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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하나님의 지혜 (고전 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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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하나님의 지혜 (고전 2:6-16)

 
오늘 본문 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비밀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그 구원의 계획, 죄로 인하여 죽음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살리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실현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님의 선지자들에게 계시되었고 이제 그들의 입술을 통하여 선포되었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들이 바로 ‘비밀에 쌓여있는 하나님의 지혜’들인 것입니다. 그리도 아직은 완전하게 들어나지 아니한 이 구원의 일들이 바로 ‘만세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해 미리 정하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구원이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 그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는 이 세상에서 시작했거나 이 세상에 속한 지혜가 아니지요. 그러므로 이 세상의 통치자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들이 주장하는 그 어떤 능력으로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아 알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일세기 이 세상을 향유하던 통치자들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았더라면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 못 박도록 내어주지는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지혜,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자기 생명까지 버려 자기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았던 사람들이 그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미천하여 자신의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어린아이와 여인들, 일부의 장애인들과 병들어 죽음의 문턱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세상을 향하여 대항할 힘도 없었고 능력도 없어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탄식하며 울 수밖에 없었던 존재들이었지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의 지혜로는 이해하기 어려우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생들이 아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가난하고 곤고하여 애통하는 그 아픔의 눈물로 자신의 심령을 닦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세상의 이치를 뛰어넘은 사람이라면 밝히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의 지혜로 보기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이 세상을 구원하는 위대한 힘을 가진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에 매인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 다시 말해서 그가 믿음의 사람이 되기 전에 아무리 흉악한 강도였었다 할지라도 / 성령의 인침을 받아 믿음의 사람이 된 후에는 / 작은 어린아이에게까지 고개를 숙이는 겸손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순간에는 열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양처럼 순하면서도 소처럼 심지가 곧은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 삶의 극적인 변화 / 그 무엇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거친 모습으로 토하는 인간의 포악한 속성을 / 순한 양의 뜨거운 열정으로 바꾸어 놓는 그 힘, / 그것은 세상의 그 무엇이 아니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 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이요 / 하나님의 지혜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 하나님이 태초부터 품고 계시던 구원의 계획,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그 영원한 구원의 계획을 / 진솔하게 믿음을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계시하는 순간 / 죄로 물들었던 영혼은 불에 태워진 듯, 물에 녹아진 듯, 흩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주,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그분의 손길에 의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제 세상의 것 중,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하니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세상의 것들에 의해 닥쳐오는 온갖 환란과 고난을 온몸으로 스펀지처럼 받아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전심을 다하여 그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오직 그 십자가만을 소리쳐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그의 영광을 담고 있습니다. 그 영광이 복음을 수용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지혜로 깨우치고 능력으로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수용하기에 합당한 존재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때에 / 그리스도께서 / 온 세상 만물을 이기시는 그 놀라운 힘으로 / 우리의 죽을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인 복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담고 있는 것이 확실해도 세상의 지혜를 좇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진 비밀로 남아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도는 본문 9절에서 이사야 64장 4절 말씀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집에 가셔서 이사야 64장 4절 말씀과 본문9절 말씀을 비교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들의 요점은 /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준비된 것은 아무나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성자하나님의 인치심이 있어 성령하나님께서 계시하여 보여주실 때 다시 말해 성령 세례를 받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을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다시 말해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는 순간 우리는 감추었던 하나님의 그 오묘하신 지혜와 능력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놀라움으로 우리는 우리의 추함을 돌아보며 사랑의 구주 앞에 두 무릎을 온전히 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으며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이 주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배움이 없는 어부였던 베드로가 그 하나님의 지혜로 그리스도의 사도의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유대인이요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에게 그의 생애 동안 끊임없이 그의 뇌리 속을 맴돌아 떠오르며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가?’ ‘우주의 질서를 관찰하면서 과연 이 질서를 부여한 하나님은 계시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결국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풀어내지는 못하고 유명을 달리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는 우리에게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가? 우주의 질서를 부여하신분이 하나님이신가?’라는 질문이 더 이상 풀어내지 못할 어려운 문제가 아니지요.

그러하니 여러분과 저는 세계적 석학인 아인슈타인보다 하나님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는 세상 모든 것과 관계되어 있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한 사람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존재보다도 지혜로운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말씀을 통하여 / 세상 지식은 있으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어리석게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잠언기자는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을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모든 섭리하심을 성령께서 아시는 것은 성령이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우리의 영혼이 알듯이 하나님께서 하시려하는 모든 일들을 성령께서 아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도가 성령 세례를 받아 성령의 사람이 된 후에는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그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공유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역으로 정의하면 성령의 가르침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그 오묘함을 정확히 깨달아 알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요.

이 말씀을 또 다시 역으로 정의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지 아니하고 세상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그 짧은 언변을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높은 경지에 이른 듯 자랑할지 모르나 그의 심령 속은 속빈 강정처럼 허전하여 늘 공허함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문 14절과 15절은 육에 속한 사람 즉 세상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 즉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비교하여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깨달아 알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4절로 16절의 말씀을 좀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제가 다른 번역본을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들으시고 여러분 모두 말씀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은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그 말이 어리석게만 들릴 뿐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는 마음으로 성령을 영접한 사람만이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영접한 사람은 모든 것을 꿰뚫어 압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은 당황하며 헛되이 애씁니다. 주님의 생각도 모르고 주님과 의논한 일도 없는데 어떻게 이 세상 사람이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구세주이신 그분의 능력으로 힘입어 죄악으로 얽어매고 있는 세상의 영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충만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이 인도하는 성도의 삶을 살기에 주저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참된 성도의 삶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경이 지시하는 말씀들을 겸손하게 수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성경을 오십 번 읽었고 백번을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어깨가 세워지고 목이 곧아져서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판단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말씀을 바르게 묵상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도는 성도 스스로 주 앞에서 겸손한 사람으로 자라가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 하나님께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우고 익혀야 할 것입니다. 이는 인간 저자들이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고 또 한 그 말씀들이 바르게 기록되도록 성경 저자들을 인도하신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령에 의지하기를 애쓰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어느 날인가 가슴이 뭉클해지고 심령이 감동하여 새로운 결심을 할 때가 있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께서 그 말씀으로 성령의 사람인 우리 인격의 좌소를 만지셔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사건이요 또한 하나님의 사건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 없는 하나님의 도구들이 되었고 이러한 도구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를 확장하시고 또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은 겸손함이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인 성도는 말 한마디를 할 때에도 그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는 세우는데 주님의 지체들을 성화의 길로 인도하는 데 거침이 되지 아니할까 조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사도 바울의 기도문을 드릴덴데 집에 가셔서 깊이 한번 묵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주님을 바로 알고 겸손하여 지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기원하면서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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