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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께서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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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눅 19:1-10)
 
 
어느 목사님께서 설교하려고 강대상에 올라 오셨는데 굉장히 떨리셨어요. 긴장을 해서 설교 가운데 실수를 하셨는데 이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성에 들어가시는데 갑자기 어느 한 사람이 예수님을 보려고 하는데 키가 너무 작아 예수님을 못 만났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니고데모였어요. 이 사람이 세리였습니다. 그런데 키가 너무 작아서 예수님을 보기위하여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계속해서 니고데모라고 하니까 듣고 있던 교인들이 니고데모가 아니고 삭개오 아니야? 웅성웅성 거리니까 그때서야 이 목사님이 아차 실수했구나 하고 이렇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삭개오가 나타났습니다. 삭개오가 니고데모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니고데모야 내려와 거기는 내 자리야.” 그랬답니다.

저도 설교할 때 어떤 때는 니고데모라고 해야 하는데 삭개오라는 말이 나오고 삭개오라고 해야 되는데 바디메오가 나오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지난 주일에 우리가 읽었던 여리고성에 예수님이 들어가셔서 맹인 바디메오의 눈을 고쳐주고 난 다음에 여리고성 안에서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니고데모가 아니고 삭개오라고 하는 진짜 세리장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여리고성 안으로 들어가시다가” 그랬는데, 이 여리고는 이집트에서 시리아까지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되는 가장 중요한 교통 요지 가운데 하나이자 여리고 성에는, 여리고 마을에는 샘이 많아서 종려나무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여리고에 가면, 종려나무가 많고 농사짓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돈 많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세 군데의 세무서가 있었는데 그 중에 이 여리고에 있는 세무서가 세수원이 세금을 걷어 들일 수 있는 곳이 많았다고 합니다. 삭개오는 그 세무서의 소장이었습니다. 
  

첫째,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었고, 당시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표현했나요?

이 삭개오가 돈이 많았고 명예도 있었고 로마사람들과 잘 지내서 권력도 있었겠지만 마음속에 한 가지가 없어서 늘 찜찜했습니다. 이런 말 들어보셨지요? 소유와 존재라는 이야기 입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돈이 많으면 권력이 많으면 명예가 많으면 즉, 소유가 많으면 행복해 질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돈이 많으면, 권력이 많으면, 명예가 있으면 실제로 편리하기는 합니다. 소유가 사람의 행복을 가져다주거나 소유가 사람의 존재를 의미 있게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내게 소유가 없습니다. 가난할 수 있고 학위도 없고 외모도 볼품없고 가진 것 없을 수 있으나 그 사람의 존재는 아주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존재감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물질이 있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무서 소장인 삭개오는 돈이 많았습니다. 왜 세무서 소장이 돈이 많았냐하면,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이때에 로마가 이스라엘에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예를 들어 한 가구당 이스라엘 주민들에게 100만원씩 세금을 내라 하고 책정을 하면, 세무서 소장이 그것을 200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100만원은 로마에 갔다 바치고 100만원을 착복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는 세무서 소장이 얼마를 매기든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들은 100만원만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세무서 소장들이 일반적으로 세금을 더 매겨서 나머지 돈은 자기들이 착복을 하니까 당연히 부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짜내서 세금을 더 많이 걷어 들입니다. 당연히 부자지요.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체육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체육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머리를 썼습니다. 많은 사람을 자기네 체육관으로 불러들이려고 어떤 제안을 했냐하면, 내가 오렌지가 하나 있는데 이것을 손으로 짜겠다. 그리고 난 다음에 내가 짜낸 오렌지를 누군가가 다시 잡고 한 방울의 오렌지 물이라도 나오면 내가 100만원을 주겠다. 그러니까 체육관에 온 많은 선수들이 신청을 하는 것입니다. 역도 선수도 오고 정말 능력있고 힘 있다는 선수들은 다 오는데 다 번번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체육관 주인이 굉장히 손아귀 힘이 센 사람입니다. 짜는 데는 일등입니다. 아무도 100만원을 못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삐쩍 마르고 키도 작은 사람이 체육관에 와서 하는 말이 내가 한 번 해보겠다. 하니까 체육관 주인하고 체육관에 와 있던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아니 저 등치 가지고 뭘 한다고, 창피나 당하지 않나? 체육관 주인이 오렌지를 잡고 짰습니다. 그날은 더 짰습니다. 그래서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도록 짜서 그 사람에게 줬습니다. 삐쩍 마르고 키도 작은 이 사람이 손으로 딱 짜는데 여섯 방울이나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돈 100만원을 줬습니다. 나가려고 할 때 체육관 주인하고 주변의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당신 직업이 뭐예요? 뭐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힘이 쌥니까? 그랬더니 이 사람 하는 말이 “나 국세청 직원 이예요.” 하더랍니다.

짜야지요. 네, 그런데 이 삭개오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부자이지만 권력도 있지만 명예도 있지만 삭개오는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리고 성 안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왜 만나고 싶었냐 하면, 삭개오는 이 앞장에 나오는 바디메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앞장에 보면, 바디메오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고 난 다음에 마지막 절에 바디메오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뻐하며 예수를 따라 다녔더라고 했습니다. 좋았으니까 전도했겠지요! 좋았으니까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여리고 성 안에 이미 소문이 난 것이지요. 그것을 삭개오가 듣고 있었습니다. 

나도 예수를 만나야 하는 것 아니야?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권력도 있지만 나는 뭔가가 부족하다. 그런 마음의 부담을 갖고 예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예수님의 일행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뛰어갔는데 이 사람은 몇 가지 장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장애는, 이 사람은 키가 작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라들이 에워싸고 있는데 그 틈바구니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키가 작으니 어깨 너머로 볼 수도 없구요. 그리고 이 사람은 세리장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세무서 직원은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매국노다. 해서 손가락질을 당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몇 몇 부류의 사람이 있었는데 첫 번째가 거리의 여인, 몸을 파는 창녀였습니다. 이 창녀들과 똑같은 급에 있는 죄인이 세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던 사람이지요! 키도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는데 더군다나 사람들이 같은 동족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막았겠지요. 부자이기도 하고 또 소장 정도 되니까 나이도 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몇 몇 장애물이 있어서 예수님에게 직접 갈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 삭개오는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했습니다. 삭개오의 행동은 무엇을 말하나요?

그래서 삭개오는 뛰어가서 예수님보다 앞질러 가서 나무위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삭개오가 나무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가시던 길을 멈추고 나무 위로 쳐다보시며 삭개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삭개오의 이름을 알았을까? 궁금하지요? 아마도 예수님은 삭개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괜히 여리고성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는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 이 말을 듣고 삭개오가 속히 내려오자마자 예수님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아니, 랍비라는 사람이 어떻게 죄인과 함께 유하겠다는 거냐? 그랬더니 이 말을 듣고 삭개오가 예수님을 향하여 서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 제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리고 혹시 제가 다른 사람들의 것을 도적질 한 적이 있으면 그것을 네 배나 갚겠습니다. 

예수님이 요청하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는데 삭개오 스스로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구체적인 회개의 표현을 합니다. 예수님이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오늘 이 집에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이르렀도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너희들이 버린 너희들이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 이 잃어버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내가 왔다.   

여러분이 이 삭개오의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아마 수백 번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삭개오는 버림받은 인간입니다. 아무도 삭개오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돈이 있고 명예가 있고 권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소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의미 있는 존재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재산도 있고 권력도 있고 명예도 있지만, 마음에 공허함이 있으신 분들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여러분의 존재가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풍성하게 물건을 소유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존재하는 것입니다. 바로 삭개오는 그 부분에 있어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로 작정을 합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가 보려고 나무위로 올라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는 장애를 무릅쓰고 나무위로 올라간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관심은 여리고 성 안에 있는 군중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부르신 이유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분이 소유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만나야 더 풍요롭게 풍성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내 영혼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내 삶의 부족한 것들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풍성하게 풍요롭게 존재하는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삭개오의 위대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비록 그는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낙인이 찍혔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예수 만나야 해결된다고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삭개오를 쳐다보시면서 부르셨던 이유는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속에 그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삭개오가 나를 만나야 풍요롭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의 삶의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구나! 예수님은 삭개오의 믿음을 보시고 가시던 길을 멈추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삭개오의 두 번째 용기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삭개오는 그를 막고 있는 많은 장애물에 굴복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었습니다. 키 작은 게 무슨 문제 입니까?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새로 등록하신 분을 심방 갔는데 그 분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자기가 우리 교회 몇 번 나오다 등록을 해서 너무 기쁘게 신앙생활을 잘 하게 되서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전도를 했답니다. 교회 나가자고 너무 좋다고 했더니 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교회 나가려면 돈이 있어야 돼” 이 분이 그 말을 듣고 제게 “목사님 정말 교회 나가려면 돈이 있어야 됩니까?” 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주님이 여러분 보고 올 때마다 돈 보따리 싸가지고 오라고 했나요? 돈 없는 사람은 교회 오지 말라고 하셨나요? 여러분의 가방 끈이 짧다고 무슨 배경이 없다고 아니면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명예나 권력이 없다고 예수님이 여러분 오는 것을 막았습니까? 세상에 있는 논리는 그럴 수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social 클럽은 다 지위나 명예나 돈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에 내 외모가 내 지식이 내 배경이 내 재산 정도가 나를 주님 앞에 가는데 가로 막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귀가 가져다 준 것이지요!   

삭개오는 죄인이라는 낙인, 어떻게 보면 사람들의 돈을 긁어모아서 매국노가 되었다는 그런 나쁜 인상, 이런 모든 것들이 그가 예수님께 가는데 방해요소였습니다. 실질적으로도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나이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장애를 다 극복했습니다. 나이든 사람이 부자가 세무서 소장이 어린애처럼 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만나야겠다는 그의 열정, 그는 예수님을 만나야만 풍요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전제 때문에 이런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많은 장애 요소! 주님만 바라보면 나무위도 올라가고 바위위도 올라가고 강도 건널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보신 것입니다. 삭개오가 가지고 있는 많은 인간적인 세상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예수님을 만나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무위에 올라간 삭개오의 심정과 마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가던 길을 멈추셨습니다. 

이 시간에 예수님을 찾으려고 오셨지요? 예수님을 만나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님을 찾기 전에 예수님이 여러분을 쳐다보고 계시고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길을 멈추시고 이 시간에 예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셔서 여러분이 여기 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무위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보시고 “아니 저 사람이 누군데 나무위에 올라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시지 않으셨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시고 쳐다보시고 부르신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을 찾아 예배드리러 오신 여러분의 마음을 보시고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만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예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속히 내려오라는 예수님의 음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은 지나가시다가 삭개오가 있구나. 라고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삭개오 또한 예수님을 보고 아 저렇게 생기셨구나. 언젠가 시간 있으면 내가 조용히 예수님을 만나야지. 이렇게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 있어서 구원은 내일이 아니라 다음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 당장 내려오너라!”  

사도바울도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지금이 구원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로다” 예수님은 지나쳐 다음에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를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지금 이 자리에서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생명,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과 시간과 몸과 재물,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을 위해 써야합니다. 주님이 이 시간에 나를 부르면, 주님! 가겠습니다. 고백해야지요. 주님, 지금은 몸이 아픈데요. 지금은 일이 많은데요. 아직 직장 다니는데요. 아직 재물이 없는데요. 내년에 은퇴하면, 시간이 나면, 주님께 봉사하겠다고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려오라고요. 예수님께서는 삭개오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해결 돼야 한다고 믿었듯이 오늘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 오늘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려오라고, 지금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지금 십자가 앞에 우리의 인생의 짐을 내려놓으라고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넷째,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내가 오늘 네 집에 들어가겠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5절 하)

머무를 계획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 

제가 알고 있는 어느 권사님이 계시는데 우리 교회 권사님은 아니신데 이 권사님이 86세가 되어 돌아가셨는데 아들 셋에,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식들 가운데 아무도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어머니 권사님이 35년 동안 권사로 봉사하시면서 자식들을 주 앞으로 인도하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유언을 남기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들 딸이 전혀 교회를 나오지 않다가 4년이 지난 어느 날 이 큰 아들이 아파서 병원이 가보니 의사가 지나가는 말로 이 마음의 병이 굉장히 중요한데 교회를 다니면 평안해 지니까 한 번 신앙생활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권면하는 이 말에 이 큰 아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의 말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던지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자식도 교회를 다니지 않았는데 이 분이 혼자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머님의 기도가 자꾸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이 35년 동안 자기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던 것을 그 때 깨닫고 자기 동생들을 다 불러서 교회를 다니자, 제사지냈던 것도 다 없애 버리고 추모예배를 드리는데 이 형의 전도로 남동생 둘과 여동생 하나가 다 믿는 가정이 됐습니다. 10년 걸렸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 자리에 여러분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에 여러분을 불러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식구가 자녀 손 모두 다 믿어, 여러분의 가문이 예수 믿는 가정이 되라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보고 내가 네 집에 가서 머물러야겠다는 말씀은 삭개오 너 한 사람의 구원을 통해 네 온 집안이 구원되기를 원하노라. 예수님은 그래서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집안에 오시려면 여러분이 주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다섯째, 삭개오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회개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시게 되자 삭개오는 뭐라고 고백을 합니까? 예수님, 제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반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혹시 남의 것을 훔친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습니다. 우리는 이 삭개오의 말을 통해 회개라고 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원래 회개라고 하는 단어는 “돌아오다”라는 뜻입니다. 가던 길로 부터 돌아오다. 마음으로만 아 내가 죄인이었어. 맞아 내가 돈을 훔쳤어. 내가 나쁜 짓을 했지. 내가 잘못했구나.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동이 있을 때 그것을 가리켜 회개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목포를 가야하는데 기차를 타고 가는데 서대전인가에서 경부선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 이거 잘못됐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그러고 여러분이 계속 앉아 있으면 그 열차는 부산으로 갑니다. 아셨으면 내려서 갈아타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지요.

삭개오는 자기 자신이 그 동안에 같은 동족의 피를 빨아 먹는 매국노의 일, 때로는 지나치게 세금을 걷어 들였던 일, 이것이 도적질 한 것, 토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그는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남의 것 훔친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는 신명기서에 민수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정말로 여러분이 주님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풍요로운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면 구체적인 회개의 모양이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여섯째, 사람들은 현재의 삭개오를 보지만 예수님은 변화될 삭개오의 미래를 보십니다.

이런 삭개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삭개오를 그냥 있는 그대로 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쓰는 말 가운데 정말 쓰지 말아야 할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잘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우리 아이들이 사고 칠 수 있습니다. 부모님 속 썩이고 그럴 수 있지요? 그 애는 안 돼, 걔가 잘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이것은 자식에 대한 저주 아닙니까? 

우리의 눈으로 보면, 지금 자식이 잘 못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지금 아무것도 안될 수 있지요? 엉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보십니다. 그 가운데 예수의 복음이 들어가고 예수를 만나고 예수와 관계를 맺기만 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님은 아십니다. 삭개오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삭개오를 매국노로 나쁜 사람 도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면서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삭개오의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삭개오를 판단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만나 풍요로운 존재로 변화될 미래의 삭개오를 보셨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바라볼 때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예수만 만나면, 예수와 관계를 맺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 정말로 죄인도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아름다운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삭개오란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삭개오란 이름은 너무너무 좋은 이름입니다. 순전하고 의롭다는 뜻입니다. 돈 때문에 직업 때문에 순전하고 의롭지 않았었지만, 예수를 만나 예수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게 되면 그는 그의 이름에 걸 맞는 새로운 미래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저를 만나 저를 불러 저와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에 주님은 여러분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당신은 수근거리는 뭇사람과 삭개오를 태운 나무 중 무엇?

끝으로, 삭개오를 비난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삭개오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간 나무도 있었습니다.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라는 노래 말도 있는데요. 오늘 본문의 돌무화과 나무는 삭개오를 태웠습니다. 삭개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 때문에 내 어깨를 통해 내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뽕나무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고 죄인이라고 모자란다고 이렇게 비난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라, 삭개오와 같이 죄인을 가슴에 품고 예수님에게 데리고 가서 변화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뽕나무와도 같은 인생! 여러분과 제가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방해하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께로 누군가를 인도할 수 있는 인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의 삭개오는 누구입니까? 여러분과 저 아닙니까? 우리 모두가 삭개오입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시기 위하여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우리를 바라보시고 이 시간에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 말은 예수님께서 죄 많고 더럽기 짝이 없는 우리를 담아 우리를 구원해 새로운 인생이 되게 하려고 예수님이 이 시간에 여러분과 저를 부르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께 속히 내려가 십자가 밑에 우리의 삶을 내려놓고,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 주님은 우리의 삶을 과거의 삶이 아닌 미래의 삶으로 바꿔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역사가 경험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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