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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로 사랑하자 (요일 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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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자 (요일 4:7-16)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일서 4:7-16)

제가 이 자리에 서서 설교 할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세 번 정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는 올해 주제를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로 정하고 우리의 가정이 작년보다 더 행복하고,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서 병든 자, 어려운 자, 상처 받은 자들을 치유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의 뜻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가 할 설교가 있다면 ‘서로 사랑하자’입니다. 제가 죽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하는 설교나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유언과 같습니다. 저는 남은 몇 주 동안 ‘서로 사랑하자’는 주제로 사랑에 대한 도전을 남기고 45년 동안의 제 교회 목회를 물러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공기, 돈, 명예, 옷, 지위, 직장 등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우리에게 식량은 넉넉합니다. 지금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배추지요. 예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음식이 너무 풍족해서 “무엇을 먹어야 살이 안찔까?” 고민하는 시대입니다. 50-60년 전에 비하면 참 좋은 시절입니다. 

입을 옷도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제가 딸이 세 명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 딸 셋에, 아내와 장모님까지 여자 다섯 명이 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옷장에 다섯 명의 여자 옷이 쭉 걸렸으니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딸아이들이 한창 사춘기 때 옷장 문을 쫙 열면서 늘 하는 말이 있었어요. “아, 입을 것이 없어!” 제가 옆에서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요. 우리에게는 입을 것도, 먹을 것도 많습니다. 

물질적으로 이렇게 풍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또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부족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느 집 어느 부모 어느 자식에게나 부족합니다. 가정이 없어서, 결혼을 안 해서, 남편이 없어서, 아내가 없어서, 자식이 없어서, 부모가 없어서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사랑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사랑할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지, 어떤 표정을 할지, 어떤 말을 할지, 어떻게 귀를 기울일지,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맙니다. 사람들에게 제일 부족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가족이 있고 친구, 직장, 교회가 있기 때문에 풍성한 사랑이 있음직한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제일 갈증을 느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우리들에게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7-8절).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을 안다면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아야지요. 

미국에서 이메일로 보내 온 재미있는 사진을 하나 봤습니다. 키도 크고 체격이 좋은 아버지가 뒷짐을 지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데 그 뒤에 4-5세 정도 된 아들이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이 뒷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는 사진입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낳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그 아버지와 아들의 닮은 모습을 보고 부자지간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어떻게 아나? 우리가 하나님께 생명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나?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모습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사랑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잘 안됩니다. 왜? 사랑을 받아 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사랑을 잘 할 수 있나? 사랑을 충분히 받아 본 사람입니다.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 어색합니다. 몸이 간질간질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못하겠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거 알잖아요! 꼭 표현해야 하나요?”라고 합니다. “아버지!”하고 불렀을 때 아버지의 사랑이 커서 마음속 깊이 사랑의 체험이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데 자유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들은 사랑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랑도 어머니의 사랑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밥 먹고 학교만 다닌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에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릅니다. 본 적이 있어야지요! 여러분에게 여러분을 사랑한 부모님이 계셨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도 부모님이 저를 사랑하셨는지 안 하셨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11살까지밖에 같이 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날 사랑하셨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랑하셨겠지!’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단 한 번, '그것이 사랑한 것인가?' 하는 기억이 있긴 합니다. 제가 7살 때쯤 두통이 나고 열이 높아서 잠을 못자고 앓았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늦게 집에 들어오셔서 앓고 있는 저를 보시고는 등에 업고 방을 왔다 갔다 하신 기억이 납니다. 등에 업힌 기억 딱 한 번! ‘그것이 아마 사랑이었을 거야!’라는 정도의 기억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억이 있으십니까? 대부분 저보다 부모님과 더 오래 계셨으니까 더 좋은 기억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어머니가 날 사랑했나? 잘 몰라요. 우린 형제가 아홉 명이나 되니까 사랑할 시간이 없습니다. 빨래할 시간조차 없는데요. 그런데 한 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집 넓은 마당 한쪽에 평상이 있었는데 제가 열 살 때쯤, 어머니께서 그 평상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말씀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그때 저는 다른 쪽에서 혼자서 뭔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복이가~” 하는 소리가 들려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가만히 들어 보니 어머니가 제 자랑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딱 한 번의 경험! 그런데 여러분, 딱 한 번 나를 자랑하신 어머니의 그 음성이 제 평생에 힘이 되었습니다. 제가 11살에 부모님과 헤어져서 남쪽에 와서 결혼하기 전까지는 늘 혼자였습니다. 혼자 사는 동안 어려움, 힘든 일, 견딜 수 없는 일, 고독한 일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런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어머니의 그 사랑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어! 나를 위해서 기도하실 거야!’ 여러분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면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다면 짐작컨대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하는 것이 참 힘들 것입니다. 사랑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이 자유롭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요새 우리 교회 아이들을 보면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들은 표가 납니다. 밝아요. 목사님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저에게 그냥 확 달려들어서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하고, 교회학교에서 받은 사탕을 저에게 주고 그래요. 제가 뭘 물으면 주저함 없이 대답을 잘 합니다. 그런 아이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사랑을 못 받은 아이는 쭈뼛쭈뼛하고 어른 만나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사랑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사랑을 합니다. 

비록 여러분이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더라도 경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우리는 죄성이 있어서 죄를 짓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부족함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품성상 사랑이시기 때문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영원히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저도 이것을 깨달았을 때 제 인생에 변화가 왔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든지 공부 잘하고, 어떻게 하든지 착하고 정직하여서 하나님 마음에 들고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실 정도가 되도록 노력했지만, 아무리 몸부림쳐도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너를 어떻게 버리겠느냐? 내가 너를 낳았는데, 내가 너를 품에 안아서 키웠는데 어떻게 너를 떠나겠느냐?”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호세아서에도 “내가 너를 떠날 수 없어. 내가 너를 버릴 수 없어. 너를 어떻게 잊어버리겠느냐? 잊을 수 없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여러분을 영원히,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여러분이 듣고 깨닫는다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의 감격! ‘아, 내가 이렇게 부족하고 하나님 마음에 들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영원히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셔서 내 죄를 다 용서하시고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구나!’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주셨습니다. 이 사랑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본문에도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7절)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 죄인을 무조건 끌어안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실수와 잘못과 허물이 있어도 그것을 보지 않고 그대로 품어주시는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여러분이 먼저 체험하고 여러분 것임을 믿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거기에 영원한 생명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설령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더라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의 감격이 있을 때 우리 속에 사랑의 샘물이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사람을, 이웃을 사랑할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자녀들은 결국 부모를 닮습니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체험하여 사랑이 몸에 배어서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사랑하는가? 사랑의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사랑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사랑하는가?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는 “사랑을 경험한 자들아”, “사랑을 받은 자들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아”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신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이 하나님에게 속한 것인데 그 사랑을 내가 체험했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을 보지 않고 아가페 사랑으로 무조건, 영원히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성자(聖者)라고 부릅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가 130년이 넘는데 그동안 그 많은 기독교인들 가운데 성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손양원 목사님 한 분뿐입니다. 문둥병자들을 사랑하시고,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자식으로 삼은 분입니다. 그처럼 사랑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정말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고 성숙해지면 손양원 목사님처럼 전적으로, 전심으로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서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도바울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 쪽만 사랑해서는 도저히 지속적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요 손양원 목사님도 아닙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나만 계속해서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를 사랑해야 사랑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한쪽만 계속 사랑을 요구하고 기대해서는 얼마 안 가 지치게 됩니다. 

처음에는 노력을 합니다. ‘그래도 내가 사랑을 보여야지!’ ‘그래도 내가 참아야지!’ ‘그래도 내가 용서해야지!’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에는 지쳐서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못하겠어. 반응이 있어야지! 할 수 없어. 그냥 이렇게 살자.” 이런 생각과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한쪽만 사랑할 때는 안 됩니다. 내 가족이, 형제가, 이웃이 사랑을 표현하면 여러분도 똑같이 표현해 주세요. 그 사람이 한 것보다 더 하기 힘들면 비슷하게라도 하세요. 인간 사회에서는 서로 사랑을 표현하고 주고받아야 사랑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남자로서 어떻게 자식을 사랑해야 할 줄을 몰라도 사랑하려고 결단을 해야 합니다. 사랑은 저절로 되지 않아요. 만약 우리가 사랑을 느낄 때만 사랑한다면 우리는 사랑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을 언제 느낍니까? 우리가 사랑을 느끼는 것은 결혼식 전입니다.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그 사랑은 50%로 뚝 떨어집니다. 해가 갈수록 45%, 40%, 35%로 떨어지면서 몇 십 년이 지나면 그저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기도하고 여행도 다니고 쇼핑도 하고 어깨동무도 하면서 꼭 사랑을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떠나고 자녀들이 부모를 생각할 때 좋은 기억이 많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 둘째딸네 집에 갔습니다. 거기서 제가 딸 부부의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부부가 아이들 셋에 대한 사랑의 표현과 말, 태도,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못했는데 우리 딸은 어디서 배워서 저렇게 잘 하는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보다 몇 배는 더 잘 해요. 제 손주들이 어른이 되면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한 기억들이 많을까! 기록과 사진만 봐도 부모님과 얼마나 즐겁게 보냈는지 다 알 수 있잖아요. 좋은 추억,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주십시오. 의지적으로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저절로는 안 됩니다.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결단이요 의지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역시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사랑을 구걸하고 사랑에 목말라 애타하고 가짜 사랑에 속아서 상처를 입지 않습니까! 

본문 13절에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14절에 “아버지(성부)가 아들(성자)을 세상의 구주로”라고 하셨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역사해서 사랑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지로 결단을 하면서도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의지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13절).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분의 사랑의 힘으로, 여러분의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과 자녀, 부모형제, 교우들,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사랑이 필요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 후면 제가 목회를 마무리 하게 되는데, 제가 할렐루야교회에서 20년 동안 무난히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여러분의 사랑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표현해 주셨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모습 속에서 저를 사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얻었고 힘이 생겼고 참을 수 있었고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게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십시다. 가족 간에도 서로 사랑하십시다. 사랑을 남편에게만, 아내에게만, 자식에게만 맡기지 말고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가족들이 각자 자기의 몫을 다하여 서로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을 주고받아서 사랑이 가득한 복된 인생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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