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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다가 축복받은 이유 (창 49: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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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축복받은 이유 (창 49:8-12)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에 지우개가 달려 있지 않은 연필을 가지고 간답니다. 만약 연필에 지우개가 달려 있으면 지우개를 잘라내고 가져간답니다. 학교에서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아이들이 글자를 배우면서 지우개를 사용하면 부정적인 심성이 길러지기 때문이랍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조작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러기에 글자를 배울 때 정해진 크기의 칸에 글자를 써 넣는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나름대로 노력을 하지만 정해진 칸에 턱없이 작든지, 크던지 합니다. 아이들이 글자가 정해진 칸 밖으로 나오면 지우개로 지웁니다. 

칸 안에 글자를 쓸 때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불안하고 화가 나서 ‘아이 씨’ 라는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잘못된 글자를 지우는 아이들을 입에 ‘아이 씨’라는 부정적인 표현이 거침없이 나옵니다. 특히 지우개로 지우다가 혹이라도 종이가 찢어지면 더 화가나 ‘아이 씨’를 연발해서 표현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는 부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언어의 표현에 익숙하게 되고 그것이 그 아이들의 미래의 삶을 부정적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지우개가 없는 연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지우개 대신에 ‘돼지 꼬리’ 사인을 통해 잘못된 글자를 수정 한다고 합니다. 주어진 칸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돼지 꼬리’를 붙이며 날려 버리는 놀이를 하며 수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돼지 꼬리에 돼지를 그리면 온통 색다른 돼지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립니다. 그렇게 표현하는 가운데 아이들의 노트에는 재미있는 돼지의 모양으로 가득 차게 되고 학습은 더 즐겁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런 교육과정을 통해 부정적인 영역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영역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심성을 심어주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교육 방식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를 창조하시는 과정을 보면 부정적인 영역을 긍정적인 영역으로 만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곳에 개입하셔서 빛을 만드시면서 세상을 아름답고 조화 있는 세계로 만드셨습니다. 세상을 만드시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시기에 좋았더라’ 입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 즉 부정적인 것에서 보시기에 좋은, 즉 긍정적인 것을 만드시며 행복해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믿은 믿음은 부정적 마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긍정 마음입니다. ‘너는 안 된다’ ‘너는 할 수 없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라는 부정적인 마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너는 된다’ ‘너는 할 수 있다’ ‘나는 된다’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불평과 원망 등의 부정적인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감사와 기쁨 등의 긍정적인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축복하셨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등은 한 결 같이 긍정적인 생각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야곱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꿈치를 잡았다’ ‘사기를 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적극적인 믿음을 확인하신 후에 야곱이라는 그의 이름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라는 뜻인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지금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국가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열 두 아들의 후손들에게 이스라엘의 땅을 열 두 지분으로 나누어 제비뽑기를 통해 나눠주셨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야곱의 열 두 아들과 그의 후손들과 관련된 성경을 읽다 보면 놀라운 교훈을 찾게 됩니다. 열 두 아들의 후손들 중에는 축복을 받은 후손들이 있는가 하면 저주를 받은 후손도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저주를 받은 시므온 지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큰 사랑과 복을 받은 유다 지파에 대해 살펴보며 은혜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버지 야곱이 죽기 직전에 열 두 아들들에게 축복을 하는 가운데 네 째 아들인 유다에게 한 축복의 내용입니다. 8-9절에서는 유다 자손의 번성함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40년이 광야를 지나 모압 땅에서 인구 조사를 했을 때 유다 지파가 75500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저주를 받은 시므온 지파의 22000명에 비하며 3배나 많는 숫자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지파를 약속하신 축복처럼 사자처럼 강하게 세우셨습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규’는 왕권을 상징하는 증표로 왕이 손에 들고 다니는 홀을 말합니다. ‘통치자의 지팡이’도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후손으로 왕을 이어가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서부터 시작해서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때까지 22대에 걸쳐 남 유다 왕국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70년의 포로생활 후에 해방을 이끌었던 스룹바벨,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들이 모두 유다의 자손들이었습니다. 특히 이 땅의 모든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유다 자손인 요셉을 통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너희 후손에게 왕권을 이어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끝까지 이뤄주셨습니다. 

11-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와 그의 후손들에게 물질의 풍요함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 가운데 유다 지파에게 가장 넓은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유다는 나머지 형제 지파들이 모두 힘을 합해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축복을 선언하시는 가운데 특별히 넷째 아들인 유다와 그의 후손들을 축복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들은 성경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다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아, 이래서 유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야곱에게는 열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과 막내인 베냐민은 야곱이 네 명의 아내 가운데 가장 사랑하던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특히 라헬은 막내인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그러기에 야곱은 요셉과 베냐민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혔는데 이는 그를 장자처럼 사랑했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형제들을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겼기에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죽일 기회를 얻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는 형들에게 음식을 전해 주기 위해 요셉이 형들에게 온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둘째인 시므온이 요셉을 죽여 웅덩이에 묻어 버리자고 형제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장남인 르우벤이 요셉을 직접 죽이지는 말고 그냥 웅덩이에 집어 넣자고 말합니다. 그들은 요셉을 웅덩이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는 미디안 상인들을 보고 네 째인 유다가 동생을 죽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며 상인들에게 팔아서 생명만을 살려 주자고 제안합니다. 유다의 기지로 요셉은 죽임을 당하지 않고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갑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온갖 고생 끝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때 전 세계적으로 기근이 들었고 야곱의 아들들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형들에게 애굽으로 팔려와 온갖 고생 끝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과 그의 형들이 만나게 됩니다. 긴장감 넘치는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시간상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37장에서 45장에 그 내용이 상세하게 나옵니다. 시간을 내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보면 유다의 어버지와 형제, 그리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옵니다. 시므온이 애굽에 감금되어 있고 애굽에서 구해온 양식이 다 떨어졌을 때, 아버지 야곱을 설득하면서 시므온을 다시 데려오지 못하면 그 책임을 내가 지겠다고 한 사람이 유다였습니다. 막내 동생 베냐민이 애굽에 감금당했을 때 요셉에게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라고 말한 사람이 유다였습니다. 이처럼 유다는 자신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서라도 아버지와 동생의 생명을 건지려고 몸부림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유다와 그의 후손들에게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유다 지파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이유를 민수기 10장에서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이를 때까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할 때에 유다 지파를 항상 앞장서게 하셨습니다. 끝없는 광야 길에서 특히 어느 곳에서 적들이 공격해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행렬의 맨 앞에 선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는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에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앞장서서 그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는 길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사사기 1:1~2를 함께 찾아서 읽어봅시다. 구약 357면입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쟁터에서 가장 많이 희생당하는 자는 앞장선 사람입니다. 전쟁에 앞장을 서는 데에 아무나 서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된 사람을 세웁니다. 훈련된 사람을 세웁니다. 

담대한 사람, 강한 사람을 뽑아 훈련시킨 뒤 전방에 투입합니다. 유다지파가 이러한 역할을 했습니다. 유다지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가장 담대한 믿음을 가진 지파였습니다. 유다지파는 이처럼 믿음 안에서 담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에게 특별한 추복을 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다 지파가 축복을 받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다윗 왕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평안을 얻게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기를 사모했던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일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블레셋 군대에게 빼앗겼던 법궤를 찾아오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큰 궁정에서 거하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조그마한 성막에 거하는 것을 가슴 아파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면서 ‘네가 나의 집을 지어 주겠다고 말하는데 고맙다. 네가 도리어 너의 집을 지어주마. 너의 왕권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게 하겠다’ 고 약속하셨습니다. 

유다 지파의 사람들, 특히 다윗은 하나님을 누구보다 더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일에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유다와 그의 지파를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야곱을 통해서 약속하신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와 그이 후손들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삶을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 추한 일도 많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자신들이 이루고 있는 신앙공동체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긍정적인 마음과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섬김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시므온과 같은 삶의 모습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멀어지는 삶이 아니라 유다와 같은 삶의 모습으로 살아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까이 나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주의 백성들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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