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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의 출발점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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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출발점 (살전 5:18)


100m 달리기 육상 경기에서 보면 선수들이 출발하는 출발점이 있습니다. 아무데서나 출발하지 않습니다. 마라톤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출발점에서 출발을 잘해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데 그 감사의 출발점이 어디서부터인지 생각해볼 때 우리 주님의 음성이 여러분에게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까? 그것은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본문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분명히 밝혀 놓은 구절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성도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뜻입니다. 
성도의 입에는 언제나 우선 감사하는 말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합니다” 해놓고 왜 감사한지 그 이유는 나중에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일에든 반드시 감사할 이유가 있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없으면 감사하라고 했으니까 감사했다고 말하십시오. 그것도 훌륭한 감사의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감사하는 것이라면 그 감사의 출발점은 어디서부터일까요?

1. 감사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있습니다. 

시 107:1 절에 보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가 그의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을 거역한 인생들이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범죄한 대로 율법적으로 엄격하게 현재 이 땅에서 죄를 처리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아마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죄인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결국 한 사람이 라도 더 회개하고 구원받게 하려고 하시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롬 9:22절에 보면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범죄 하므로 이미 멸하기로 준비된 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생들에게 의로운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디 까지나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그 어느 것으로도 비교될 수 없습니다. 

정신분석학자 ‘빅토르 프랑클’은 이 세상에서 가장 엄격하였던 아버지를 메리메의 소설 ‘마테오 팔코네’ 속에 나오는 주인공 ‘팔코네’로 보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사르디아 섬 외딴 집에서 소년 ‘포르투나토’ 가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국 독립군 게릴라들이 헌병에게 쫓겨 짚더미 속에 숨었습니다. 뒤쫓아 온 헌병들은 소년 ‘포르나토’에게 시계를 주면서 유혹하였습니다. 독립군들이 숨은 곳을 말하면 시계를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린 소년은 그 시계 갖고 싶어서 독립군들이 숨어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독립군들은 체포되어 끌려갔습니다. 멀리 갔던 아버지 ‘팔코네’가 돌아와서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팔코네는 총에 총알을 장진하고 아들을 끌고 개울가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질질 끌고 가는 아버지의 다리를 붙들고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막무가 내었습니다. 드디어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아내에게 “놈을 위해 기도해 주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팔코네는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아들을 죽임으로서 피도 눈물도 없는 매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입니다.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병을 가져온 마귀를 미워하셨지만 병자는 사랑하셨습니다. 팔코네는 죄인을 미워하였지 죄 처리 방법을 몰랐습니다. 속은 시원하고 정의감에 불타고 사람들은 애국자라고 높이 평가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들은 죽어 버렸고 아내는 그 충격으로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갖게 되었고 자신도 언젠가는 후회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들에 대하여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입니다.
인생들을 향한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죄인은 사랑하셔도 죄는 미워하시기에 인간들과 죄를 분리시킬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구약에서는 흠 없는 짐승이 죄를 짊어지고 인간의 죄 값으로 대신 죽게 하셨고 신약에서는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피 흘리게 하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느니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자리입니다. 
죄인 된 우리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타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의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2. 받은 은혜를 헤아리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없는 것은 잘 헤아립니다. 그러나 자신이 받은 것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잘헤아리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빈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들에게 주어지는지 모릅니다.
찬송가 489장의 후렴 부분에 보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받은 복을 세어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신 16:10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 받은 복을 헤아려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받은 복을 헤아릴 줄 하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가 나옵니다. 

생명을 받았습니다. 건강을 받았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살 집이 있고 하루 끼니 걱정하지 않을 만큼의 그날 그날 양식이 있습니다. 더구나 마음껏 신앙생할 할 수 있는 영적 환경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들입니다.
하루 세끼 밥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있는 사람은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받은 은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은혜입니다. 

어떤 군인이 월남전에 참전하였다가 지뢰를 밟는 바람에 양 발목이 잘리어 나갔습니다. 그는 후송되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을 받아들일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하며 자신의 삶을 비관하였습니다.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 주님이 나타났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무엇을 잃었니?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라고 불평스럽게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은 미소를 머금고 그에게 또 다시 물었습니다. 
손 있니? 예 있습니다. 팔있니? 예
눈 있니? 예
코있니? 예 
먹고 말할 수 있는 입 있니? 예 
따듯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가슴 있니? 예 
주님은 계속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그는 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무엇을 잃었니? 병사는 대답했습니다. 예 두 발목만 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우리에게 없는 것 때문에 불평하기도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있는 것을 헤아림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없는 것 잃은 것 가지고 불평하지말고 있는 것 받은 것 가지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마음은 낮춤으로 감사가 나옵니다. 

마음을 높게 가지면 언제나 불평과 원망만 쏟아집니다. 그러나 마음을 낮추어 보십시오.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 마음들을 좀 낮춥시다. 
바을은 롬 12:16절에서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고 했습니다. 

미국의 어느 부자가 영국의 유명한 대학 옥스포드를 찾아 갔습니다. 공부가 끝난 오후 시간에 찾아간 것입니다. 엄숙한 학교 분위기에 그 부자는 압도되었습니다.
둘러보니 아름다운 잔디를 깎고 있는 노인이 한사람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인은 허술한 옷차림으로 열심히 잔디를 깎고 있었습니다. 미국 부자는 잔디가 보기에 너무도 아름다워 노인 곁으로 다가 갔습니다. 
"영감님, 이떻게 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잔디를 기를 수 있습니까?" 
"예, 매일 물을 주고 깎아주면 됩니다." 
지극히 평범한 대답이었습니다. 
"이 잔디를 얼마나 손질을 했습니까?" 
"이와 같은 일을 300년 동안했습니다." 
미국의 부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잔디 밭 하나 가꾸는데 300년이 걸리다니. 미국의 부자가 더욱 놀란 사실은 그 잔디를 깎고 있는 노인이 그 대학의 총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눈을 돌려 세상을 보면 서로 높아지려는 아우성 뿐 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 기독교인들은 자세를 낮추고 목소리를 낮추어 겸손의 본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도 이런 겸손을 직접 행동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면 감사가 나옵니다. 

여러분!
한 끼의 양식이 없어 굶은 인구가 지구촌에 수없이 많습니다. 병들어도 약이 없어 속수무책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이제는 좀 낮아집시다. 그러면 감사가 저절로 나올것입니다. 

여러분!
11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여러분이 구원의 은혜 받은 것을 생각하여 감사합시다. 그리고 받은 은혜를 헤아려 감사합시다. 이제는 마음을 좀 낮추고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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