼잔하게 잔소리나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상대방에 대해 배려한다고 한 것이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배려는 일방적이 아닌 서로 상호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어찌 보면 부부의 삶이라는 것은 물속에 있는 돌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삐쭉삐쭉 날카로웠던 돌이 흘러가는 물속에서 오랜 시간 다듬어지면서 매끈한 바위로 매끈한 조약돌로 바뀌듯이 아내와 남편이 바로 그렇게 서로 다듬어져가야 합니다. 그냥 바위까리 돌끼리 부딪치면 더 날카롭게 깨져나가지만 거기에 물이 있으면 예쁘게 다듬어진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알려줍니까? 바로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질서를 따라 사랑과 순복이라는 물이 가정 안에 흘러넘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날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축복하십시오. 그 축복 안에 사랑의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습니다. 미운 마음이 들수록 더욱 축복하십시오. 그럴 때 영 혼 육이 다 행복하게 될 것이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와 복으로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항상 충만한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혼 남녀 8,849명을 대상으로 한 결혼 전 배우자에 대한 인터파크의 거짓말 조사에서결혼 전 연인들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 가운데 남자가 하는 최고의 거짓말은 ‘결혼하면 내가 다할게(56%)’라는 말이랍니다. 다하기는 뭘 다합니까? 그 다음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예쁘더라’(26%), ‘나 여자랑 손도 한 번 못 잡아봤어’(18%)가 그 뒤를 이었다고 합니다. 
결혼 전 여자가 하는 최고의 거짓말은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 멋져(42%)’라는 말이랍니다. 그 다음으로 ‘화장 하나도 안 한 건데(30%)’와 ‘집안이 너무 엄해서 일찍 들어가야 해(28%)’ 등도 각각 거짓말 2, 3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여성들이 결혼한 뒤 남편에게 한 거짓말로는 ‘화 안 낼 테니까 솔직히 말해봐’가 56%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다이어트 중이야. 오늘만 먹고 안 먹을 거야’(25%), ‘결혼 전에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줄을 섰었어’(19%) 순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렇게 거짓말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 이것만 해주시면 제가 나머지는 다 하겠습니다.”
“이 병만 낫게 해주시면 열심을 다해 주님만 섬기겠습니다.”
“이번 사업으로 돈만 벌면 다음 주부터 열심히 교회에 다니겠습니다.” 등등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살아왔습니까? 기도 열심히 하겠다고 해놓고 또 말씀대로 살겠다고 해놓고 공수표로 돌아간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신앙적인 면에서 신용불량자입니다. 그래서 이 아침에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해야 하고 생명의 주를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거짓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이제 이웃과 하나님과 아내 앞에 진실하게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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